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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 - 인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
김경훈 지음 / 시공아트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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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은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김경훈 사진작가의 신간이다. 전작 <사진을 읽어드립니다>에서 사진의 역사를 돌이켜봤다면 신간에서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예로 들어 전작에서 던졌던 화두에 대한 답을 찾아서 보여 주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사진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 손가락으로 셔터를 눌러 찍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사진을 볼 때 사진 속 이야기를 읽어 내려고 하고, 사진을 촬영할 때는 사진 속에 이야기를 담아서 셔터를 눌러 보시면 어떨까요.”라고 말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사진이 말하는 것을 찾아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단순히 잘 찍는 사진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는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번호는 매기지 않았으나 장마다 관통하는 주제를 제목에 담고 있다. 이런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고 완독의 부담도 없다. 훑어보다가 제목 혹은 사진이 마음에 들면 거기서부터 읽어도 된다. 나는 서평단 책으로 받았기 때문에 순서대로 다 읽었는데 어느 하나 심심한 것 없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유려한 글빨에 감탄했다. 사진을 잘 찍으면 글도 잘 쓰는 모양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선별한 사진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진부터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진까지 다양하다. 대중에게 잘 못 알려진 속사정이 있는 사진은 팩트체크 해주고, 역사적인 사진 속에 숨은 이야기들도 꺼내 읽어준다. 이를 위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생존해 있다면 그와 직접 인터뷰를 했고, 가족에게 저작권이 있다면 자료를 사용하면서 역시 인터뷰를 했다. 또한 여전히 필요한 사진의 효용성에 대해 이야기 하며 잘 찍은 사진, 좋은 사진의 소재란 무엇인지 독자에게 화두를 던진다.
이 책에 소개된 사진들을 이 리뷰에 모두 담을 수는 없으므로 인상 깊었던 사진 몇몇을 소개한다. 먼저 책에서 첫 번째로 소개한 아래 사진으로 작가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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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책의 처음에 배치한 이유는 수상을 자랑하기 위함은 아닌 듯하다. 이 사진은 일부 네티즌에 의해 조작된 가짜사진이라는 음모론에 시달렸다고 한다. 나도 이 사진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기사로 보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진 속 세 모녀는 중남미 캐러밴들이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 도시 티후아나의 열악한 난민 캠프에 수용된 그들을 작가는 밀착 취재 중이었다. 국경수비대와 캐러밴들이 조용히 대치하고 있던 그곳의 분위기가 급변하게 된 것은, 갑자기 캐러밴 남성 두 명이 국경 장벽의 바닥쪽 흙을 파내기 시작하면서였다. 마치 철망을 넘어뜨리려는 것처럼 보이자 미국 국경 수비대는 바로 최루탄을 발사했다. 그 최루탄은 작가의 근처에 있던 한 가족 앞에 떨어졌고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연기를 피해 달아나는 가족들의 급박한 모습을 찍으려고 휴대하던 방독면은 쓰지 못했다. 작가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그들과 함께 뛰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마리아 메자라는 온두라스 출신의 여성으로 혼자 다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중남미 캐러밴에 합류하였으며 미국에 정착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했다. 최루탄이 터지는 순간 아이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안고 뛰었단다. 그녀는 사실 여느 캐러밴처럼 국경까지 왔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하고 있다가 작가의 사진 덕분에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인권 단체의 도움으로 미국 망명이 받아들여졌다.
생존을 위협받으며 찍었던 사진이 한 가족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가짜 사진이라는 의혹에 시달렸다. 마리아 역시 가짜 사진의 주인공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반이민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유포한 내용을 작가가 읽어보니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럴듯하게 들렸다고 한다. 그나마 그들의 분석에 반박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 다른 각도에서 찍은 타 언론사 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팩트체크가 가능했다.
작가는 사진을 보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관점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되며 그 과정에서 의도적 왜곡이 개입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도 왜곡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책을 읽다보니 작가가 찍은 사진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 소개된 아래 사진 두 장.
왼쪽은 본 적 있는 사진이고 오른쪽은 처음 보는 사진이다. 왼쪽은 조작의 의도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없진 않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사진가의 말과 찍힌 여인의 말이 달랐으며 사진가에 의해 유명해진 여인의 사연과 실제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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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가가 말한 당시 상황
그녀는 백인이 아니라 체로키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손이었다. 1930년대에 그녀가 원주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관심을 가졌을까? 그녀는 사진을 찍지 않길 바랐다고 했으니 사진가의 말과는 차이가 많았다. 포토저널리즘의 윤리가 정립되기 이전 시대의 사진을 오늘날의 잣대에 맞추어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작가는 말했다. 당시 상황은 연출된 게 아니었고 지금 와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사진가가 본인 위주로 해석한 게 아닐까 싶다. 사진가는 특종을 챙겼고 그 여인은 당시에 아무 이득이 없었으니까.
위 오른쪽 사진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사진이다. 2019년 하다만 국제 사진전에서 <엄마의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대상을 수상했고 사진가는 12만 달러를 받았다. 베트남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장애를 가진 가난한 아이가 안고 있는 사진을 보며 우리는 모정과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진은 아래처럼 연출된 사진이었다.
현장에 있던 다른 사진가가 현장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진은 빈곤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가난을 자극적으로 연출한 빈곤 포르노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처럼 보도상을 받은 사진들이 연출된 사례가 있다보니 김경훈 작가의 난민 사진도 반이민주의 극우집단의 의심을 받게 된 게 아니었을까 생각된.
그 외에도 사진 덕분에 아동인권을 환기시키게 된 사례
어떤 상황을 보고 마음대로 찍은 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SNS에 올린 사례
등, 이 책에서 작가가 소개하는 사진과 그 사진이 말하는 것들을 독자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시공간의 격차가 많은 사진들 사이에서 미시사를 읽을 수 있고, 다양한 소재 속에서 보편적 기본정신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이런 내용들이 자칫 지루하고 어려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는 이유는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이다. 사진을 배우는 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