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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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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하는데... 라고 생각만 하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꾸물거리다가 결국 시간이 넘 늦었다며 안 간 날이 몇 번이었던가? 셀 수도 없이 많았던 사람들은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역시,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었어. 게다가 책도 썼잖아~ 운동하러 가야하는데 못간 이유가 나랑 얼추 비슷하겠는걸... 하면서 덥석 집어들 게 분명하다.
이진송 작가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의 부제는 이렇다.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나? 보통 여자! 너무나~~
체력? 하찮지! 그럼 그럼~~
운동일기? 쓴 적 없지! 빡씨게 운동해 본적이 없었으므로...
이 책은 작가의 운동 일기라고 했지만 단순한 운동 일기만은 아니다. 온갖 종류의 할 수 있는 운동이란 다 해본 경험담에다 미디어가 여성의 몸에 씌운 가혹한 굴레가 우리의 의식 곳곳에 당연히 뿌리박혀 있는지 운동을 하다보니 확인하게 된 내용에다가 페미니즘적 시각까지 얹어져 있다. 그래서 격공하게 되고 재미도 있었다. 헌데 그 재미의 8할은 작가의 문체때문이었다. 그래서 읽다보니 점점 작가에 관심이 가는 거였다.
어쩐지~~ 이미 책 여러 권 낸, 상당한 필력이 검증된 작가였다. 비혼 선배인 김애순씨와의 비혼 대담집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비혼>, 여자라서 하면 되고 안 되고에 대한 생각을 문화콘텐츠로 풀어낸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를 비롯, 공저까지 꽤 여러 권의 책이 검색되었다. 글이 재미있어서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떻기에 그런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인용한다.
# 소명의식
“무릎 안아주세요.”
고관절을 늘려서 풀어주라는 뜻인데 왈칵 서러워진다. 안아주라고요? 지금 선생님 때문에 저와 제 하반신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거든요? 사이가 나빠져서 오늘 밤부터 각방 쓰기로 했거든요? 이제 와서 안아주며 질척거려 봤자, 이것 좀 봐요, 내 의지랑 상관없이 널브러지는 걸... 저한테 왜 이러세요, 선생님. 이렇게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지탄받으면 많은 이들이 의욕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많은 증언을 종합해본 결과 전국의 필라테스 선생님들은 고통의 강도에 비례하여 오히려 행복이 커지는 듯하다. 역시 세상의 희로애락 비율을 맞추고자 지옥에서 특별히 파견된 특수부대가 분명하다. 아니면 회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자 더 씩씩하게 외치는 프로의식이거나, 내일 안 올까 봐 해맑게 웃으며 발목을 잡는 고객 유치 전략이거나, 정리 정돈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처럼 구부러진 몸을 펴고 늘리는 데 희열을 느끼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좀 과장했지만 사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찌릿찌릿 통하는 순간이 있다. 복근을 이용해서 다리를 들어 올리라는 요구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던 내 다리가 어느 순간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부들거리며 허공에 뜰 때,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던 목이 선생님의 기합에 따라 쭈욱 뽑혀 나올 때 카다란 공을 신성하게 모시는 부족의 일원처럼 공을 들어올린 자세로 버티다가 선생님이 불시에 공을 쳐도 떨어뜨리지 않을 때, 점점 소화할 수 있는 동작의 개수가 늘어날 때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선생님의 목소리,
“그으렇죠!”
나도 그만 잇몸을 드러내며 웃어버린다.
☞ 필라테스나 요가 다니면서 저 멘트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위 글 읽으며 놀랐을 것이다. 그 한마디를 가지고 이리도 다각도의 분석을 하다니~ 놀라워라!! 복근을 이용해 다리 들어올리는 동작 할 때의 내 모습과 같은 모습을 텍스트로 만나게 될 때 피식 삐져나오는 웃음. 이것은 역시 유경험자들만의 공감대 형성! 그것을 적확하게 노리고 써낸 글빨! 급 존경스러움 발생한 독자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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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의 체중이라는 문제
입시 생활을 끝내고 스무살이 되자, “뚱돼지라도 좋으니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를 입에 달고 살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운동을 권했다. 여기서 운동이란 당연히 근력 중량이나 체력 향상이 아니라 체중 감량을 의미한다. 나는 이제 그들의 머릿속에서 ‘잘 돌봐줘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 ‘잘 관리해야 하는 여자’가 된 것이다. 살이 조금만 빠지면 “우리 딸 날아가겠다, 빨리 몸보신 하자”라고 걱정하면서도 기성복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못내 속상해하는 눈빛, 나를 부드럽게 틀어쥐는, 사랑의 악력, 나를 부술 의도가 없더라도 원하는 모양으로 휘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감추지 못한다. 이렇게 친밀한 사람이 나의 몸을 부정하거나 감시하는 감각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딸’의 세계에 공기처럼 떠돈다.
☞ 나는 둘째 아이 임신했을 때 친정엄마의 한마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첫째 때도 그랬지만 둘째 때도 입덧이 끝나면 폭풍처럼 밀려오는 식욕을 컨트롤하기가 힘들었다. 첫째 때 과식을 해서 그런지 거의 30kg이나 쪄서 둘째 때는 조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외가댁의 행사로 친정식구들 모두 모여 식사하던 자리였다. 내가 음식 섭취를 과도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 많이 먹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내 숟가락질을 저지시키며 “그만 먹어라, 살찐다, 꼴보기 싫어진다!”라고 했다. 진짜 울컥했다. 미스도 아니고 임신한 딸이 밥 먹는데 못 먹게 하다니... 작가의 분석처럼 엄마는 사랑의 악력으로 내 숟가락을 잡았을 것이다. 엄마가 걱정한 것은 딸이 뚱띵이가 되는 것이었을까? 품평하듯 쳐다보는 남들의 시선이었을까? 그 어떤 걱정도 엄마에게 각인된 생각은 미디어와 사회가 주입한 시각아니었을까? 여자의 몸매는 어때야 하고 딸을 그렇게 관리해야 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고 등등.
#몸, 몸, 몸들
서 있기도 힘들어서 바닥에 앉아 비누칠을 하던 회원님이 나에게 샴푸 뚜껑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손이 달달 떨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아, 나 같으면 집에만 잇을 것 같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원님은 매일 그 자리에 있었다. 속도만 좀 느릴 뿐 수영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해내면서, 화려한 접영은 아니지만 아쿠아로빅의 동작을 자신의 속도에 맞춰 따라 하면서, 무릎 관절이 닳고 허리가 휘어도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면서.
그러고 보니 나는 미래의 나, 늙고 병든 나를 집안에만 가두고 있었다. 운동은 원래 힘들다. 나도 힘들어하면서 운동을 다닌다. 나는 나보다 훨씬 신체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운동의 효과나 성과 면에서 뒤처진다. 누군가 그런 이유로 내게 운동을 그만두라고 하면 황소처럼 성낼 주제에, 상대가 노인이라고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부끄러웠다. 동시에 ‘평생 운동’을 외치는 내가 ‘더’ 강해질 몸, 나의 나약함을 넘어서는 짜릿함만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헬쓰장 춤 수업시간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한 교실에 모인다. 요즘은 요가 수업만 겨우 들어가지만 몇 년전엔 빠지지 않고 들었던 에어로빅이었는지, 줌바였는지, 그 수업에 꽤 나이든 할머니가 들어와 맨 뒷자리에서 따라하고 있었다. 수업 마치고 웅성거리는 기존 멤버의 말은 ‘나이 들어서 따라하기도 힘든데 이런 수업 뭐하러 들어오냐?는 거였다. 그 땐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작가의 위 내용을 읽으니 참 못난 생각을 했구나 싶다. 우리 모두 늙을텐데 내가 나이 들어 젊은이들에게 저런 말 들으면 어떻겠나? 내가 늙으면 운동 안 다닐건가?
우리는 자신을 위해, 건강한 삶을 위해 오늘도 운동하러 나간다. 그 어떤 유혹들이 발목을 붙잡아 집밖을 나서길 주저하게 할 지라도 뿌리치고 나가야 한다. 운동에세이를 낸 작가를 감시하듯 독자도 스스로를 감시해야 한다!
이젠, 작가도 독자도 농땡이 피울 수도 없게 됐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