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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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책을 덮고 나면, 아름다운 시들이 발자국처럼 남기를 바란다

고 작가는 자기소개에 썼다.

 

미안했다!

이 책에 아름다운 시들이 실린 건 알겠는데 내게 발자국을 남기진 못했다. 사실 나 같은 시 문외한은 아름다운지 아닌지도 잘 모르나 작가가 쓴 글 속에 들어있어서 아름다운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와 산책>이 한정원 작가의 첫 책이란다. 첫 책이 아닌 것만 같아 작가 소개를 다시 보니 단편영화를 연출했고 출연도 했단다. 세상을 보는 작가의 눈이 곱고 따뜻하다 여기며 책을 읽었는데 영화 연출을 했다니 어떤 영화인지 보고싶다. 작가는 대학 때부터 시를 썼다했고, 초등학교 때는 아는 언니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줬다고 했다. 아마도 작가의 싹이 들어있는 씨앗이었던게 아닐까 싶다.

 

나는 시와 친해지고 싶지만 영 쉽지가 않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시인들의 시나 국어시간에 배웠던 것 외에는 잘 모르고 찾아 읽으려 하지 않다보니 친해지지 못했다. 그렇게 습관을 들이지 못한 채 살다가 작년 가을부터 읽기 시작한 잡지 <창작과 비평>덕분에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잡지에서 우리나라 시인들을 소개하니까 어려워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고, 시인 추천도 받았다. 박정대 시인과 이정훈 시인이다. 박정대 시인의 산문시들은 형식상 접근하기 쉬웠고, 이정훈의 시는 직관적으로 이해되며 장면이 그려졌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시인은 백석과 이육사인데 그들의 시는 어렵지 않아서 좋다.

 

반면 우리나라 시 중에도 읽고 바로 이해되지 않는 시들은 많았다. 시어의 함축성 때문이라는 거 잘 아는데 모국어로 시를 난해하게 쓴다는 게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 수준이 이 정도이니 외국시를 쉽게 읽었을리 없다. <시와 산책>에서도 그렇고 말들의 흐름시리즈의 작가들은 외국시를 많이 인용했다. 외국시들이 오히려 직관적이라서 그런건지, 시인의 특이한 삶을 소재로 쓰다 보니 자연스레 시가 인용된 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또는 작가의 취향에 맞는 시인이었을 수도...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라는 꼭지의 제목은 미국시인 에밀리 디킨슨시의 한 구절이다.

 

"나의 일은 맴돌기랍니다.

관습을 몰라서가 아니라 동트는 모습에 사로잡혔거나

석양이 나를 보고 있으면 그래요.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예요, 선생님."

 

작가는 1830년생인 디킨슨과 이웃하여 살았다면 가까운 이웃이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자신과 디킨슨의 영혼이 몇몇 지점에서 겹쳐지기에 아무런 노력 없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디킨슨의 시를 읽어보면 그녀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이 추측성 입방아였을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시인이 말하는 맴돌기를 산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칩거의 이미지가 씌워져 있지만 대지가 딸린 자택 안에서 성실한 산책자로 살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것이다.

 

작가는 디킨슨의 시 무명인에서 말한 끔찍한 유명인보다는 캥거루 같았던 무명 시절을 사랑한다고 했다. 마음으로 친구 맺은 디킨슨처럼 작가도 시 쓰는 산책자가 되고 싶은 것 같다. 내 눈엔 이미 작가도 시 쓰는 산책자이다. ‘고양이는 꽃 속에를 보면 산책하며 춤 추는 시인이 나온다.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를 챙겨주는 장소가 벚나무 아래인데 작가는 그곳을 벚나무 식당이라고 부른다. 늦가을에 태어난 십 여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이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별이 되어 버렸다. 그중 하나 남은 고양이와 다른 성묘들을 위해 벚나무 식당을 여는 작가의 문장은 이렇다.

 

p. 149

 

나는 일부러 꽃그늘 밑에 그릇을 둔다. 몇 군데 나누어 준 밥그릇에 고양이들이 꽃잎처럼 둥글게 붙어 배를 채우는 동안, 나는 쪼그려 앉아 가만히 봄볕을 먹는다. 서로 다투지 않고, 나 자신과도 다투지 않는, 순한 시간이다. 나의 어린 고양이들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벌이 되었을까, 꽃이 되었을까, 중간이 되었을까. 무엇이든 아름답지 않은 것이 되었을 리 없을 테지.

 

 

말을 잃을 정도로 슬픔에 빠졌던 작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은 다 침묵한다던 작가가 다음엔 어떤 책을 내놓을지 기대된다. 시집이면 좋겠다. 나는 그 시집을 들고 산책을 나갈 것이다. 걷다가 발길이 멈추는 어느 곳에서 시집을 펼쳐 조용조용 소리내어 읽어보고 싶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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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 고양이
이주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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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초,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가게 된 모임이었고 어색함을 없애려고 그랬는지 사람들이 우리집 고양이를 자꾸 화제에 올렸다. 아무래도 반려동물 이야기는 무람하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고양이 키울 때의 단점만 자꾸 부각시키면서 내게 답을 종용했다. 그의 가족 네 명중 본인 빼고 모두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한다며 내가 반대해주길 바라는듯 했다.

 

그럴리가!

집사인 내가?

왜 반대를??

나는 빙빙 웃고 말았다.

 

 

그 사람이 반대하는 이유를 듣다보니 예전에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집안에서 털 달린 동물을 키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승낙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 삼냥이의 집사다! 이러니 그 모임에서 고양이 키우는 걸 결사 반대하던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허나 보통 집사들은 그 사람이 문제나 애로사항이라고 짚었던 것들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어째서 그럴까? 집사들은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깟 불편함들은 고양이에게서 받는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키우기 전엔 반대하던 이유가 수두룩했지만 그런 건 별 문제 되지 않는다는 걸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러니 일단 집에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계속 데려오지 못할 이유만 쌓아갈 게 분명하다.

 

어른도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 고민이 이렇게 많은데 아이들이라면 어떨까? 아이다운 고민부터 시작해 부모님의 반대까지 선결과제가 너무나 많다. 이렇게 고양이를 집에 데려오기 전에 하는 고민들로 내용이 구성된 그림책이 나왔다.

이주희 작가의 <어떡하지?! 고양이>이다. 제목 ‘어떡하지’ 뒤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연속으로 들어있는 이유가 있다. 고양이가 이럴 땐 어쩌지? 라는 질문의 물음표이고, 책이 끝날 때는 ‘어떡하지’ 뒤에 기쁨과 즐거움의 느낌표가 된다. 문학동네 프리뷰어에 신청해서 받게 된 이 그림책은 일반적으로 어린이용이라 분류된다. 하지만 나는 집사용이라고 부르겠다. 나처럼 고양이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집사들에게는 소장각이기 때문이다.

 

이주희 작가는 이 책에서 고등어 무늬를 가진 고양이를 너무나 귀엽게 그려냈다. 주인공 여자아이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고 머리가 동글동글하니 크다. 고양이는 일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을 연상시켰는데 도라에몽보다 훨씬 귀엽다. 얼굴은 그대로인데 눈동자와 꼬리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표정과 감정을 살려냈다. 이 그림책을 본 아이들이라면 고양이를 따라 그리겠다고 할 것 같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고양이 대신 이 책을 사준 부모라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가 책을 읽고 오히려 부모를 설득하게 되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부작용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부작용은 얼마든지 일어나도 좋다. 무슨 일이건 그 일을 해보기 전에 부정적 예측만 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할 것이다.

그게 사는 건가, 어디! 

뭐든 직접 부딪혀보는 게 중요하다.

미리 겁 먹지 말자!

 

 

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고양이 입장에선 웃기는 소리다!

고양이한테 물어나 봤나??

인간들 맘대로 정해놓고 좋다했다 싫다했다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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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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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글은 분명 여러 번 읽었을 터인데도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위는 박완서 작가님의 딸 호원숙씨가 쓴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다. 작가님이 쓴 660여편의 에세이 중 35편을 선별하여 낸 책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의 프롤로그이다.

 

호원숙씨의 저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작가님의 모든 작품을 다 읽지 않은 일반독자는 늘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그 반대일 때가 있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어라 이거 소설에서 읽은 내용인 것 같은데 하고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이번 책에서도 박적골 이야기와 할아버지, 친정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는 듯했다. 그렇다고 다 아는 얘기 또 듣는 식상함이 아니라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이야기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의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나처럼 작가님의 책을 어느 정도 읽은 독자라면 반가움과 새로운 마음이 교차했을 것이다.

 

이 책을 내면서 작가님의 작품을 고르느라 심혈을 기울였겠지만 만듦새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양장본에다가 표지 그림은 거친 듯 부드러운 유화이고, 내지 그림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다. 660 여 편이나 되는 에세이 중에 고르고 골랐으니 얼마나 빛나는 문장들이 숨어있을까? 나는 그 문장들을 한편한편 차분하게 음미하듯 읽어보았다. 70~80년대에 쓴 글에서 드러나는 시대상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고, 작가로서 세태를 바라보는 시각, 그 긍정성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의 구성을 시대 순서대로 해 놓은 건 아니다. 작가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라면 조금 헷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년의 기억이 살아 있는 글부터 시작해 나목으로 당선되었을 때의 이야기, 아들과 남편을 잃은 후의 글은 작가의 생애에 있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기 때문에 작가 정보 확인으로 적당하다. 그와 함께 시대상을 알게 되는 건 덤이다. 작가님이 데려가는 그 시절 속 지하철과 백화점 같은 일상적 장소에서는 요즘은 볼 수 없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격세지감과 함께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해도 인간 심리의 보편성도 확인하게 된다. 역시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 마음이 더 걍팍해졌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이 작가님의 따뜻한 문장으로 위로받으면 좋겠다. 작가님 타계한지 10주기로 출간된 이 책이 딱 걸맞다. 화나서 울긋불긋해진, 모나서 삐쭉빼쭉해진 마음을 동글동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고른 문장들]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중-

 

남의 좋은 점만 보는 것도 노력과 훈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으니 누구나 시험해보기 바랍니다. 남의 좋은 점만 보기 시작하면 자기에게도 이로운 것이, 그 좋은 점이 확대되어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믿을 수 없다면 꼭 한번 시험해보기 바랍니다. -행복하게 사는 법 중-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중년 여인의 허기증 중-

 

재물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내가 쓰고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고스란히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내가 끼고 살던 물건들은 남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잇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잃어버린 여행가방 중-

 

 -그 때가 가을이었으면 중-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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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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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유명한 박노자 교수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처음 듣는 이름일 수 있는 박노자는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인데 2001년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이름을 박노자로 바꾸었다. 노자는 러시아의 아들이란 뜻이다. 한국에서 역사학자로서 자리를 잡기에 그는 너무나 비주류였다. 시간강사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오슬로 대학의 정교수 자리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쳐야 했기에 국내의 동향에 관심을 놓을 수 없었고, 글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왔고, 간간이 책도 출간하고 있다.

 

이번 신간 <미아로 산다는 것>의 제목에 미아를 저자가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한다. 저자는 지그문트 바우만액체 근대를 빌려와 설명한다. 액체 근대란 모든 것이 흐르는 물처럼 너무나 빨리 바뀌어 어떤 장기적 관계 맺기가 불가능한 상황을 일컫는 것 으로 현재 한국의 20대 젊은 층들이 주로 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또한 오늘날 대부분 온라인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에 사생활을 내어주었으므로 액체 근대의 미아들은 전부 투명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 자신을 포함해 미아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는 각자가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는 것이야말로 혁명적 질문이 될 것이라고 한다. 동양철학사상가 이지(이탁오, 1527~1602)의 일성을 가져와 주류 의식이 나에게 주입되기 전 본래 진심을 회복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동심이라 부르며, 동심을 회복한다는 것은 변화를 말하는 것이고, 그 변화는 타인의 계몽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심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독자가 동심을 회복하는 변화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위 내용이 들어있는 머리말에서 오래 머무를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타인에 의해 주입되거나 권위자의 시각으로 필터링 된 것이 아닌 동심을 회복한다는 것에 대해 숙고한 후, 저자가 책에서 진단하는 문제의식에 동조 혹은 비판의 입장을 정리를 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접하는 시각에 대한 수용 여부를 판단하고, 자신의 동심을 찾아가게 된다면 독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혹여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해도 괜찮다. 저자의 사유에 본인이 동조하는지 아닌지를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도 수확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찾아가다보면 진심 회복의 길이 보이는 것이 될테니까.

 

이런 책은 사유의 폭을 확장시키는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박노자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모든 내용을 위처럼 하지 말고 본인의 관심사에 해당하는 챕터나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을 깊이 파고들어도 좋다. 저자의 기고 글과 책을 계속 만나온 독자라면 그의 사유에 변화가 있는지, 제시하는 대안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그에 따르는 논거를 정리해보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저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 때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 그는 시간강사였기에 말도 안 되는 처우에 대해 길고 자세히 논했었다. 우리사회의 여타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과격한 면을 띠기도 했고, 대안 제시는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그에 비해 이번 책에서는 그의 펜촉이 두루뭉술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회문제를 진단하는 시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글의 말미에서 좋은 말로 끝내려고 하는 느낌이었고 이론적이거나 피상적인 대안 제시(시쳇말로 하나마나한 이야기) 로 끝이 났다. 나는 왜 그런지 생각해봤다. 그가 한국을 오래 떠나 있어서일까? 미디어로만 접하는 한국을 표현하는 것은, 예전에 몸으로 부딪히며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와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마 서술어가 경어체라서 그런가? 이것이 과연 저자의 변화때문일까? 글을 수용하는 독자의 변화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14년 전의 내 사고와 지금의 내 정신세계의 차이를 간과하고 읽은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축적된 독서량과 사회문제에 대한 내 시각의 변화가 저자를 변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이번 책 사이에 출간된 책을 읽지 않았기에 14년의 간극을 크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의 이런 사유들이 저자가 머리말에서 강조했던 내용에 부합되는 활동인 것 같아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책 내용 중 인용하고 싶은 일부를 소개한다.

 

p.82~83

도대체 한국 남자들은 바보인가요? 신자유주의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면 신자유주의를 상대로 투쟁하고 노동당이나 정의당에 대량 가입해야 답이죠. 신자유주의로 인해 남성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보는 여성들에게 도대체 왜 한풀이를 하는 것일까요? 강자에게 얻어맞고 약자를 때리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물론 안 되죠.

(……)

페미들에 대한 혐오 하나로 자한당(현 국민의 힘)에 투표하려는 한국의 젊은 중하위층 남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xx 달린 사나이로서의 특권, 다시 말해 페니스 하나가 여태까지 한국 사회에서 보장해주었던 특권의 잠재적 상실을 더욱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페니스 파시즘은 미국의 백인 특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당장에 상실될 일이 없는데도 그들은 그 특권이 약화되는 경향에 위기감을 느끼고 극우화하는 것이죠

   

p.205

그런데 비정규직 양산이 사회문제가 되어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적어도 정부의 직접적 영향력이 미치는 공공부문에서만이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사실 정규직화도 아니고 기존 비정규직에 대한 경쟁 채용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를 시도한다면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주동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요? 맞습니다. 비정규직 착취로 발생하는 이윤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고 바로 독자들의 질투심에 호소합니다. 어렵게 채용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을 예로 들어 정규직화로 무임승차하는기존 비정규직에 대한 질투를 북돋우는 것입니다. 실제 취준생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정규직화 경향으로 전체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비율이 높아지고 계절 노동이나 임시적 노동이 아니면 정규직으로 뽑아야 한다는 당위 의식이 퍼지면 사실 노동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유리한 것이죠. 그러나 취준생의 분노를 가장한 극우 언론의 기사들은 사회적 질시에 호소하여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기도 하지요.

 

p.186

동유럽에 비해 아직도 상당히 남아있는 조직 노동의 힘, 노동자를 조직화할 가능성, 나름대로 발전된 일부 공공부문(대중교통 등), 비록 우파 헤게모니의 사회이긴 하지만 그나마 가능한 정권 교체, 군사주의의 폐단이 매우 심한 가운데 그나마 전쟁에 대한 혐오증, 평화 추구적 분위기의 공고함 등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장점들입니다. 이런 장점들을 기반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죠.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이제 걱정할 것이 없다고 단언했던 미국의 저명한 석학 브루스 커밍스와 달리 저는 우파 헤게모니 속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비관적이라서 걱정할 것이 태산 같다고 봅니다. 하지만 특히 커밍스 옹이 사시는 미국 등과 비교하면 낙관의 이유들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위 리뷰는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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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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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은 제1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김나경 작가는 그림작가였는데 이번에 온전히 자신이 텍스트로 완성한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그동안 작가가 그림으로 완성했던 스토리텔링 능력이 여실히 반영되어 그런지 1930년대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소재가 흡혈마인데 배경이 일제강점기, 거기다 주인공은 14살짜리 여학생과 사감 선생! 선뜻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감이 안오는데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런 이질감은 느낄 수가 없다.

 

이 소설은 영어덜트 장르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청소년이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드러나야 하는데 그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현대물이거나 시간적 배경이 미래라면 모르겠으나 이 소설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이기에 여학생에게 너무 많은 난관들이 예상되었다.

 

"여성에게 중요한 것은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만이 아니야. 곱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모습도 아니지.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 스스로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야. 당연해 보이지만 연습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위 대사는 희덕이 다니는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선배 단이가 한 말이다. 거의 요즘 우리가 하는 말인 것 같다. ‘과연 저 당시에 저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지배층 일본인이나 조선인 중 일부는 전근대적 대사를 한다. 그러나 한 남자의 인형처럼 살지 않겠다고 외쳤던 나혜석이라는 여성이 실재했는데, 당시에 단이처럼 저런 사고를 한 여성들이 없었을리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 속 세계관은 독자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와 유사한 지점을 하나 더 발견했는데 흡혈귀(뱀파이어)에 대한 우리들의 사고이다. 이 책에서 희덕은 친구 경애네 집에 갔다가 <서양 귀() 의 형태와 양상>이라는 책을 빌려온다. 그 책에는 흡혈마의 특징에 대한 설명과 목격담이 나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내용이다. 이 내용이 들어있어서이기도 할 것이고 우리가 그동안 미디어에서 각종 흡혈귀에 대한 정보를 접했기 때문에 역시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새로 부임한 사감선생 계월이 흡혈마로 나오며 희덕이 흡혈 장면을 목격하는데도 몹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기이한 일들은 아직 과학으로 해명되지 않았을 뿐이야. 하지만 가끔은…… 그래, 세상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아 둬. 나름으로는 살아가는 데 도움이 돼."

 

위는 경애의 오빠 일균이 희덕에게 하는 말이다. 이 대사 역시 오늘날 우리가 구미호나 도깨비, 뱀파이어 같은 이야기들을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많이 접했기 때문에 바로 수긍하게 만든다. 우리 정신세계는 이것이 비과학적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일어나는 일일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짜 벌어지는 일이라서 믿는 것인지? 구전되어온 것이 다양한 미디어로 변주되고 재생산되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 순환적 사이클 안에 우리가 갇혀있기 때문에 비과학적이지만 믿는다는 모순적인 상태를 수용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책을 읽으며 일제 강점기하 주체적 여성흡혈귀에 대한 인식 , 이 두 가지를 계속 생각했다. 위를 잘 활용한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독자의 의심, 비판이 예상되는 것을 역으로 잘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만든 세계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재미있게 읽도록 만들었으니까!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주된 인물은 여성이다. 여학생 희덕과 사감 선생 계월, 계월을 도와주는 무당 백송과 기생 화란, 그리고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까지. 주체적 여성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의 한 축과 흡혈마의 이야기의 한 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진행되는데 이것은 교훈과 재미의 두 축이 잘 굴러가게 만든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여기에 시대적 배경이 일제 강점기이므로 마지막에는 희덕과 계월이 항일 투쟁에 한 몫을 담당하면서 여성성장 서사의 축까지 완성한 것이다.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오늘의 희덕은, 어제와 다른 모습은 아니었다. 키가 자란 것도 아니고, 얼굴이 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고, 학교 밖으로 떠나는 것도 마냥 두렵지만은 않게 되었다.  -p.286-

 

 

희덕은 결혼해야하니 돌아오라는 편지를 받았지만 결혼 대신 계월과의 동행을 선택한다. 고향과 남편이 아닌 더 먼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희망적 결말이다.

 

 

사실, 이젠 더 이상 young 하지 않고 완전한 adult 인 나로선 조금 싱겁긴 했다.

다른 여학생들은 계월이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희덕만 모든 걸 기억한다. 이 부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이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계월을 도와 함께 만주로 갈 파트너의 능력으로 필요한 설정인 것 같다. 대상을 받은 <스노볼>과 비교하고 싶어서 읽었는데 스노볼만큼 흥미진진한 건 아니었다. 1등과 2등상의 차이인지 나의 개인적 취향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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