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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가 있었다 - 헌법 정신과 문화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다
김석현.정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때로는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 있다.
진실이라고 하지만 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있다.
블랙리스트.
나에게는 블랙리스트라는 단어가 그 중 하나였다.
블랙리스트 사건.
예술자 지원 배제 명단을 가리키는 이 말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공공 기간이 1만여 명에 가까운 명단을
만들어 이들을 예술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한 사건에서 나온 말이었다.
정말 이러한 일이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그동안 믿어왔던 헌법적 가치와 문화 융성의 국정 기조는 어떻게 된 일일까.
많은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진실이라고 많은 언론에서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이야기했지만
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감추고 감추어도,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는 법.
진실이 아니라고 우겨도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만난 진실을 다룬 책.
<블랙리스트가 있었다>이다.
"
2017년 1월 13일 추운 겨울 날.
블랙리스트에 항의하여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세종시까지 내려왔던 예술가들의 절규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며
전화로 항의하던 시민들의 분노가 여전히 귓가를 때린다.
이 책은 그날의 현장에 있었던 예술가들과 블랙리스트에 분노하여
국회의 역할을 강조하던 시민들에게 내어놓는 참회의 글이기도 하다.
그날 미안하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한 참담함과 비겁함에 대한 고백을.
늦었지만 이 책으로 건넨다.
그날의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
한 사람은 행정부에서, 한 사람은 국회에서 근무했던 두 명의 저자가 쓴 이 책은.
이런 작가의 고민과 함께 어떻게 보면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쓴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읽는 동안 나는 담담하게 진실을 마주한다는 생각으로
책의 내용을 한줄 한줄 읽어나갔다.
책을 읽는 동안 당혹스러운 부분도 많았다.
이게 정말 내가 살고 있던 나라에서 실제로 가능했던 일인가라며
한탄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불편하지만 이제서라도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그동안 너무나도 무심했던 나를 반성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운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문화예술 분야에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고
어떠한 방식으로 이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을까라는 막연했던 생각들이
책을 읽다보니 매우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책에서 헌법적 가치와 함께
실제로 어떻게 이러한 일이 현실화되었는지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꼭, 이 사실을 어떻게는 후대에 알려야, 사람들에게 알려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이 진실을 어떻게는 알아야하는구나라는 사명감에 휩싸이는 경험을 하였다.
"
문화가 지배 체계와 지배 권력에 종속되어 그 유지와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기능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또한 문화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문화를 자유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에
설득되어서도 안 된다.
문화가 시장의 효율성 관점에서 논의되는 것도 적절히 안배해야 하지만
문화의 가치를 시장의 가치로만 이해하여 국가 재원을 배분한다면,
문화가 가져올 더 큰 가치를 잃을 수 있다.
"
나는 나름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영화, 연극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각종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것도 문화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보였던 관심이 그냥 나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관심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책을 읽는 동안 알게 되었다.
우리가 문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며, 나는 어떠한 생각을 갖고 문화를 접해야하는지
책을 읽는 동안 생각해보게 되었다.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블랙리스트로 시작된 이 책은 마지막에
아름다운 문화국가를 소망하며 마무리된다.
단순히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하며,
그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헌법 정신과 문화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