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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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 전명윤 작가의 <리멤버 홍콩>은 사계절출판사의 ‘북캉스에 읽고 싶은 책’ 이벤트에 신청해서 받게 되었습니다. 올여름 홍콩에 가지는 못하지만 바다든 산이든 조용한 곳에서 책으로라도 홍콩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실제 홍콩에 한 번도 못 가본 저에게 홍콩은 늘 동경의 장소였습니다. 어린 시절 주윤발과 장국영에게 환호하며 영화 속에서 그들이 머물던 장소에 나도 크면 꼭 가겠다며 다짐했지만 실천은 못했기에 저에게 홍콩은 여전히 낭만적인 장소입니다. 주윤발과 장국영을 거쳐 <화양연화>에 이르러 양조위에게 홀딱 반했고 영화 속 배경은 홍콩이라는 환상에 꽃을 피우게 만들었지요.

그럼 <리멤버 홍콩>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낭만적인 홍콩을 기억하게 해주는 책일까요? 저는 그것을 바랐습니다.

『리멤버 홍콩』은 지난 14년간 홍콩 가이드북을 쓰며 밥벌이를 해온 전명윤이 남기는 마지막 홍콩 이야기이다. 지은이는 책 속에 홍콩의 화려한 과거와 불안한 현재,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차곡차곡 쌓았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홍콩 거리를 취재하면서 지은이는 생각했다.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알던 홍콩은 사라지겠구나, 어떤 의미로든 앞으로의 홍콩은 이전과 다른 곳이 되겠구나, 우리가 사랑한 홍콩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겠구나.’ 그 불안한 예상이 현실이 된 지금, 전명윤은 그동안의 기록을 모으고 거기에 홍콩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출판사 책 소개-

위와 같은 소개를 읽어 놓고도 유명 홍콩영화의 장면이나 배우 이야기도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요. 그건 희망사항이자 착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멤버 홍콩>은 이번 여름 휴가 때 읽을 책으로 추천하겠습니다. 저 아직 휴가전인데 읽었고요, 깜짝 놀랐고요, 조금 부끄러웠거든요.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1번 추천 대상자는 역사책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책은 홍콩 역사 요약서이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청나라 간 무역전쟁의 시발점이었던 아편전쟁에서 시작해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었다가 1997년에 중국으로 반환되어 일국양제 시스템이 될 줄 알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중국에 편입되어버린 현 상황까지를 정리해줍니다. 이 홍콩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민주화 요구입니다.

그러니 두 번째로는 민주주의와 정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사람이 얼마 살지 않던 아주 작은 섬 홍콩이 역사의 격변기에 영국의 지배하에서 어떻게 변화 발전했는지, 1989년 천안문 학살(작가는 책에서 우리가 천안문사태라 부르는 것을 학살로 표기합니다) 이후 독립을 염원하는 홍콩 사람들의 모습을, 시간의 흐름대로 짚어줍니다. 작가는 2014년 우산혁명부터 2019년 11월까지 홍콩 시위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했기 때문에 생생한 홍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착각으로 읽기 시작해 푹 빠져들었으며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홍콩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하나 없이 영화 속 이미지를 소비하며 환상만 키운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영화 이미지 외엔 전혀 몰랐던 홍콩의 진짜 모습을 알게 해준 작가가 고마울 수밖에요!

저처럼 영상보다는 텍스트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합니다. 기본적으로 활자 읽기에 심취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쾌감을 느끼고, 그것을 바탕으로 확장된 독서나 활동을 합니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활동해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요. 저는 이 책을 발판으로 어떤 다른 활동을 해볼지 이리저리 궁리해봤습니다.

몇몇 홍콩 영화를 다시 보며 1997년을 맞이했던 홍콩 사람들의 심정을 그려볼까 합니다. 얼마 전 급하게 읽고 덮어두었던 <아무튼, 장국영>을 다시 꺼내 오래 전 읽었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과 병렬 독서를 하렵니다. 홍콩시민 장국영의 모습을 보며 홍콩 역사를 읽어내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사인에서 미얀마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다룬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자세히 찾아 읽으려고 합니다. 지난 달 '카카오 프로젝트 100'에 올라온 시사인 기사였는데 홍콩 시위는 지나간 일이라 생각해서 미얀마 기사만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 보니 홍콩총선거가 올 9월에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원래 작년에 했어야 했는데 중국 정부가 코로나를 이유로 1년 연기했습니다. 사실상 작년 7월 1일 홍콩은 중국에 병합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날 홍콩 국가보안법이 발효되어 무소불위의 법이 되었으니까요.

 

“홍콩은 중국과 다른 체제로 운영되고 자본주의 사회 아닌가?”

“홍콩 시위대가 무력을 썼다던데.”

이런 정도의 정보뿐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 책을 추천합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쁘며, 우리나라 역사 공부도 힘든데 다른 나라 민주화 운동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작가가 시위현장에서 홍콩의 10대와 나눈 대화를 옮기며 대신합니다.

p.234

아이들 중 조숙한 편이었던 웡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이긴 거예요?”

“우리도 항상 이긴 건 아니야. 늘 졌고, 계속 지는데도 지치지 않고 싸워서 결국 이긴 거야. 현실은 영화 <1987>과는 달랐어.”

“그럼 우리도 계속 싸워야 해요? 곧 경찰이 온다는데... 여길 지켜야 해요?”

“아니야, 도망가. 경찰이 보이면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지금 진다고 해도 너희들이 지치지 않으면 언젠가 이기는 날이 올 거야.”

이 말을 하는데 목이 메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홍콩과 미얀마에서 롤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는 세력이 있고 제대로 된 역사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긴걸까요...

p.241

백주대낮에 대학생이 전경들에게 맞아 죽던 그 시절, 시민들은 우리에게 온정적이었다. 그러다 시인 김지하가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무리’를 꾸짖는 장문의 글을 기고한 뒤로 사람들은 냉담해졌다. 적어도 나에게 맥주를 권하던 사람은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교조 대량 해직 사태를 일으킨 교육부장관 정원식이 국무총리에 임명되었고, 그는 한국외국어대학에 강의하러 갔다가 학생들에게 밀가루 세례를 받았다. 다음 날 언론은 그 장면을 헤드라인에 걸었고, 세상은 더 이상 대학생들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1991년 4월 26일, 강경대의 죽음으로 촉발된 사태는 종지부를 찍었다.

위 91년 강경대 사건 때 10대였던 작가가 직접 살아낸 시절이 제게는 역사책에서 읽은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 채 살았고 나중에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으로 홍콩에 대해 알게 된 것이나 내 나라에서 벌어진 일을 책으로 알게 된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저는 얼마나 세상을 모르고 산 인간인지요.

민주화 시기를 온 몸으로 헤쳐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저는 항상 자문해 봅니다. 제가 91년 시위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를요.

화염병을 들었을까?

시위대 맨 뒤에 서 있었을까?

도서관에 몸을 숨겼을까?

늘 그렇듯 제가 서있는 장소를 명확하게 그려내지 못한 채 흐려지고 맙니다. 시국은 몰랐지만 당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변명으로 마무리 짓는데요, 오늘도 마찬가지가 되겠군요. 하지만 이 책은 홍콩뿐 아니라 제가 살아낸 한국의 시간을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게 무엇인지도요.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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