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갔을 때 맨해튼 센트럴파크 근처 초고층 빌딩을 직접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00층이 넘는 뾰족한 건물들이 솟아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억만장자의 거리>를 읽고 나니 그 웅장함 뒤편에 있는 권력과 자본의 흐름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뉴욕 한복판의 가장 비싼 거리에서 벌어지는 부동산의 역사를 좇는다. 억만장자들이 사는 집이자 부유한 외국 자본이 모이는 금고 같은 초고층 빌딩들 안에서 누가 살고 왜 그곳에 집을 사는지 그런 건물들을 어떻게 지었는지를 담고 있다. 내가 올려다봤던 그 빌딩들은 사실상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건물을 높이 지으려 할까? 책에 의하면 맨해튼에는 더 이상 개발할 땅이 없다. 그래서 개발업자들은 하늘을 아직 아무도 짓지 않은 땅이라고 보고 공중권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진짜 자본의 집요함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리적인 한계조차도 결국은 기술과 돈으로 돌파해낸다. 수백 미터 높이의 얇은 건물이 뉴욕의 빽빽한 도심에 들어서는 모습은 경이롭기도 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경쟁과 계산을 생각하면 조금 무섭기도 했다.
사실 이런 초고층 빌딩을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안에 살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그 집을 삶의 공간이 아닌 자산 보관소로 여긴다. 아파트를 산다는 것은 안전한 금고를 하나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부동산이 실거주를 위한 것이 아닌 부를 저장하고 증명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나는 월세와 전세로 고민하고 집값을 바라보면서 허탈해하는데 그들은 집을 보지도 않고 몇 백억 원을 송금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기보다는 아예 다른 세계를 사는 느낌이다.
개발자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개발한다고 하는 것이 자본의 논리다. 몇 년 지나면 다 잊혀지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식이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세계의 중심이지만 동시에 불평등의 극단이기도 하다. <억만장자의 거리>안에는 부의 이동, 세계 자본의 흐름, 도시의 변화, 현대 사회의 민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뉴욕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의 도시와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유용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에서 본 이야기가 뉴욕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꼈다. 지금 대한민국의 서울 역시 이미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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