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연설에 앞서 사과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무엇보다 먼저, 지난 수년에 거쳐 GM 작물들을 파괴해온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드립니다. 또한, 1990년대 중반 GMO 반대운동의 출발에 협조하고, 환경보존에 이용될 중요한 기술을 악마화하는 데 일조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 마크 라이너스,『과학의 씨앗』, 조형택 역, 스누북스, 2020, 69.
GMO는 무엇인가? 인터넷 포털에 검색하면 최상단에 뜨는 시사상식사전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생산성 향상과 상품의 강화를 위해 유전자 재조합기술(Biotechnology)을 이용하여 생산된 농산물". 특히 2000년대에 국내에서 GMO가 뜨거운 화제였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유전자 조작 식품이 보급되면 인간의 건강에 미칠 여파를 걱정하는 의견이 많았고, 나 역시 미디어에 노출되는 GMO의 이미지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 뒤로 GMO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GMO의 악영향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학의 씨앗』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 오래된 화제를 다시금 짚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서두의 인용문은 2013년 옥스포드 농업학회에서 저자인 마크 라이너스가 연설한 내용의 일부다. 라이너스는 GMO 반대 운동에 초기부터 참여하여 그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 대표적 환경운동가다. 2008년 <가디언>지에 실었던 GMO 비판 기사가 반박당하자, 라이너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 자료를 검토하다가 어떤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를 계기로 라이너스의 세계관은 완전히 뒤집힌다. 자신이 강력하게 내세우던 주장을 완전히 꺾고 돌아서는 일은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라이너스는 스스로가 틀렸다는 것을 만인 앞에서 인정했고,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이 책은 라이너스가 자신의 입으로 그 이유와 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책이다. 라이너스는 GMO 반대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어 확산되었는지 그 시초를 짚으며, 몬산토 등의 기업과의 이해관계를 함께 비추어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평소에 농업에도, 과학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과연 이 책을 얼마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과학의 씨앗』은 저자가 처음 GMO 반대 운동을 시작했을 때의 크고 작은 일화들, 심지어 복제 양 돌리를 훔치려고까지 한 일화까지도 포함해서, 거의 자전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을 가득 담고 있다. 이 책의 첫머리는 유전자 조작으로 재배되는 옥수수 밭에 한밤중 몰래 침입한 저자의 하루를 묘사하고 있다. 옥수수 밭을 무참히 뭉개던 저자와 다른 환경운동가들은 어느 순간 경찰들이 비추는 손전등의 환한 불빛을 본다. 심지어 경찰견까지 동원되었기 때문에 저자가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럴 때 우리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라이너스는 독자가 지칠 때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시 이목을 잡아끄는 데 능한 저술가다. 2000년대 당시 GMO 식품 화제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 후 GMO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즐겁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더불어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지, 그 유토피아를 직접 그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에 반하지 않는다. 누구나 알듯이, 이 시대에는 둘 중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을 배제한 채 이야기할 수 없다. 가장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과학조차도 연구자의 시각에 따라 다른 결론을 도출하기도, 연구자의 목적에 따라 이용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과학의 씨앗』은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