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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병기, 현대회화의 달인
정영목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요지음 발표되는 화풍은 예전보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화풍은 반콤뮤니스트적이며 내용은 콤뮤니스트적인 것을 보여줌으로 이편저편의 시청을 모아 양몫을 보자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그런 해석은 지나친 해석이고 여하튼 콤뮤니스트 Picasso를 우리들은 부자연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요는 콤뮤니스트가 된 이후에 당신의 작품이 의도하는 에스프리가 점점 피상적인 레아리테의 파악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병기, "피카소와의 결별", 『문학예술』1호, 1954, 90-96쪽.
저자 정영목이 소개하는 서양화가 김병기는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나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다. "존경하는 Pablo Picasso 씨!"라는 말로 시작되는 위의 글은 화가 김병기가 쓴 편지 형식의 글, 「피카소와의 결별」에서 발췌한 것이다. 흔히들 피카소라는 말을 들으면 그 유명한 <아비뇽의 여인들>부터 <게르니카>까지의 작품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글에서 언급되는 피카소의 작품은 선전미술의 경향이 엿보이는 그의 후기작이다. 1950년대에 피카소는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했다.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1951)은 좌측에 여성과 아이로 대표되는 민간인이, 우측에 로봇의 형상을 하고 총을 겨누는 군인이 배치된 2분할 구도의 회화 작품이다. 발로리 예배당의 벽화 작품인 <전쟁>과 <평화>(1954) 역시 한쪽에는 잔혹한 전쟁의 모습을, 다른 한쪽에는 평화로운 세계의 모습을 담고 있다. 화가 김병기는 50년대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한 피카소의 행보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가 그린 한국의 모습이 피상적인 이미지를 담은 공산주의 선전미술로서의 기능을 할 뿐 한국의 실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평론글이 1950년대에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에 그는 실로 선진적인 작가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병기는 유럽 모더니스트들의 작품 및 작품관을 깊이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도 두루 갖춘 작가였다.
그래서 화가 '김병기'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을 생각했는가? 작품의 배경과 의미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는 '앎'이 그 작품의 의미를 온전히 느낄 가능성을 보다 활짝 열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화가의 생애와 미학을 훑어본 후, 이를 바탕으로 독자가 작품을 감상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한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화가의 연대기와 작품론, 그리고 실제 작품을 살펴보는 것으로 나뉜다. 저자의 예리한 분석이 특히 잘 드러나는 부분은 화가의 작품론을 소개하는 2부다. 첫째로, 저자는 김병기의 포스트모던적 예술철학을 들여다보며 그 사고의 흐름을 추적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 그 자체로 드러내는 것'을 통해 칸트의 숭고론을 전유할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본다. 저자가 화가에게서 짚어내는 사유의 뿌리 중 하나가 바로 이 리오타르의 미학이다. 둘째로, 저자는 추상과 형상 사이에서 고민하던 화가의 성찰을 제시해 준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김병기는 '비형상을 통과한 뒤의 형상'에 주목하며, 비형상과 형상의 '사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김병기의 추상론은 "현상의 세계를 이탈함으로써 인간 스스로가 갖는 영원하고 엄격한 리얼리티와 직면하는 것"으로 압축되는데, 그러한 사유를 가지고 있던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정신작용이 제거된 채 하나의 양식으로 추락해 버린 추상을 극복"하고자 했다. 셋째로, 형식적 측면에서 그의 필치는 선적 양식의 촉각성과 시각성, 그리고 동양화의 서체적 특징을 동시에 가진다는 점에서 '촉지적 선묘'로 설명된다.
저자는 화가 김병기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인유'로서 <열린 사각형>이라는 작품을 제시한다고 분석한다. <열린 사각형>은 말레비치의 1915년작인 <검은 사각형>을 연상시키는 제목인데, 말레비치의 사각형과 달리 김병기의 사각형은 정형화되지 않은 날것의 붓질이 모여 '얼핏 보면 사각형을 떠올릴 수도 있는' 조형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의 작품에서 사각형은 표현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나면 2000년대에 과연 1910년대 작품의 오마주가 얼마나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짤막한 의문이 남는다. <검은 사각형>을 모티프로 한 작품은 수없이 쏟아져 나온 바 있는데, 김병기의 작품과 여타 작품들을 구별할 만한 요소는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영역, 그 틈새를 보여주고자 했다면, 왜 꼭 <검은 사각형>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이 책이 들려주는 세밀한 분석에 기대어 감히 판단하건대, 화가는 유럽 모더니스트의 작업을 비틀어 가져오는 이러한 시도가 결코 새롭지 않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공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것으로 이 의문을 해소할 수 있을까? 저자는 리오타르를 향한 화가의 관심과 그로부터 비롯된 철학적 문제의식에서 답을 찾고 있는 듯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답은 독자가 직접 발굴해내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