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300km를 날아온 로아
추민지 지음 / 어텀브리즈 / 2025년 12월
평점 :
다양한 에세이를 만나 봤지만 연애관찰 에세이는 처음이었어요. 신선했습니다.
사랑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타국으로 날아온 여성과 누군가를 믿고 사랑을 시작하기엔 너무 많은 실망을 겪은 여성의 만남.
추민지 작가님의 <7,300km를 날아온 로아>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남동생과, 그와 결혼하기 위해 7,300km를 날아온 로아를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찰했어요.
그들의 관계는 참 신기합니다. 신기하달까, 놀랍달까.
흔하게 볼 수 있는 연인관계는 아니였어요.
앱으로 만난 두 사람은 전화 통화로 사랑을 3년 간 이어왔고 로아는 그와 결혼하기 위해 한국으로 날아와요.
네, 그 둘은 3년을 사귀었고, 3년만에 서로를 처음 만났습니다.
로아는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쿠르드족 출신입니다.
쿠르드족은 남자와 여자가 사귀면 무조건 결혼을 해야합니다.
연애만 하고 결혼하지 않으면 남자는 사형에 처하죠.
엄청나죠...이 말을 듣고 왜 로아가 한국까지 날아왔는지 조금은 납득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로아의 결정은 놀랍도록 용기로워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이라크에서 한국까지 날아온 그녀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을지, 또 얼마나 두려웠을지 여러분은 상상이 되시나요?
로아는 한국말 중 "안녕"밖에 하지 못하는데 말이죠.
로아와 작가의 첫만남은 강렬했어요.
크고 맑은 눈, 낙타같이 길고 풍성한 속눈썹,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와락 껴안으며 볼에 뽀뽀를 해주는 사랑스러움.
로아는 여느 한국 예비 며느리들이랑은 달랐어요.
작가는 그런 활발하고 명랑한 로아를 보고 과거의 자신이 떠오릅니다.
남자친구 부모님 집에 가서 쓴소리를 들어도 아무 말도 못했던 모습들이요.
사실 작가의 이전 작품인 장편소설 <21세기 청춘의 사랑법>을 보면 작가가 연애와 결혼을 향해 품은 부정적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있어요.
<21세기 청춘의 사랑법>의 간단한 줄거리예요.
영상 관련 강의를 하는 주인공 가을.
그녀는 동료 교수 현재를 1년 간 짝사랑하고 있죠.
그런데 아무리 관심을 표현해도 그는 가을에게 관심이 없어 보여요.
자신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던 가을 이전부터 가고 싶었던 캐나다 유학을 결정합니다.
그러던 어느 회식 날, 현재가 충격적인 말을 하죠.
"아까 인사할 때 반했어요."
이제 그만 지독한 짝사랑을 멈추려고 했는데, 캐나다 학교에 입학금까지 입금했는데!
그제서야 현재와 가을이의 마음이 통해버린 거에요.
그녀는 사랑을 위해 많은 선택을 합니다.
그 과정 속에는 우울함도, 후회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죠.
하지만 이렇게 다정하고 섬세하고 멋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연애는, 한국에서의 결혼은 둘만의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른 초중반인 그들은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현재의 가족을 만나고, 가을는 그들이 내뱉은 말로 상처받습니다.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인가, 왜 현재는 아무 말도 안하지'
끝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고 심지어 공황장애까지 찾아오죠.
사실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성장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사랑과 허무 속에서 가을이 포기와 선택을 통해 자신을 지켜내고, 또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어요.
<7,300km를 날아온 로아>를 읽다보면 작가가 이전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작가는 연애를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믿음없는 남자'들을 생각해요.
그리고 로아와 남동생이 돈 문제로 싸우고, 문화 차이로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해요.
역시 사랑같은 건 안하는게 낫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로아는 애인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며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은 정확히 말할 줄 아는 똑부러짐을 가직 있어요.
그리고 그녀의 연인은 많은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하려 노력하죠.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서로의 손을 잡고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어요.
사랑은 꽃밭이 아닌 황무지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 곳을 어떻게 가꿔 나가느냐는 본인들의 선택에 달려 있으니까요.
처음엔 그저 불안해 보였던 둘이 성장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작가는 좋은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해요.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하죠.
사랑은 단순한 호르몬의 산물이 아니에요.
인생의 전부를 사랑에 내던져서는 안되겠지만 사랑으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에서 말이죠.
그리고 우리는 기억해야 해요.
나 자신부터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어요.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건 참 어렵지만, 우리 하기에 달렸다는 걸 로아를 보며 깨닫습니다.
<7,300km를 날아온 로아>를 보기 전 <21세기 청춘의 사랑법>을 읽어보라는 출판사의 추천을 저 역시 여러분들께 전하고 싶어요.
두 책은 아주 다르면서도 닮아 있어요.
우리와 주변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좋은 책을 만나게 해주신 추민지 작가님과 출판사 어텀 브리즈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