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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의 새 - 2025 박화성소설상 수상작
윤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
평점 :
뭐랄까, 책을 읽고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적다가 잠시 멍하니 생각에 빠져 들었다.
책의 장면들이 머리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기분이다.
비바람이 부는 날씨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 가다가도,
숲에 우둑하니 서 소행성이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것을 바라 보았다.
시각, 청각, 후각의 경험이 확장되면서 나는 진율이 되었다가 차수지가 되었다.
나도 새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진율은 어느 날 회사 동료인 영오가 전해준 낯선 이의 죽음에 대해 듣는다.
그의 죽음은 고요했다고 한다. 잠든 채 미소 지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했다는 듯이.
지병도 없던 건강한 30대 청년이 그렇게 하루 아침에 죽어버렸다.
그걸 들은 이후로 진율은 죽음을 향한 두려움 때문에 잠에 들 수가 없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율은 일찍 퇴근한 뒤 기필코 오늘은 잠에 들겠다 다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 집엔 집 전화가 없는데 왜 지금 문밖으로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거지.
남자친구가 죽었다. 그것도 바로 내 옆에서, 잠든 상태로.
차수지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도준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떠 도준을 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도준은 죽었다. 도준의 마지막은 기이하리 만치 평온했다.
그러고 보면 도준이 죽기 전날은 뭔가 달랐다.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제보자 대신 수지를 기다렸단 말과, 돌멩이 하나를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똑같은 모습으로 망가져 버린 채 정비소 앞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세 대.
평소에는 손님 하나 없던 옥수수 판매 점포 점 앞 정장을 입은 세 명의 왜소인들,
폐업한 줄 알았던 여행사에서 희미하게 흔들거리던 불빛.
수지의 직감은 무언가 이상하다 말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도준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까?
도대체 왜 도준은 죽어야 했을까.
<0시의 새>는 율과 수지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저들'이 살아가는 우주, 흐름에 순응하려는 자들과 통제하려는 자들.
그 속에서 율과 수지는 평소와는 다른 것들에 기시감을 느끼고, 자신의 직감에 기대어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흐름에 따를 뿐이라고 말하던 이들, 그들은 우연이란 없다고 말한다.
정말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일인 것일까.
그럼 모든 죽음은 그렇게 되도록 설계되어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순응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지만 작가는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진화의 노력이 우연을 만든다고.
톱니바퀴에 낀 티끌같은 먼지 하나가 회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해서 11 다음은 0이 아닌 12일거라고 말이다.
우리의 세계는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의 책 속 여백 만큼의 존재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게 뭔지도 모를 만큼 무지하지만,
인간이란 자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멸망이 아닌 또 다른 내일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꿈과 현실을 오가는 변화 속에서 나의 경계 역시 허물어졌다.
우연과 필연, 정신과 육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사실은 어쩌면 여태까지 경계 중간에 어중간하게 서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 같은 꿈 혹은 꿈 같은 현실처럼,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본능과 이성이 충돌하듯이, 의식에 침범한 무의식을 자각하듯.
<0시의 새>를 읽으며 이 문장은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순간들이 들이닥쳤다.
그럴 때마다 연필을 집어 들고 막힘없이 선을 그었더니 어느새 책이 꽉 차버렸다.
재밌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완벽한 세상 위에 내 선들을 덧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