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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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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창비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희곡인 듯 희곡 아닌 것 같은 특이한 스타일의 책을 만났다. 창비에서 가제본 서평단으로 받은 <피버드림>이다. 며칠 전 본책이 출간되었는데 책 정보를 찾아보니 184쪽이다. 가제본이 164쪽이니 결말 부분 20여 쪽은 뺀 것으로 보아 결말에 반전이 있는 모양이다.
<피버드림>을 쓴 ‘사만타 슈웨블린’은 아르헨티나 작가로 이 작품이 2017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셜리잭슨상 중편 부문을 수상했다. 소설집 『입속의 새』와 장편 『켄투키』(영어판 『작은 눈들』)가 2019년과 2020년 이례적으로 2년 연속해서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르는 등 주요 작품 세권이 모두 영어로 번역되어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를 만큼 세계적인 젊은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대표 작가이다. <피버드림>은 우리나라에 첫 출간 작품이다.
처음 만나는 그의 소설은 그간 읽어온 소설들과 스타일이 달라 읽으면서도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앞에서 희곡인 것 같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아만다와 다비드가 계속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화가 이상한 것이 서로 다른 얘기, 즉 선문답을 주고 받는 것처럼 보인다. 아만다는 얼마 전 다비드네 동네에 이사온 사람이고 다비드는 나이는 정확하지 않지만 소년이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병실인데 아만다는 누워 있고 다비드가 옆에 앉아있다. 다비드가 질문을 하면 아만다가 대답을 하는 형식인데 예전에 있었던 상황을 중계방송 하듯 계속 말한다. 이런 식이다.
카를라는 뭘하고 있어요?
방금 커피를 다 마시고 선베드 옆에 잔디 위에 잔을 놓고 있어.
그리고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고 있어. 깜빡하고 샌들을 놓고 갔지, 수영장 계단에서 저기 몇미터 떨어진 곳에.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해.
왜요?
그냥 너희 엄마가 어쩌는지 두고 보고 싶어서.
그렇다. 카를라는 데이비드의 엄만데 아만다가 이사 와서 만난 이웃이 아만다이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 동네에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다비드 역시 이상해졌는데, 다비드의 정신을 다른 몸으로 옮기는 ‘이체’라는 것을 하면 괜찮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에는 저런 미신 같은 게 있는 건지, 작가가 소설적 장치로 사용한 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읽을수록 계속 이해되지 않는 게 있었다. 지금 대화하는 이 시점은 대체 언제인지? 특히 아만다의 딸 니나는 어떻게 된건지??
다비드는 ‘벌레’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계속 찾고 있고 아만다는 딸 니나와의 ‘구조거리’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사실 이 책을 다 읽도록 그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 은유하는 바를 찾지 못해서 답답했다. 내가 독해력이 딸리는 건지 작가의 의도에 말려든 건지 그것도 모르겠다. 이 책의 원제가 <구조 거리>라고 한다. 번역하면서 제목을 <피버 드림>으로 바꿨다는데 열과 꿈을 합성한 이 단어가 책의 어떤 부분을 비유한 것 같은데 못찾았다...
“이슬이야.” 나는 아이에게 말해. “걷다보면 마를거야.”
바로 이거예요. 이게 바로 그 순간이에요.
그럴 리가 없어, 다비드. 내가 말한 것 말고 다른 일은 정말 없다니까.
그렇게 시작되는 거예요.
세상에 맙소사.
니나는 뭐하고 있어요?
참 예쁜 아이야.
니나는 뭐 하냐고요.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어.
멀리 가게 두지 마세요.
그애는 잔디를 바라봐. 제가 겪은 자그마한 불행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손으로 잔디를 만져보고 있어.
구조 거리는 어떻게 됐나요?
아무 문제없어.
아니에요.
니나가 얼굴을 찡그려.
“괜찮니, 니냐?” 내가 물어봐.
아이는 코에 손을 갖다대고 냄새를 맡아봐.
“냄새가 아주 심해요.” 니나가 말해.
카를라가 집 밖으로 나와, 드디어.
카를라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너희 엄마 쪽으로 걸어가. 아무래도 마구간에 가는 건 그만두자고 그녀를 설득하려는 걸 거야.
니나를 혼자 두지 마세요. 지금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요!
카를라는 핸드백을 들고 웃으며 다가와.
딴생각하지 마세요.
그다음에 일어날 일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어, 다비드. 나는 니나 쪽으로 돌아갈 수 없어.
지금 그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무슨 일 말이니, 다비드? 세상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벌레요.
안 돼, 제발.
아주 나쁜 일이에요.
그래, 실이 바짝 당겨지지만 나는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어.
니나는 어떤가요?
위 대화에서 벌레와 구조거리라는 단어가 다 나오고 마지막에는 실도 나온다. 비를 맞은 후 니나에게는 자그마한 불행이 생겼고 다비드는 자꾸 중요한 순간이라며 벌레라고 말한다. 아주 나쁜 일이라고!
니나가 맞은 비가 산성비보다 강력한 무슨 오염을 띠게 하는 것인지 그걸 맞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건지, 안개 속에서 손을 휘적거리며 앞으로 걸어가는 것 같아 갑갑했다. 가제본의 마지막에 아만다가 실이 느슨해졌다고 말하며 끝이 난다. 더 답답했다.
이런 책 처음이라 당황스러웠고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를 자꾸 책망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도 처음이다. 가제본의 뒷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본책을 읽어봐야겠다.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화 되었다고 하니 영화를 기다려야겠다. 영상으로 구현되었으니 은유나 복선 같은 것이 눈에 잘 들어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