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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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 전명윤 작가의 <리멤버 홍콩>은 사계절출판사의 ‘북캉스에 읽고 싶은 책’ 이벤트에 신청해서 받게 되었습니다. 올여름 홍콩에 가지는 못하지만 바다든 산이든 조용한 곳에서 책으로라도 홍콩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실제 홍콩에 한 번도 못 가본 저에게 홍콩은 늘 동경의 장소였습니다. 어린 시절 주윤발과 장국영에게 환호하며 영화 속에서 그들이 머물던 장소에 나도 크면 꼭 가겠다며 다짐했지만 실천은 못했기에 저에게 홍콩은 여전히 낭만적인 장소입니다. 주윤발과 장국영을 거쳐 <화양연화>에 이르러 양조위에게 홀딱 반했고 영화 속 배경은 홍콩이라는 환상에 꽃을 피우게 만들었지요.

그럼 <리멤버 홍콩>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낭만적인 홍콩을 기억하게 해주는 책일까요? 저는 그것을 바랐습니다.

『리멤버 홍콩』은 지난 14년간 홍콩 가이드북을 쓰며 밥벌이를 해온 전명윤이 남기는 마지막 홍콩 이야기이다. 지은이는 책 속에 홍콩의 화려한 과거와 불안한 현재,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차곡차곡 쌓았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홍콩 거리를 취재하면서 지은이는 생각했다.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알던 홍콩은 사라지겠구나, 어떤 의미로든 앞으로의 홍콩은 이전과 다른 곳이 되겠구나, 우리가 사랑한 홍콩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겠구나.’ 그 불안한 예상이 현실이 된 지금, 전명윤은 그동안의 기록을 모으고 거기에 홍콩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출판사 책 소개-

위와 같은 소개를 읽어 놓고도 유명 홍콩영화의 장면이나 배우 이야기도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요. 그건 희망사항이자 착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멤버 홍콩>은 이번 여름 휴가 때 읽을 책으로 추천하겠습니다. 저 아직 휴가전인데 읽었고요, 깜짝 놀랐고요, 조금 부끄러웠거든요.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1번 추천 대상자는 역사책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책은 홍콩 역사 요약서이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청나라 간 무역전쟁의 시발점이었던 아편전쟁에서 시작해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었다가 1997년에 중국으로 반환되어 일국양제 시스템이 될 줄 알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중국에 편입되어버린 현 상황까지를 정리해줍니다. 이 홍콩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민주화 요구입니다.

그러니 두 번째로는 민주주의와 정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사람이 얼마 살지 않던 아주 작은 섬 홍콩이 역사의 격변기에 영국의 지배하에서 어떻게 변화 발전했는지, 1989년 천안문 학살(작가는 책에서 우리가 천안문사태라 부르는 것을 학살로 표기합니다) 이후 독립을 염원하는 홍콩 사람들의 모습을, 시간의 흐름대로 짚어줍니다. 작가는 2014년 우산혁명부터 2019년 11월까지 홍콩 시위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했기 때문에 생생한 홍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착각으로 읽기 시작해 푹 빠져들었으며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홍콩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하나 없이 영화 속 이미지를 소비하며 환상만 키운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영화 이미지 외엔 전혀 몰랐던 홍콩의 진짜 모습을 알게 해준 작가가 고마울 수밖에요!

저처럼 영상보다는 텍스트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합니다. 기본적으로 활자 읽기에 심취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쾌감을 느끼고, 그것을 바탕으로 확장된 독서나 활동을 합니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활동해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요. 저는 이 책을 발판으로 어떤 다른 활동을 해볼지 이리저리 궁리해봤습니다.

몇몇 홍콩 영화를 다시 보며 1997년을 맞이했던 홍콩 사람들의 심정을 그려볼까 합니다. 얼마 전 급하게 읽고 덮어두었던 <아무튼, 장국영>을 다시 꺼내 오래 전 읽었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과 병렬 독서를 하렵니다. 홍콩시민 장국영의 모습을 보며 홍콩 역사를 읽어내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사인에서 미얀마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다룬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자세히 찾아 읽으려고 합니다. 지난 달 '카카오 프로젝트 100'에 올라온 시사인 기사였는데 홍콩 시위는 지나간 일이라 생각해서 미얀마 기사만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 보니 홍콩총선거가 올 9월에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원래 작년에 했어야 했는데 중국 정부가 코로나를 이유로 1년 연기했습니다. 사실상 작년 7월 1일 홍콩은 중국에 병합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날 홍콩 국가보안법이 발효되어 무소불위의 법이 되었으니까요.

 

“홍콩은 중국과 다른 체제로 운영되고 자본주의 사회 아닌가?”

“홍콩 시위대가 무력을 썼다던데.”

이런 정도의 정보뿐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 책을 추천합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쁘며, 우리나라 역사 공부도 힘든데 다른 나라 민주화 운동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작가가 시위현장에서 홍콩의 10대와 나눈 대화를 옮기며 대신합니다.

p.234

아이들 중 조숙한 편이었던 웡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이긴 거예요?”

“우리도 항상 이긴 건 아니야. 늘 졌고, 계속 지는데도 지치지 않고 싸워서 결국 이긴 거야. 현실은 영화 <1987>과는 달랐어.”

“그럼 우리도 계속 싸워야 해요? 곧 경찰이 온다는데... 여길 지켜야 해요?”

“아니야, 도망가. 경찰이 보이면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지금 진다고 해도 너희들이 지치지 않으면 언젠가 이기는 날이 올 거야.”

이 말을 하는데 목이 메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홍콩과 미얀마에서 롤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는 세력이 있고 제대로 된 역사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긴걸까요...

p.241

백주대낮에 대학생이 전경들에게 맞아 죽던 그 시절, 시민들은 우리에게 온정적이었다. 그러다 시인 김지하가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무리’를 꾸짖는 장문의 글을 기고한 뒤로 사람들은 냉담해졌다. 적어도 나에게 맥주를 권하던 사람은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교조 대량 해직 사태를 일으킨 교육부장관 정원식이 국무총리에 임명되었고, 그는 한국외국어대학에 강의하러 갔다가 학생들에게 밀가루 세례를 받았다. 다음 날 언론은 그 장면을 헤드라인에 걸었고, 세상은 더 이상 대학생들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1991년 4월 26일, 강경대의 죽음으로 촉발된 사태는 종지부를 찍었다.

위 91년 강경대 사건 때 10대였던 작가가 직접 살아낸 시절이 제게는 역사책에서 읽은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 채 살았고 나중에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으로 홍콩에 대해 알게 된 것이나 내 나라에서 벌어진 일을 책으로 알게 된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저는 얼마나 세상을 모르고 산 인간인지요.

민주화 시기를 온 몸으로 헤쳐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저는 항상 자문해 봅니다. 제가 91년 시위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를요.

화염병을 들었을까?

시위대 맨 뒤에 서 있었을까?

도서관에 몸을 숨겼을까?

늘 그렇듯 제가 서있는 장소를 명확하게 그려내지 못한 채 흐려지고 맙니다. 시국은 몰랐지만 당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변명으로 마무리 짓는데요, 오늘도 마찬가지가 되겠군요. 하지만 이 책은 홍콩뿐 아니라 제가 살아낸 한국의 시간을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게 무엇인지도요.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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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라미 현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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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못과 이념 논쟁을 떠나 대한민국에서 잘 살고 있다는 사실과 참전용사의 얼굴이 같이 떠오릅니다. 라미현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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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라미 현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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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우리에게는 더이상 피부에 와닿지 않는 단어다. 1953년에 휴전된 이후 이땅에서 전쟁이 재 점화되지 않았고, 전쟁을 겪은 세대가 점점 유명을 달리하고 있으며, 전후에 태어난 세대는 전쟁을 책으로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일상에서 참전용사라는 말은 접하기 힘든 낱말이 되었다. ‘참전군인이 아니라 참전 뒤에 용사라 붙인 데는 감사와 경외심을 표현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었고, 생존해 돌아왔다면 그들을 예우해줄 호칭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난 지 70년 가까이 된 현재, 참전용사가 얼마 남지 않았고 그들을 기억하려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여기 참전용사를 사진으로 남긴 사진가가 있다.

 

라미 현, 그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전쟁에 참여한 22개국 1,500여 명의 참전용사들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것을 책으로 냈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된 사연을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의 프롤로그에서 발췌해 옮긴다.

 

2016, Project-Soldier 중 첫 번째 기획인 <대한민국 군복>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이 전시회를 방문해 사진을 감상하던 한 외국인과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미디어에서만 보았던 유엔군 참전용사였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용기를 내 인사를 건네며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맞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 눈을 바라보면서 답했습니다.

“Yes, I am a Korean War Veteran, US Marine.”

(그래, 난 한국전쟁 미 해병대 참전용사야.)

 

그 순간 그의 눈에선 광채가 번뜩였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눈빛이었습니다. 37, 수년간 사진작가로 활동해오면서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과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눈빛에 매료된 저는 처음으로 참전용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스튜디오에 돌아와 사진을 확인해봤습니다. 사진 속 그의 눈에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의문 한 가지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저 분은 자기 나라를 위해서 싸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런 눈빛과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위와 같은 호기심에서 시작한 그는 한국전 참전용사를 만나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업을 계속 하기에 이른다. 나도 같은 궁금증이 일었다. 책에 소개된 29명의 참전용사를 만나면 궁금증이 풀릴지 기대하며 책장을 열었다.

 

그들의 나이는 대부분 80대 후반에서 90대였다. 열 일곱살 꽃다운 나이에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했던 청년이 이젠 백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된 것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경험했던 전쟁은 그들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제각각 떠나온 곳과 배속된 부대가 달랐지만 그들은 비슷한 참상을 목도했고 몸과 마음에 상흔을 남겼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도 그들의 입을 통해 듣는 한국전쟁의 참상은 생생했다. 민간인이건 군인이건 전장에는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한마디로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려면 먹어야 한다. 과일 통조림을 돌로 찧어 꿀 같은 그 물을 먹었더니 도리어 갈증이 나서 맹물을 마신 후 설사와 구토를 한 사례는 약과였다. 꿀꿀이죽 한 그릇을 금반지 하나와 맞바꿔서라도 사먹어야 했고, 비행기에서 떨어진 미숫가루가 다 날려 바닥에 흩어진 것을 핥아먹어야 했다. 피란 도중 사산한 아이를 버리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던 산모는 얼마 가지 못해 자신도 죽음을 맞았다. 폭격으로 날아간 손가락을 봉합하는 수술에 실패해 절단할 수밖에 없었고, 다리와 팔에 동시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이 참전용사였다.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장애를 입으면서까지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인터뷰에서, 사진 속 눈빛에서 보였다. 작가가 보았다던 그 자부심 말이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들이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감격스러워했다. 그런 그들의 가슴에는 애국이라는 단어가 훈장처럼 빛나고 있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역사책 속의 사건 중 하나로 인식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참전용사의 기억과 기록은 전쟁이 무시무시한 현실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지금 내 삶이 힘들기 때문에 그들의 기억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 사진작가 라미 현이 그들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전후세대와 참전용사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참전용사가 모두 사라지기전에 그들을 기록해두려는 것이다. 남겨두는 것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젊은 작가가 애쓴 결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잘잘못과 이념 논쟁을 떠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과 참전용사의 얼굴이 같이 떠오른다면! 작가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라 할 것이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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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허밍버드 클래식 M 6
브램 스토커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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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에 대한 동경은 수많은 미디어에서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동유럽 미신에서 유래된 뱀파이어는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으로 탄생되어 백 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재창조되어 왔다. <드라큘라>1897브램 스토커라는 아일랜드 작가의 책으로 첫출간 되었다. 사실 <트와일라잇>이나 <렛미인>같은 영화로 뱀파이어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 드라큘라는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질수도 있다. 또 드라큘라를 뮤지컬로만 만났다면 드라큘라 백작을 꽤 로맨틱하게 여길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브램 스토커<드라큘라>를 쓴 사람이라는 것도 잘 모를 것이며 책으로 읽은 사람 역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달 뮤지컬 드라큘라가 다시 개막하면서 기다렸던 팬들에게 희소식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뮤지컬을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새롭게 창조되는 드라큘라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허밍버드출판사의 클래식M시리즈로 <드라큘라>가 새롭게 번역 출간되었다고 해서 서평단에 신청해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떠올려봤다. 내 기억 속 드라큘라는 게리 올드먼이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라서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뮤지컬도 본 적 없고 뱀파이어물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뱀파이어 영화도 거의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드라큘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로, 검정 연미복에 검정 망토 붉은 입술과 송곳니로 각인되어 있다. 그만큼 이 이미지가 드라큘라의 대명사로서 미디어에서 가장 자주 만났기 때문에그럴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번 허밍버드의 <드라큘라>는 무려 800여 쪽이 넘는 텍스트로 드라큘라를 쫓는 이야기였으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과 다른 내용이 제법 있었다. 그러니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고 뭐가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미디어를 통해 만났던 드라큘라와 뱀파이어, 진화한 뱀파이어, 나아가 좀비까지 그 이미지들이 내 머릿속에 마구 뒤섞여 있었고, 그러한 이미지를 뭉뚱그려 드라큘라라는 이름의 대명사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은 조너선 하커가 드라큘라 백작의 런던 부동산 구입을 도와주는 업무를 위해 백작의 거처인 트란실바니아의 성으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책의 서술은 등장인물들의 기록의 형태로 진행된다. 일기와 편지 형식이 주를 이루며 전보와 신문기사를 중간 중간에 끼웠고 시간 순서대로 서술되어 일종의 보고서처럼 읽힌다. 또한 등장인물들 각자의 기록이라 어떤 상황을 각자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는 것을 독자가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작가 브램 스토커가 드라큘라라는 인물을 완성해 낸 것으로도 의의가 있다 하겠다. 그가 창조해 낸 인물이 다양한 2차 창작물로 전 세계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드라큘라라는 인물은 원형이 있음에도 어떤 공기를 불어넣느냐에 따라 색다른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는 풍선과 같다

 

이 책은 오랫동안 뱀파이어를 연구해온 반헬싱 교수를 중심으로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세 명의 남자 와 함께 드라큘라를 쫓는 추적스토리다. 여기에 미나 머리루시 웨스튼라라는 여성 두 명도 등장한다. 그 중 루시는 드라큘라에게 희생되는 역할이고 미나는 적극적이고 능력있는 여성이다. 이 등장인물들의 기록을 읽어나가면 루시가 어떻게 당하고 죽게 되는지, 드라큘라의 뒤를 쫓아가서 끝끝내 그를 처단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 대장정의 스토리가 800쪽이 넘도록 이어진다.

 

 

아서, 루시 양이 죽기 직전에 자네가 그녀에게 입맞춤했다면, 어젯밤 내가 끼어들기 전에 자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면 자네 역시 죽어서 노스페라투가 되었을 걸세. 노스페라투는 동유럽에서 죽지 않는 존재를 일컫는 말이라네. 자네마저 그리 됐다면, 그 사이에 죽지 않는 존재가 늘어나 이 세상은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겠지.” p.462

 

동유럽 미신인 죽지 않는 존재라는 작은 파편에서 시작해 이렇게 웅장한 스토리텔링으로 확장시킨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그 후 시대와 유행에 맞게 각색되는 과정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원작보다 점점 매력적으로 변신했다. 드라큘라 역할에 잘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배우가, 스토리에 로맨스를 가미하거나 에로틱한 장면 묘사가 들어간 2차 창작물로 드라큘라를 접한 사람들이 원작을 읽는다면 심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첫 창작물로서의 가치와 무한 상상력의 바탕이 된 작품이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읽는 게 좋다. 혹여나 드라큘라를 2차 창작물로 먼저 만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실망할까봐 미리 알려둔다.

사실 나는 드라큘라보다 미나 캐릭터가 더 인상깊었다. 1800년대 후반에 이렇게 진취적인 여성을 그려내다니 말이다.

 

, 하커 부인은 참으로 대단해! 남성의 두뇌와 여성의 마음을 겸비했지 않은가! 그 두뇌도 평범한 남성이 아닌,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남성에 비견될 정도란 말이지. 주님께서 한 사람에게 그렇게 훌륭한 요소를 몰아주신 데는 나름의 뜻이 있을 거야.” p.507

 

반헬싱 교수가 계속 이런 식으로 미나를 칭찬하는데 아마 그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여성상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작가의 이상형일 수도 있겠고.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미나(하커 부인)가 큰 역할을 하는데 사내 네 명 사이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반헬싱 교수보다 리더처럼 활약한다. 드라큘라 백작에게서 얻은 능력 때문에 더 그러했을 수도 있겠다. 아쉬운 점이라면 드라큘라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미나에게 최면을 거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당시의 상상력으로 쓸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니었겠나 싶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게리 올드먼 주연의 92년 영화 <드라큘라>를 찾아서 다시 봤다. 반헬싱 역할에 안소니 홉킨스, 조너선은 키아누 리브스, 미나는 위노나 라이더로 당시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여기에 감독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였다. 예전에 보긴 봤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웠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니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다.

 

원작과 달리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 드라큘라 백작과 미나의 러브라인이었다. 드라큘라가 몇 백년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아내가 미나와 얼굴이 같다. 책에서는 미나가 드라큘라를 무찌르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 92년 작 영화에서는 드라큘라가 아내의 얼굴을 한 미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드라큘라는 자연스레 악당이미지를 벗게 되는 셈이다. 게리 올드먼을 캐스팅한 것은 절묘했다. 그가 카리스마와 애절함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한 얼굴로 표현해냈으니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든 일등공신이 아닐까 한다. 내가 그를 좋아하고 그의 목소리와 억양도 좋아하기 때문에 더 좋게 보였을 것이다. 단 영화에서 미나는 책과 전혀 다르다. 포인트를 드라큘라와 미나의 러브라인에 맞췄기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꽤 두꺼운 책이라 다른 때에 비해 시간은 더 걸렸지만 드라큘라 원작을 읽어서 뿌듯하다. 예상보다 드라큘라 묘사가 과하거나 잔인하지는 않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 캐릭터가 있어서 좋았다. 즐거운 독서 후 영화까지 찾아보는 만족스런 독후활동도 했다. 드라큘라 원작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허밍버드 클래식M시리즈로 <드라큘라>, 영화는 게리 올드먼 주연으로 찾아보길 추천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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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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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잘 하고 있나?'

확인하고 싶은 사람,

응원받고 싶은 사람!

아니아니아니.

무조건적인 응원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사람에게 치이고, 관계를 고민하고,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뚜벅뚜벅, 묵묵히 나아가라고 말해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작가는 '내 마음속에서 나온 목소리가 진짜 목소리인지, 아니면 들려오는 소리가 진짜인지' 헷갈려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외부에서 들러오는 질책과 평가가 듣기 싫어도 그 또한 '나'라고 하네요..

소통없이 골방에 틀어박혀 살면 나에 대한 말들은 더욱 듣기 싫어집니다.

오랜만에 지인과 만나 대화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 찜찜합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온통 타인에 대한 험담뿐이었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변명이 떠오르니 더욱 구차해집니다.

제가 그랬듯 남도 저를 그렇게 말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작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에필로그]

 

힘들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당신의 힘듦에게, 슬프다는 말로도, 아프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당신의 상처에게, 또 알고는 있지만, 꺼낼 수 없는 당신의 여러 감정들에게.

 

나의 글이 그러한 것들을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오늘 나는 적는다. 이 활자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만, 나는 쓴다. 이 책을 펼치고 닫는 순간에도 전혀 달라질 것 없는 당신의 앞날이라도, 결국 펴낸다. 오직 당신에게 읽히기 위해서 말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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