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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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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불편했고 어려웠다. 어렵다는 말은 책의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책에 서술된 모습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만연하게 퍼져있는 불합리들이 어려웠고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제로섬>에는 과거의 될뻔 했던, 미래의 될 수도 있는 내가 있었다. 불편하다고 해서 책을 중간에 놓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 주변 누군가는 실제로 그 상황을 견디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어내야만 했다.


<제로섬>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자존감과 존재감이 낮은 여학생, 여아 성매매가 묵인시되는 마을에 사는 여자 아아들, 끔찍한 스토킹을 당하는 여성, 언제나 자살을 생각하는 남자의 아내, 산후 우울증으로 고통받거나 그와 반대로 자신의 아이를 인정하지 않고 학대하는 엄마. 그들의 모습은 전혀 여성스럽지 않았고, 내내 강렬한 문체로 그려져 나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베이비 모니터를 설치해 아이가 돌연사하지 않을까하는 비이성적인 불안에 떨며 하루종일 화면을 쳐다보고 잠을 자지 못하거나 자살에 목말라 있는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며 이건 사랑이라 말하기도 하며 성매매 주범자들을 커다란 끈끈이에 붙잡아 죽이는 아이들의 행동은 기괴하면서도 슬펐다. 그들이 그렇게 된 건 원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일까.


남편, 부모, 친구, 지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듣지 못한다고 속단하며 그들에 대해 얘기하고 판단하고 정의 내린다. 잘못은 그 여자들에게 있다는 듯이, 이런 비극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들의 불안, 공포, 증오는 스스로 만들어냈을지언정 혼자가 자초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분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 사회가 겨냥하는 자신들을 감싸기 위해 만든 보호막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비단 여성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임에도 같은 문제는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며 내면의 고통을 가진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이스 캐롤 오츠 작가는 <제로섬>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지, 그럴 때 인간성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아주 매혹적이고도 강렬한 이야기들을 통해 보여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아내가 아니라 낯선 이의 손 같은, 조금 거칠고 완강하며, 남성성 자체와 상처를 줄 수 있는 그 남성성의 능력을 거부하듯 그를 거부하는 그 손을 쥐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여자, 아이 엄마, 그의 아내를 달래 예전처럼 편안하고 다정하게, 공범처럼 웃을 수 있길 바라며 애써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쓰이지 않아 조금씩 잊히고 해석할 수 없게 되어버린 언어처럼 그들 사이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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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과 일루미네이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9
허진희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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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관계는 오랜 시간을 통해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야만 완성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이라는 건 중요치 않다. 내 삶 속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움, 그건 샴페인이

터지는 환희, 일루미네이션의 찬란함과도 같다. 하지만 밝은만큼 어두워진 뒤의 씁쓸함은 오래갈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샴페인의 탄산, 일루미네이션의 잔상과도 같았다.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 나와는 다른, ‘우리’라는 단어로 묶이지 않을 것만 같은 구니와 보하는 서로가 가진 점이 너무나도 부러웠고 애정과 그리움, 미움과 질투심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쌓아올렸다. 샴페인이 터지던 날 보하의 집 옷장에 숨어 있던 그날, 아무도 찾으러 와주지 않던 그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그 둘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 기억은 그들에게 어떤 추억으로 남았을까. 


📎구니와 보하는 서로의 작은 신이였고 서로의 결점과 수치심을 숨기기 위해 솔직하지 못했다. 구니에게

보하는 있었다가 없는 존재였고 그건 참을 수 없는 공허함이였다. 


📎우주 속 작은 먼지같이 부유하는 구니의 초연함과 무덤덤함을 부러워하던 보하와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보하의 눈부심을 질투했던 구니. 그럼에도 각자의 빈자리를 참을 수 없어 서로의 목덜미에 두른 팔을 놓지 못했다. 어떠한 선을 넘어가면 그들의 주위는 캄캄해진다. 그들은 영원히 그 자리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언제나 외로웠고 곁에 있음에도 없는 것 같았다. 둘이 함께 본 일루미네이션처럼 둘의 관계는 눈 부신 시간을 보냈지만 이내 어둠 속에 사라져 갔다. 그 시간을 통해 그 둘은 어른이 되어갔을 것이다. 있음 과 없음에 익숙해지는 것, 자신의 결핍을 내보이는 것, 집착과 사랑을 구분해내는 것. 상처들은 흉을 남기겠지만 그건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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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할 기적은 무한하기에
이하진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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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할 기적은 무한하기에>의 배경이 되는 세상은 중력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추기도 하며,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지기도 한다. 누군가가 다치고 죽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그 세상들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절망적이고 씁쓸하다.

📎그 세상들 속에서 주인공들은 작고 연약한 존재이다. 중력, 바이러스, 파괴, 시간의 흐름은 그들 앞에서 너무 큰 존재이기에, 인간들은 여전히 자연과 우주 속 먼지보다 작은 생명체이기에 숨결들은 스러지고 사라지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소망과 염원, 그리고 용기들은 돌고 돌아 반복된다. 멈춰진 시간 속으로 몸을 내던지고, 중력이 사라진 곳으로 발을 내딛고, 바이러스가 자신의 몸으로 침투하더라도 사명을 다하며 아름다운 별을 지키기 위해 심장을 빼내어 보이는 그들의 유한한 삶은 무한이 깃든 기적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꾸준히 멍청하고 후회스러울 것이다. 망가진 이 곳을 처음과 같이 되돌릴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하진 작가님이 과학이 세상을 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이 세상들을 보라. 우리도 누구 한명을 위한 안부를 전할 용기를 간직한다면, 조금 더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래본다면 이보다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기적을 바래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기억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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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쳐진 도서관
최세은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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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쳐진 도서관>을 읽는 동안 나는 미소 짓다가도 울음이 났고, 아이들이 안쓰럽고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났다. 마음에 작은 소용돌이가 치는 기분은 책을 손에서 놓는 순간까지 지속되었다. 


-과거, 현재, 미래가 겹쳐진 높은 차원 어딘가의 도서관에서 우현, 민형, 운성, 유리는 자신만이 펼칠 수 있는 책을 한 권씩 발견하게 된다. 책을 펼쳐본 순간 환한 빛과 함께 그들은 각자 다른 시간,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 14일 간 타인의 삶을 대여하게 된 4명의 아이들은 타인의  '삶의 분기점' 근처에 놓이게 되고 그들과 자신의 인생의 가능성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선다. 처음 보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감정이 동요 되고, 타인이 마치 나인 것처럼 마음이 아프기도, 기쁘기도 한다. 다른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정말로 나인 것 같아 놀라기도 한다. 멀쩡한 줄 알았던 속마음은 저도 모르게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행복하기만 했던 추억은 빛바래져 갔다. 그들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슬픔에 잠기고 싶지 않아서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빛나는 눈동자를 통해 꿈을 보고, 사랑과 애정을 통해 미래를 그리며 희생과 배려를 통해 손을 맞잡았다. 그것이 그들이 선택한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 속엔 언제나 서로가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내가 결정한 것 외의 가능성은 영원히 알 수 없지만 <겹쳐진 도서관>의 우현, 민형, 운성과 유리처럼 우리의 인생에서도 우리를 향해 손 내밀어 준 사람이 분명 존재할 거라고 믿어보자. 그 손을 맞잡고 다시 한번 일어나서 나 또한 두 팔 벌려 옆에 있는 사람을 안아주자. 아주 사소한 순간으로 사람의 인생은 바뀔 수 있다는 것,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나를 향하는 다정한 눈빛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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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길은 여름으로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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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내달리던 자전거, 남자 아이의 뒷자리엔 슬퍼보이기도, 화가 나 보이기도 한 여자아이가 올라타 있었고, 그들의 머리 엔 여러 줄기의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그 계절은 여름이였고 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여름 속에 머물러 있었다. 


해원만을 향했던 경모의 기도는 처음엔 죄책감이였으며 이후엔 뜻모를 그리움이였고, 자신과 마음이 같이 않다는 좌절감이자 같은 날 생긴 짙은 흉터였다. 사랑이였을까 하는 자각은 너무 오랜 시간 후에 찾아왔지만 모든 것을 떠나버리기 위한 굳은 다짐을 한 뒤였기에 경모는 그저 마음 속 깊은 곳에 해원이라는 그림자를 묻어둘 뿐이였다. 하지만 계속된 만남들과 그들이 마주친 그 우연같은 시간들, 서로를 생각하던 숱한 밤들, 미움과 애정이 조금씩 새어나오는 마음들이 모여 그 둘의 길은 계속해서 여름으로 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장난 자전거에 해원을 태워 간절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을 경모와, 추운 겨울날 눈이 가득한 길 위에서 초초한 마음으로 세정을 기다렸을 정욱의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표정 하나 드러내지 못한 채 아픔에 감싸여 있던 연서에게 손을 내밀던 해령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다. 서로에게 날 선 말들만을 던지며 그 말에 본인 또한 상처입었던 수많은 밤들을 보낸 우리들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다.



견뎌내기 힘든 하루 하루를, 이렇게 버텨낼 가치가 있는 삶인지 고민하는 시간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죽음이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머리 위론 햇살이 비출 것이고, 겨우내 추위를 이겨내고 싹을 틔 울 준비를 하는 새싹을 보여줄 것이며, 바람은 우리 영혼을 실어 구름 위로 데려가 줄 테니,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밝음도 존재할 테니 고작 한 명을 위한 기도이더라도 멈추지 말자. 우리 마음 속의 작은 불꽃이 꺼지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우리의 삶은 그것 만으로 충분하니까.


"지금도 그때 일이 가끔 생각나. 사실 그때 네 자전거 뒤에 타고 가는 게 살짝 무서웠거든. 그렇게 길을 내달리는 게. 그때는 마음이 조급하고 슬프고 또 복잡하기만 했는데 돌이켜보면 있잖아." 해원이 경모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 달리며 느끼던 숲의 내음과 반짝임, 투명한 바람의 세기와 습도 같은 게 있잖아. 무섭고 두려운 마음 가득한 나를 감싸고 달리는 것처럼 느껴졌어. 지금도, 가끔 생각나. 그러니까 미안해 하지 마." 스르르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와 해원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대지는 어둠을 발산하는 듯 더 짙어지고 울창한 나무들이 바람에 너울거렸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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