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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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김홍

한겨레출판


은행 대출심사역인 주인공은 나와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고, 실적에 압박을 느끼며, 언젠가는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삶이 영문 모를 사건에 휘말리며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은 안타까웠다.

트렁크에 갇혔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아직 그것이 불행인 줄을 확신하지도 못했다.

본문 중에서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지옥철에 몸을 싣고,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서 눈만 깜빡이다 퇴근하는 삶에 갑자기 죽은 사람들이 '말뚝'이 되어 도시 한복판에 나타난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부품처럼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 사소한 균열 하나가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빚은 단순히 갚아야 할 채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기억의 끈이자 관계의 지표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관계를 손익으로 계산하게 만들지만, 이 소설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진짜 중요한 가치를 알려준다. 서로에게 기꺼이 내어준 마음과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이다.

납치당한 사람한테 왜 탈출 못 했느냐고 비난하는 형사 있다고 가서 말하면 되죠? 스레드에 올리고 보배드림에도 올릴겁니다. 녹음해도 돼요? 지금부터 녹음하면서 조사받을게요.

본문중에서

도시 곳곳에 출몰한 말뚝들 앞에 서면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린다. 처음에는 그저 미스터리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말뚝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눈물의 의미를 짐작하게 되었다. 말뚝들은 이름 없이 제대로 애도받지 못한 채 사라져간 사회적 죽음의 현현이었다.

사람들이 편리한 일상을 누리는 동안 어디에선가 존재했지만 애써 외면하고 쉽게 잊어버렸던 죽음들이다. 그들의 억울하고 서글픈 사연이 말뚝이라는 형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 말을 걸어온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슬픔을 제대로 겪지 못한 채 덮어두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선배는 쓰레기같이 굴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이나 당부하듯이 덧붙였다. 잘 생각해보면 기회라는 말도 했다.

본문 중에서

말뚝이라는 재난 앞에서 정부와 시스템이 보여주는 행태는 너무 현실과 똑같아서 기가 찼다. 강제적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현상을 은폐하려는 모습은 지난 몇 년간 뉴스를 통해 질리도록 봐왔던 장면과 똑같았다.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주인공 장을 포함한 개인들은 한없이 무력하다.

이 거대한 혼란을 잠재우는 것은 거창한 시스템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름조차 없던 말뚝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그의 사연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향한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잃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내 주변의 수많은 '말뚝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슬픔과 내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생각했다. 거창한 행동은 아니겠만 그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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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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