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라는 계절
김의경 지음 / 책나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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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라는 계절>은 김의경 소설가의 첫 에세이집이다. 다섯 계절 동안 일간지에 매주 연재했던 글들을 책나물 출판사에서 묶어냈다. 우선 표지가 제목에 딱 맞게 직관적이고 귀엽다. 전체 200쪽이 되지 않는 분량으로 한 꼭지가 세 쪽씩이라서 읽기에 부담 없다. 에세이지만 마치 친구나 언니의 일기를 몰래 보는 기분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일상에서 겪은 일들을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써내려간 짧은 글들을 자칫 가벼이 흘려버릴 수 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의 옷차림을 기억하지 못하고 점심 메뉴가 뭐였는지 한참을 생각해야하듯,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은 하루 하루를 산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나가는 하루라는 표현에 몸서리 쳐질 만큼 식상함이 일지만 그것이야말로 별 일없이 지나가는 나날들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는 흐르는 강물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잔물결의 흐름이 제각각이다. 같은 강물이지만 내 앞을 흘러가는 강물은 아까 그 강물이 아니다. 계속 새로운 강물이 다른 빛깔과 물결을 이루며 지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하루도 다르다. 올 가을이 작년 가을과는 다르듯이. 작가도 생활 속에서 계절을 느끼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길어올린다.

 

생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글 속에는 친정엄마와 자주 문자를 주고받는 딸의 모습이, 그저 스쳐지나갈 일이나 사람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다. 작가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친근하게 느낀 이유는 앞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친정 엄마와 곰살스럽게 문자를 주고받지 않는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푸념과 넋두리뿐이었다. 점점 통화하는 숫자가 줄어들었다. 딸 하나 뿐인 엄마에게 너무 정 없는 딸이 되었구나 싶어 잠시 미안함이 일었다.

 

작가는 철물점 안에 쳐진 보라색 커튼에 쓰여진 ‘the guitar’라는 글자를 보고 철물점 주인이 예술가일거라고 상상하고, 쓰레기 낭독회에 참석자들이 가져온 쓰레기를 보며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은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연히도 10.29 참사 후에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소재인 글을 읽었다. 작가는 사망자 명단에서 중학교 때 친구를 보았고 그 순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친구의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어떻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참사가 반복되어야 하는지 기막혔다. 희생자의 명단과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채 분향소를 차린 건 낯모르는 이의 슬픔에 감정이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같다. 누구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소름 돋게 만들었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목차부터 주욱 훑었다. 첫 번째 글의 제목이 눈에 콕 들어왔다. 그동안 작가의 인스타 피드를 보면서 강아지를 사랑하는 분이고 자녀는 없는 것 같다고 예상했다. ‘마흔 살의 산전 검사라는 제목을 보고 조금은 늦게 임신 계획을 했는가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뒤에 나오는 임신 관련 제목의 글을 뽑아 읽었다. 임신에 성공했길 기대하며 읽었는데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글 임산부 배려석은 일종의 반전이었다.



같은 소재의 글만 먼저 추려내어 읽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데 이번에는 살짝 부작용이 있었다. 임신 소재의 글을 먼저 읽고 나머지를 읽어서 그랬을까. 따스한 문장들 사이사이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블랙 컨슈머 때문에 이름조차 빼앗긴 콜센터에서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었다는 글은 반가운 반전이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음으로 읽으면 그 글의 참 맛을 못 보게 된다. 조심해야겠다. 리뷰는 썼지만 친구 일기 몰래 엿보듯 이 책을 한번 씩 꺼내 읽고 싶다. 그리고 미처 못 봤던 예쁘고 귀여운 이야기를 발견하곤 씨익 웃을 거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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