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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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불안은 서양 문명의 가장 두드러진 정신적 특성이다.

- R. R. 윌러비



미국인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은 불안장애를 겪고 있으며, 최근 역학 조사 자료에 따르면 평생 동안 불안장애를 겪을 확률이 25%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수치를 보며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몇몇 유명 연예인도 불안에 따른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고백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 장애들은 들어나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나 많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사실 나도 별것 아닌 일에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가족과 친구에게 말하지 않을 뿐 불안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불안이란 과연 무엇일까

자기공명영상 장치를 통해 뇌를 확인하여 불안을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앞날에 대한 막연한 근심은 대뇌피질 전두엽의 과잉 활성화로 나타나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느끼는 불안은 뇌의 전대상회라고 하는 부분의 과잉 활성화로 나타난다. 강박적 불안은 전두엽과 지거핵 안의 하부 중추를 연결하는 회로에 교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신경관련 분야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불안의 원인과 치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정의 내려진 것이 없다. 병적 불안은 의학적 질환일까? 아니면 철학적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신병일까? 단지 심리적인 문제일까?


현대 의학이 발전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정신에 대한 것은 아직 미지에 쌓여 있다. 불안은 위의 모든 것과 관련이 있고 유전에 의해 만들어지는 동시에 양육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저자는 가족력에서 불안증을 겪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면 저자는 유전과 양육 때문에 불안이 생긴 것일까? 저자 본인도 불안에 대해 궁금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불안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불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안장애와 우울증은 생리적으로 무척 유사하지만 다른 부류로 묶는 이유는 과학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치와 문화 때문인것 같다고 한다. 제약업계가 사회불안장애나 범불안장애 같은 진단이 정상적인 인간의 정서를 병적인 것으로 바꾸어놓아 제약회사에 이윤을 올려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뿐아니라 동물도 살기 위해 불안증세를 느끼기도 하는데 불안은 과연 동물적인 것일까? 아니면 조건형성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학습된 행동일까?



여러 가지 불안들

저자는 구토 불안, 발표 불안, 분리 불안, 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 광장공포증, 비행공포증, 치즈공포증 등 정말 많은 불안증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도 있고 생전 처음 보는 불안도 있다.

여러가지 공포증 중에서 내가 가장 심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고소공포증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불안하지 않은데 의자 위에 서는 것은 불안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괜찮은데 침대 위에 서 있는 것은 불안하다. 고소공포증이 심하기 때문에 그 좋다는 산에 올라가는 것을 싫어하고, 경치가 좋은 곳에 가도 높은 곳에서 주변 경관을 살펴보지 못한다. 여행 코스를 짜더라도 케이블카를 타고 경치를 구경하는 것은 목록에서 당연히 제외된다. 바퀴벌레 공포증도 가지고 있는데 아마 어릴 적 바퀴벌레를 입 안에 넣어봤던 경험 때문에 더욱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 집에 있다가 바퀴벌레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며 온 몸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이 상황을 벗어나고만 싶다. 내가 겪은 이 느낌을 저자는 더 많은 상황속에서 겪는 것이다.


저자의 수행 불안은 열한 살때 생겼다고 하는데 크리스마스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아 무대에 선 순간 갑자기 공황 상태에 빠져들면서 연극을 망쳤다고 한다. 그 뒤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불안 증세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일을 망친 적도 여러번 있다고 한다. 나도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에는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식은 땀이 난다. 그것을 최대한 가리기 위해 어떻게든 견디고 버티기는 하지만 여러 번 겪는다고 그 불안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불안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시기 피에트로라는 젊은이는 광장공포증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피난도 못 갔다고 한다. 밖으로 나가느니 차라리 집에 폭탄이 떨어지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피에트로는 살아남았고 집 주위에 폭탄이 떨어지면 폐허가 된 건물로 달려가서 사람들을 구조했다고 한다. 불안이라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가끔은 이상한 종류의 용기이 원천이 되기도 한다.


세 살짜리의 분리불안은 발달상 정상적 행동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 분리 불안이 심해지면 앞으로 우울증에 빠지고, 약물에 의존하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분리불안은 애착 방식에 따라서 생긴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의 양육 방식과 아이의 불안 정도 사이에서 강한 상관관계가 보인다고 한다. 걸음마기에 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은 10대가 되었을 때 친구를 쉽게 사귀었다고 한다. 아기일 때 부모님이 안전기지를 제공해주고 그걸 내면화 하면 편안하게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삶을 헤쳐나갈 가능성이 높지만 부모님이 그렇게 해주지 못했거나, 분리 때문에 그것을 내면화하지 못한 경우에는 불안과 불만의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불안의 특수성

요즘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세계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불안장애가 우울증을 제치고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정신질환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전 세계에서 '불안의 최고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고 하니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에 왜 사람들은 계속 불안을 느끼는 것일까? 과거에는 기근, 전쟁, 병, 생활 전반에서 두려워해야 할 진짜 위협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불안증을 가지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너무나 많은 선택의 자유 때문에 불안증이 늘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17세기 옥스퍼드 학자 버튼은 불안과 우울에 관한 이론을 수백 가지도 넘게 썼는데 마지막에 치료법을 알려준다. 규칙적 운동, 목욕, 독서, 음악 감상, 식이 요법 등 바쁘게 지내야 한다고 한다. 우울의 최대 원인은 게으름이고 최고의 치료법은 일이라고 한다. 뚱뚱한 사람이 병에 더 잘 걸리듯 부유한 사람은 부조리하고 어리석은 일, 피해와 불편을 더 많이 일으킨다라고 했다.


역사적 증거를 보면 불안이 예술적, 창의성, 과학적 능력 등 다양한 재능과 함께 나타난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는 신경증적 감수성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끌고 가면서 멋진 소설을 써냈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또한 초기에 심한 불안과 회의 때문에 무너져 내릴뻔 했으나 그 상태를 극복하고 수세대의 정신 치료 요법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불안은 원초적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인간이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겨울이 오는데도 옷을 입지 않아서 얼어죽었을 수도 있고, 높은 곳을 무서워 하지 않아서 새처럼 날겠다며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었을 수도 있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평균보다 더 사색적이고 목표에 집중하며 조직력, 계획력도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예를 들면 전투기 조종사들은 이혼률이 매우 높은데, 아마 불안 정도가 낮고 자율신경계 각성 정도가 낮아 모험을 즐기고 대인관계에서 미묘한 신호를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안한 사람들은 위협이 없는지 늘 주변을 살펴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과 사회적 신호에 더욱 민감한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눈은 벽에 붙어 있는 모기를 향해 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임에도 방에 들어와 있는 모기 때문에 계속 불안하다. 불을 끄고 자면 분명히 내 피를 빨려고 공격할 것이고, 계속 내 귀에서 윙윙 거리며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할 것이다. 저 모기가 나를 물어서 재수없게 말라리아에라도 걸린다면? 아마 모기를 잡아야 이 불안은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모기가 안잡히면 어쩌지? 에프킬라를 한 통 다 뿌려야 하나? 모기 하나로 인해 나의 불안은 끝없이 늘어난다. 그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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