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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형태 - 여태현 산문집
여태현 지음 / 부크럼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다정함의 형태라? 다정함에는 어떤 모양이 있다는 걸까? 여태현 작가의 산문집 <다정함의 형태>는 제목에 끌려 출판사 이벤트에 신청해서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나는 다정하지 못한 사람이다. 호불호를 표현함에 있어 너무 명확해서 단호박이라 불리기도 한다. 좀 다정하게 표현, 말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다정함에 대해 알고 싶었다.
책은 크게 3장으로 구분하고 있고 각각의 제목은 이러하다.
첫 번째 이야기. 다정함의 형태
두 번째 이야기. 나를 다정하게 만드는 것들
세 번째 이야기. 체온, 그 다정함
작가는 자신만의 섬세함으로 다정함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에세이이므로 당연히 문장마다 그의 취향이 뚝뚝 묻어난다. 활자만으로 느껴지는 작가의 감성은 아주 예민한 것 같다. 여기서 예민하다는 의미는 긍정이다. 사물 하나하나에도, 사람의 목소리와 말투와 손의 촉감 하나하나에도 자신만의 섬세함으로 느껴낸다. 그런 예민함이 있으니 이런 글들도 쓸 수 있는 것일 터이다.
작가를 ‘다정하게 만드는 것들’중 사전-사랑의 정의 편에서는 직접 사전을 찾아본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서는 부산에 여행을 자주 간다고 하는데 보수동 헌책방에서 고른 사전을 열어 맨 처음 찾아본 단어는 ‘사랑’
1992년에 펴낸 사전에 정의된 사랑은 이렇다.
사랑 : 1) 하는 일 또는 그러한 마음. 연애. 2) 아끼고 위하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몹시 따르고 그리워 따듯한 인정을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 3) <예> 하느님이 사람을 불쌍히 여겨 행복을 베푸는 일. 4) 일정한 사물에 대하여 몹시 즐기거나 좋아하는 마음
이 사랑의 정의 부분을 사진찍어 SNS에 올렸더니 메시지가 왔는데 1987년에 편찬된 사전의 표지와 사랑의 정의였다고 한다. 그 메시지 내용은,
‘제가 가진 사전보다 작가님이 가진 사전의 정의가 더 아름답네요. 그 시절에 사전을 만든 이들의 정의. 낭만적이야.’ 라고.
작가는 그 메시지를 받고 모든 시대에 편찬된 사전을 뒤져 사랑의 정의를 모조리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전에 사랑의 정의를 적는 사람과 87년도에 정의된 사랑의 의미를 찍어 보내주는 사람 중 과연 누가 더 낭만적인가에 대한 생각도 한다.
둘 다 참으로 낭만적이구나 싶었고, 나도 집에 있는 사전 두 개를 꺼내 ‘시옷’부분을 펼쳐보았다. 87년도에 정의된 사랑은 우리집에 있는 <동아 참 국어사전> 2000년 판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금성출판사의 2004년 판 <훈민정음 국어사전>이다.

↑↑ 1번으로 나오는 정의에 굳이 "성적으로 이끌려"라고 한정한건지ㅠ
세 종류의 사전에서 찾은 사랑의 정의 중 작가가 보수동 책방에서 고른 사전의 정의가 가장 문학적인 느낌이다. 책을 읽다가 작가처럼 사전을 찾아본 나는, 낭만적인걸까? 그건 아닌 것 같고 그저 무언가를 읽고 확인해보길 좋아하는 성격일 뿐...
작가를 다정하게 만드는 것들 중 이상해씨 인형, 양말, 목폴라, 장갑은 모두 촉감과 관련있다. 따듯한(작가는 ‘따뜻한’보다 ‘따듯한’을 더 선호하는 듯~) 느낌을 주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중 양말을 표현한 부분은 유난히 그러했다.
p. 59
한겨울, 침대에 앉아 스탠드 조명 아래에서 따듯한 양말을 신고 책을 읽는 걸 좋아합니다. 그 보들보들한 감촉, 당신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손수 고른 양말을 세 켤레 정도 선물합니다. 사이즈도 크게 나뉘지 않고, 튀는 양말이 아니고서는 취향을 타는 법도 잘 없습니다. 게다가 따듯하기까지. 혹시 지금 누군가의 선물을 고민하고 있다면, 양말. 무조건 양말입니다.
작가의 취향이 드러나는 영화에 대한 부분에서는 십분 공감하며 읽었다.
p. 102~103
주말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불을 끌어안고 보는 영화도 좋습니다. 혼자 영화를 봐서 좋은 점은 역시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 수 있고, 화내고 싶을 땐 화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세계에 온 힘껏 젖어 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면 오랜 여운을 느끼는 편입니다.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영화의 여운을 느리게 소화시킵니다. 한 인간의 단편적인 생애를 이해하는 데에 영화나 소설을 탐닉하는 일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 …… )
잘 만든 영화는 모든 장면과 대사, 배경이 각각의 의미를 내포하기 마련입니다. 해석하는 것 역시 관객의 몫이라서 나는 종종 감독이 의도한 것 이상을 읽기도 합니다. 영화가 가진 오독의 묘미입니다.
정답 찾기 교육의 폐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는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찾으려 노력하는 편인데 이게 참 우스운 꼴이다. 내 이해가 맞는지 틀렸는지 감독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의도를 맞게 해석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오독이라해도 뭐 어떤가. 영화를 보며 내 마음대로 해석한들 뭐 어떠랴 생각해봤다.
세 번째 이야기. 체온, 그 다정한 은 주로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선인장 화분에 물을 일주일에 두 스푼만 줘도 무리없이 잘 자라는 것을 보며 연인 J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J에겐 정량이 없다. 일주일에 두 스푼을 줘야 하는지, 다섯 스푼을 줘야 하는지, 아님 이주일에 한 스푼이면 족한 건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정해진 권장량이 없으니 조심해서 급수해야 한다. 다정함이 과하면 어딘가 잘못될 수도 있었다.’
또 자신을 무한히 다정하게 만들던 사람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죽을 만큼 사랑하면 정말 내 정신건강과 상관없이 늘상 다정할 수도 있을까. 오랜 시간 내 삶을 괴롭혀온 질문이었다. 시종일관 다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은 오히려 마음 어딘가가 병들어, 곪아 터지기 직전의 상태일 거라고 제멋대로 짐작하기도 했다.’
작가에게는 다정함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던 때도 있었으며, 다정함은 더 큰 다정함으로 덮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고, 언젠가 연인이 심어둔 다정함이 지금 이렇게나 자랐다고, 그런 마음이 있단 거를 알려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누군가에게 영영 다정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동안엔 세상이 좀 더 살만하게 느껴지기도 할 거라고 다. 그리하여 작가는 온 힘을 다해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린 우리를 평화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다정한 표정을 갖게 될 거라고 했다.
작가는 다정함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책 한 권을 써냈다. 그런데 나는, 제목만 보고 다정함을 ‘다정한 말투’ 하나에 한정지었다. 이 상상력 부족 역시 정답 찾기 교육의 폐해인 것으로 합리화해야겠다. 작가는 다정함을 사랑과 연애를 넘어 이 세상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으로 표현했다. 작가의 예민한 감성을 내 감성에 이식하고 싶지만, 뾰족뾰족해져서 그 틈이 너무 깊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 크랙 사이를 조금은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