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프롬 어스 각본집
서민아 역자, 제롬 빅스비 원작, 리처드 솅크먼 각색 / 필로소픽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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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프롬 어스 각본집

제롬 빅스비 원작 . 리처드 솅크먼 각색

필로소픽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맨 프롬 어스>를 읽고 나서 화려한 볼거리나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깊은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이 각본집은 오직 텍스트가 가진 힘만으로 독자를 1만 4천년 전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간의 강으로 이끈다.

작은 집 거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몇 시간의 대화가 어떻게 이렇게 장대한 서사가 될 수 있는지 감탄을 안 할 수 없었다. 글 사이에 배우의 표정이나 배경음악이 끼어들 틈이 없이 오롯이 나의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그 공간이야말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그 세계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가졌던 나 혼자만의 시선일 뿐이지.

본문 중에서

이야기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시작된다. 동료 교수 존 올드맨의 송별회에 모인 동료들이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러다가 문득 존이 '만약 구석기 시대부터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는가?'라는 가정에서 모든 것이 출발한다. 그리고 그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동료들은 모두 충격에 빠진다. 고고학자, 생물학자, 역사학자, 심리학자, 신학자까지. 그들은 모든 지식과 신념을 총동원하여 존의 주장을 검증하려 든다. 그의 말에 논리적 허점은 없는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지, 혹은 정신적인 문제는 아닌지 날카롭게 파고든다.

난 흉터가 안 남는다고요. 더구나 그때 나는 끈으로 묶였었어요. 못과 피는 종교화를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들려고 덧붙인 겁니다.

본문중에서

이런 과정에서 펼쳐지는 지적인 토론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믿었던 내 동료가 저런 고백을 한다면 나는 과연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그를 미쳤다고 생각할까? 이 책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내가 가진 지식의 토대를 뒤흔들었다.

구약성서는 공포와 죄의식을 팔지요. 신약은 훌륭한 윤리 책이고요. 저보다 뛰어난 철학자와 시인 들이 제 입을 빌려 쓴 겁니다.

본문 중에서

영화를 볼 때와는 다르게 각본집을 읽으면서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영상이 채워주던 공백을 나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더 능동적이고 깊이 있었다. 특히 이 책은 국문 번역과 영어 원문을 함께 실어서 그 재미가 두배였다.

존의 이야기는 가설을 넘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진다. 역사, 종교, 과학,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개념까지 말이다. 모든 대화가 끝나고 거실에 정적이 찾아왔을 때 거대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그래서 존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을까? 하지만 그 질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의 신념이 오늘은 낡은 것이 되기도 하고 영원할 것 같던 것들도 시간 속에서 사라진다. 오랜만에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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