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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이 이야기 ㅣ 암실문고
김안나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지금이야 혼혈이 관심과 동경의 대상이 되고 SNS나 미디어에서 유명해지기도 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가십과 눈총의 대상이었다. 미국은 인종의 가마솥이라 불리는 나라지만 흑인 차별이 심하다. 소설 <어느 아이 이야기>에서 1950년대 초, 백인만 사는 마을에서 백인 여성이 흑인 혼혈아를 낳았다. 로자 파크스와 킹 목사가 버스 승차 거부 시위를 하기도 전이니 사람들의 시선이 어떠했을지 예상 가능하다. 게다가 아기 엄마 캐럴은 아빠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아이를 입양 보내겠다고 한다. 혼혈아를 낳은 여성 캐럴에 대한 주위의 평가가 어떨지, 그의 아들 대니얼이 무사히 입양될 수 있을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위는 한국계 오스트리아인 김안나 작가의 소설 <어느 아이 이야기>의 도입부다. 이 작품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위 소개한 혼혈아에 대한 내용은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한다. 소설의 형식이지만 대니얼이 입양되는 과정은 사회복지국 직원의 일지로 이루어진다. 주인공인 작가 프란치스카가 대니얼의 아내 조앤을 만나 그 일지를 받아 읽어보게 된다. 사회복지국 직원 메를레네 빙클러가 대니얼의 입양을 돕기 위해, 엄마 캐럴에게서 친부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 일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 일지 형식이 전체 분량에서 절반 정도 차지하기 때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직원이 너무 성실한데?’ ‘이렇게까지 인종적 특징을 찾아가며 친부를 찾아야 하나?’ 혹시 이 소설은 대니얼의 친부 찾기 미스터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작가가 대니얼의 친부 정보를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알려줄 듯 말 듯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1950년대 백인과 흑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의 출산과 입양될 때까지의 일지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 자료를 접하게 된 소설가 프랜의 이야기와 중첩된다.
대니얼과 프랜은 혼혈이라는 말로 같은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짐작되는 대니얼의 친부를 외부(사회)에서 굳이 찾아주려고 했다. 대니얼은 신생아였으므로 선택권이 없었고 생모 캐럴은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당시 그린베이라는 소도시에는 혼혈 가정도 흑인 가정도 없었다. 대니얼은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양부모는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었고 대니얼이 밝고 건강한 아이였다지만 그 지역사회에서 어려움 없이 성장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소설 속 현재, 대니얼의 아내 조앤이 프랜에게 남편의 친부 찾기를 도와달라고 하면서 프랜은 극구 잊으려, 지우려 애썼던 모계 쪽 뿌리에 가닿게 된다.
프랜은 엄마에게서 고스란히 물려받은 외모를 무시한 채 자신의 정체성은 100% 오스트리아인이라고 장담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친할머니의 손에 키워졌으니 언어도 교육도 문화도 오스트리아인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남들에게 보이는 외모와 자신의 내면 정체성과의 괴리감을 모친을 부정하는 것으로 드러냈다. 엄마와 비교되고 동일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혼혈 프랜이 한국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혼혈로 살아가는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그런 식으로 엄마를 부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게 그 개인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혼혈일 때는 더하며 그럴 경우 뿌리라는 이름의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기에 이른다. 프랜은 안개 낀 국도에서 ‘가시성은 하나의 멍에’라고 말한다. 안개의 본성과 목적이 보는 걸 방해하는 것이듯 관찰자의 눈을 멀게 만드는 게 ‘가시성’이라는 것이다. 모순적이지 않은가. 볼 수 있는 성질이 대상을 가로막는 역할까지 한다는 사실이.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느끼는 바이긴 하지만 혼혈로 살아보지 않고는 저 장면의 뉘앙스를 적확하게 알아챌 수는 없었다.
나는 프랜과 사회복지국 직원 메를레네의 딸 질비아와 나눈 대화가 더 공감이 되었다. 질비아의 ‘놀고먹는 재주는 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어요.’라는 말이 프랜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을지 계속 생각했다. 그러나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규칙 속 예외이고 예외이자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부정해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도 외면하며 살았던 프랜은 대니얼을 통해 비로소 자신과 대면한다.
나는 엄마의 외모와 아주 많이 닮았다. 심지어 두상과 머리카락이 나는 방향, 잇몸의 생김새까지. 나는 위 장면에서 엄마를 생각했다. 나는 혼혈이 아니고 우리는 대한민국을 떠나 살아본 적 없으며 나의 뿌리를 부모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혼혈이기 때문에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등치시킬 수는 없겠지만 나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규칙과 예외가 한 문장 안에 있다’고 한 작가의 말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저 말은 특수성만을 내포한 것 같았다. 그러나 유럽에 사는 한국계 여성과 1950년대 백인과 흑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보편성을 지닌 말이다. 나 같은 한국 독자도 해당된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어느 나라 어느 인종이 읽더라도 자신에게 해당된다고 여길 만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유한 개인의 특수성도 말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하며 읽는 독자가 자신의 존재가 어디에서 왔는지 톺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자칫 교훈적으로 흐를 법한 소재를 이런 식으로 사유하도록 풀어낸 작가의 저력이 느껴졌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