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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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라는 제목과 보랏빛 표지 중앙의 원 안에 반짝거림은 환타지 소설의 느낌을 준다. 그런데 띠지를 벗기면 드러나는 그림, 잿빛 도시는 음습한 느낌이다. 띠지의 홍보문구에 이렇게 쓰여 있다.

 

국내 최초 재난공포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역작!’

 

김유정 소설 문학상 수상작가인 이경의 첫 장편소설 <소원을 말해줘>의 내용은 제목의 느낌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소설에는 시간적 배경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도시의 D구역에 격리된 사람들은 피부병에 걸려있다. ‘롱롱이라는 전설의 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평소 SF소설에 관심이 없거나 뱀에 대해 불쾌감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를 못 느낄 소재이다. 그렇지 않다면 뱀과 허물, 사람들의 소원과의 관계를 따라가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몸을 뒤덮는 풍토병을 앓고 있는 D구역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방역센터에 입소해야 한다. 그곳에서 허물을 벗고 퇴소하면 다시 허물을 입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지만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곳에서 이름 없는 여자 주인공, 파충류 사육사는 김과 후리, 뾰족 수염과 척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전설 속 거대 뱀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 허물이 영원히 벗겨진다고 믿고 있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D구역 사람들 모두의 소원은 허물을 벗는 것일까? 그들에겐 생존을 위한 간절한 소원이다. 그러나 전해져오는 전설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한 번도 확인한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설을 믿어야만 했고 그렇게 전해야만 했다. 이제 독자들도 제목을 따라가려면 그들의 소원을 쫓아야만 한다.

 

사람들은 전설처럼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그들의 허물을 영원히 벗을 수 있을 거라는 욕망을 품는다. 롱롱의 허물을 벗는 과정에서 파충류 사육사의 활약, 꿈틀대는 개개인의 욕망, 드러나는 제약회사의 음모가 드러난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뱀, 롱롱의 묘사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이동과 움직임이 한 눈에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육사가 비늘을 붙잡고 핸들링 할 때나 뱀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부분은 설득되었다. 등장하는 거대 뱀 자체가 상상의 산물이니 확연하게 보여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그러나 이 소재 덕분에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잘 그려진 것은 장점이다.

 

우리는 직접 겪지 않은 사건들, 뉴스로나 접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그저 그런 일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스쳐지나간다. 이 소설 속에서 제약회사와 방역센터(정부로 대변되는)가 그들의 이윤 추구만을 위해 저지른 일들도 D구역 이외의 사람들에겐 무관심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D구역외에 다른 구역은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조남주의 <사하맨션>도 이 소설과 유사하게 근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디스토피아적 세계로 계급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늘날 개인화, 파편화된 분절 사회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대와 참여는 헛구호에 불과하며 개인은 이미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으므로 상대에게 무관심한 채로 어떤 식으로 이용당해도 모른 채 끌려 다닌다. 이런 소설들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미래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소설적 재미로 만족하는 것을 너머 소설 속의 모습과는 다른 우리의 모습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공박사의 대사는 비관적이다.

도시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것만 있으면 다시……

 

D구역 사람들의 소원은 허물을 벗는 것이었다. 그들 개개의 소원 못지않게 다른 구역, 방역센터, 공박사 같은 이들의 소원은 다를 것이다. D구역 사람들의 절박한 소원은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다른 이들은 이 체제를 영원히 유지함으로써 그들의 이익과 안녕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 공박사의 마지막 말은 오싹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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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보이는 매력 아우름 40
김응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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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가 묻다.

미생물은 질병을 일으키는 해로운 생물 아닌가요?”


 김응빈이 답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처럼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예사롭지 않은 가르침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샘터사의 아우름시리즈 40번째 도서는 미생물학자 김응빈씨의 책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이다. 아우름시리즈는 샘터사와 CJ 도너스캠프가 공동기획한 책으로 청소년을 위한 인문교양 시리즈다. 이번 책도 미생물 전문가에게 듣는 미생물의 세계에 대한 것으로 중학생 이상 성인독자까지 미생물에 대한 지식과 교양을 충분히 쌓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을 소개하고 있다. 마치 생물학 교과서처럼 사진과 그림 도표를 이용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준다. 미생물 안에 들어가는 세균과 곰팡이, 조류는 어떻게 구분하는지, 미생물 감염과 퇴치의 역사, 유명 학자들의 연구등, 어른이 읽으면 학창시절에 배웠던 내용을 상기하거나 몰랐던 내용을 접하며 새로운 재미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저자는 미생물학자답게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고 인간과 공생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p.33~34

땅과 바다 깊숙한 곳과 공기에서부터 동물의 창자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가장 널리 퍼져 있습니다. 미생물의 다양성은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의 다양성을 합친 것보다도 크죠. 하지만 이 많은 미생물 가운데 현재의 기술로 배양할 수 있는 것은 약 1퍼센트 남짓입니다. 자연계에는 아직 우리가 접하지 못한 무수한 미지의 미생물들이 있다는 이야기죠. 우리는 그 수많은 미생물을 눈으로 볼 수도, 몸으로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무얼 하든, 어딜 가든 늘 함께합니다. 싫든 좋든 우리는 미생물의 세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미생물 없이는 인간의 삶도 없죠. 잊지 마세요. 미생물은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해야만 하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미생물 없이 우리는 일주일도 채 버티기 힘듭니다.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반려자이자 조력자인 미생물과 함께 조화 속에 살아가야만 합니다. 여기엔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인간은 이미 태아 시절부터 시작해서 출산과 육아 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미생물을 어머니에게서 받습니다. 보통 세 살까지 구축된 인간 미생물체, 특히 장내 미생물은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 속담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셈입니다."

 

3. ‘미생물은 축복인가 재앙인가에서는 대체에너지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쓰이는 사례와 탄저균, 페스트균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사례를 통해 미생물을 인간이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대한 숙고를 할 기회를 준다.

 

p.117

1925년 생물무기와 화학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일본을 비롯한 몇몇 열강은 이 협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국가들은 비밀리에 생물무기 실험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731부대는 1939년부터 1944년까지 5년여에 걸쳐 무고한 중국인과 한국인,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천인공노할 인체 실험을 자행했습니다. 주로 실험에 사용했던 균들은 탄저균, 브르셀라균, 콜레라균, 페스트균등이었고 이 생체 실험으로 사망한 사람만 무려 3000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제네바 협정이 갈수록 무력해지자, 1969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생물무기사용금지정책을 선언합니다. 이에 힘입어 1972년 세계 143개국이 비준한 생물무기협정이 최종적으로 체결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물무기의 위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9.11테러와 20184월 시리아 내전에 동원된 생화학무기가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9.11테러는 생물 무기 공격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어 커다란 공포와 충격을 주었습니다.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미생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들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자기들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선량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으니 말입니다. 지혜롭다는 뜻이 담긴 인간의 종명, 사피엔스가 부끄러운 것이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겠지요?

 

 

4. ‘나눔을 통한 공생의 아이콘에서는 다양한 곳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사는 미생물의 종류를 보여주며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들을 정리하고 있다.

지구의 어머니란 애칭을 받는 식물을 보면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굳건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감탄하는데 식물에게도 조력자가 있었다.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식물의 뿌리와 균근, 뿌리 주변에 있는 각종 미생물(특히 박테리아)이 복잡하고 긴밀하게 얽혀있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균근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이 연결망을 우드와이드웹이라고 부른다.

식용 미생물인 버섯의 경우, 친환경 경제모델인 순환 경제에 이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온실에서 나오는 바이오매스와 배출수를 버섯 재배에 이용하고, 버섯이 성장하면서 내놓는 이산화탄소는 온실로 보내는 것이다. 온실 속에 이산화탄소 양이 2배 늘어나면 식물성장은 30%정도 증가하고 온실가스 배출감소효과도 따라온다.

미생물도 인간처럼 치열한 경쟁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소화관에 살고 있는 세균 수백 종이 그렇다.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온갖 이기적인 방법도 사용한다. 그러나 경쟁만이 있는 게 아니라 공생도 한다. 각기 기능에 맞게 공급망의 일원으로도 참여한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도 베풂의 테두리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공생이 중요하다. ‘공생의 반대말은 경쟁이나 기생, 홀로살기가 아니라 공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타인의 노력을 존중해주고 타인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 능력을 나누어 서로 도와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미생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미생물처럼 살지도 못하면서 미생물 함부로 욕하지 말자며, 저자는 유명시를 패러디한다.

 

미생물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나눔의 미인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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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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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는 무서워요ㅠ 납치범과의 머리싸움!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궁금힌고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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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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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은 남태평양의 보라보라 섬에서 9년간 살았던 한국여성이 쓴 에세이다. 저자 김태연은 현재 한예종에서 영화공부를 하느라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 다시 심심한 세계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라고 자기소개에서 밝혔다.

 

보라보라섬!! 나는 사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타히티섬 근처에 있다고 하는데, 타히티는 아는데 보라보라는 몰랐다. 타히티에 가본 적이 있어서 안다는 뜻은 아니다. 화가 고갱 덕분에 그림으로 분위기 정도만 알 뿐이지. 보라보라섬을 찾아봤다. 왠지 지상낙원의 분위기가 풍기는 타히티의 그림으로만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었다. 하기야 고갱이 언제적 사람인가. 100년도 훨씬 전 타히티와 지금의 남태평양의 분위기가 같을 리가 있나? 액티비티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그 곳, 파아란 하늘과 바다가 있는 보라보라섬의 사진을 뒤로하고 다시 책을 펼쳤다.

 

책을 덮으며...

리뷰?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 지... 고민이 되었다. 거창하게도 서평이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평가의 뉘앙스가 이 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리뷰? 소설이 아니라 줄거리도 없는 이 책을 어떤 식으로 소개를 해야하는 건가? 예스24에 들어가보니 이미 리뷰가 100건 가까이 올라와 있다. ... 그렇다면 내 리뷰가 뭐 얼마나 읽힐 것이며 책 소개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가의 삶에서 묻어나는 생각, 단상들에서 파생된 나의 느낌, 생각들을 쓰려고 한다. 독후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p.159

매일 쓴다.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작가가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작가 김연수의 말을 인용한 곳에서 갑자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저자는 매일 카메라를 들면서 작가 김연수의 이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뭐라도 되어있거나 아님 말고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고 한 저자는 쏘쿨하게 넘어갔는데 나는 아니었다. 요즘 거의 매일 책 읽고 리뷰를 쓰고 있는데,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자꾸 뇌가 켕기는 기분이다. 김연수 작가에 의하면 매일 쓰면 작가가 될 것이고 그 사이에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비밀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어떤 비밀스런 일이 일어나고 있나? 작년 초 매일 글쓰기를 시작할 때 나는, 작가가 되려는 원대한 포부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쌓이고 쌓인 것을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올해부터는 거의 매일 책리뷰를 쓰고 있다. 이것도 일년가까이 되니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나 왜 이러고 있지?? 누구랑 경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경쟁적으로 이러고 있다. 결정적으로 내 글이 그렇게 변화 발전했다는 생각이 안드는 거다. 작년에 쓴 리뷰나 올해 쓴 리뷰나 별 차이 없고 사용하는 어휘도 유사하고, 한마디로 톤이 비슷하다. 맘에 안든다!! 그럼 리뷰로는 글이 발전할 수 없나? 창작 글을 써야하나? 에세이나 소설 같은? 받아놓은 책들은 순서를 기다리고 있고 리뷰는 계속 써야하는데... 계속되는 켕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다른 방식의 글쓰기가 필요하다.

 

p.103

많은 친구들이 내가 날마다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고, 물고기를 잡아 저녁을 준비하고, 모닥불 옆에 누워 별을 보는 생활을 하는 줄 안다. 나도 그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섬에도 그 이상의 현실이 있었다. 일과 사람에 시달리고, 피부색으로 차별을 받고, 수입은 통장을 중간 경유지로 알고 금방 갈아타버린다. 이곳에는 시장도, 극장도, 서점도, 도서관도, 아이스 라테를 파는 카페도 없다. 그 없음을 대신하는 것이 인터넷이었다. 아마존에서 베갯솜을 사고, 드라마를 보고, 전자책으로 독서를 했다. 섬에 산지 6년 차, 이곳엔 우리보다 오래 산 친구들이 없다. 단조로운 생활과 고립감에 지쳐 모두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인터넷이었다.

 

시어머니가 아들,며느리 사는 집에 와서 지내다가 비싼 인터넷을 꼭 해야겠냐는 말을 하는데 저자의 변명 아닌 변명은 위와 같았다. 여행자로, 방문객으로 섬을 방문한다면 그저 며칠 휴양하다 떠나면 되지만 생활인으로서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몹시 심심하고 단조롭고 무미건조함에 틀림없다. 그것을 해소해주는 것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른 세상이다. 저자와 남편은 자연속에서 직접 경험으로 얻지 못하는 것을 인터넷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간접경험할 수 밖에 없으며 비용에 비해 만족도는 아주 높다. 그 세계 경험자들에게 완전 단절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나는 20년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작년에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마당과 서재가 있는 집에 살면 집에 오래 머물며 주택살이를 만끽할 줄 알았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인 서재에서 편안하게 책 읽을 줄 알았다. 1년 반째 살고 있는데 아니다. 인간은 몹시 관성적 존재라는 것을 절감하는 중이다. 집은 집이고, 일은 맨날 생기니, 집 비우고 나다니기 바쁘다. 마당에 나가서 새소리를 들으며 풀과 나무의 내음을 맡으며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서재가 있으면 책 읽고 글 쓰기에 편안한 곳이 될 줄 알았으나 책 보관소에 불과한 공간이 되어버렸고 최근엔 새 고양이가 들어오는 바람에 기존에 있던 두 고양이들이 쉬고 잠자는 곳이 되었다. 책은 예전처럼 식탁에 앉아서 읽는다. 당연한듯 주택에 이사 오면 개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매일 집에 없는데 무슨 수로 개를 케어할 건가 싶어서 포기했다. 인간은 자신이 있는 공간을 적극 활용하고 만족할 것 같지만 꼭 그럴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뭐든지 찾아다니고 배우러다니는 거 좋아하는 나 같은 성격은 보라보라섬같은 조용한 곳에서 살다간 숨 막힐 것 같다. 한편 아무 것도 안하고 아무 것에도 연결되어있지 않은 생활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챙겨야하는 것에 슬슬 지쳐가고 있는 중이다.

 

p.228

문득 남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야 바깥에 있는 희미한 사람들이 그에게는 늘 선명하다. 어쩌면 그쪽은 온기로 가득할 것도 같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자 또 졸음이 쏟아졌다. 그냥 배가 불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남편이 꼭 외국인이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남편의 시야는 따뜻할 것 같다. 내가 저 남편의 행동이나 말을 본다면 저자보다 훨씬 복장 터져서 못살 것 같은데... 저자는 그런 남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남편의 어릴 적 상처가 깃든 공간에서 그때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을 위로해 준다. 남편과 시시하고 소소한 일상을 살며 행복해하고, 19시간이나 차이나는 먼 곳에 있으면서 가족을 더 알아가게 되고~~ 그런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들어있다. 어쩌면 너무 평범한 이야기들이라 재미없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에서 내 지점으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길게 머물면서 깊이 생각했다. 덕분에 보라보라섬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일면이지만 보게 되었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도 받았다. 저자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길 응원한다.

 

, 제목 '우리만 아는 농담'이 나오는 꼭지는 풋! 할 만한 싱거운 에피소드다. 제목처럼 누구에게나 우리만 아는 농담이 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게 뭐야?할 만한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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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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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하는데... 라고 생각만 하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꾸물거리다가 결국 시간이 넘 늦었다며 안 간 날이 몇 번이었던가? 셀 수도 없이 많았던 사람들은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역시,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었어. 게다가 책도 썼잖아~ 운동하러 가야하는데 못간 이유가 나랑 얼추 비슷하겠는걸... 하면서 덥석 집어들 게 분명하다.

 

이진송 작가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의 부제는 이렇다.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 보통 여자! 너무나~~

체력? 하찮지! 그럼 그럼~~

운동일기? 쓴 적 없지! 빡씨게 운동해 본적이 없었으므로...

 

이 책은 작가의 운동 일기라고 했지만 단순한 운동 일기만은 아니다. 온갖 종류의 할 수 있는 운동이란 다 해본 경험담에다 미디어가 여성의 몸에 씌운 가혹한 굴레가 우리의 의식 곳곳에 당연히 뿌리박혀 있는지 운동을 하다보니 확인하게 된 내용에다가 페미니즘적 시각까지 얹어져 있다. 그래서 격공하게 되고 재미도 있었다. 헌데 그 재미의 8할은 작가의 문체때문이었다. 그래서 읽다보니 점점 작가에 관심이 가는 거였다.

 

어쩐지~~ 이미 책 여러 권 낸, 상당한 필력이 검증된 작가였다. 비혼 선배인 김애순씨와의 비혼 대담집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비혼>, 여자라서 하면 되고 안 되고에 대한 생각을 문화콘텐츠로 풀어낸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를 비롯, 공저까지 꽤 여러 권의 책이 검색되었다. 글이 재미있어서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떻기에 그런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인용한다.

 

# 소명의식

무릎 안아주세요.”
고관절을 늘려서 풀어주라는 뜻인데 왈칵 서러워진다. 안아주라고요? 지금 선생님 때문에 저와 제 하반신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거든요? 사이가 나빠져서 오늘 밤부터 각방 쓰기로 했거든요? 이제 와서 안아주며 질척거려 봤자, 이것 좀 봐요, 내 의지랑 상관없이 널브러지는 걸... 저한테 왜 이러세요, 선생님. 이렇게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지탄받으면 많은 이들이 의욕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많은 증언을 종합해본 결과 전국의 필라테스 선생님들은 고통의 강도에 비례하여 오히려 행복이 커지는 듯하다. 역시 세상의 희로애락 비율을 맞추고자 지옥에서 특별히 파견된 특수부대가 분명하다. 아니면 회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자 더 씩씩하게 외치는 프로의식이거나, 내일 안 올까 봐 해맑게 웃으며 발목을 잡는 고객 유치 전략이거나, 정리 정돈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처럼 구부러진 몸을 펴고 늘리는 데 희열을 느끼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좀 과장했지만 사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찌릿찌릿 통하는 순간이 있다. 복근을 이용해서 다리를 들어 올리라는 요구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던 내 다리가 어느 순간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부들거리며 허공에 뜰 때,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던 목이 선생님의 기합에 따라 쭈욱 뽑혀 나올 때 카다란 공을 신성하게 모시는 부족의 일원처럼 공을 들어올린 자세로 버티다가 선생님이 불시에 공을 쳐도 떨어뜨리지 않을 때, 점점 소화할 수 있는 동작의 개수가 늘어날 때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선생님의 목소리,

그으렇죠!”

나도 그만 잇몸을 드러내며 웃어버린다.

 

필라테스나 요가 다니면서 저 멘트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위 글 읽으며 놀랐을 것이다. 그 한마디를 가지고 이리도 다각도의 분석을 하다니~ 놀라워라!! 복근을 이용해 다리 들어올리는 동작 할 때의 내 모습과 같은 모습을 텍스트로 만나게 될 때 피식 삐져나오는 웃음. 이것은 역시 유경험자들만의 공감대 형성! 그것을 적확하게 노리고 써낸 글빨! 급 존경스러움 발생한 독자 많을 것이다.

 

 

 

# 딸의 체중이라는 문제

입시 생활을 끝내고 스무살이 되자, “뚱돼지라도 좋으니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를 입에 달고 살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운동을 권했다. 여기서 운동이란 당연히 근력 중량이나 체력 향상이 아니라 체중 감량을 의미한다. 나는 이제 그들의 머릿속에서 잘 돌봐줘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 잘 관리해야 하는 여자가 된 것이다. 살이 조금만 빠지면 우리 딸 날아가겠다, 빨리 몸보신 하자라고 걱정하면서도 기성복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못내 속상해하는 눈빛, 나를 부드럽게 틀어쥐는, 사랑의 악력, 나를 부술 의도가 없더라도 원하는 모양으로 휘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감추지 못한다. 이렇게 친밀한 사람이 나의 몸을 부정하거나 감시하는 감각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의 세계에 공기처럼 떠돈다.

 

나는 둘째 아이 임신했을 때 친정엄마의 한마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첫째 때도 그랬지만 둘째 때도 입덧이 끝나면 폭풍처럼 밀려오는 식욕을 컨트롤하기가 힘들었다. 첫째 때 과식을 해서 그런지 거의 30kg이나 쪄서 둘째 때는 조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외가댁의 행사로 친정식구들 모두 모여 식사하던 자리였다. 내가 음식 섭취를 과도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 많이 먹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내 숟가락질을 저지시키며 그만 먹어라, 살찐다, 꼴보기 싫어진다!”라고 했다. 진짜 울컥했다. 미스도 아니고 임신한 딸이 밥 먹는데 못 먹게 하다니... 작가의 분석처럼 엄마는 사랑의 악력으로 내 숟가락을 잡았을 것이다. 엄마가 걱정한 것은 딸이 뚱띵이가 되는 것이었을까? 품평하듯 쳐다보는 남들의 시선이었을까? 그 어떤 걱정도 엄마에게 각인된 생각은 미디어와 사회가 주입한 시각아니었을까? 여자의 몸매는 어때야 하고 딸을 그렇게 관리해야 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고 등등.

 

#, , 몸들

서 있기도 힘들어서 바닥에 앉아 비누칠을 하던 회원님이 나에게 샴푸 뚜껑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손이 달달 떨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 나 같으면 집에만 잇을 것 같다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원님은 매일 그 자리에 있었다. 속도만 좀 느릴 뿐 수영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해내면서, 화려한 접영은 아니지만 아쿠아로빅의 동작을 자신의 속도에 맞춰 따라 하면서, 무릎 관절이 닳고 허리가 휘어도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면서.

그러고 보니 나는 미래의 나, 늙고 병든 나를 집안에만 가두고 있었다. 운동은 원래 힘들다. 나도 힘들어하면서 운동을 다닌다. 나는 나보다 훨씬 신체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운동의 효과나 성과 면에서 뒤처진다. 누군가 그런 이유로 내게 운동을 그만두라고 하면 황소처럼 성낼 주제에, 상대가 노인이라고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부끄러웠다. 동시에 평생 운동을 외치는 내가 강해질 몸, 나의 나약함을 넘어서는 짜릿함만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헬쓰장 춤 수업시간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한 교실에 모인다. 요즘은 요가 수업만 겨우 들어가지만 몇 년전엔 빠지지 않고 들었던 에어로빅이었는지, 줌바였는지, 그 수업에 꽤 나이든 할머니가 들어와 맨 뒷자리에서 따라하고 있었다. 수업 마치고 웅성거리는 기존 멤버의 말은 나이 들어서 따라하기도 힘든데 이런 수업 뭐하러 들어오냐?는 거였다. 그 땐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작가의 위 내용을 읽으니 참 못난 생각을 했구나 싶다. 우리 모두 늙을텐데 내가 나이 들어 젊은이들에게 저런 말 들으면 어떻겠나? 내가 늙으면 운동 안 다닐건가

 

우리는 자신을 위해, 건강한 삶을 위해 오늘도 운동하러 나간다. 그 어떤 유혹들이 발목을 붙잡아 집밖을 나서길 주저하게 할 지라도 뿌리치고 나가야 한다. 운동에세이를 낸 작가를 감시하듯 독자도 스스로를 감시해야 한다!

이젠, 작가도 독자도 농땡이 피울 수도 없게 됐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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