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야자 시간 - 그 오랜 밤의 이야기 위 아 영 We are young 3
김달님 외 지음 / 책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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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야자 시간>은 8명의 작가들의 10대 시절 야자 시간, ‘그 오랜 밤의 이야기’를 담은 앤솔러지 에세이이다. 그들의 야자 시간 덕분에 나도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그 땐 왜 그렇게 세상 짐 다 진 것처럼 힘겨웠을까. 자고 일어나면 스무 살이라면 좋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가 된다면 좋겠다, 뭐가 됐든 지금만 아니면 좋겠다며 거부하고 싶었던 시절이었는데 시간이 가긴 가더라...

이 책은 야자 시간을 소재로 했기에 고민하는 자신, 친구들과의 관계가 주로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두 편의 글에서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내게는 그런 영향을 끼친 선생님이 없었다. ‘계피색 꿈’에 나오는 선생님은 학생의 시를 읽어주고 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표현에 대해 조언해준다. 저렇게 진심인 선생님이? 놀랐다. 시를 좋아하고 시를 쓰는 학생을 만난 반가움이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관심가지고 진심으로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작가에겐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던 선생님께서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이듬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고...

또 한 명의 선생님은 ‘망가뜨리지 않고 사랑하는 법’에 나온다. 바람직한 수험생의 전형이었던 학생 장도수는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열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시간에 우연히 사회 선생님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게 되었는데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라고 했다. 그리고 "당직 서기 싫다, 너도 열심히 공부하려하지 말고 야자도 적당히 하고 쉬어." 라는 말에 심쿵했다. 그동안 엄격한 엄마 때문에 숨막히는 생활을 했는데 선생님의 그 한마디는 빙판길에 위태롭게 서 있던 자신을 포근하고 따수한 풀밭위로 옮겨놓는 것 같았다. 빡빡하게 살아온 자신이 여유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준 선생님이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고민 많던 자신의 십대와 야자시절을 소환할 것이다. 8편의 에세이와 일정 부분 비슷한 경험일 테고, 독자마다 고유한 경험과 기억이 있을 것이므로. 타인의 지난 시절을 읽으며 나의 그 때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당시에는 인생 최고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더 어렵고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 그 땐 미처 몰랐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번역가 장한라의 ‘스포일러’가 그렇다. 열아홉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그 때의 자신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금의 나에게 잘 살아왔다는 다독임이다. 백만장자가 된 건 아니지만 원하던 대로 독립을 했고 스스로 돈을 벌며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고 있으니까. 제법 괜찮게 잘 지내고 있고, 그건 마음이 괜찮다는 뜻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은 고등학생이 읽어도 좋다. 이미 지나간 시절이니 이렇게 편하게 말하는 거라며 시큰둥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람들처럼 지금을 기억하며 쓰게 될 때 나는 어떻게 쓸지 상상하며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을 바라보면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꼭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잘 하고 있다며 토닥여주어도 된다. 생각보다 글의 힘은 세다.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순간을 꿈꾸면서 각자의 삶을 견디고 있었다."

"밤에는 모름지기 낮 동안의 나를 배신해야 제 맛이었다."

"어두운 밤에 혼자 있어도 라디오를 틀어두면 무섭지 않았다."




**위 리뷰는 가제본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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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라는 계절
김의경 지음 / 책나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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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라는 계절>은 김의경 소설가의 첫 에세이집이다. 다섯 계절 동안 일간지에 매주 연재했던 글들을 책나물 출판사에서 묶어냈다. 우선 표지가 제목에 딱 맞게 직관적이고 귀엽다. 전체 200쪽이 되지 않는 분량으로 한 꼭지가 세 쪽씩이라서 읽기에 부담 없다. 에세이지만 마치 친구나 언니의 일기를 몰래 보는 기분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일상에서 겪은 일들을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써내려간 짧은 글들을 자칫 가벼이 흘려버릴 수 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의 옷차림을 기억하지 못하고 점심 메뉴가 뭐였는지 한참을 생각해야하듯,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은 하루 하루를 산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나가는 하루라는 표현에 몸서리 쳐질 만큼 식상함이 일지만 그것이야말로 별 일없이 지나가는 나날들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는 흐르는 강물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잔물결의 흐름이 제각각이다. 같은 강물이지만 내 앞을 흘러가는 강물은 아까 그 강물이 아니다. 계속 새로운 강물이 다른 빛깔과 물결을 이루며 지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하루도 다르다. 올 가을이 작년 가을과는 다르듯이. 작가도 생활 속에서 계절을 느끼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길어올린다.

 

생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글 속에는 친정엄마와 자주 문자를 주고받는 딸의 모습이, 그저 스쳐지나갈 일이나 사람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다. 작가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친근하게 느낀 이유는 앞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친정 엄마와 곰살스럽게 문자를 주고받지 않는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푸념과 넋두리뿐이었다. 점점 통화하는 숫자가 줄어들었다. 딸 하나 뿐인 엄마에게 너무 정 없는 딸이 되었구나 싶어 잠시 미안함이 일었다.

 

작가는 철물점 안에 쳐진 보라색 커튼에 쓰여진 ‘the guitar’라는 글자를 보고 철물점 주인이 예술가일거라고 상상하고, 쓰레기 낭독회에 참석자들이 가져온 쓰레기를 보며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은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연히도 10.29 참사 후에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소재인 글을 읽었다. 작가는 사망자 명단에서 중학교 때 친구를 보았고 그 순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친구의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어떻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참사가 반복되어야 하는지 기막혔다. 희생자의 명단과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채 분향소를 차린 건 낯모르는 이의 슬픔에 감정이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같다. 누구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소름 돋게 만들었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목차부터 주욱 훑었다. 첫 번째 글의 제목이 눈에 콕 들어왔다. 그동안 작가의 인스타 피드를 보면서 강아지를 사랑하는 분이고 자녀는 없는 것 같다고 예상했다. ‘마흔 살의 산전 검사라는 제목을 보고 조금은 늦게 임신 계획을 했는가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뒤에 나오는 임신 관련 제목의 글을 뽑아 읽었다. 임신에 성공했길 기대하며 읽었는데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글 임산부 배려석은 일종의 반전이었다.



같은 소재의 글만 먼저 추려내어 읽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데 이번에는 살짝 부작용이 있었다. 임신 소재의 글을 먼저 읽고 나머지를 읽어서 그랬을까. 따스한 문장들 사이사이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블랙 컨슈머 때문에 이름조차 빼앗긴 콜센터에서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었다는 글은 반가운 반전이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음으로 읽으면 그 글의 참 맛을 못 보게 된다. 조심해야겠다. 리뷰는 썼지만 친구 일기 몰래 엿보듯 이 책을 한번 씩 꺼내 읽고 싶다. 그리고 미처 못 봤던 예쁘고 귀여운 이야기를 발견하곤 씨익 웃을 거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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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속이 간질간질 신나는 새싹 185
김주경 지음 / 씨드북(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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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콧속이 간질간질>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책입니다.

콧속이 간질간질하더니 싹이 나거든요.

이 무슨 일?

1학년 남학생은 바로! " 말도 안 돼요!"라고 하더라구요.

2학년 여학생은 "어떻게요? 가능해요?"

 

...

요즘 아이들 동심이 없는 건가요??

7세 아이와는 아직 못 읽어봤는데 콧 속에 싹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 그림 사진은 최대한 적게 찍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콧속이 간질간질>은 그림이 아주 귀여운 그림책입니다.

표지를 넘겨 앞 면지로 들어가면 꽃잎이 마구 날리더니 그 다음 장엔 고양이가 날아오르며 제목이 나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등교길, 모두 흑백인데 꽃배달 자전거에 실린 꽃들과 하늘에 날리는 꽃잎만 컬러입니다.

 

주인공 남자아이는 어떤 집앞을 지나다가 2층에서 떨어지는 물에 맞습니다.

 

, 차가워!”

 

화분에 물을 주던 물조리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콧속이 간질간질 하더니, 어라?

 

콧 속에 싹이 났어요.

 


 

이런 기분 처음이야.

 

학교로 가는 아이들과 고양이가 나비를 잡으려고 합니다.

 


​↑ 이 장면이 젤 맘에 든다고 한 2학년 친구~

 

교실에 도착했더니 어느새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웠네요.

 

깜짝 놀라는 친구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이 뭐라고 말했을지 한번 지어내 보라고 했습니다.

 

"너 콧구멍에 꽃이 피었어. 어떻게 한 거야?"

"신기하다, 신기해!"

"저게 뭐야? 얼레리 꼴레리!"

 

 

세상에, 그 꽃이 점점 자라더니 나무가 되고, 나무가 점점 많아져서 숲을 이루었네요.

 



접힌 양쪽 페이지를 펼치면 초록 정원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이 책의 거의 모든 장면에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나무와 이렇게 신나게 놀 수 있다니요!

예쁜 그림에 넋 놓고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신나게 놀다가 에취!

천둥, 번개와 함께 아이들이 주르르륵 내려오더니 바다 속일까요?

물 속 교실에서 아이들이 공룡을 타고 신나게 놉니다.

고양이도 같이요!

 

재채기와 함께 콧속의 꽃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어요.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와 "무슨 일 있었니?"라고 하자 아이들이 시치미를 뚝 떼는군요.

 

이 장면에서 1학년 남자 아이는, 어떻게 어떻게 놀았다며 선생님께 자랑했지만 선생님이 믿어주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2학년 여자 아이는 아무일 없었다고, 쟤가 재채기를 너무 크게 해서 우리 모두

쓰러져있는 거라고 이야기 했네요.

 

마지막 장을 넘기면 끝 면지에 책만 보던 안경 낀 남학생이 앉아있습니다.

안경에 싹이 난 채로요.

이제 교실에선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책을 읽은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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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흄세 에세이 1
알베르 카뮈 지음, 박해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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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북부 도시들의 화려한 색감과 향취, 바다에서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사람들의 묘사가 당신의 감성을 사로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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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흄세 에세이 1
알베르 카뮈 지음, 박해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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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가 20대 때 쓴 서정성 짙은 에세이라는 소개에 이끌려 서평단에 신청했다. 카뮈에 대한 호불호는 없다. 얼마 전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두 편을 읽으면서 불어를 안다면 원서로 읽는 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래서 카뮈의 에세이라기에 불어 번역일 것이니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받고 감각적 디자인과 콤팩트한 그립감이 마음에 폭 들었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당황했다. 스스로를 지탄했다. 카뮈의 소설이라고는 <이방인> 한 권 밖에 읽지 않은데다 불어도 모르는 주제에 번역본에서 카뮈 문체를 뭐 그리 느끼겠다고 서평단에 신청했는가. 또 책 욕심이었던 게지...

해설 포함 100여 쪽 밖에 되지 않는 책을 몇날 며칠 들고 있었다. 알제리 북부 도시들의 화려한 색감과 향취, 바다에서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사람들의 묘사는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한숨도 같이 새어나왔다. 과연 내가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카뮈의 감각적 표현에 감탄은 해도 서평은 어불성설이다. 내가 무슨 수로 그의 글을 평가한단 말인가. 일독 후 역자의 해설을 읽어보았다. 해설조차 단숨에 이해되지 않았다. 김화영 선생으로부터 카뮈문학을 배웠고 평생을 불어와 관련된 일을 한 전문가의 시선을 좇기엔 내가 카뮈에 대해 일자무식이니 당연했다. 그래서 서평은커녕 독후감이라도 제대로 쓰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부끄럽지만 자신 있게 쓴다. 재독 삼독을 해보아도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에세이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감히 이 말은 할 수 있다. 책이 얇다고, 에세이라 해서 함부로 선택할 책이 아니라고! 카뮈의 일생과 문학관에 대해 공부하고 그의 소설들을 읽은 연후에 읽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 무슨 서평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닌 것 같은 이 따위 글의 서두가 이다지도 기냐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 이 글이 카뮈의 <결혼>이라는 에세이를 읽은 소감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길게 했다. 카뮈의 아름다운 문장을 알리고 싶어 소감보다 본문 발췌를 많이 했는데 이 역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티파사에서의 결혼]

첫 문장 - “봄이 오면, 티파사에는 신들이 강림해서 수런거린다.”

책의 제목이 결혼이고, 이 에세이의 제목에도 결혼이 들어가기에 내용에서 인간의 결혼식 장면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단순무식한 예측이었다. 네 편의 에세이 중에 이 첫 에세이가 가장 젊음이 꿈틀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티파사라는 곳을 찾아본 후 다시 읽어보니 한층 더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바다를 향해 열린 마을 이곳저곳의 피어난 알록달록한 꽃들과 내음, 카뮈의 그곳 사랑이 느껴졌다. 그곳 자연과의 결혼이 그가 말하는 결혼이 아닐까... 내가 그렇게 생각한 문장들을 옮긴다.

p.13

나를 송두리째 휘어잡는 것은 저 자연과 바다의 위대하고 자유분방한 사랑이다. 이러한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의 잔해들은 다시 돌이 되어 인간의 손길이 낸 광택을 지워버리면서 자연으로 회귀했다. 그 방탕한 딸내미들의 귀환을 맞아 자연은 아낌없이 꽃을 피워놓았다.

p.23

태양과 바다로부터 태어나서 활달하고 풍류를 즐기고, 단순함 속에서 위대함을 길어 올리고, 해변에 똑바로 서서 저 하늘의 찬란한 미소에 공모의 미소를 던지는 종족이 있었다. 나는 그 종족 전체와 더불어 세계와 나 사이의 사랑을 공유하기로 의식했고, 거기에 자긍심을 느꼈다.

[제밀라의 바람]

첫 문장 - “정신 자체를 부정하는 어떤 진실은 그 정신이 죽는 장소에서 태어난다.”

카뮈가 제밀라를 돌아보며 쓴 이 글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제밀라는 정복자들이 세운 문명의 표식을 가진 곳이지만 하늘 속에는 정복과 야심의 표식을 새겨놓지 못했다고. 그가 오래전 제밀라에서 생각한 것을 읽으며 지금의 나, 우리의 모습에 대입해 생각해 보았다.

p.33

사람은 익숙한 몇몇 생각들을 품고 살아간다. 기껏해야 두세 가지 생각이다. 어쩌다 이런저런 사회와 사람들을 만남에 따라 그 생각들을 닦고 손본다. 진짜 자기 것이라고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생각을 확보하기까지 10년은 걸린다.

☞ 요즘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만나면 맨 옛날 얘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잘 아는 것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손보는 이는 얼마나 될까? 가짜뉴스에 휘둘리고, 전문가입네 하는 이들에게 현혹된다. 카뮈는 진짜 자기 것이라고 내놓을 만한 생각을 확보하는데 10년은 걸린다고 했다. 요즘 책 안 읽는 성인이 절반이 넘는다는데,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학교 졸업 후 진짜 자기 생각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나 할까? 최종 졸업 학교 이력으로 평생을 잘 우려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익숙하지 않은, 전혀 다른 새로운 생각들을 만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알제의 여름]

첫 문장 - “흔히 우리는 어떤 도시와 은밀한 사랑을 나눈다.”

카뮈는 프랑스인이지만 알제리에서 태어났다.(1913년)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했고 청각장애인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알제리의 아름다운 자연과 유년시절의 가난한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알제의 여름]은 그곳 사람들의 삶이 잘 드러난 글이란 생각이 든다. 태양이 작열하는 8월에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의 피부빛이 달라지는 모습,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서둘러 노동하고, 10년 만에 일생의 경험을 다 맛본다는 벨쿠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본 적 없는 그곳 사람들이 가깝게 다가왔다.

p.60

인류의 죄악이 득실거리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그리스인들은 맨 마지막에 가장 끔찍한 죄악인 희망을 꺼냈다. 나는 그보다 더 감동적인 상징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통념과는 달리 체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일이다.

☞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이란다. 희망과 체념이 같은 것이라면서... 요즘은 희망이니 낙관이니 이런 말들을 쓰기 어려운 시국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것 같아 절망적이다. 희망을 가지고 살자는 말보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일이다.”라는 문장이 더 위로가 되었다. 불어로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하다.

[사막]

첫 문장 - “산다는 것은, 당연히, 어찌 보면 표현한다는 것의 반대쪽이 된다.”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에게 바친 글로 피렌체 여행기이다. 미술작품 해석과 토스카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프란체스카 수도원에 들렀다 피렌체로 돌아오는 여정, 그리고 피에솔레와 제밀라를 햇빛 속의 항구로 연결한다. 네 편의 에세이 중에 가장 이해가 어려운 글이 [사막]이었다. 그런데 아래 발췌 문장들은 어디선가 자주 인용된 것 같은데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p.70

영혼의 불멸성은 실제로 고상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진실이 육체인데도, 그 진수를 다 맛보기도 전에 거부하기 때문에 영혼의 불멸성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불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이방인>을 읽을 때 전혀 들지 않았던 마음이다. 허나 이 나이에? 잘 번역된 카뮈의 다른 작품들을 읽는 것이 먼저다. 이런 맘을 품은 나를 마감 임박한 서평단 책과 읽고 싶어 사둔 책들이 째려보고 있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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