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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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베트남계 2세 이민자이자 작가인 리틀독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돼요.

리틀독은 외할머니인 란 할머니가 화자를 부르던 애칭입니다.
왜 손자를 ‘개’로 부르게 되었을까요?

란 할머니가 자란 마을에서는 무리에서 가장 작거나 허약한 아이가 있으면 가장 경멸한 만한 것을 딴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사실 리틀독은 귀여운 별명에 속했죠.
그러니까 리틀독은 화자를 지켜준 방패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화자가 사는 미국은 베트남계 이민자이자 동성애자인 화자에게는 나라라고 부르기는 너무 차가웠습니다.
그의 엄마인 로즈와 할머니인 란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여성에게는 더욱 가혹했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그에 비해 방법은 너무나 한정적이었죠.

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와 리틀독은 베트남으로 향합니다.
그 곳에서 할머니를 보낸 뒤 엄마는 말합니다.
“너 자신한테 관심 기울일 것 없어. 넌 이미 베트남 사람이야.”
이 말은 비단 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리틀독은 어린시절부터 폭력이 둘러싸입니다.
화가 나면 손을 올려 그의 뺨을 때리던 엄마, 정체성에 대한 것을 들켰을 때 겪어야 했던 모욕감,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쏟아지던 차별.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행복 뿐 아니라 슬픔까지 오롯이 지키려 합니다.

🔖“문제는 뭐냐하면, 제가 저의 행복이 타자화되기를 원치 않는 만큼이나 제 슬픔 역시 자타화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들은 둘 다 제 것이에요. 제가 그 둘을 만들었죠.”
그는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위해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트레버의 죽음 앞에서 리틀독은 무수히 쌓인 그와의 추억을 회상합니다.
그와 나눴던 단어, 함께 누워있던 헛간, 느껴지던 풀의 감촉, 매캐하게 풍겨오던 담배 냄새.
자유는 사실 상대적이고 감옥과의 거리에 비례하니까요. 하지만 가끔은 창살이 안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를 느낍니다.
트레버와 함께했던 그 시간 속에서 화자의 창살은 아득히 멀어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실감은 더욱 짙어지죠.

화자는 엄마에게 편지를 씀으로서 비록 영어를 모르는 엄마가 그 편지를 끝내 읽지 못한대도 전하려 합니다.
이 마음이 이 시간에는 전달되지 못할지언정 윤회를 믿는 엄마가
다음 생에 따뜻한 집과 가족을 만나게 되었을 때 이 편지를 읽는다면, 그래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말하죠.

▪️그러니까 이 편지는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담은 회고록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껏 저는 저 스스로에게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제가 틀렸어요, 엄마. 우리는 아름다움으로부터 태어났어요. 누구도 우리를 폭력의 열매로 오인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그 폭력, 그 열매를 관통했던 폭력은 열매를 망치는 데 실패했어요.”

전쟁과 상실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니었습니다.
사실 모든 생명은 아름다움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폭력이 행해질지라도, 열매는 상처날 수 있지만 망쳐지진 않습니다.

쓸쓸한 이야기 속엔 오션 브엉이 말하는 단단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시에 너무도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했구요.
상실과 고통 속 우리에게 반드시 존재하는 사랑, 우리 삶에 대한 고찰.
읽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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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극의 희극
이정원 지음 / 퍼스널에디터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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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면식도 없는 부부인데 이렇게나 친근해도 되는걸까..

작가의 유려하고 거침없는 문체가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글을 한번도 쓴 적 없는 작가라기엔 글 속에 노련함과 당당함이 있었다.

책을 읽으며 수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건 그녀의 일상이, 남편의 생각이 나의 것들과 조금씩 닮아 있어서 였을 것이다.


상극인 사람끼리 결혼을 어떻게 하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볼 수 있는 <상극의 희극>은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 잡는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르는 나로서는 서평단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취향과 성격은 상극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희극을 만들어 내는 이야기, 궁금하지 않은가!


작가와 그녀의 남편은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술을 좋아하는 그녀와, 술자리는 피하는 게 상책인 남편.

오후 12시가 지나서야 서서히 정신이 드는 야행성인 그녀와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일과를 보내고는 아홉시면 꾸벅꾸벅 조는 남편.

남이 차려주는 밥, 남이 해주는 정리정돈을 즐기기 위해 호캉스를 가는 그녀와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실천하는 남편.


이 정도면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는지 궁금해진다.

그 비법은 오랜 시간동안 반복된 싸움과 화해에 있다.

그들은 서로의 다른 점을 포기하지 않았다.

도저히 이해가지 않던 일들도 서로의 방식과 이유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상대방이 나에게 건네는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가졌다.


p.43 사랑이 시작될 때 그것은 사랑의 모습이기만 하지만, 사랑이 지속될 때 그것은 이해와 포기, 체념, 희생, 용서와 같은 모습일 때도 있다는 걸 그와의 관계 속에서 배웠다. 배려나 양보가 실은 사랑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위의 문장처럼 사랑은 사랑 자체로 시작될 수 있다. 

두근거림, 설렘, 정반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

하지만 이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의 것을 포기하고 희생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의 것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연인이나 가족을 향한 잔소리는 

'왜 나와 같은 행동과 생각을 하지 않는가' 에 대한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왜 이렇게 하지 않지, 왜 저렇게 행동하지, 이해가 가지 않네 하는 생각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내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는 그렇게 자라왔고, 수십년을 그렇게 행동했다.

그것이 나의 잔소리로 단번에 바뀐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역시 조금은 내려놓게 되었다.

그럴수도 있구나, 나도 저렇게 해볼까 가 되는 것이다.

<상극의 희극>을 읽으면서 이해와 포기가 참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그들은 두 아이를 낳고 각자가 평생 세워온 관념을 포기하는 과정을 거친다.

부모로서 때로는 말없이 지지해주는 기둥이 되어주기도 하고,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아이들의 날카로운 말들을 흘려 보내기도 해야했다.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었던 그들은 그렇게 부모가 되었다.


작가의 경험 중 누군가를 이 세상에서 떠나보낸 이야기에서는 많이도 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더이상 고향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남편의 모습은 더 없이 노력했던 자만이 할 수 있는  애도라는 것이 참 깊이 와닿았다.


내년에 결혼을 앞둔 나에게 이 책은 앞으로 타인과 살아갈 지난할 날들에 대한 예고같은 것이었다. 

평생을 따로 살아온 이들이 순식간에 한 지붕 아래 사는데 어찌 안 싸울 수 있겠는가.

그저 포기하지 않기, 그의 무던함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기,

나의 감정을로 이불을 만들어 덮어 쓰지 말기,

책을 읽으며 나에게 또 한번 되새겨 주었다.

나 역시 작가처럼 나와는 많이 다른 이와 오래도록 희극을 써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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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로 그린 심장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22
이열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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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1에서 Layer4까지 이어지는 <픽셀로 그린 심장>은 1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2040년대에 등장한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며 시대 순으로 그들이 겪는 상황을 그려낸다.


목소리로 타인의 기억을 지우고 조종하는 소녀 재이

불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아버지의 능력을 빼닮은 겐지

이 세상을 원하는 만화로 만들어 버리는 예지

다쳐도 금새 회복되어 버리는 태오

30초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세탁소 사장 득구


이들은 비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삶을 산다.

사랑과 친구들 잃고, 자신을 비웃는 세상에 복수하고, 능력을 숨긴 채 비밀스레 살아간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인생을 사는 이들의 시간은 교차로에서 만나듯 연결된다.


연작 소설을 읽을 때 가장 큰 기쁨은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는 데에 있다.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14편의 독립 단편이 모여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한다.

이 인물이 어떤 성격으로 변화하고 다른 인물과 만나 어떤 행동을 보여 주는지를 살펴보면 14편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뉘어지지 않은 하나의 장편 소설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여느 초능력자들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픽셀로 그린 심장>은 능력보다는 개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능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 인물이 느끼는 감정,사람과 사람간의 갈등, 시대에 따른 상황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초능력자들과 일반인들의 상황이 엎치락 뒤치락하며 변화하는 것도 하나의 집중 포인트이다.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차별받는다. 일반인들은 초능력자들을 더욱 압박하고 핍박한다.

외계생명체가 나타나자 이들과 싸울 수 있는 초능력자들이 권력을 쥐게 되고 계급을 나누려 한다.


어느 시대이던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갈등이 빚어진다.

우리 역시 그러지 않은가.

이 세상에는 차별이 난무하고, 상실이 넘쳐난다. 미움과 죄책감은 누군가를 삼켜버리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픽셀로 그린 심장>을 잃으면서 마음이 아린 순간을 몇 번 만났다.

재이의 후회를 만났을 때, 태오가 이별을 마주했을 때, 지수가 복수보단 그리움을 택했을 때처럼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굉장히 입체적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그들의 감정이 와 닿았다.

초능력자건 일반인이건 그들은 각자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래는 말한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안과 나래는 다른 곳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

나 역시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을 마주했을 때 나의 곁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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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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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이 책을 읽었는데 마침 작품 속 날짜도 크리스마스로 딱 맞아 떨어졌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즐거운 날과는 동 떨어진 이야기였다.
25살의 청춘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 세상과 부지런히도 싸우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불확신, 이토록 나에게만 잔인한 것 같은 사회, 옆에 있는 친구가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울음이 날 것 같은 기분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베스트 피자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는 주리, 용희, 시현, 형조 그리고 피자 배달원 동민.
이 다섯은 스물다섯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취업준비를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콜센터에 입사한 고등학교 동창 주리와 용희.
줄줄이 떨어지는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위해 상담원이 된 시현.
진상 처리 전문상담원로 일하는 콜센터 에이스 형조.
음식점 창업을 꿈꾸는 피자 배달원 동민.

이 청춘들은 각기 다른 사정을 가지고 목소리로 사람을 때리는 진상들을 마주하며 콜센터에 다니고 있다.

전문 상담원인 시현은 오늘도 몇 시간이 넘도록 진상의 폭언을 들으며 사과한다.
더한 진상들도 노련하게 처리하던 시현은 자신이 대기업 부장이라며 전화를 붙잡고 네다섯시간이나 시현을 괴롭히던 남자의 한마디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평생 콜센터에서 일해라"
그래서 시현은 너도 평생 진상 짓이나 하라고 맞받아쳤다.

시현이 검색해 본 막말 빌런 번호의 주소지는 대기업은 커녕 부산 해운대 근처의 핸드폰 대리점이었다.
당장 부산으로 가서 진상에게 복수하겠다는 시현의 말을 들은 주리, 용희, 동민, 형조는 함께 부산으로 떠난다.
콜센터가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 그들은 뒷일이 걱정되지만 그 지옥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감행한다.
그들은 진상에게 제대로 복수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실제로 피자집 콜센터에서 일해본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대학생, 취준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나도 그랬듯이 그들은 꿈과 미래를 불안해 하고 있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을 안좋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청춘들이 그렇듯 콜센터는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정류장 같은 곳이다.
그들은 몸이 힘든 일보다 앉아서 하는 일을 택했지만 정신적으로 언제나 폭행을 당했다.

p.171 맞아 그놈의 콜센터에 다니는 동안 목소리로 너무 많이 맞았어. 피가 안 나고 멍이 안 드니까 아무도 내기 아픈 줄 몰라.

부산에서 술을 마시며 용희가 한 말이다.
전화기 너머의 진상들은 본인들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마냥 거짓말을 서슴치 않으며 상담원들에 대한 폭언을 멈추지 않는다.
말로 맞은 상처에는 멍이 들지 않지만 너무도 아프고 쓰라려서 제대로 치료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그 상처는 아주 오래도록 몸과 기억에 남는다.

진상에게 쏟을 감정은 있고 연애에 쓰는 감정은 쓸데없는 소비라고 말하는 그들.
자리잡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억울한 그들.
내가 쟤보다 나은 것 같은데 세상은 왜 쟤편인가 싶은 그들.
이 시간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만 같은 청춘들은 하염없이 불안하다.
나 역시 그랬다.
학생 때만 해도 상상 속 스물다섯의 나는 멋진 어른이었다.
나의 스물다섯은 매일 이력서를 쓰고, 면접문자를 기다리고, 영어 성적에 목 매달고, 사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아 억울했다.

지나고 본 나의 시간은 눈부시도록 빛났지만 당시의 나는 어둠밖에 볼 줄 몰랐다.
하지만 참 시간이 약이다.
그 시간들도 충분한 역할을 했다.
되돌아보면 그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냈기에 여기에 내가 있다.

주리의 말처럼 현재에 충실해야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지옥같은 콜센터였지만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고 그리워 할 시간들을 만들었다.
아무 의미없는 시간들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싸웠고 그랬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니까.

울고 싶을 때 울고, 사랑을 말하고 싶을땐 당당히 고백하자.
바다를 보고 싶다면 당장 떠나도 좋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그 시간들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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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괴물들 - 불안에 맞서 피어난 인류 창조성의 역사
나탈리 로런스 지음, 이다희 옮김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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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아주 오래전 부터 괴물을 창작해 왔다.
괴물의 사전적 의미는 두가지로 나뉜다.
”크고 추하며 두려움을 자아내는 상상 속의 존재“
혹은
”비인간적으로 잔인하거나 악독한 인간“
이렇듯 괴물이란 인간인 것과 인간이 아닌 것을 포함하며 비정상적이고 추한 존재를 가르킨다.

그렇다면 괴물은 왜 항상 두려움의 존재로 인식되고, 부정한 것이며,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 된 걸까.
<매혹의 괴물들>에서 설명하는 그 이유는
‘괴물이란 인간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만들어진 창작물이며, 괴물을 죽임으로서 우리의 질서를 회복시키고, 삶의 안정을 확립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괴물들, 예를 들어 프랑켄슈타인이나 반인반수, 바다 속에 사는 괴생명체, 인간을 잡아먹는 용들은 생김새부터 반발심과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영웅을 앞세워 괴물들을 죽여 없애 버린다.

모든 괴물들에게는 야생성이 존재하고 그것은 우리 내면에서부터 나온다.
하지만 야생성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괴물에게 야생성을 부여해 그들을 없애는 방식으로 불안을 해소한다고 할 수 있겠다.

<매혹의 괴물들>은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괴물의 역사를 말해준다.
4만년 전에 그려진 동굴 벽화에는 인간과 동물의 몸이 섞인 주술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벽화에 동물의 그림을 많이 그릴 수록 사냥감들이 많아진다는 믿음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기엔 벽화에는 사냥할 수 없는 사자, 메머드 등의 거대한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두려움의 대상을 예술화하며 이를 표현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엿 볼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에도 괴물들은 여럿 등장한다.
특히 뱀은 여성화된 괴물로 등장한다.
대표적으로는 이브와 메두사가 있다.
이는 영장류인 인간은 과거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포식자인 뱀에 대한 공포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성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경이로운 존재이지만 이러한 신비로움을 두려워한 이들이 여성을 뱀에 빗대어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인간의 불안과 공포가 이야기를 만들고 이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 후대에게 전달된다.
괴물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사랑은 지금의 현시대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괴물은 다시 말해 현 사회를 빗대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이 상상력을 통해 실체화된 것이다.
괴물을 만들어내고 죽임으로서 인간 내면에 있는 폭력성과 무자비함을 억누르는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괴물은 곧 우리를 뜻한다.
우리는 이러한 본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한다.
추하고도 아름다운 괴물들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다면
우리는 문제를 향한 답 또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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