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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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연주가 울려 퍼지는 카네기홀. 주인공 토미는 아내와 함께 완벽한 음악 감상을 기대하며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기 전, 옆자리 노인의 소매 끝에서 예상치 못한 물건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녹음기. 콘서트홀에선 반입이 금지된 물건이다. 토미는 당황하고, 곧 정의감으로 불타오른다. 이 고귀한 예술의 공간에서 규칙을 어기다니. 그는 눈짓으로 노인에게 경고를 시도하지만 통하지 않고, 공연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관리자에게 고발하러 나간다. 그리고 사태는 점점 커져 경찰까지 개입하게 된다.

테이블 포 투의 여러 단편 중 하나인 『밀조업자』는 이 짧은 사건을 통해 ‘옳음’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한 사람을 움직이고, 때로는 그를 불편하게 만들며, 끝내 흔들리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엔 정의로웠던 토미의 행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복잡한 심경으로 바뀌고, 그 감정은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이해받고자 하는 욕망으로 얽혀든다. 토미는 결국 노인에게 사과하기 위해 집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의 행방을 쫓고, 마침내 노인의 딸 메레디스를 만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독자는 비로소 토미가 쌓아온 감정의 무게를 마주하게 된다. 메레디스는 단 한 문장으로 토미를 정면으로 겨눈다. “당신이 평생 카네기홀에 다니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자리에 앉을 때마다, 바흐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내가 오늘 한 말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이 말은 작품 전체의 결을 바꾸는, 일종의 ‘말의 저주’처럼 남아 긴 여운을 남긴다.

『밀조업자』는 단순한 해프닝처럼 시작되지만, 읽고 나면 마음 한쪽이 묘하게 저릿해지는 작품이다. 누구나 자신의 ‘옳음’을 믿고 행동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옳음’은 과연 타인에게도 정당할까?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미가 점점 일을 키워나가고, 그의 감정이 덧없게 요동치는 걸 보는 게 꽤 우스우면서도 쓸쓸하게 다가왔다. 결국 이 이야기는 토미라는 한 사람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옳게’ 하려다 돌이킬 수 없는 뒤끝을 남긴 경험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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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구정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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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타인 ‘엄마’와 ‘딸’. 사실 둘은 처음엔 한 몸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최근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입덧이 심한 건 태아가 엄마가 아닌 아빠를 많이 닮아서인데, 그래서 몸이 태아를 기생으로 인식해 입덧을 하게 된다는 말. 당연히 의학적 근거는 없을 테지만, 그말을 들으며 어쩐지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아빠를 닮았느니 하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엄마와 딸은 결국 완벽한 타인이다. 비슷할 수는 있지만 모든 면이 같을 수는 없다. 공통점이 많으면 더 다정한 모녀 관계가 될 수도 있겠지만, 구정인 작가의 만화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표지에 등장하는 선영의 표정은 그런 기대를 단번에 무너뜨린다.

텅 빈 지하철 좌석에 앉아,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선영.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이렇게 공허하고 막막한 감정일 수 있다니. 대체 선영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나는 읽기도 전에 선영의 편에 서게 됐다.

떼를 쓰는 언니에겐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여주면서, 초경을 시작한 나에게 생리대만 건네고 별말 없는 엄마. 해서는 안될 말을 그런 줄도 모르고 툭툭 던지는 엄마, 이성적이고 거침없고 강한 성격의 엄마.

그런 엄마 앞의 딸인 나, 그래서 너무 다정한 친구 어머니를 뵙고 생경함을 느끼는 나. 아픈 대학 동기가 본가에 가서 쉬고 오는 것을 더 수고로운 행동이라 생각하는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는 나, 민감하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조심조심 살아가는 나.

그런 나(선영)은 엄마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계속 작아진다. 컷을 넘기며 나는 선영과 엄마의 반대되는 모습을 하나씩 찾아 나열해봤다. 그리고 그런 엄마가 선영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엄마가 어떻게 이래?”
“엄마가 되어보지 않은 나도 이건 아니라는 건 알겠어.”
“내가 겪은 나의 엄마와는 너무 달라.”

이런 마음을 품은 채, 나는 선영과 함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2년 동안 연락을 끊었던 엄마를,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만나야겠다고 다짐하는 선영. 그 선택이 나는 놀라웠다. 내가 선영이었다면 그런 엄마와 상담을 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영은 지하철을 타고 엄마에게로 향한다.

“엄마, 나는 왜 엄마를 만나러 온 걸까?” (p.198)
지하철을 한 역씩 지나갈수록, 선영은 엄마와의 기억을 한 조각씩 떠올린다. 대부분은 아물지 않은 상처들. 마지막까지도 선영은 그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끝없이 고민한다.

나도 엄마였던 적이 없고, 선영도 아직은 엄마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 둘 다 딸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 엄마의 입장은 그게 아니었을지도, 그래도 너무하다고 어떻게 그러실 수 있냐고 묻고 싶다. 아마 심각하게 생각하신 것이 아니겠지…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내내 복잡한 감정에 얽히는 선영. 결국 엄마를 만나서 어떤 얘기들을 했을까?

나는 내가 일방적으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불효녀였던 적은 있어도, 엄마가 나의 마음을 힘들게 한 경험은 없다. 좋은 어머니를 만나 기쁘지만 그렇다고 내가 선영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순 있어도 결국엔 독립적인 존재, 완벽한 타인이니까.

만화라서 금세 읽히긴 했지만, 그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한 그림체 탓에 감정 묘사가 세밀하게 될지 의뭉스러웠는데, 오히려 그 간결함 덕에 장면과 감정이 더 명확히 보였다.

이 책은 나뿐 아니라 우리 엄마에게도 권하고 싶다. 나는 엄마의 딸이지만, 엄마도 외할머니의 딸이니까. 엄마도 해보고 딸도 해본 사람이 이 만화를 읽으면 주인공 선영과 그녀의 엄마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지. 나도 엄마가 되어서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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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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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라 작가의 첫 소설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독자로 하여금 삶의 복잡다단한 관계와 존재의 미묘한 긴장감을 다시 한 번 깊이 음미하게 만든다. 이 책에 수록된 7편의 단편소설은 단순한 이야기 모음이 아니라, 각기 다른 인간 군상의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느껴지는 고요하면서도 날카로운 긴장감을 절묘하게 풀어내고 있다. 각 인물들은 겉보기와는 다른, 내면의 미묘한 갈등과 자아 발견의 과정을 겪으며, 마치 정글을 방불케 하는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야생동물처럼 그려진다. 이들은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탐색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정의하며 살아간다.

더불어 이 소설집은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동시에, 일상적인 경험을 예술적 재구성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강보라 작가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감춰진 미묘한 감정과 존재의 무게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뱀과 양배추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책 속에는 호기심과 불편함,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묘한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독자는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시각과 경험이 만나 만들어내는 다층적인 의미의 풍경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이 소설집에서 인상 깊은 점은 강보라 작가의 서사 리듬이다. 단편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짜여진 구성 속에서 유려하게 흘러가며, 때로는 날카로운 유머와 함께 독자의 마음 한켠을 건드린다. 마치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어두움 속에서도 잠시나마 웃음을 건네주는 작은 빛과 같은 역할을 하며, 동시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단편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 존재의 복잡함과 사회의 다면성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집이다. 강보라 작가의 문체와 감각은 독자에게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선사하며, 우리 각자의 내면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독자로서 이 책은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장면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만드는 소중한 초대장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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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선물 가게, 기적을 팝니다 꿀잠 선물 가게
박초은 지음, 모차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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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꿀잠 선물 가게』로 우리에게 포근한 휴식을 선물했던 박초은 작가가 이번에는 봄의 따스함을 품고 다시 돌아왔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잠들기 어려운 밤이 늘어간다. 이 책에 등장하는 ‘꿀잠 아이템’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살짝 가벼워지는 듯하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다정한 그림과 따스한 분위기는 마치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가게를 떠올리게 한다. 드림캐처, 티 한 잔, 기분 좋은 향기 같은 소품들로 구성된 꿀잠 선물 가게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위로가 된다. 실제로 이런 공간이 있다면 아마 매일같이 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책은 모두를 위한 이야기다. 어렵지 않은 문장과 여유로운 구성 덕분에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이야기 곳곳에 담긴 따뜻한 시선이 독자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어루만진다. 현실과 환상이 잔잔하게 어우러지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잠’이라는 주제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회복과 성장의 열쇠처럼 느껴진다.

이번 편에서는 전작보다 조금 더 다양한 배경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이 꿀잠 선물을 만들기 위해 달빛 시장이나 블랙 시장, 골동품 가게 등을 오가며 각자의 시간을 쌓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과정 속에서 작가는 ‘흘러가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 지나간 감정에 머무는 방식,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삶의 방향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문득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언뜻 아무 변화 없어 보이던 날들조차 결국 나를 조금씩 앞으로 이끌고 있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이 책은 단순히 ‘잠을 잘 자는 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법에 대한 섬세한 조언을 건넨다.

특히 인생의 파도에 대한 묘사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파도가 있고, 그 앞에서 우리는 휘청이기도 하고 때로는 깊이 가라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어느 틈엔가 스스로 한층 단단해졌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나가는 파도 속에서 삶의 작은 보석을 발견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나 역시 한동안은 비교적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앞으로도 언젠가는 또 큰 물살에 휘청일 날이 오겠지. 그때 이 책을 다시 꺼내어 마음을 가다듬고 싶다. 흔들리는 나를 다잡을 작은 문장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또 이 책은 잠이라는 일상적인 주제를 통해 ‘쉼’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잘 자고 잘 일어난 날은 몸이 가볍고 생각이 맑아지는데, 불면의 밤을 보낸 날은 괜히 모든 것이 뒤틀린 듯 느껴진다. 책은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밤의 시간, 그 속에 담긴 감정과 사연을 섬세하게 끄집어낸다.

내가 머리맡에 두고 싶은 책이란 바로 이런 책이다.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밤, 내 고민과 닮은 손님이 등장하는 장면을 꺼내 읽고 싶다. 그럼 아마도 꿀잠 선물 가게의 오슬로와 자자가 내 이야기도 조심스레 들어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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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번째 여름 (양장) 소설Y
청예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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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많이 늦는다 싶던 올해. 4월에는 비 소식도 잦고, 원래 생각하던 계절감과 해당하는 계절에 맞는 온도의 스펙트럼과 달리 유독 기온이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쳤다. 그러다 정말 정점을 찍으려는 듯 스멀스멀 올라가는 더위의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 청예 작가의 새 장편소설 『일억 번째 여름』을 읽게 되었다. 몰랐는데, 작년에 재밌게 읽고 친구에게 추천까지 했던 『오렌지와 빵칼』의 작가였다.

아무튼 『일억 번째 여름』이라는 제목은 참 아득한 느낌을 준다. 내게 남아 있는 계절들을 아무리 모아본들 일억 번이라는 숫자에 닿을 수는 없겠지. 너무나 당연히, 터무니없게도. 그래서인지 이 소설이 품고 있을 시간의 감각이 궁금해졌다. 나의 일억 번째 여름은 없겠지만, 누군가의 일억 번째 여름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짝 들여다보고 싶었다.

🌳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진화된 신인류의 이야기
『일억 번째 여름』은 인류 멸망 이후 유전 씨앗으로 태어난 신인류 ‘네오인’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유전 형질에 따라 까만 털만 자라는 ‘두두족’, 다양한 색의 털을 지닌 ‘미미족’으로 나뉜다. 미미족은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 두두족은 과학과 기술 중심의 공간에 머문다. 태초는 같았던 두 부족 사이에 시간이 흐르며 물리적, 정신적 거리가 커지고, 결국 미묘한 계급이 형성된다. 그러던 중, 선조가 남긴 예언이 이 세계의 중심에 놓인다.

“어두운 꽃이 푸르러지는 일억 번째 여름이 오면 낡은 한 종족은 반드시 멸망한다.”

예언은 곧 현실이 되고, 네오인들의 세계에 종말의 조짐이 다가온다. 피할 수 없는 끝을 앞에 두고 다섯 인물(주홍, 이록, 일록, 연두, 백금)은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며 쓰임을 찾아간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p.11)
“그럼에도 두꺼운 진심을 얄팍하게 으깨며 미소 지었고, 내가 자신의 쓰임을 완성한다고 말해 줬다.” (p.165)

나도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기꺼이 내 삶을 내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이 문장은 작가의 편지에도 있듯, 『일억 번째 여름』의 근간을 이루는 물음이다.

나의 쓰임은 무엇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
그 사람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가?

그저 감정의 깊이를 묻는 말처럼 보이지만, 『일억 번째 여름』 안에서 이 질문은 훨씬 더 깊은 층위로 가라앉는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쓰임을 찾고, 그 쓰임을 통해 다른 존재를 살리고자 한다.

예컨대, 신체적으로는 미약하지만 고대어를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이록’, 그리고 그를 업고 다니며 해석의 여정을 함께하는 ‘주홍’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나 연대를 넘어, 서로의 쓰임을 인정하고 지켜주는 사랑의 방식으로 그려진다. 이들이 서로를 도우며 나아가는 모습은 결국 위의 질문들로 수렴된다. 나는 나의 쓰임을 통해 누군가의 존재를 지켜주고 싶은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이나 책임을 넘어, ‘내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나의 생이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게 만든다.

그리고 그 대답은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쓰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종말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일억 번째 여름』에 담긴 질문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 쓰임은 다분히 사적인 쓰임일 수도 있다.

‘쓰임’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역할이나 직무를 넘어, 존재의 이유와 삶의 방향성을 의미한다. 특히 이 작품의 세계관처럼 생존 그 자체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중요해진 곳에서는, 쓰임은 곧 ‘나의 존재가 누구에게 닿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맞닿는다.

책을 읽으며 내 삶에서의 쓰임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됐다. 쓰임이란 꼭 거창하거나 사회적으로 유의미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를 안심하게 만드는 말 한마디, 함께 길을 걸어주는 하루, 의미 없어 보일 수 있는 반복된 다정함 같은 것들. 작고 헤픈 것들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균형을 되돌리는 일일 수 있으니까.

이록과 주홍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탱점이 되어주는 방식으로 이 쓰임을 보여준다. 이록이 아니었다면 주홍은 결코 세상을 구할 지식에 닿을 수 없었고, 주홍이 없었다면 이록은 세상을 구할 힌트가 있는 현장에 발을 디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쓰임이 되어준다는 건, 서로가 없으면 완성될 수 없는 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록 없이 주홍은 이후를 어떻게 살게 될까.

중간중간 나오는 실마리들도 재미있었다. 특히 해독해야 하는 고대어로 등장하는 영어, 한국어, 불어 등등. 사전을 뒤적이며 주인공들보다 먼저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 꽤 스릴 있었다.

이야기는 종종 눈부시게 찬란하다. 그러나 그 빛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처럼, 무언가 알 수 없고 막연한 슬픔에 빠지게 되기도 했다. 쓰임에 대해 나도 처음으로 생각해봤다. 특히 ‘역할’이 아닌 ‘관계’에서의 쓰임이라 더욱. 쓰임을 끝까지 다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살아도 괜찮은 걸까? 혹은, 상실을 껴안고 그저 울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어떤 관계의 끝에 닿아보기 전에, 그 답을 내리고 싶다.

우리에게는 일억 번보다 더 소중할, 어쩌면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여름만이 남아 있다. 여름이 주는 숨막히고 갑갑한 열기와 에어컨 아래의 시리게 서늘한 냉기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소설. 비현실 세계를 선호하지 않지만, 철학적 질문에 빠져 인상을 깊게 쓰고 고민을 많이 하며 읽었다. 가볍고 쉽게 읽히는 구절 속에 이런 질문을 넣어두는 것도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끝나지 않는 여름 속에서도, 결국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연결’이라는 말일지도.

이제 여름의 문턱에 아주 가까이 서 있다. 무언가를 지켜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인해 나의 삶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셀 수 있는 찬란한 여름들을 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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