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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ㅣ 허밍버드 클래식 M 6
브램 스토커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2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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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에 대한 동경은 수많은 미디어에서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동유럽 미신에서 유래된 뱀파이어는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으로 탄생되어 백 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재창조되어 왔다. <드라큘라>는 1897년 ‘브램 스토커’라는 아일랜드 작가의 책으로 첫출간 되었다. 사실 <트와일라잇>이나 <렛미인>같은 영화로 뱀파이어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 드라큘라는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질수도 있다. 또 드라큘라를 뮤지컬로만 만났다면 드라큘라 백작을 꽤 로맨틱하게 여길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브램 스토커’가 <드라큘라>를 쓴 사람이라는 것도 잘 모를 것이며 책으로 읽은 사람 역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달 뮤지컬 드라큘라가 다시 개막하면서 기다렸던 팬들에게 희소식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뮤지컬을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새롭게 창조되는 드라큘라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허밍버드출판사의 클래식M시리즈로 <드라큘라>가 새롭게 번역 출간되었다고 해서 서평단에 신청해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떠올려봤다. 내 기억 속 드라큘라는 게리 올드먼이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라서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뮤지컬도 본 적 없고 뱀파이어물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뱀파이어 영화도 거의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드라큘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로, 검정 연미복에 검정 망토 붉은 입술과 송곳니로 각인되어 있다. 그만큼 이 이미지가 드라큘라의 대명사로서 미디어에서 가장 자주 만났기 때문에그럴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번 허밍버드의 <드라큘라>는 무려 800여 쪽이 넘는 텍스트로 드라큘라를 쫓는 이야기였으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과 다른 내용이 제법 있었다. 그러니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고 뭐가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미디어를 통해 만났던 드라큘라와 뱀파이어, 진화한 뱀파이어, 나아가 좀비까지 그 이미지들이 내 머릿속에 마구 뒤섞여 있었고, 그러한 이미지를 뭉뚱그려 드라큘라라는 이름의 대명사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은 ‘조너선 하커’가 드라큘라 백작의 런던 부동산 구입을 도와주는 업무를 위해 백작의 거처인 트란실바니아의 성으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책의 서술은 등장인물들의 기록의 형태로 진행된다. 일기와 편지 형식이 주를 이루며 전보와 신문기사를 중간 중간에 끼웠고 시간 순서대로 서술되어 일종의 보고서처럼 읽힌다. 또한 등장인물들 각자의 기록이라 어떤 상황을 각자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는 것을 독자가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작가 ‘브램 스토커’가 드라큘라라는 인물을 완성해 낸 것으로도 의의가 있다 하겠다. 그가 창조해 낸 인물이 다양한 2차 창작물로 전 세계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드라큘라라는 인물은 원형이 있음에도 어떤 공기를 불어넣느냐에 따라 색다른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는 풍선과 같다.
이 책은 오랫동안 뱀파이어를 연구해온 반헬싱 교수를 중심으로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세 명의 남자 와 함께 드라큘라를 쫓는 추적스토리다. 여기에 ‘미나 머리’와 ‘루시 웨스튼라’라는 여성 두 명도 등장한다. 그 중 루시는 드라큘라에게 희생되는 역할이고 미나는 적극적이고 능력있는 여성이다. 이 등장인물들의 기록을 읽어나가면 루시가 어떻게 당하고 죽게 되는지, 드라큘라의 뒤를 쫓아가서 끝끝내 그를 처단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 대장정의 스토리가 800쪽이 넘도록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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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루시 양이 죽기 직전에 자네가 그녀에게 입맞춤했다면, 어젯밤 내가 끼어들기 전에 자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면 자네 역시 죽어서 노스페라투가 되었을 걸세. 노스페라투는 동유럽에서 죽지 않는 존재를 일컫는 말이라네. 자네마저 그리 됐다면, 그 사이에 죽지 않는 존재가 늘어나 이 세상은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겠지.” p.462
동유럽 미신인 죽지 않는 존재라는 작은 파편에서 시작해 이렇게 웅장한 스토리텔링으로 확장시킨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그 후 시대와 유행에 맞게 각색되는 과정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원작보다 점점 매력적으로 변신했다. 드라큘라 역할에 잘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배우가, 스토리에 로맨스를 가미하거나 에로틱한 장면 묘사가 들어간 2차 창작물로 드라큘라를 접한 사람들이 원작을 읽는다면 심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첫 창작물로서의 가치와 무한 상상력의 바탕이 된 작품이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읽는 게 좋다. 혹여나 드라큘라를 2차 창작물로 먼저 만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실망할까봐 미리 알려둔다.
사실 나는 드라큘라보다 미나 캐릭터가 더 인상깊었다. 1800년대 후반에 이렇게 진취적인 여성을 그려내다니 말이다.
“아, 하커 부인은 참으로 대단해! 남성의 두뇌와 여성의 마음을 겸비했지 않은가! 그 두뇌도 평범한 남성이 아닌,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남성에 비견될 정도란 말이지. 주님께서 한 사람에게 그렇게 훌륭한 요소를 몰아주신 데는 나름의 뜻이 있을 거야.”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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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헬싱 교수가 계속 이런 식으로 미나를 칭찬하는데 아마 그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여성상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작가의 이상형일 수도 있겠고.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미나(하커 부인)가 큰 역할을 하는데 사내 네 명 사이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반헬싱 교수보다 리더처럼 활약한다. 드라큘라 백작에게서 얻은 능력 때문에 더 그러했을 수도 있겠다. 아쉬운 점이라면 드라큘라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미나에게 최면을 거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당시의 상상력으로 쓸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니었겠나 싶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게리 올드먼 주연의 92년 영화 <드라큘라>를 찾아서 다시 봤다. 반헬싱 역할에 안소니 홉킨스, 조너선은 키아누 리브스, 미나는 위노나 라이더로 당시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여기에 감독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였다. 예전에 보긴 봤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웠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니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다.
원작과 달리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 드라큘라 백작과 미나의 러브라인이었다. 드라큘라가 몇 백년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아내가 미나와 얼굴이 같다. 책에서는 미나가 드라큘라를 무찌르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 92년 작 영화에서는 드라큘라가 아내의 얼굴을 한 미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드라큘라는 자연스레 악당이미지를 벗게 되는 셈이다. 게리 올드먼을 캐스팅한 것은 절묘했다. 그가 카리스마와 애절함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한 얼굴로 표현해냈으니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든 일등공신이 아닐까 한다. 내가 그를 좋아하고 그의 목소리와 억양도 좋아하기 때문에 더 좋게 보였을 것이다. 단 영화에서 미나는 책과 전혀 다르다. 포인트를 드라큘라와 미나의 러브라인에 맞췄기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꽤 두꺼운 책이라 다른 때에 비해 시간은 더 걸렸지만 드라큘라 원작을 읽어서 뿌듯하다. 예상보다 드라큘라 묘사가 과하거나 잔인하지는 않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 캐릭터가 있어서 좋았다. 즐거운 독서 후 영화까지 찾아보는 만족스런 독후활동도 했다. 드라큘라 원작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허밍버드 클래식M시리즈로 <드라큘라>를, 영화는 게리 올드먼 주연으로 찾아보길 추천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