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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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박준용, 손고운, 조윤상

한겨레출판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좁은 옷장을 가득 채운 철 지난 옷들을 정리하는 것이 루틴이다. 유행이 지나서, 혹은 살이 쪄서 입지 못하게 된 옷들을 커다란 봉투에 담아 의류 수거함에 던져 넣는다. 꽉 막힌 옷장에 숨통을 트여줬다는 개운함과 이 옷들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다시 따뜻하게 입혀질 것이라는 막연한 도덕적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헌 옷 추적기>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나의 소박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저자들은 우리가 '수출'이나 '재활용'이라 믿으며 떠나보낸 옷들이, 사실은 지구 반대편을 떠도는 거대한 쓰레기 산의 일부가 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옷을 보낸 지 2개월 정도 지나자, 추적기가 동남아와 남미에서 하나둘씩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한겨레21의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만들어냈다. 배우들과 자신들의 헌 옷 153벌에 위치 추적기를 달아 그 이동 경로를 쫓았다. '좋은 곳에 쓰이겠지'라는 순진한 기대와 달리 추적기가 보내온 신호는 인도의 파니파트, 타이의 쓰레기산, 볼리비아의 황무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빛나던 옷들이 이제는 먼지와 악취 속에서 처참하게 뒹굴거나 불태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1% 안팎의 옷만이 재판매될 뿐, 나머지는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된다는 통계 앞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1개당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한 것으로 파악되는 품목은 겨울 코트다.

본문중에서

단순히 옷이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사실보다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 것은 그 쓰레기 더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인도 파니파트의 공장에서는 헌 옷을 다시 섬유로 만들기 위해 색을 빼는 표백 작업을 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독성 강한 화학물질이 그대로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마을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쓰레기 '매립지'였지만, 쓰레기는 흙 속에 매립되지 않고 그저 높이 쌓인 채 봉우리 숫자를 늘려가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나의 소비가 타인의 고통을 담보로 하고 있었다는 것은 노동의 대가로 얻은 소비의 기쁨마저 죄책감으로 물들게 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고, 너무나 잔인하게 버리고 있었다. 그 앞에는 기업들의 그린워싱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멀쩡한 새옷이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만으로 소각되고 있다는 사실, 특히 빈폴 의류 38억 원어치가 불태워졌다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이윤 추구가 기업의 존재 이유라지만, 재고를 헐값에 파느니 태워버리는 것이 합리적 경영이라 포장되는 현실은 윤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앞으로 한 번 산 옷은 더 오래 아껴 입고 더 신중하게 고르고, 기업과 정부에게 더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 평범한 시민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변화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하는 신상 패딩을 검색하는 대신 옷장에 걸려있는 옷을 다시 꺼내 입어야겠다. 그것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사랑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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