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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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글은 분명 여러 번 읽었을 터인데도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위는 박완서 작가님의 딸 호원숙씨가 쓴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다. 작가님이 쓴 660여편의 에세이 중 35편을 선별하여 낸 책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의 프롤로그이다.

 

호원숙씨의 저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작가님의 모든 작품을 다 읽지 않은 일반독자는 늘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그 반대일 때가 있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어라 이거 소설에서 읽은 내용인 것 같은데 하고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이번 책에서도 박적골 이야기와 할아버지, 친정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는 듯했다. 그렇다고 다 아는 얘기 또 듣는 식상함이 아니라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이야기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의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나처럼 작가님의 책을 어느 정도 읽은 독자라면 반가움과 새로운 마음이 교차했을 것이다.

 

이 책을 내면서 작가님의 작품을 고르느라 심혈을 기울였겠지만 만듦새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양장본에다가 표지 그림은 거친 듯 부드러운 유화이고, 내지 그림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다. 660 여 편이나 되는 에세이 중에 고르고 골랐으니 얼마나 빛나는 문장들이 숨어있을까? 나는 그 문장들을 한편한편 차분하게 음미하듯 읽어보았다. 70~80년대에 쓴 글에서 드러나는 시대상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고, 작가로서 세태를 바라보는 시각, 그 긍정성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의 구성을 시대 순서대로 해 놓은 건 아니다. 작가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라면 조금 헷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년의 기억이 살아 있는 글부터 시작해 나목으로 당선되었을 때의 이야기, 아들과 남편을 잃은 후의 글은 작가의 생애에 있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기 때문에 작가 정보 확인으로 적당하다. 그와 함께 시대상을 알게 되는 건 덤이다. 작가님이 데려가는 그 시절 속 지하철과 백화점 같은 일상적 장소에서는 요즘은 볼 수 없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격세지감과 함께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해도 인간 심리의 보편성도 확인하게 된다. 역시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 마음이 더 걍팍해졌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이 작가님의 따뜻한 문장으로 위로받으면 좋겠다. 작가님 타계한지 10주기로 출간된 이 책이 딱 걸맞다. 화나서 울긋불긋해진, 모나서 삐쭉빼쭉해진 마음을 동글동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고른 문장들]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중-

 

남의 좋은 점만 보는 것도 노력과 훈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으니 누구나 시험해보기 바랍니다. 남의 좋은 점만 보기 시작하면 자기에게도 이로운 것이, 그 좋은 점이 확대되어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믿을 수 없다면 꼭 한번 시험해보기 바랍니다. -행복하게 사는 법 중-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중년 여인의 허기증 중-

 

재물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내가 쓰고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고스란히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내가 끼고 살던 물건들은 남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잇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잃어버린 여행가방 중-

 

 -그 때가 가을이었으면 중-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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