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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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편지 쓰길 좋아해서 편지 교실이라는 제목에 혹했다. 편지 쓰는 법을 알려줄까? 소설인데? 아니면,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를 읽다 보면 절로 배우게 되니 편지교실이라고 했을까?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은 책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은 연애소설이었다. 40대 남녀와 20대 남녀, 그리고 20대 남성 한 명, 이렇게 다섯 명이 서로서로 편지를 교환한다. 40대는 40대끼라, 20대는 20대끼리만 주고받을 줄 알았는데 40대와 20대가 얽히고설키다가 점점 막장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인데...(계속 쓰면 스포 가능성!)


연애소설이라 했으니 연애편지만 있을 것 같지만 일상적인 내용으로 확대된다. 결혼과 임신, 상담, 급전 요청, 연하장, 병문안 등등 다양한 편지들 속에서 등장인물 다섯 간의 관계가 희한하게 연결되었다 떨어졌다 아주 난리 부르스다.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문제는 지금 독자들이 공감할 보편적인 것들이 많지만 1960년대 일본이라는 배경을 감안하고 읽어야할 부분도 있다촌철살인의 포인트가 분명 있고, 쓴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어 고개 절레절레할 내용도 있다. 그 와중에 편지 쓰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괜히 탐미주의자가 아닌 거다.


막 출산한 후 제 아들을 자랑하려고, 보러 오라고 쓴 편지에 뚝뚝 묻어나는 사랑을 보라.


p.75


선생님, 환류식 분수라는 게 있지요. 뿜어져 나온 물이 떨어져서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뿜어져 나오는, 딱 그거예요. 이제껏 나 혼자만의 생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명이 내게서 젖을 통해 아이의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런 다음 아이의 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흐름이 되어 제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 빛의 흐름이 다시 제 안에서 젖이 되어 아이의 몸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생명이 순환하게 된 것입니다.

는 정말 잘 잡니다. 그렇게 잘 수 있는 건 분명 이 세계가 안정된 곳이라는 걸 알고 안심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덕분에 제게도 이 세계가 안정된 행복이 넘쳐흐르는 듯 느껴집니다.


영문편지 쓰는 요령을 알려주는 6가지 방법 중 세 번째는 이러하다.


p.134


(3) 일상의 소소한 유머를 섞어 넣으십시오.

예를 들어 액세서리를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하고 나갔더니 우리 강아지마저 부러운 듯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강아지는 동네 개들 중에서도 가장 멋쟁이라 안목을 신용할 수 있습니다.’ 같은 느낌으로.


여자친구에게서 임신했다는 편지를 받은 20대 남성이 쓴 답장은, 대면해서 하는 말보다 편지가 진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p.181


당신의 편지는 임신 사실을 냉정하게 말하고, 거기서 생길지 모르는 내 마음의 부담을 없애려고 열심히 애쓰는 편지였어. 그래서 일견 편지가 냉정하고 지나치게 이지적으로 보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진정한, 조용한 애정이 넘치는 편이야. 이건 그야말로 조용한 겨울의 햇빛처럼 몸과 마음을 점점 데워가는 애정이고, 어릴 적 일광욕을 하던 추억과 이어지는 듯한 깊은 그리움이 넘치는 애정이야.

당신이 이걸 편지로 써줬다는 게 고마워. 만약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면 서로의 미묘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가 서로의 마음에 있지도 않은 억측이나 어림짐작을 낳았을 거야. 지금 이렇게 만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면서도 편지로 답장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사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 문장.

사랑은 즐거운 게 아니고 병입니다. 불쾌하고, 때로는 어두운 발작이 생기는 음침한 만성질환입니다. 사랑이 삶의 보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나쁜 계략이 훨씬 더 큰 보람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랑이 즐겁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분명 아주 둔감한 사람이겠지요.”


작가가 독자에게 쓴 편지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결코 남에게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없고, 만약 가질 수 있다면 자신과 이해 관계가 얽혔을 때뿐입니다. 세상을 안다는 것은 이러한 쓰디쓴 삶의 철학을 절실히 깨닫는 일입니다.


편지를 쓸 때는 상대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전제로 쓰라는 조언이지만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마지막, 여성 독자가 보낸 편지를 사례로 언급한 내용은 이 책의 제목에 부합한다.


아무리 정열이 넘친다 해도 상대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멋대로 정열을 발산한다 한들 상대는 귀찮게 여기고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고 사람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일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당신이 쓰는 편지에는 생생한 힘이 갖추어지고 타인의 마음을 뒤흔드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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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찌의 선택 신나는 책읽기 67
이정란 지음, 지문 그림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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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찌의 선택>의 주인공은,
버려진 강아지입니다.
사람처럼 말을 하고 싶었던 버찌는 달님에게 빌었습니다.
“달님! 저도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요!”

코오옹~
하고 버찌 앞에 떨어진 것은,
벚꽃 향이 나는 분홍색 콩 한 알이었죠.

버찌는 낼름 삼켰어요.
그렇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버찌가 만난 인간들 중 같이 살 사람을 고를 거에요!

과연 버찌의 선택은??

인간은 쇼핑하듯 동물을 고릅니다. 작가는 정반대로 상상합니다.
개가 같이 지낼 사람을 고른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
그리고 또 상상합니다.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저학년 동화 <버찌의 선택>은 깨발랄 강아지 버찌가 같이 살 사람을 고르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유기견 버찌는 오래 슬퍼하지 않고 밝게 살아갑니다. 그림과 색감도 이뻐서 어린이들이 좋아할 동화입니다.
동물을 키우고 있다면 더더 그럴 겁니다.

마지막 신스틸러 큰 개는 사연이 많아보이지요? 어린이들이 큰 개의 이름을 짓고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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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 2024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
리사 리드센 지음, 손화수 옮김 / 북파머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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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늙고 병들어도, 임종을 앞두었다고 해도, 존엄하기를 희구한다. 오랫동안 지켜온 자신의 습관이나 가치관을 바꾸고 싶지 않다. 바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 그것에 변화를 주려하면 완강히 거부한다. 부모님이나 주위 노인들을 보면 저런 경우가 많다. 스웨덴 소설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의 주인공 할아버지 를 보면서, 나는 나이 들어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가족에게 마음을 표현해야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이들수록 더 못할 것 같다. 말하기도 습관이니까. 가까운 이들에게 좀 더 다정하게 말해야겠다고도 생각한다. 잘 안 고쳐지는 습관 중 하나가 말투인데, 고객으로 만나는 사람에게는 상냥하면서 가까운 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그리고 걱정되는 게 있다. 나이들수록 곁에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친한 친구들이 너무 멀리 있다.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곳에 살며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구가 있으면 좋을텐데...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는 일인칭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보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요양원에 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산다. 아내와 함께 했던 때를 생각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아내가 했음직한 말을 상상한다. 불안하거나 아내가 너무 보고 싶을 땐 아내의 체취가 남아있는 스카프를 꺼내 냄새를 맡는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점점 스카프를 꺼내는 것 마저 힘들어진다. 보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은 요양보호사나 아들 한스가 기록한 일지 형식의 글에서 드러난다.


아내는 없어도 보의 곁을 지켜주는 식스텐이라는 개와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친구 투레가 있다. 그런데 보가 식스텐과 산책하러 나갔다가 숲에서 정신을 잃고 식스텐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보는 요양보호사에게 발견되었지만 식스텐은 며칠 간 돌아오지 못하다가 어떤 이웃의 집에서 보호받다가 무사히 돌아왔다. 한스는 식스텐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 하고, 보는 이에 화를 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화를 낼 따름이었다. 기저귀를 차야하고 혼자 목욕할 수 없으며 개를 산책시키기 힘든 상황에서 아들의 행동은 현실적인 것이 분명하다. 보는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현실을 수긍하기 힘든 것이다.


투레의 장례식에 휠체어 없이 제 발로 다녀온 보는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했다. 자신에게 한번도 다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은 뒤 장례식에 가서야 아버지를 대면했다. 보는 투레의 장례식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고, 그곳에 아내가 있었다면 뭐라고 말했을 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한스를 대한 태도가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와 같다는 걸 깨닫는다. 보는 한스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한 뒤 생을 마쳤다. 보의 자랑스럽다는 말은 아들을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보는 다행스럽게도 제 아버지와는 다른 아버지로 남았다.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이 점점 다가올 때 나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았다. 내 몸을 스스로 관장하지 못해 남의 손을 빌려야할 때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 나이들수록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가져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늙으면 성격이 점점 완고해지기 때문에 그런 말을 더 하는 것일 테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고 웬만한 건 다 내 손으로 하는 성격이기에 보의 행동들을 보니 내 미래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병으로 죽을지 늙어 죽을지 갑자기 사고사 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존엄하게 죽고 싶다. 보처럼 하고 싶었던 말은 꼭 하고 죽어야 한다. 물론 그 전에 미리미리 해두면 좋겠지만.


이 책은 중년이나 노년층이 읽으면 자신의 마지막을 잘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후회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면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하며 살고, 움켜쥔 욕심을 놓는 연습도 해야 한다. 사십대 이하 젊은이들이 읽는다면 부모님을 이해할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70~80년 이상 살아온 이들의 사고나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는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다. 부모님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은 분명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연유로 서로 멀어지고 미워할 일이 있었을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지 않고 생을 끝내지는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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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겨운 나를 위한 철학 처방전
안광복 외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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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겨운 나를 위한 철학 처방전>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 ‘인문360’의 ‘MZ세대와 함께하는 철학 카페’에 게재한 글을 바탕으로 했다. 일상의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바탕으로 18가지를 추린 후, 4장으로 구분하여 질문에 대한 답변을 철학자의 사상에 의거하여 달았다. 철학이라고 해서 어려울까봐 겁먹지 않아도 된다. 공저자들의 쉬운 해설로 귀에 쏙쏙 들어온다.


제목처럼 내가 현재 가장 힘든 게 어떤 것인지를 먼저 떠올려본 후 목차를 보고 해당되는 장부터 읽으면 된다. 1장은 타인과의 관계, 2장은 분노와 비교, 3장은 진정한 행복, 4장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처방전이다. 각 장의 질문을 보면 지금 내 상황과 지극히 유사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홈페이지에 올라온 질문들 중 가장 중복되고 많은 것 위주로 했으니 말이다. 요즘처럼 마음이 무겁고 답답한 시절에 이런 책으로 조금이나마 위안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1,2장의 질문들은 인간 관계를 잘 하고 싶은 사람들, 미래를 계획하려해도 현재 상황 때문에 암울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내용들이다. 2장의 “마음만 고쳐먹으면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살까요?”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비법을 묻고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이 나에게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게 했다. ‘하면 된다!’는 긍정주의 구호를 나도 모르게 외치고 살았음을 알았다. 저자는 긍정주의의 문제를 네 가지로 보았다.


첫째, 진실을 가리고 불의를 덮는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에서 앞의 좋은 것과 뒤의 좋은 것의 의미가 다름에도 등치시키기 때문이다. 불의를 보고 덮어서도 안 되며 불화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상태를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두 번째는 긍정주의가 우리를 의미없이 소진시킨다는 것이다. 각종 자기계발서에서 성공 비결을 긍정적인 마음, 빈틈없는 시간관리 및 인맥관리라고 강조하기 때문에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지루한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리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번아웃, 우울증, 불안 외로움 뿐이다. 세 번째 문제는 긍정주의는 자발성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한 스펙 쌓기 경쟁은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지만 자신에게 스스로 강요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자발성과는 거리가 멀다. 네 번째 문제로는 긍정주의가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는 것이다. 긍정성이 객관적 실재가 아닌데도 어떤 실체가 있는 것처럼 가장하므로 논리적 오류를 이용한다. 예컨대 긍정적인 감정을 품고 살면 스트레스가 적어지고, 결과적으로 면역체계가 강화되어 암도 치유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므로 ‘하면 된다!’ 대신 ‘무엇을 어떻게 할까?’로 바꾸어야 한다. 단순히 긍정한다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꿈과 현실을 냉철히 자각한 후 그 차이를 분석해야 한다. 책의 한 챕터에 실린 내용으로 설득이 부족하다면 “목마른 당신을 위한 인생 비타민”이라는 코너를 두어 추가로 읽을 책을 추천하고 있다. 이 챕터에서는 <긍정의 배신>, <걱정 많은 사람들이 잘되는 이유>, <나는 긍정심리학을 긍정할 수 없다>를 추천했다.


3장은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4장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이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내용이다. 3장의 “돈 많이 벌고, 비싼 집에서 사는 게 인생의 전부일까요?”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질문이다. 열심히 일하고 돈 버는 것이 인생 목표라 여기고 달려온 사람이 어느날 문득 멈춰 서서 ‘과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가?’ 싶을 때가 올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챕터를 펼쳐 보라.


여기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으로 답변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궁핍함으로든 무료함으로든 고통스러운 그 무엇’이라고. 궁핍함이 싫기에 부를 추구하지만 부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삶이 어떠한 이유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말할 수 없으며, 삶이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일 뿐이다. 그럼 이 맹목적인 힘에 의해 달라지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쇼펜하우어는 동고(同苦,Mitleid)를 말했다.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일이 벌어지게 되어있는 삶의 맹목성을 인정하면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고통의 바다를 함께 건너야 할 동료로 보게 되는 것이다. 타인이 이 고해를 헤쳐 나가느라 나만큼이나 힘든 또 한 명임을 알게 되면, 우리에겐 설명할 수 없는 연대감이 생긴다. 인간은 연대감을 느낄 때 행복한 존재이다.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라는 슬프지만 엄정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이 죽어가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 의미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 그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가장 지속적인 행복이다.


이 챕터에서 가장 공감한 문장이 ‘인간은 연대감을 느낄 때 행복한 존재’ 라는 것이다. 이번 12.3 계엄 사태 때와 소위 ‘남태령 대첩’이라 명명한 그 때에 현장에 달려갔던 사람들과 가지 못해도 힘을 보탰던 사람들의 행동을 가히 ‘연대의 힘’이라 부를 만하다. 그 연대가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지 않았나. 목숨을 내놓다시피했던 이들을 포함해 당시에 동참했던 모든 이들은 행복감을 느꼈을 게 분명하다. 그들 중 대다수는 분명 부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연대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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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이 부를 때 마음이 자라는 나무 43
탁경은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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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자아가 비대해 지는데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시기, 그래서 고민도 많은 때다. 여자 중학생 넷, 지원, 하윤, 효민, 예린이가 동아리 활동인 마이 상담소를 운영하며 하나씩 풀어나가는 책, <너의 마음이 부를 때>이다. 고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선뜻 털어놓기 힘든 중학생들의 이야기는 또래 독자들에게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특히 부산 동평여중 학생들은 환호할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2022년 강연으로 만난 동평여중 학생들의 고민을 이 책의 씨앗으로 삼았다며 동평여중 학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기 때문이다.


마이 상담소에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들의 이야기와 등장인물 네 명의 고민까지 촘촘히 엮어놓아 책을 한 번 잡으면 한눈 팔 일 없이 단번에 주욱 읽어내릴 수 있다. 그들의 고민이 청소년 독자들의 고민 중에 하나는 해당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책을 읽으며 제 고민을 상담 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마이 상담소 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하는 지윤은 공부 빼고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밝고 성실한 학생이다. 동아리 친구들이 갈등 없이 잘 지내길 바라고 상담에 진심이라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면서 알바까지 한다. 지윤은 엄마의 죽음 이후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을 몰아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은 들어주면서 정작 자신의 고민은 외면하고 있던 지윤의 이야기는 후반부가 되어서야 해소된다. 주말 알바로 다섯 살 현진이를 돌봐주고 있는데, 현진의 엄마 영우와 이야기를 나누며 펑펑 울게 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울지 않고 가두어두었던 것을 터뜨리면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해소하기에 이른다.


청소년 시기에는 자신의 고민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타인에게 털어놓기도 쉽지 않다. 그럴 때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학업 스트레스, 가족이나 친구 관계의 어려움 등등 지금 당장의 고충이 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책 속 아이들의 고민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제 것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것이다. 또 그들이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보며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다. 직접 상담 받지 않아도 책을 읽으면서 그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중학생들에게 적극 권유하고 싶다.



@공감한 문장들


사람의 마음은 유리 같다. 작은 상처에도 금방 금이 가 와장창 깨질 것만 같다. 시련을 통해, 마이 상담소 활동을 통해, 상담을 잘하기 위해 읽은 책과 영상을 통해 아주 조금은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문득 의문이 든다. 인간관계학이나 소통학, 혹은 심리학이나 상담학 같은 건 왜 학과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쉽게 말하잖아. 자신을 좋아하고 지지해 줘야 한다고, 근데 나는 나를 어떻게 좋아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어.”


삶을 뒤흔드는 시련을 견뎌 낸 자만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는 뜻이리라. 시련을 겪은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소래를 내는 것은 아닐 듯하다. 삼분의 이의 사람들은 시련을 이겨 내지 못하고 부서진다. 대부분의 경우, 시련은 인간을 녹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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