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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예술과 미학 - 미학대계 제3권
미학대계간행회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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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현대의 예술과 미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권은 그 세 번째에 해당한다. 내가 알기로, 미학의 전 범위를 이만한 규모로 총망라하는 기획은 국내에서 『미학대계』가 유일하다. 『미학대계』의 1권은 고대부터 미학의 역사를 중심으로 미학의 주요 주제를 되짚어보는 구성으로, 2권은 미학의 주요한 방법론들을 살펴보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 3권은 현대 예술의 새로운 쟁점들을 논의하는 장이다. 이 책은 2008년도에 대한민국학술원에서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간행회에서 펴낸 서문에도 적혀 있지만, 미학이라는 학문분과는 이를테면 경제학이나 사회학만큼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분과는 아니다. 때문에 이 책이 이런 묵직한 규모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몹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현대 예술음악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난해함이 감상자의 개입을 방해하기 때문은 아닐까? (「과학적 허상으로서의 현대 음악」) 왜 영화는 항상 예술로서의 자격을 질문받을까? 영화가 저급한 오락거리에 불과하다고 말하기에는, 다른 어떤 예술 장르에서도 소위 저급한 작품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있지 않은가? 영화가 의미를 조직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영화의 지위 논쟁: 영화는 예술인가?」) 새롭게 생겨난 '문화학'이라는 분과학문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등장했는가? 왜 문화학은 '문화'를 다루는 인문학의 범주에서 만족하지 못했는가? (「문화학」) 예술을 순수예술에 해당하는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에 해당하는 저급예술로 구분하는 분할론은 어떻게 폐기되며, 이를 지탱하던 미학의 근거들은 어떻게 다시 해석될 수 있는가? (「대중(예술)문화」) 미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를 다루는 가능한 입장들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모든 예술작품이 아닌 일부의 예술작품이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라고 보는 '온건한 도덕주의'의 입장에 대해서는 어떤 주장과 반론들이 등장할 수 있을까? (「예술과 도덕의 관계-입장들의 분류와 현대적 논의」) 이 책이 제기하고 답하는 질문들은 조금이라도 예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품어 봤을 법한 질문들이다. 『미학대계』는 예술을 둘러싼 크고 작은 의문에 답할 수 있는 하나의 길목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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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 입문 - 해석학에서 문화과학으로 문명공동연구 5
아힘 가이젠한스뤼케 지음, 박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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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 입문: 해석학에서 문화과학으로』는 근현대 서양 인문학의 흐름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개론서이다. 책을 마주하고 받은 첫 인상은 역시 훌륭한 대학 교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방대한 분량을 한정된 지면 안에서 아우르는 기획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문학이론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입문하려는 독자에게는 기초를 탄탄하게 다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더불어 근현대 미학의 기초부터 해석학과 구조주의, 해체주의, 담론분석까지의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가는 길이 열릴 수도 있으리라 기대한다. 기본적으로 저자의 문장은 간결하고 깔끔하며 글 역시도 이해하기 쉽게 쓰이고 번역되었다. 그러나 철학적 개념어들이 상세한 설명 없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사전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보다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깨알 같은 글씨로도 17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차지하는 참고문헌을 보면 저자가 이 책에 얼마나 정성과 공을 들였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서론에서 우선 문학의 체계적 정의가 불가능함을 밝히고, 문학이론이 새롭게 발견될 필요성을 제시한다. 2장은 칸트에서 시작된 근대미학의 정초를 따라 헤겔의 관념론적 미학을 살펴본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니체와 프로이트,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흐름을 엮어, 근대 예술의 이성과의 관계에서 이탈하여 '태고의 근원적 계기'로 돌아가려는 경향에 주목한다. 이어서 마르크스의 영향권에 있었던 학자들로 루카치와 벤야민, 아도르노가 소개되는데, 이 세 학자들은 예술과 사회의 연관 속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개별성을 매개하려는 각기 상이한 시도를 보였다. 3장은 슐라이어마허부터 가다머 등의 저명한 이론가들을 거쳐, 해석에 내재한 권위와 폭력성을 지적하는 현대 이론가들의 흐름을 살펴본다. 4장에서 저자는 구조주의 문학이론을 다루는데, 그 과정에서 언어학과의 긴밀한 연관을 되짚으며 구조주의적 틀을 갖춘 정신분석학까지 나아간다.

어떻게 문학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문학의 '좋은' 해석은 어떤 것인가? 어떤 접근법이 가장 깊이 있고 흥미롭게 느껴지는가? 지난 근현대 문학이론을 검토하는 이 기획을 따라가면서 독자가 해야 할 몫은 어떤 것인가? 저자는 이 책의 독자가 책에서 제시하는 사유들에서 더 나아가 자신만의 비판적인 의식과 시선을 갖추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저자가 일관적으로 책에서 제시하는 자신의 말은, "문학에 궁극적인 답이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인문학의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이면서도 중요한 특징이 틀림없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거대한 근현대 문학이론의 연대기를 끝맺는다. "궁극적 정초라는 학문의 요청을 문학이 고집스럽게 거부한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문학의 불요불굴한 시의성을 지켜줄 것이다. 문학이론의 과제는 자신과 문학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데 있으며, 바로 이 자유로운 공간이야말로 언어의 시적 기능을 신비화하지 않으면서도 문예학의 정당성 상실을 막아주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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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러시아 혁명과 동아시아 3국의 반응 문명공동연구 7
이혜경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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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의 러시아 혁명은 비록 혁명사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당시에 유례가 없던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보여주면서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된 민권 투쟁이었다.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 이 책은 1905년 러일전쟁 중 이루어진 러시아 혁명이 동아시아 3국에 미친 영향과 그 반응을 조망하는 책이다. 1부는 일본의 상황에, 2부는 중국과 한국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당시의 조선인들이 러시아를 상당히 중요한 국가로 보았을 것임을 짚으며 조선에 러시아 혁명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더불어 그는 이러한 관심사가 러시아 혁명이 러일전쟁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에서 출발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선 러시아의 1905년 혁명투쟁이 해결하고자 한 과제들에는 조선이 봉착한 과제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프롤레타리아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당시 조선의 실정으로는 노동자 투쟁 같은 이슈보다 입헌주의 설립 및 민권 발달에 대한 문제의식이 주요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글쓴이는 조선이 러시아 혁명을 기본적으로 사회경제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인 혁명으로 분석했을 것이라 보았다.

황재문은 언론매체에 혁명과 관련된 정보가 얼마나, 어떻게 실렸는지보다 독자들이 그러한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관점을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그 방법으로 그는 당시 러시아 혁명을 다룬 글의 사례로서 김윤식의 일기인 『음청사』를 검토한다. 『음청사』의 한계는 그가 러시아에 대해 편견에 가까운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었고, 러시아혁명의 상황에 대한 이해나 관심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당 자료는 당시 조선의 신문 독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수용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일례로서 연구의 가치가 있다.

이러한 사학적 논의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는 과거를 논의하는 것의 현재성이다. '과거를 아는 것이 현재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은 역사 및 역사 연구 서적에 관심을 가지는 모두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왜인가? 가장 쉬운 답은 과거의 문제에 대처한 방식을 검토하여 현재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다는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내가 제시하고 싶은 답은, 과거가 훌륭한 이야기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는 여정은 숱한 철학과 가치와 질문을 마치 발자취처럼 마음에 새겨 준다. 현재의 문제에 대해 어떤 직접적인 효용을 갖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회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은 사회변혁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의 통로를 만날 수 있다. 혁명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일일지라도, 그 거대한 이야기들의 총체가 이루는 역사 안에 또다시 낱낱이 깃든 사유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피워낼 수가 있다. 덧붙여 1905년의 러시아 혁명이라는 다소 신선한 주제가 더욱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당시의 혁명을 우리의 조국 및 인접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망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현재의 일상이 무료하다면, 오늘 하루는 러시아학 전문가들의 손길이 섬세하게 전하는 이 이야기들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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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병기, 현대회화의 달인
정영목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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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음 발표되는 화풍은 예전보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화풍은 반콤뮤니스트적이며 내용은 콤뮤니스트적인 것을 보여줌으로 이편저편의 시청을 모아 양몫을 보자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그런 해석은 지나친 해석이고 여하튼 콤뮤니스트 Picasso를 우리들은 부자연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요는 콤뮤니스트가 된 이후에 당신의 작품이 의도하는 에스프리가 점점 피상적인 레아리테의 파악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병기, "피카소와의 결별", 『문학예술』1호, 1954, 90-96쪽.

저자 정영목이 소개하는 서양화가 김병기는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나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다. "존경하는 Pablo Picasso 씨!"라는 말로 시작되는 위의 글은 화가 김병기가 쓴 편지 형식의 글, 「피카소와의 결별」에서 발췌한 것이다. 흔히들 피카소라는 말을 들으면 그 유명한 <아비뇽의 여인들>부터 <게르니카>까지의 작품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글에서 언급되는 피카소의 작품은 선전미술의 경향이 엿보이는 그의 후기작이다. 1950년대에 피카소는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했다.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1951)은 좌측에 여성과 아이로 대표되는 민간인이, 우측에 로봇의 형상을 하고 총을 겨누는 군인이 배치된 2분할 구도의 회화 작품이다. 발로리 예배당의 벽화 작품인 <전쟁>과 <평화>(1954) 역시 한쪽에는 잔혹한 전쟁의 모습을, 다른 한쪽에는 평화로운 세계의 모습을 담고 있다. 화가 김병기는 50년대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한 피카소의 행보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가 그린 한국의 모습이 피상적인 이미지를 담은 공산주의 선전미술로서의 기능을 할 뿐 한국의 실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평론글이 1950년대에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에 그는 실로 선진적인 작가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병기는 유럽 모더니스트들의 작품 및 작품관을 깊이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도 두루 갖춘 작가였다.

그래서 화가 '김병기'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을 생각했는가? 작품의 배경과 의미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는 '앎'이 그 작품의 의미를 온전히 느낄 가능성을 보다 활짝 열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화가의 생애와 미학을 훑어본 후, 이를 바탕으로 독자가 작품을 감상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한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화가의 연대기와 작품론, 그리고 실제 작품을 살펴보는 것으로 나뉜다. 저자의 예리한 분석이 특히 잘 드러나는 부분은 화가의 작품론을 소개하는 2부다. 첫째로, 저자는 김병기의 포스트모던적 예술철학을 들여다보며 그 사고의 흐름을 추적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 그 자체로 드러내는 것'을 통해 칸트의 숭고론을 전유할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본다. 저자가 화가에게서 짚어내는 사유의 뿌리 중 하나가 바로 이 리오타르의 미학이다. 둘째로, 저자는 추상과 형상 사이에서 고민하던 화가의 성찰을 제시해 준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김병기는 '비형상을 통과한 뒤의 형상'에 주목하며, 비형상과 형상의 '사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김병기의 추상론은 "현상의 세계를 이탈함으로써 인간 스스로가 갖는 영원하고 엄격한 리얼리티와 직면하는 것"으로 압축되는데, 그러한 사유를 가지고 있던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정신작용이 제거된 채 하나의 양식으로 추락해 버린 추상을 극복"하고자 했다. 셋째로, 형식적 측면에서 그의 필치는 선적 양식의 촉각성과 시각성, 그리고 동양화의 서체적 특징을 동시에 가진다는 점에서 '촉지적 선묘'로 설명된다.

저자는 화가 김병기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인유'로서 <열린 사각형>이라는 작품을 제시한다고 분석한다. <열린 사각형>은 말레비치의 1915년작인 <검은 사각형>을 연상시키는 제목인데, 말레비치의 사각형과 달리 김병기의 사각형은 정형화되지 않은 날것의 붓질이 모여 '얼핏 보면 사각형을 떠올릴 수도 있는' 조형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의 작품에서 사각형은 표현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나면 2000년대에 과연 1910년대 작품의 오마주가 얼마나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짤막한 의문이 남는다. <검은 사각형>을 모티프로 한 작품은 수없이 쏟아져 나온 바 있는데, 김병기의 작품과 여타 작품들을 구별할 만한 요소는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영역, 그 틈새를 보여주고자 했다면, 왜 꼭 <검은 사각형>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이 책이 들려주는 세밀한 분석에 기대어 감히 판단하건대, 화가는 유럽 모더니스트의 작업을 비틀어 가져오는 이러한 시도가 결코 새롭지 않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공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것으로 이 의문을 해소할 수 있을까? 저자는 리오타르를 향한 화가의 관심과 그로부터 비롯된 철학적 문제의식에서 답을 찾고 있는 듯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답은 독자가 직접 발굴해내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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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씨앗 - 나는 어떻게 GMO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나
마크 라이너스 지음, 조형택 옮김 / 스누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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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연설에 앞서 사과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무엇보다 먼저, 지난 수년에 거쳐 GM 작물들을 파괴해온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드립니다. 또한, 1990년대 중반 GMO 반대운동의 출발에 협조하고, 환경보존에 이용될 중요한 기술을 악마화하는 데 일조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 마크 라이너스,『과학의 씨앗』, 조형택 역, 스누북스, 2020, 69.

GMO는 무엇인가? 인터넷 포털에 검색하면 최상단에 뜨는 시사상식사전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생산성 향상과 상품의 강화를 위해 유전자 재조합기술(Biotechnology)을 이용하여 생산된 농산물". 특히 2000년대에 국내에서 GMO가 뜨거운 화제였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유전자 조작 식품이 보급되면 인간의 건강에 미칠 여파를 걱정하는 의견이 많았고, 나 역시 미디어에 노출되는 GMO의 이미지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 뒤로 GMO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GMO의 악영향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학의 씨앗』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 오래된 화제를 다시금 짚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서두의 인용문은 2013년 옥스포드 농업학회에서 저자인 마크 라이너스가 연설한 내용의 일부다. 라이너스는 GMO 반대 운동에 초기부터 참여하여 그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 대표적 환경운동가다. 2008년 <가디언>지에 실었던 GMO 비판 기사가 반박당하자, 라이너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 자료를 검토하다가 어떤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를 계기로 라이너스의 세계관은 완전히 뒤집힌다. 자신이 강력하게 내세우던 주장을 완전히 꺾고 돌아서는 일은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라이너스는 스스로가 틀렸다는 것을 만인 앞에서 인정했고,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이 책은 라이너스가 자신의 입으로 그 이유와 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책이다. 라이너스는 GMO 반대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어 확산되었는지 그 시초를 짚으며, 몬산토 등의 기업과의 이해관계를 함께 비추어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평소에 농업에도, 과학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과연 이 책을 얼마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과학의 씨앗』은 저자가 처음 GMO 반대 운동을 시작했을 때의 크고 작은 일화들, 심지어 복제 양 돌리를 훔치려고까지 한 일화까지도 포함해서, 거의 자전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을 가득 담고 있다. 이 책의 첫머리는 유전자 조작으로 재배되는 옥수수 밭에 한밤중 몰래 침입한 저자의 하루를 묘사하고 있다. 옥수수 밭을 무참히 뭉개던 저자와 다른 환경운동가들은 어느 순간 경찰들이 비추는 손전등의 환한 불빛을 본다. 심지어 경찰견까지 동원되었기 때문에 저자가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럴 때 우리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라이너스는 독자가 지칠 때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시 이목을 잡아끄는 데 능한 저술가다. 2000년대 당시 GMO 식품 화제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 후 GMO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즐겁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더불어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지, 그 유토피아를 직접 그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에 반하지 않는다. 누구나 알듯이, 이 시대에는 둘 중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을 배제한 채 이야기할 수 없다. 가장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과학조차도 연구자의 시각에 따라 다른 결론을 도출하기도, 연구자의 목적에 따라 이용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과학의 씨앗』은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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