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증언 -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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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증언

김응교

책읽는고양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최근 일본에서 '일본인 퍼스트'를 외치며 외국인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참정당이 15석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0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 사회 깊숙이 자리한 배타성과 혐오의 그림자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과연 그들은 언제쯤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죄할까. <백년 동안의 증언>은 이런 답답함 속에서 만난 책이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무참히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비극을 일본 정부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지우려 했는지, 그리고 지난 100여 년간 지신을 기억하고 복원하려 했던 한일 양국 시민들의 치열한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기사 하단부에 "피살자 총합계 6,661인"이라고 보도했다. 이 숫자는 실종자를 포함한 숫자이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가장 포괄적인 첫 조사였기에 유의미하다.

본문 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15엔 50전'이라는 시를 처음으로 읽었다. 쥬우고엔 고쥬센(15엔 50전). 이 평범한 숫자가 조선인을 색출해 죽이기 위한 단어였다는 사실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탁음 발음이 어려운 조선인들이 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군인과 자경단에게 학살을 당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를 통해 일본 정부가 퍼뜨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를 저지른다'는 유언비어가 학살의 방아쇠였음을 명확히 지적한다. 이것은 국가가 기획하고 조장한 명백한 국가 폭력이었다. 일본이라는 파시즘, 즉 지배 체제가 저지른 폭력인 것이다.

그래서 "쥬우고엔 고쥬센"을

"츄우코엔 코츄센"이라고 발음했더라면

그는 그곳에서 곧 끌어내려졌을 것이다

본문중에서

일본인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자국은 물론 타국에서도 끔찍하고 잔인한 학살을 저질렀다. 이 책에서는 그 모순의 근원을 일본 사회 구조에서 찾는다. 자신의 '나와바리'에서는 철저히 배려하지만 그 밖에 있는 타자는 '적'으로 간주하는 섬나라 특유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절망적인 역사만을 이야기했다면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일본인들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룬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고 간토대지진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후세 다쓰지 변호사를 존경하게 됐다.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전쟁은 적과 아군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싶은 상처를 준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단순한 반일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고,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바로잡으려는 일본의 시민 단체와 양심 세력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 세력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있을 수도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진부하지만 절대적인 명제를 다시 생각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자행된 조선인 학살은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현재의 문제다. 일본 정부의 변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일지라도, 바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을 격려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멈추면 안 된다. 읽는 내내 눈물이 흘렀지만 두 나라의 민주 시민이 손잡고 '기억의 연대'를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치유와 화해의 미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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