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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라 - 징비록
정종숙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5년 12월
평점 :
기억을 기억하라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정종숙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7년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화살을 맞아 전사하던 그 때, 조정에서는 류성룡이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싸웠다면, 류성룡은 조선 내부의 적과 싸웠다고 해도 과인이 아니다. 류성룡은 복직 대신 징비록을 쓰기 위해 붓을 꺼냈고 개인이 남긴 회고록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징비록 때문에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 정세와 함께 전쟁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임진왜란의 전모를 파악 할 수 있다. 징비록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욱 인기를 끌었던 책이다. 징비록은 일본에서 <조선 징비록>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징비록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것을 미화 했다면 징비록을 본 이후에는 이순신 장군 뿐만 아니라 다른 조선 장수들의 활약상도 소개 하기 시작한다.
임진년 4월 13일 왜가 몰려오는 그 때...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선조는 그것을 무시하고 방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 16만 대군이 부산 앞바다를 당도 했을 때 조선의 최초 보고는 1만 명 정도의 왜구가 침략한 것이었다고 한다. 큰일을 이렇게 작게 무마시킬 수 있다니 흡사 현재 정부를 보는 듯하다.
류성룡의 징비록은 적을 보고 도망치기 급급한 조선의 수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때의 현재 정부의 재난 시스템을 보는 것 같다. 역사를 보고 배우기는 커녕 500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기 급급했다. 무슨 일만 터지면 미국으로 도망가는 누구를 보는 것 같다. 류성룡은 그런 나라의 왕이라도 왕이라며 모시는데 답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의병대와 바다에서 승리를 했던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으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행주대첩에서 크게 승리한 조선군은 언제든 한양을 탈환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명나라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나라에서 싸우는 것조차 맘대로 하지 못하다니... 명의 이여송은 류성룡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일본군이 무사히 철수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국과 일본이 사이에 껴서 맘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의 꼴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류성룡의 전시내각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양반의 특혜를 없애고 병력을 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양반들의 큰 반감을 사게 되었다. 지금도 국회의원의 자식들은 군대에 안가는 것을 보면 그 때와 다를 바가 없다. 나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것이란 말이다. 선조는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고 류성룡은 자기반성으로 전쟁을 기억했다.
요즘 위안부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가 과연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는 먼 훗날에나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