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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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한겨레출판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네 삶은 늘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채 굴러간다. 이 소설은 현실적인 동시에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현실을 잊게 해주는 것 같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타인의 흑역사를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반면 그가 우연히 접속한 휴번북 라이브러리의 조기준은 자신의 삶을 책처럼 타인에게 대여해주고 읽히기를 원한다. 지워지고 싶은 욕망과 읽히고 싶은 욕망이라는 상반된 마음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만 남기고 실수나 부족함은 지워버리고 싶어 하면서도 퇴근 후에는 누군가가 나의 힘듦과 고민은 있는 그대로 읽어주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심심하면 대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데, 대부분의 쓸모 있는 발견은 그 쓸데없이 보낸 시간들 속에서 돌연 발생한다.

본문 중에서

우식이 자가 격리 중에 조기준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는 모습이 어쩌면 단절된 현대인이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고립을 위로받는 과정과도 같아 보였다. 특히 휴먼북이라는 설정은 사람이 곧 책이고 한 사람의 인생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도 의미 있는 일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이야기는 1983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전쟁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믿으며 벽장에 갇혀 지낸 소년 조기준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안나라는 신비로운 인물과 소년의 관계, 그들이 만들어낸 전쟁이라는 가상의 공포는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방어기제처럼 느껴졌다.

안나는 잔인한 이야기를 좋아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소년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걸 재밌어했다. 소년이 두려움에 떨면 꼭 끌어안고 물었다.

"나밖에 없지?"

본문중에서

그게 뭐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지는 마라고 말하던 안나의 대사는 조직을 위해 헌신하다가도 문득 소모품처럼 느껴지는 순간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일 수도 있다는 작가의 통찰이 날카로웠다. 거짓된 믿음조차 없었따면 버텨낼 수 없었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불안은 전염이 강했다. 우식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려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였다. 그런 식으로 불안과 공포는 세상 밖에서 우식이 마땅히 누리를 수 있는 1인분의 존재 영토마저 빼앗고 축소시켰다.

본문 중에서

팬데믹을 겪으면서 물리적 격리가 주는 고립감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소설 속 우식이 겪는 자가 격리의 상황은 그 시절의 답답함을 생생하게 상기시켰다. 하지만 작가는 그 고립속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이어지는 연결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은 저주를 안고 살아간다. 탈모일 수도, 가난일 수도, 씻을 수 없는 과거의 상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저주 안의 축복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벽장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더라도 그 문을 열고 나가야만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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