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 대한민국의 학교를 단번에 바꿀 교육 정책 제안
이기정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5월
평점 :
나는 교사다.
누군가 직업을 물어볼 때마다 ‘교사’라고 냉큼 입 밖에 내어지는 않는 때가 많은 것은 왜일까? 남들은 좋은 직업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교사로서의 여러 열정과 꿈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각나 작아지는 순간들을 수없이 경험하고 급기야는 현실에 타협해 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생기는 복잡한 심경이 원인일 것이다.
학원과 학교에서의 국어교사로서의 오랜 경험을 가진 이 책의 작가는 우리 교육을 ‘프로크푸스테스의 침대’에 비유한다. 그는 나그네의 몸길이가 침대보다 짧으면 몸길이를 늘여서 죽였고 몸길이가 침대보다 길어 침대 밖으로 나오면 그 나온 부분을 잘라 죽였다. 우리 공교육에서는 수업이 너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수업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모두 고통을 당해야 한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학교 개혁을 위해 수많은 정책이 제시되고 시행되었다. 그러나 실질적 효과를 낸 정책은 없었다. 입시 제도를 수없이 바꾸어도, 세계에서 가장 좋다는 이념과 제도를 받아들여 개정한 교육 과정을 선보여도, 성과급과 교원평가제를 도입해도 상황은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다. 오히려 ‘위대한 탄성’ 효과를 자랑이라도 하듯 제자리로 돌아가기 일쑤다. 작가는 결국 대한민국 학교의 문제는 상당 부분 ‘사람’과 ‘제도’의 문제가 아닌 보이지 않게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1장에서는 몇 개의 제도를 바꾸거나 도입하는 것이 아닌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들을 Big6라고 명명하고 여러 논거를 들어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으며 2장에서는 이외에 고려해야할 교육 개혁 정책들과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 ‘전교조’, ‘포퓰리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Big1. 중․ 고등학교의 무학년 학점제 - 내신으로 줄 세우기 폐지, 학교마다 수준별로 다양하게 선택해서 듣는 수업 만들기
Big2.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로의 감축 - 현재의 교실을 반으로 쪼개서 교실 하나를 2개로 만들기.
Big3. 교육과 사무행정의 분리 - 사무 행정 중심이 아닌 교육 중심의 학교제도
Big4. 교장자격증제 폐지 - 교장공모제를 통한 교장 선출
Big5. 특목고, 자사고 폐지와 고교평준화 확대 - 이러한 학교가 존재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입시로 인해 중학교 교육이 왜곡됨으로써 발생하는 폐해가 더 큼.
Big6. 교과서 자유발행제도 및 교과서 자유선택제도- 수업 패러다임의 다양화
이 정도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Big6 중에서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3과 4이다.
학교의 기본제도는 사무행정업무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그래서 모든 교사가 사무행정업무를 위해 구성된 부서(교무부, 연구부, 정보부....)에 배치되어 있다. 사무행정에서 업적을 쌓으면 승진에 도움이 되고 사람들에게 가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므로 교육보다는 업무에 치중하게 된다. 에너지가 분산되므로 학생을 교육하는 일에서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교사 개개인이 성실성과는 무관하게 학교제도를 교육활동 중심의 제도(국어과, 영어과, 수학과...)로 만드는 일은 의미가 큰 개혁이라는 것이다.
또한 교장 승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조리는 사회의 보편적 부조리(뇌물, 아부, 순종, 학연, 지연...)와는 다르다고 지적하다. 교장이 되려면 교육과 관련된 능력보다는 사무행정 업무를 비롯해 교육청프로젝트, 벽지근무 경력 등이 더 필요하다. 따라서 그들은 교장이 되어서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 활동을 지원하기 보다는 전시 행정에 힘을 쏟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법과 제도의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좇게 되어 있다. 사무행정업무에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하는 평가제도와 승진제도가 아니라 학생들 잘 가르치는 것에 이익을 주는 제도가 존재했다면 교사들은 얼마든지 교육에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이것들이 교육 프레임을 바꾸어야하는 이유이다.
나는 이 책의 많은 부분을 동의하지만 ‘통쾌함’과 ‘비애감’을 동시에 느낀다. 과연 당장의 ‘경쟁’ 상황이 두려워 ‘교원평가제’를 반대했던 교사들은 이 Big6를 비판 없이 받아들여 줄까? 교사가 아닌 일반 국민들이 Big6에 공감해 줄 수 있을까? 이런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필요한 각종 이익단체의 ‘가지치기’를 감행해줄 지도자가 있을 수 있을까?
만일 가능한 그 날이 온다면 나는 ‘대한민국의 독립’ 만큼이나 기쁠 것 같다. 이를 앞당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www.wece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