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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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양주연

한겨레출판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혹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애써 묻어둔 비밀 하나쯤은 존재한다. 그것이 수치심 때문이든, 아픔 때문이든, 혹은 그저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을 지키기 위해서든, 종종 침묵을 선택한다. 저자 양주연은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빠에게서 존재조차 몰랐던 '고모'의 이야기를 듣는다.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수십 년간 가족 전체를 짓누를 금기였다. 왜 하필 '고모'나 '이모'일까. 책의 물음처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이야기는 평범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쉽게 지워지곤한다.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아빠의 말은 경고이자 그 시대가 여성에게 가했던 억압의 증거였다.

생각 끝에 다다른 결론은, 결국 내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특별한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고모에 대해 알기 위해 탐정이 된다. 오래된 앨범을 뒤지고, 호적 등본을 살피며, 고모가 다녔던 학교를 찾아간다. 고모의 친구들을 만나고, 아빠를 인터뷰하며 수십 년간 잠겨 있던 기억의 조각을 맞춘다. 이 과정은 '양지영'이라는 한 개인의 삶, 꿈, 좌절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맏딸로서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그 꿈이 좌절당한 공대생 양지영. 개명을 하고 세례를 받으며 스스로 거듭나고자 했던 여성이었다. 하지만 가족 묘비에서조차 그녀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자살'이라는 낙인, '결혼하지 않은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가족의 역사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과거를 상상하며, 나는 미지의 시간을 계속해서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본문중에서

'자살'이라는 가족의 공식적인 기억과 달리, 고모의 친구들은 다른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충격이었다. 남자친구의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된 젊은 여성,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이 죽음을 수치스러운 일로 규정하고 서둘러 덮어버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전히 뉴스의 한편에서는 데이트 폭력과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없어지고 가해자의 서사만 남는다. 저자는 과거의 판결문들을 뒤지고 전문가들을 만나며 고모의 죽음이 사적인 비극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여성 억압의 구조적 문제임을 밝혀낸다.

그 시절 우리 집에서는 공부밖에는 희망이 없었다고 봐야지. 고모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었어.

본문 중에서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지내야 했던 할머니. 부부 교사였지만 퇴근 후 홀로 저녁 준비를 해야 했던 엄마. 그리고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이 자신의 이름을 뺏어갈까 두려워하는 저자 '양주연'. 이 모습은 정확히 나의 고민과 겹쳐보였다.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말은 사실 평범한 여성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사회의 무언의 압력이었을 수도 있다. 고모의 존재를 발견하는 여정은 결국 저자가 자신을 둘러싼 억압의 고리를 깨닫고, 외면했던 가족의 시간을 직시하며 새로운 일상을 꿈꾸는 과정이었다.

고모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아이에게는 시끄러운 가족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다짐한다. 아직 다큐멘터리 양양을 보지는 못했지만 시간을 내어 책으로 만난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보고 나의 이름도 잃지 않도록 붙잡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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