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식물의 세계 -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 이야기
김진옥.소지현 지음 / 다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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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감각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31가지의 극한 식물들을 소개한다. 가장 커다란 꽃을 피우는 식물, 가장 작은 키를 가진 식물, 가장 커다란 잎을 가진 식물, 치명적인 독을 가진 식물, 가장 오래 사는 잎을 가진 식물 등. 이들은 흔히 만나기 어려운 세계 곳곳의 식물이기도 했고, 때로는 우리 근처에 있었지만 진짜 정체를 잘 몰랐던 식물이기도 했다. 그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처음 들어보는 식물들의 경우엔 그 모습이 궁금해서 해당 식물의 일러스트만으로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도 책에서는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앞서 소개한 식물들의 사진을 실어 두어 궁금했던 그들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본격적인 극한 식물의 세계를 구경하기에 앞서 책은 앞부분에서 지구 달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구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생물들이 출현하고 멸종한 46억 년의 역사를 1년으로 바꾸어 이해하기 쉽도록 보여주는 표였다. 지구의 탄생을 1 1일이라고 했을 때, 신석기 시대는 12 31 23 58 51초였고, 고조선은 23 59 30초에 건국되었다고 한다. 1년의 시간으로 치환해 보니 지구의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짧디짧은지 제대로 느껴져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간의 짧은 역사보다 훨씬 이전에 등장했던 식물들. 지구 달력에 의하면 11 24일 최초로 이끼 식물이 등장했고, 11 27일에는 최초로 고사리 식물이 출현했다고 한다. 우리 집 선반 위에 살고 있는 고사리가, 화분 한켠에 자라난 이끼들이 새삼스레 대단하게 보였다.




책 속 내용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먼저 사체 썩는 냄새가 난다고 알려진 자이언트 라플레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최대 지름 1.1m, 무게는 11kg)이지만, 이 꽃은 줄기도 잎도 뿌리도 없이 그저 꽃이 핀다고 한다. 식물에게 있어 뿌리 줄기 잎은 당연하게 존재한다고 여겼던 것인데 그렇지 않은 식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러면서도 아주 커다란 꽃을 피워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에 관한 내용이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인요 국유림에 살고 있는 브리슬콘소나무, 현재(2022년 기준) 수령이 4,854년이라고 한다. 나무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봐야 천년 정도를 살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왔는데 기원전 2832년에 싹이 튼 나무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니거기다 브리슬콘소나무의 기이하게 뒤틀려진 수형 또한 인상적이었다. 마치 고흐의 그림체로 나무를 그려낸 것 같다고나 할까. 많은 나이와 특이한 외형에다 척박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펼친 생존전략들까지 브리슬콘소나무의 이야기는 모든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책을 읽을수록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식물들의 노력과 그들의 대단한 능력에 감탄했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는 법이라고 이 책을 읽고 나니 식물들이 전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로 보였다.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그들의 강한 의지, 다음 세대를 키워내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은 인간인 나에게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흥미롭게 읽히는 식물 책을 찾고 있다면, 극한에서 살아남은 식물들의 놀라운 적응기를 듣고 싶다면 이 책 <극한 식물의 세계>를 추천한다.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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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100만 부 기념 특별판, 양장)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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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머릿속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 주인공 윤재는 이 부분의 기능이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공포감을 비롯한 감정을 처리하는 곳인 편도체의 기능 이상으로 윤재는감정 표현 불능증이란 진단을 받게 된다. 엄마는 그런 윤재를 어떻게든 보통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재는 묻지마 범죄로 눈앞에서 엄마와 할머니를 동시에 잃게 되는 끔찍한 사건마저 겪게 되는데


간신히 전학시킨 게 여기야. 그나마 인문계라면 체면은 섰겠지.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p.167)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p. 245)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책 표지의 소년의 표정이 불쾌하게 느껴져 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아이가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 책이 왜 이런 표지를 입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주인공 윤재 같은 아이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이 바로 이 책을 읽기 전 불쾌감을 느끼던 나와 같은 눈길이 아니었을까 싶었고, 그것을 느끼게 만든 표지 디자인에 감탄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기대 이하였다. 좋은 평이 많아 기대가 컸지만 소문만큼의 만족감은 느끼지 못했다. 주인공의 내적 성장을 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10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배경과 그들의 고민이 녹아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10 ~ 20대 중반이 읽기에는 좋을 것 같다. 작품은 캐릭터도 그런대로 매력이 있고, 술술 잘 읽히고, 적당한 감동도 주지만 너무 뻔하달까. 갈등의 해결과 성장을 보여주는 부분은 괜찮았지만 동시에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작은 매우 대단한 것을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끝으로 갈수록 그 마음이 작아지게 해 아쉬웠다.


 <아몬드> 10~20대의 어린 독자들, 특히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권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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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이은주 옮김 / 푸른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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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제이슨은 친구의 축하 파티에 잠시 들렀다가 오기로 아내와 약속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게이샤 가면을 쓴 괴한과 마주치게 된다. 제이슨에게 총구를 겨누어 원하는 장소까지 운전을 시키던 괴한은 그와 옷을 바꿔 입은 뒤 그에게 의문의 약물까지 주사한다. 곧 의식을 잃었던 제이슨은 낯선 곳, 낯선 목소리들 사이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는 이들이 자신을 위협한 괴한과 한패라고 생각하고는 경계하는 마음을 풀지 않으며 그들과 이곳의 정체를 추측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말도 안 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가 이런 짓을 한 건 내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내 삶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내 아들을.

내 직장을.

내 집을.

왜냐하면 그 남자는 나였으니까. (p. 225)


가지 않은 길에 집착했던 한 천재 과학자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갈림길에서 너무나 멀어진 그곳으로, 내가 원했지만 갈 수 없었던 또 다른 나의 삶을 찾아간다. 현실의 삶에서 불만족스러운 점들을 하나씩 고쳐갔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는 천천히 고쳐가는 삶보다는 내 것이 아닌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끔찍했다.


하나의 선택에서 뻗어 나가는 무한한 가능성. 소설이 묘사하는 다중우주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이 새로운 문을 열 때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이것은 먼 미래가 아닌 동시간대의 다른 공간들이어서, 그리고 그 풍경의 차이들은 어쩌면 한 발자국, 말 한마디, 한 문장, 밥 한 숟가락의 차이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것들이라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는 한 사람이 지나온 길이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해 놀라웠고, 나 역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 그렇다면, 만약 내가 대학생들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는 대신 정비소에서 고장 난 차 밑에 들어가거나 충치에 구멍을 뚫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나는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그리고 그 수준은 무엇일까?

개성과 생활방식 같은 겉치장을 모두 벗겨낸다면, 과연 나를 나이게 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p. 340)


나는 매 순간을 감사한다고 생각했지만, 추운 이곳에 앉아 있다 보니 실은 모든 걸 당연하게 여겼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랬던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우리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그 모든 게 얼마나 위태롭고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으니. (p. 359)


소설이 그려내는 이미지가 너무 흥미로워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책을 덮어야 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몰려왔다. 이 책은 틈새 독서로 인해 흐름이 자주 끊기는 상황임에도, 다시 펼칠 때마다 닫혀 있던 세계가 기다렸다는 듯이 툭 튀어나와 금세 몰입할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손발에 땀이 계속 났다. (처음엔 환절기라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소설 때문이었음)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는 작품이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만한 스토리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애플 tv에서 방영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볼거리가 풍족한 영상이 만들어질 것 같아 매우 기대된다.


이런 의구심이 들어. 누가 이상적인 제이슨일까? 그런 제이슨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장 훌륭한 버전의 나로 사는 것이겠지, 안 그래?” (p. 418)


한 편의 SF 액션 스릴러 영화를 몰입해 본 듯했다. 여름용 액션 영화처럼 스토리가 시원스럽게 질주했다. 몰아치는 재미, 지루할 틈이 없는 SF 스릴러를 찾고 있다면, 다중우주를 소재로 한 소설 작품에 흥미가 있다면 이 책 <30일의 밤>을 강력 추천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꼭 읽어 보시길!!!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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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GRIT (100쇄 기념 리커버 에디션) -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앤절라 더크워스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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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에 이름을 올린 위인들, 각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일반인들과는 다른 비범한 능력을 타고났을 것이라, 한마디로 말해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에게도 노력의 시간이 있었겠지만 애초에 타고난 능력의 범위가 달라 같은 시간을 노력했던들 따라잡을 수 없을 거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뛰어난 IQ를 가졌기 때문도 아니고, 원활한 성격 때문도 아니라 하나에 열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 말한다. 장애물 앞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힘. 한마디로 그들은그릿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성공의 문을 열어주는 핵심 열쇠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성공을 위해서는 뚜렷하고 강한 목표의식이 필요했다. 성공한 이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 부족한 면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개인적인 성취뿐 아니라 이타적인 방향의 의도 또한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내용 중 하나는 자신의 열정을 바쳐 성공한 이들이 처음부터 그 분야와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일찍 발견하는 이들은 한눈에 그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라 멋대로 짐작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흔하지 않은 경험이기 때문에 인생에서 매우 큰 행운을 얻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그저 행운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은 상당히 오랜 시간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신의 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열정을 쏟을 대상을 발견한 것 또한 그들의 노력에 대해 주어지는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궁금했던 내용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하는 그릿을 길러주는 양육방식이었다.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그릿을 길러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스스로 본보기를 보이는 것과 민주적인 양육 방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가족들 사이에서 만든 규칙인 어려운 일에 도전하기는 부모가 본보기가 되는 동시에 아이에게 그릿을 길러주는 매우 좋은 방법 같아 꼭 실천해 보려 한다.


우리 모두는 재능뿐 아니라 기회에 있어서도 한계에 직면한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부여한 한계가 생각보다 많다. 우리는 시도했다 실패하면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쳤다고 결론을 내린다. 또는 겨우 몇 걸음 가보고는 방향을 바꾼다. 어느 경우든 우리가 가볼 수 있는 곳까지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릿이란 한 번에 한 걸음씩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흥미롭고 목적이 뚜렷한 목표를 굳건히 지키는 것이다. 매일, 몇 주씩, 몇 해씩 도전적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나는 것이다. (p. 358~359)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뜻하지 않은 역경, 실패를 겪게 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넘어지면 누구나 아파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이겨낸다면 이전보다 한층 더 성장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힘은 바로 그릿에 있었다. 그릿은 나를 지켜주는 힘이었고, 우리 아이에게도 꼭 키워 주고픈 자질이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들의 비결이 궁금하다면, 그들과 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그릿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높고 낮은 파도들을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부모들이나 교사들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실천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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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정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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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에서 돌아오던 길.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전차를 탔던 주인공 스즈가미 세이치는 목적지가 아닌 역에서 내려버렸고,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던 가방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단 생각을 했던 세이치. 그런데 그는 갑자기 벚꽃 잎이 날리는 봄날의 벤치에서 깨어난다. 어떤 이유인지 모른 채 낯선 장소에 와 있던 그는 자신이 살던 도쿄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곳 사람들 어느 누구도 도쿄를 알지 못했고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찾지 못했다. 거기다 세이치 자신도 이상하게 점점 과거의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 친절한 이웃들과 걱정 없는 풍족한 삶. 세이치는 낯선 그곳에서의 삶에 적응하고 있었고, 그곳이 점점 좋아져갔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내각총리대신이란 사람에게서 이상한 편지를 받게 된다.


저 불길한 날 이후 예전의 평화는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본국은 지금도 존재하며 국가는 총력을 다해 당신을 구출할 적정입니다. 이는 인류에게 주어진 시련입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제 하나로 뭉쳐서 이 재난에 맞서 평화를 되찾읍시다.

귀하는 혼자가 아닙니다. 희망을 잃지 말기를. (p. 36)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날을 보내고 있는 세이치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 걸까. 그는 어떤 사건에 휘말린 것이고, 세계는 어떤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재난. 속수무책으로 인류는 미지의 존재에게 당하고 만다. 그야말로 지옥 속에서 살아갔던 인류는 평화를 되찾기 위해 미지의 존재를 쫓아낼 유일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 방법은 모든 인류에게는 희망이었지만, 한 인간에게는 크나큰 절망이었다. 세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한 인간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과정과 맞물리는 설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그것이 실제가 아닌 환상의 삶이라고 해도,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바라던 것이 모두 실현되는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외롭고 팍팍한 현실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수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희망은 짓밟혀도 되는가. 인간을 지구의 주인이라고 볼 수 있는가. 우리의 도덕적 기준이 지켜질 수 있는 테두리는 어디까지 인가. 소설은 흥미롭게 흘러가는 스토리 속에 단단한 알맹이들이 심어져 있어, 그것들을 하나씩 건져 올려 고민해 보는 재미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소설에서 인간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포니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몇 년째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일본에선 코로나 시대 이전에 출간된 작품이다.) 또한 몰랑하고 하얀, 언뜻 보기엔 귀여운 물성을 가졌지만 사람을 뒤덮어 죽게 만드는 이미지는 조예은의 소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을 떠올리게 했고,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세계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에서는 나기라 유의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가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이는 설정만 일부 비슷하게 느꼈다는 말일뿐 내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이 두 작품보다 <멸망의 정원>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매우 재미있게 읽었고, 몰입도가 좋아 몇 시간 만에 다 읽어냈던 작품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도 좋을 만한 스토리였다. <멸망의 정원>은 한 해 출간된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을 뽑는다는야마다 후타로상최종 후보에 올랐던(2018) 작품이라고 한다. (아니, 최종 후보도 이렇게나 재미있는데 수상작은 얼마나 더 재미있다는 말인지?!) ‘재미만을 놓고 보자면 올해 읽었던 소설 중에서는 최고였다.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이야기꾼 쓰네카와 고타로는 이번에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sf, 판타지, 환상 문학에 거부감이 없는 이라면 이 작품도 꼭 읽어 보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 작품인 <야시>, <가을의 감옥>, <천둥의 계절>을 재미있게 읽었던 이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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