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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러시아 혁명과 동아시아 3국의 반응 ㅣ 문명공동연구 7
이혜경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12월
평점 :
1905년의 러시아 혁명은 비록 혁명사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당시에 유례가 없던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보여주면서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된 민권 투쟁이었다.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 이 책은 1905년 러일전쟁 중 이루어진 러시아 혁명이 동아시아 3국에 미친 영향과 그 반응을 조망하는 책이다. 1부는 일본의 상황에, 2부는 중국과 한국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당시의 조선인들이 러시아를 상당히 중요한 국가로 보았을 것임을 짚으며 조선에 러시아 혁명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더불어 그는 이러한 관심사가 러시아 혁명이 러일전쟁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에서 출발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선 러시아의 1905년 혁명투쟁이 해결하고자 한 과제들에는 조선이 봉착한 과제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프롤레타리아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당시 조선의 실정으로는 노동자 투쟁 같은 이슈보다 입헌주의 설립 및 민권 발달에 대한 문제의식이 주요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글쓴이는 조선이 러시아 혁명을 기본적으로 사회경제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인 혁명으로 분석했을 것이라 보았다.
황재문은 언론매체에 혁명과 관련된 정보가 얼마나, 어떻게 실렸는지보다 독자들이 그러한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관점을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그 방법으로 그는 당시 러시아 혁명을 다룬 글의 사례로서 김윤식의 일기인 『음청사』를 검토한다. 『음청사』의 한계는 그가 러시아에 대해 편견에 가까운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었고, 러시아혁명의 상황에 대한 이해나 관심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당 자료는 당시 조선의 신문 독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수용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일례로서 연구의 가치가 있다.
이러한 사학적 논의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는 과거를 논의하는 것의 현재성이다. '과거를 아는 것이 현재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은 역사 및 역사 연구 서적에 관심을 가지는 모두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왜인가? 가장 쉬운 답은 과거의 문제에 대처한 방식을 검토하여 현재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다는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내가 제시하고 싶은 답은, 과거가 훌륭한 이야기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는 여정은 숱한 철학과 가치와 질문을 마치 발자취처럼 마음에 새겨 준다. 현재의 문제에 대해 어떤 직접적인 효용을 갖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회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은 사회변혁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의 통로를 만날 수 있다. 혁명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일일지라도, 그 거대한 이야기들의 총체가 이루는 역사 안에 또다시 낱낱이 깃든 사유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피워낼 수가 있다. 덧붙여 1905년의 러시아 혁명이라는 다소 신선한 주제가 더욱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당시의 혁명을 우리의 조국 및 인접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망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현재의 일상이 무료하다면, 오늘 하루는 러시아학 전문가들의 손길이 섬세하게 전하는 이 이야기들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