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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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장강명

한겨레출판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퇴근길, 수많은 불빛이 어지럽께 쏟아지는 도시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내가 이 거대한 익명성 속 아주 작은 부품처럼 느껴지곤 한다. 장강명 작가의 <뤼미에르 피플>은 그런 밤, 도시의 가장 화려한 곳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 속으로 나를 이끄는 소설이었다.

신촌의 뤼미에르 빌딩, 그 이름은 '빛'을 뜻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은 빛보다는 어둠에 더 익숙한 존재들이다. 박쥐 인간, 반인반서, 무당 등 정상의 범주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 서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처음엔 그저 기괴하고 께름칙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들의 모습 위로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치는 무표정한 얼굴들이 끝없는 경쟁 속에서 때로는 가면을 쓰고 때로는 발톱을 드러내야 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도 완전히 괴물일 수 없고, 누구도 완전히 인간일 수 없다는 세계가 오히려 이 현실이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생각을 미뤘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

몸이 침대 아래로 50센티미터가량 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본문 중에서

<뤼미에르 피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을 이탈한 이들이다. 그들의 삶은 평범하지 않기에 오히려 삶의 가장 보편적인 질문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반인반서의 이야기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과연 무엇으로 결정되는지를 묻는다.

주민등록번호도, 호적도 없는 존재가 느끼는 소외와 차별은 조직 안에서 쓸모로 가치를 증명하고 정해진 규율과 역할을 벗어나는 순간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직장 생활 속에서 종종 느끼는 불안과 막막함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삼궁이 생각하기에 인터넷의 등장은 농업혁명, 산업혁명과 맞먹는 변혁이었다. 앞으로 인류는 오프라인에서보다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문자 그대로 온라인 세상에서 살 것이다.

본문중에서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현대의 본질을 꿰뚫는다는 점이다. 돈다발로 사람을 때리고 그 돈을 맞는 사람의 부인에게 주는 게임은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이보다 더 직설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강렬했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생각나기도 했다.

반면 그토록 많은 존재가 부러워하는 '인간의 시간'을 손에 넣은 인간은, 그 선물을 파괴적으로 허망하게 낭비한다.

본문 중에서

작가는 가장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맨얼굴을 보게 만든다. <뤼미에르 피플>은 10개의 독립된 단편이 모인 연작소설이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뤼미에르 빌딩'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느슨하겨 연결되며 거대한 세계관을 이룬다. 결국 도시라는 공간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수렴된다.

소설의 인물들은 불행으로 치닫는 각자의 삶 속에서도 어떻게든 빚을 찾아내려 싸운다. 이 책은 나아게 익숙했던 세상의 풍경을 조금은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어쩌면 내가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갑옷 아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상처와 기이함을 품고 살아가는 '뤼미에르 피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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