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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경성 맛집 산책≫ 박현수
제목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경성’이라는 지명이 주는 역사적 위압감과 ‘맛집’이라는 설렘 가득한 신조어가 ‘산책’이라는 단어로 버무려진, 묘하게 이질적인 제목이라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미식가와는 거리가 먼 나로서는, 461쪽에 달하는 분량을 보니 ’맛집을 뭐 이렇게까지 연구했어?‘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 거다. 음식은 균형 있는 영양소에 배만 부르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인스타그램 핫플 지도‘를 보고 맛집을 가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니, 이 책은 그런 의미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긴가민가한 첫인상을 가지고 읽어가다가 어느새 나는 이 책에 푹 빠져버렸다. 내 예상보다 더 신박하고 유익한 책. 식민지 시대 경성의 맛집 10곳을 소개하는데, 단순히 음식점을 탐방하는 것을 넘어 당시의 생활상과 “근대의 흔적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방대한 문헌과 사료를 통해 맛집의 메뉴, 가격, 맛을 밝혀내고, 여러 근대 문학을 분석해 분위기와 풍경까지 재현한, 저자의 폭넓은 노력이 보였다. 객관적이고 촘촘한 역사 고증은, 오늘날 우리의 식탁 위의 다채로운 음식이 어떤 줄기에서 뻗어나왔는지를 알 수 있게 했고, 식민 지배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잊지 않고 다시금 주목할 수 있게 했다.
이 책은 미식가에겐 100년 전 맛집을 탐방하는 식도락 여행, 문학도에겐 근대 문학을 톺아보는 문학 여행, 역사에 관심 있는 이에겐 그 시대 생활상을 들여다보는 과거여행이 될 것 같다. 어떤 독자이든 유익하고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총 3부로 나뉘어, 1부는 본정의 맛집 4곳, 2부는 종로의 맛집 3곳, 그리고 3부는 장곡천정과 황금정에서 영업 했던 맛집 3곳을 살펴본다. 서양요리점, 일본 요리옥, 디저트 카페, 설렁탕집, 중화요리집 등으로 종류도 다양하다.
📍커피네 홍차네 제각금들 청하니까 “커피는 이 집이 아마 서울서는 제일 조흘걸요.” 영옥이 그 방면의 조예를 자랑한다. “그래요?” 경아가 대답하는데, “미스코시 것이 제일 조타더니.” 보순이 불복을 한다. ”건 그렇지만 이런 차집 중에서 말이지.“ 말하는 영옥을 건너다보며 문득 시영은 나란히 안즌 영옥과 경아와의 대조를 생각하는 것이엇다. / 164
유진오의 <화상보>에 나오는, 경성의 커피 맛집을 두고 겨루는 대화다. 여기서 언급 되는 곳은 ‘가네보 프루츠팔러’와 ‘미쓰코시백화점 식당’. 가네보 프루츠팔러는 당시 파르페를 팔았던 ‘핫플레이스’였다고 한다. 파르페가 역사가 오래된 디저트라는 게 놀라웠고, 100년 전 커피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약간 궁금하기도 하다.
여러 근대소설의 줄거리도 같이 살펴보며 굉장히 재미있게 책을 읽다가도, 한편으로 나는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시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고 식민 지배를 받던 암울한 그 때를 마주하게 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번화가의 고급스럽고 화려했던 맛집과 가난한 조선인들이 이용했던 시장통의 식당이 왜 이리도 대조 되어 보였던 걸까. 조선 서민들의 한 달 식비보다 더 비쌌던 조선호텔 식당의 정식은 부유층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알 수 있게 했고, 비싼 서양음식점에서 생긴 ‘런치’는 일본의 서구화를 향한 열망을 엿보게 했다. 조선인들의 ‘소울 푸드’ 설렁탕과 냉면은 식민지의 가난과 설움을 보여주는 음식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김 첨지의 아내가 왜 설렁탕을 먹고 싶어했는지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또 고급 서양요리점에선 조선 음식을 전혀 팔지 않았고 일본인 손님을 주된 타깃으로 잡았다는 점, 일본의 철도 이용 편의를 위해 경성에 건립한 철도호텔이 ‘조선 호텔’로 바뀌었다는 점 등에서도 짙게 드리워진 식민지의 그늘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느꼈던 책의 무게감은 단지 두께가 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이 경성의 맛집을 다룬다 하여 식민지 경험까지 수긍하는 것은 아니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경성 맛집으로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할 역사를 조명하는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미쓰코시, 미나카이, 조지아 등의 백화점은 경성에 위치하고는 있었지만 식민지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제국을 위한 공간이었다. / 104
조선과 일본 전체로 따져도 경성은 도쿄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하지만 경성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며 조선인 손님의 비중이 늘어났더라도 일본인이 운영했던 백화점의 영업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 수가 늘어났더라도 식민지인은 식민지인이었기 때문이다. / 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