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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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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은 남태평양의 보라보라 섬에서 9년간 살았던 한국여성이 쓴 에세이다. 저자 김태연은 현재 한예종에서 영화공부를 하느라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 ‘다시 심심한 세계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라고 자기소개에서 밝혔다.
보라보라섬!! 나는 사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타히티섬 근처에 있다고 하는데, 타히티는 아는데 보라보라는 몰랐다. 타히티에 가본 적이 있어서 안다는 뜻은 아니다. 화가 고갱 덕분에 그림으로 분위기 정도만 알 뿐이지. 보라보라섬을 찾아봤다. 왠지 지상낙원의 분위기가 풍기는 타히티의 그림으로만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었다. 하기야 고갱이 언제적 사람인가. 100년도 훨씬 전 타히티와 지금의 남태평양의 분위기가 같을 리가 있나? 액티비티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그 곳, 파아란 하늘과 바다가 있는 보라보라섬의 사진을 뒤로하고 다시 책을 펼쳤다.
책을 덮으며...
리뷰?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 지... 고민이 되었다. 거창하게도 서평이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평가의 뉘앙스가 이 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리뷰? 소설이 아니라 줄거리도 없는 이 책을 어떤 식으로 소개를 해야하는 건가? 예스24에 들어가보니 이미 리뷰가 100건 가까이 올라와 있다. 흠... 그렇다면 내 리뷰가 뭐 얼마나 읽힐 것이며 책 소개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가의 삶에서 묻어나는 생각, 단상들에서 파생된 나의 느낌, 생각들을 쓰려고 한다. 독후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p.159
‘매일 쓴다.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작가가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작가 김연수의 말을 인용한 곳에서 갑자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저자는 매일 카메라를 들면서 작가 김연수의 이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뭐라도 되어있거나 ‘아님 말고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고 한 저자는 쏘쿨하게 넘어갔는데 나는 아니었다. 요즘 거의 매일 책 읽고 리뷰를 쓰고 있는데,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자꾸 뇌가 켕기는 기분이다. 김연수 작가에 의하면 매일 쓰면 작가가 될 것이고 그 사이에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비밀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어떤 비밀스런 일이 일어나고 있나? 작년 초 매일 글쓰기를 시작할 때 나는, 작가가 되려는 원대한 포부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쌓이고 쌓인 것을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올해부터는 거의 매일 책리뷰를 쓰고 있다. 이것도 일년가까이 되니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나 왜 이러고 있지?? 누구랑 경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경쟁적으로 이러고 있다. 결정적으로 내 글이 그렇게 변화 발전했다는 생각이 안드는 거다. 작년에 쓴 리뷰나 올해 쓴 리뷰나 별 차이 없고 사용하는 어휘도 유사하고, 한마디로 톤이 비슷하다. 맘에 안든다!! 그럼 리뷰로는 글이 발전할 수 없나? 창작 글을 써야하나? 에세이나 소설 같은? 받아놓은 책들은 순서를 기다리고 있고 리뷰는 계속 써야하는데... 계속되는 켕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다른 방식의 글쓰기가 필요하다.
p.103
많은 친구들이 내가 날마다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고, 물고기를 잡아 저녁을 준비하고, 모닥불 옆에 누워 별을 보는 생활을 하는 줄 안다. 나도 그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섬에도 그 이상의 현실이 있었다. 일과 사람에 시달리고, 피부색으로 차별을 받고, 수입은 통장을 중간 경유지로 알고 금방 갈아타버린다. 이곳에는 시장도, 극장도, 서점도, 도서관도, 아이스 라테를 파는 카페도 없다. 그 없음을 대신하는 것이 인터넷이었다. 아마존에서 베갯솜을 사고, 드라마를 보고, 전자책으로 독서를 했다. 섬에 산지 6년 차, 이곳엔 우리보다 오래 산 친구들이 없다. 단조로운 생활과 고립감에 지쳐 모두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인터넷이었다.
시어머니가 아들,며느리 사는 집에 와서 지내다가 비싼 인터넷을 꼭 해야겠냐는 말을 하는데 저자의 변명 아닌 변명은 위와 같았다. 여행자로, 방문객으로 섬을 방문한다면 그저 며칠 휴양하다 떠나면 되지만 생활인으로서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몹시 심심하고 단조롭고 무미건조함에 틀림없다. 그것을 해소해주는 것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른 세상이다. 저자와 남편은 자연속에서 직접 경험으로 얻지 못하는 것을 인터넷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간접경험할 수 밖에 없으며 비용에 비해 만족도는 아주 높다. 그 세계 경험자들에게 완전 단절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나는 20년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작년에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마당과 서재가 있는 집에 살면 집에 오래 머물며 주택살이를 만끽할 줄 알았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인 서재에서 편안하게 책 읽을 줄 알았다. 1년 반째 살고 있는데 아니다. 인간은 몹시 관성적 존재라는 것을 절감하는 중이다. 집은 집이고, 일은 맨날 생기니, 집 비우고 나다니기 바쁘다. 마당에 나가서 새소리를 들으며 풀과 나무의 내음을 맡으며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서재가 있으면 책 읽고 글 쓰기에 편안한 곳이 될 줄 알았으나 책 보관소에 불과한 공간이 되어버렸고 최근엔 새 고양이가 들어오는 바람에 기존에 있던 두 고양이들이 쉬고 잠자는 곳이 되었다. 책은 예전처럼 식탁에 앉아서 읽는다. 당연한듯 주택에 이사 오면 개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매일 집에 없는데 무슨 수로 개를 케어할 건가 싶어서 포기했다. 인간은 자신이 있는 공간을 적극 활용하고 만족할 것 같지만 꼭 그럴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뭐든지 찾아다니고 배우러다니는 거 좋아하는 나 같은 성격은 보라보라섬같은 조용한 곳에서 살다간 숨 막힐 것 같다. 한편 아무 것도 안하고 아무 것에도 연결되어있지 않은 생활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챙겨야하는 것에 슬슬 지쳐가고 있는 중이다.
p.228
문득 남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야 바깥에 있는 희미한 사람들이 그에게는 늘 선명하다. 어쩌면 그쪽은 온기로 가득할 것도 같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자 또 졸음이 쏟아졌다. 그냥 배가 불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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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꼭 외국인이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남편의 시야는 따뜻할 것 같다. 내가 저 남편의 행동이나 말을 본다면 저자보다 훨씬 복장 터져서 못살 것 같은데... 저자는 그런 남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남편의 어릴 적 상처가 깃든 공간에서 그때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을 위로해 준다. 남편과 시시하고 소소한 일상을 살며 행복해하고, 19시간이나 차이나는 먼 곳에 있으면서 가족을 더 알아가게 되고~~ 그런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들어있다. 어쩌면 너무 평범한 이야기들이라 재미없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에서 내 지점으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길게 머물면서 깊이 생각했다. 덕분에 보라보라섬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일면이지만 보게 되었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도 받았다. 저자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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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목 '우리만 아는 농담'이 나오는 꼭지는 풋! 할 만한 싱거운 에피소드다. 제목처럼 누구에게나 우리만 아는 농담이 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게 뭐야?할 만한 것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