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의 모든 역사 -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 시도들
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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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뇌에 대해 너무 몰랐다! 여전히 잘 모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 뇌 과학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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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스타일의 문화사 -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에 담긴 시대정신과 욕망
엘리자베스 세멀핵 지음, 황희경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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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스타일의 문화사>는 역사책이다. 신발의 역사를 다룬 미시사다. 이 책은 역사 속 신발 문화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저자 엘리자베스 세멀핵이 신발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토론토에 있는 바타 신발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이자 역사학자다. 캐나다까지 가지 않아도 그의 방대한 자료를 이 책 한 권으로 섭렵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는 서문에서 신발 관련 이야기는 이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므로 20세기와 21세기 서구 사회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이 책은 신발의 역사와 문화를 짚어내고 종류별, 시대별 핵심적인 신발들의 사진까지 만날 수 있다. 컬러풀한 신발 사진만 봐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한 번 신어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릴 것이다. 장담한다!

이 책은 ‘슈즈 홀릭’이라면 소장각이다. 문화사나 신발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럼 전공 공부하는 사람이나 신발에 집착하는 사람만 읽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역사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을 글담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읽게 되었다. 신발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고 바로 서평단에 신청했다.

나는 신발가게 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서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오면서 차린 가게는 신발가게였다. 내 기억 속에 우리 집은 늘 가난했지만 나는 신발만큼은 부자였다. 그 사실을 몰랐는데 6학년때 쯤인가 친구 집에 갔다가 알게 되었다. 그 친구가 가진 신발이 운동화 단 한 켤레 뿐이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나는 철마다 다른 종류의 신발을 가지고 있었고, 학교를 갈 때나 외출할 땐 그 중에서 신고 싶은 신발을 골라 신었다. 그 땐 몰랐지만 TPO에 맞춰 신었던 셈이다.

 




엄마가 막냇동생을 낳을 즈음엔 내가 가게 진열장 정리를 자주 하게 되었다. 진열장 유리 선반을 깨끗이 닦고 구두나 샌들 위주를 전면에 배치했다. 어떤 신발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지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누군가 진열장의 신발을 보고 가게로 들어오면 반갑고 뿌듯했다. 진열장 정리는 엄마를 도와드린다는 명목도 있었지만 어린 내가 신고 싶은 신발을 고르는 즐거움이 더 컸다.

성인이 되자 나는 하이힐, 펌프스, 샌들을 종류대로 색깔별로 계절별로 다르게 사들였다. 어릴 때부터 그래왔으니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교복을 벗고 옷을 자유롭게 입게 되었으나 신발 자유를 더 원했던 것 같다. 그러니 이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간 것도 당연하다.

이제 이 책을 소개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의 책 소개가 워낙 요약이 잘 되어 있어서 내 요약은 필요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신발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인 내용은 대부분 처음 알게 된 내용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그 중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던 몇 가지를 정리한다.


 


[1부 샌들]


대공황 시대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고 대부분 가난에 허덕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가보다. 세상이 망했다고 난리여도 누군가는 멋을 부리고 싶고 누군가는 돈을 벌었다. 1931년 미국 ‘섀도 샌들’ 광고 문구는 이러했다.

“이례적으로 좋지 않은 올해의 상황에 맞춰...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이므로 한두 켤레의 샌들을 마다할 여성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샌들은 일반 신발에 비해 소재를 적게 써서 만들 수 있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니 저렴하게 판매되었다. 여기에 장기실업사태로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에게 여가를 부추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새로운 여가’라는 이름으로 지역 해변이나 공영 수영장에 가는 등 돈이 많이 들지 않는 활동 참여를 장려했다. 오픈 토 샌들과 함께 저렴한 패션이 사랑받았고, 나아가 건강 목적으로 페디큐어까지 장려될 정도였다니 대공황 시대를 미국인들은 꽤 긍정적인 시간으로 보낸 것 같다. 여가 장려의 영향이 신발을 포함한 패션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페라가모가 웨지힐 샌들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당시에는 몹시 혁신적인 도전이었다고 한다. 버켄스탁이 미국에서는 히피들이 유행시켰지만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인 ‘콘래드 버켄스탁’이었다. 2000년대 초반 ‘버켄스탁 진보주의자’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이 단어는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무조건적인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환경 운동가처럼 반미국적 불량분자라는 이미지로 읽혔다고 한다.




위 사진의 프라다 샌들은 정말이지 한 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다.


[2부 부츠]


[1부 샌들][1부 샌들]


이 책을 읽으며 절감한 사실은, 신발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신고 다녔다는 것이다. 부츠는 그저 추운 지방에서 방한용으로 만들었겠거니 했지만 부츠는 남성들의 신발이었다. 이 장의 앞부분에는 남성 부츠의 역사와 유행을 소개하고 있는데 남자들도 사치가 대단했었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부츠는 여성의 각선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니!




 

 


1차 대전에서 독일 군인이 신던 부츠, 미국 카우보이의 부츠, 오토바이 폭주족 부츠, 비틀즈의 부츠까지 남성들이 신었던 부츠의 역사는 재미있게 읽었다.

2장 여성의 부츠는 발에 신는 코르셋 에서는 부츠가 페티시적인 특징을 가지게 된 역사를 설명한다. 신발에도 성차별적 문화는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겨울 거리를 어그 부츠가 점령한 적이 있었다. 이것도 당연히 극지방 같은 한대 기후에서 유래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호주에서 양털 깎는 사람들이 발을 따뜻하게 하려고 신었던 부츠였다. 1960년대에는 남성 서퍼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몇 시간을 보낸 뒤 해변에서 어그 부츠를 신었다.


[3부 하이힐]


힐도 원래 남자들의 신발이었다.




특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던 남성 힐이 루이 14세에 이르러 정치적 의미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남성 힐은 더 높아지고 두꺼워졌고 여성 힐은 가늘고 홀쭉해졌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이 앙증맞은 발을 더 선호하게 만들었다. 여성 힐에 왜곡된 성적 욕망이 덧씌워졌고 경멸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여성을 패션의 노예로 만드는 분위기로 몰아가다 점점 에로틱해졌다. 포르노 판타지를 찾다가 전문직 여성의 상징으로 보는 등 이중적인 태도는 계속 됐다.


 


그런데 하이힐이 서구의 자유와 여성의 자율성을 상징하는 기표가 된 사건이 있었다. 미국 911 기념관에 전시된 ‘피 묻은 하이힐’은 당시 여성 피해자들의 취약성을 보여주었기에 테러의 공포가 존재하는 시대에서는 힐의 인기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그 예견은 빗나갔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하이힐을 금지한다고 보도되었는데, 여성이 걸을 때 소리를 내지 않아야 했을 뿐 아니라 하이힐이 서구의 퇴폐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일이었다.


하이힐은 자존심이라며 나이 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하이힐이라고 했던 어느 여배우의 말이 떠오른다. 나도 키가 작기 때문에 20~30대 때는 7cm가 넘는 구두만 신고 다녔다. 하이힐은 내 마음의 키 높이였고, 다리 라인을 살려주는 보조제라 여겼다. 하이힐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배우가 아니기에 일치감치 포기했다. 나이 들면 편한 신발이 제일 좋더라는 말이 정답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신발장 정리를 하다가 몇 년 째 신지 않고 방치된 가죽 샌들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는 걸 발견했다. 특이한 디자인이라서 자주 신었었는데 이렇게 외면 받고 마는구나 싶어 미안했다. 나는 신발장을 문 한번 열어보지 않는 창고처럼 취급했지만 예의를 갖춘 여성들도 있었다.

아래 사진이 뭐로 보이는가?



신발 전용 트렁크다. 1920년대 부유한 여성들이 휴양 여행을 떠날 때 신발 서른 켤레를 넣을 수 있는 트렁크로 여행패션을 완성했다. 이 트렁크는 루이비통에서 만들었다.



위 스트리퍼 슈즈는 공격성과 구속을 동시에 표현하는 역설성을 보여준다. 정말 이 하이힐에는 발을 집어넣어보고 싶은 욕망이 절로 들었다.

스니커즈가 뭐 그리 특별할 게 있다고? 아래 사진들을 보자.


 



 

스니커즈도 특별한 함의를 지닌 역사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현대의 스니커즈 제조에 있어서 문제는 역시 환경이다. 한 의류 재활용 회사가 밝히길, 매년 약 200억 켤레의 러닝화가 생산되고 3억 켤레가 버려진다고 한다. 또한 2013년 MIT 연구에 따르면 13.5kg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한다. 이제 스니커즈는 탈산업 시대의 흐름에 맞춰 3D프린팅, 플라이니트 기술, 주문맞춤 제작 단계에 와있다.





20세기 들어 신발이 패션아이템으로 거듭나면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에 활용했고 어떤 이들은 광적으로 수집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의 아내 이멜다이다. 그녀가 수집한 신발은 3천 켤레가 넘었다. 남성들의 신발 수집도 늘었는데 신발 수집에 있어서도 남녀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 여성의 신발 수집을 과도한 욕망과 소비행위로 치부하는데 반해 남성의 수집은 이윤 창출을 위해 계산된 행위임을 강조한다. 희귀한 스니커즈는 투자수준의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를 반영해 재판매 가격이 수 만달러에 이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주 즐거웠다. 신발의 역사와 문화를 너머 신발이라는 재화 속에 숨은 성차별적 인식태도 등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았다. 사진들을 보며 바타 신발박물관에 입장한 듯했다. 내 어릴 적 신발 기억도 소환해 주었다. 가난을 깨달은 건 중학교 이후였고, 내 어린 시절은 부자였다. 신발 부자! 그 사실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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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테크,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 - 지속 생존을 위한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선언
이병한 지음 / 가디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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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원헬스 개념을 알게 되고부터 지구와 생태계를 구하는 것에 대해 부쩍 관심이 생겼다. <EARTH TECH,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는 역사학자이자 ‘EARTH+’ 대표 이병한씨가 지구를 살리는 기술을 만든 4명의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지구 사업의 현주소와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해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지구를 망치는 하이테크(High Tech)에서 지구를 살리는 딥테크(Deep Tech)로 전향한 이들은 마이셀프로젝트 사성진 대표, 마린이노베이션 차완영 대표, 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 심바이오틱 김보영 대표이다.






"마이셀프로젝트" 사성진 대표는 버섯을 이용하여 대체 고기를 만들고 대체 가죽을 만든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손꼽히는 소고기 대량 생산을 줄이고 향후 100억 인구의 식탁을 책임지게 될 주인공이다. 그는 미생물, 이것이 인류를 보존할 히든카드라고 말한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뉴질랜드 청정육의 이면, 콩고기를 위한 대두 재배 문제, 배양육과 그린 워싱의 문제 등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를 자주 먹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사성진 대표가 만든 버섯고기의 맛은 궁금하다.



"마린이노베이션"의 차완영 대표는 해조류 추출물로 양갱, 해초 샐러드, 후코이단을 생산하고 부산물로는 달걀판과 종이컵, 종이접시 등을 만들고 있다.

인터뷰 후반에 개인사에 대한 부분도 나오는데 차원영 대표의 딸이 생후 1개월부터 희귀병을 앓기 시작했다는 것을 밝혔다. 차대표는 딸의 질병의 원인을 환경(호르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환경 때문에 다른 아이들도 아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금 어른 세대가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부모가 자식의 병을 낫게 하는 심정으로 지구를 지키고 깨끗하게 후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구를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재활용품 분리수거 잘하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지속적인 캠페인 외에 뭔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할 방법은 없을까? 마린이노베이션이 해조류를 이용해 만드는 제품들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이런 제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알려지면 좋겠다. 이 기업에서 스티로폼이 소재인 바다 부표를 해조류로 만들고 있다하고 항공사부터 아이스크림회사까지 주로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업체에 납품하겠다고도 했다.

이렇게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대체할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이미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 지금 사용하는 모든 일회용품이 해조류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실제로 본 적이 없고 어디에서 파는지 잘 모른다. 어서 마트 일회용품 코너에 진열된 이런 제품들을 죄책감 없이 골라 카트에 담고 싶다.


“루트에너지”는 온라인플랫폼을 통해 발전소 직접투자, 건설 관리, 관리 운영, 전력 중개 거래를 하는 기업이다. 윤태환 대표는 에너지 사업에 파이낸스와 로컬커뮤니티를 결합시켰다.




태양광과 풍력은 앞으로 더 확장되어야할 에너지 자원이라는 정도만 알았지 일반인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태양빛과 바람이 어떻게 에너지화 되는지도 모르면서 전기를 숨쉬듯 편하게 잘만 쓴다. 이 인터뷰를 통해 태양광에너지에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업을 하는 업체가 더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활성화된다면 에너지 생산과 재테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도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에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에 나가 상을 받아오면 그린뉴딜정책에 이용하기나 하고 실제 그린뉴딜은 구호만 난무할 뿐 이런 기업들에 실질적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그린뉴딜선언, 탄소감소정책 및 탄소세 같은 기사는 당장에 어떤 변화가 이루어진 것처럼 들렸는데, 현장에서 이런 어려움이 있다니 답답하다.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현장과 정책의 차이를 누가 줄일 수 있을까?

"심바이오틱"의 김보영대표가 농업용 로봇회사를 창업한 사연은 드라마틱했다. 외교관이 꿈이었던 그가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를 놓치고 망연자실하게 앉아있을 때 다가와 말을 건 남자와 결혼한후 강원도 평창에 천 여평이 넘는 땅을 개간해 산삼농사를 시작했다. 엔지니어였던 그 남자는 이탈리아 사람이었고 그의 고향 마을에 따라갔다가 이탈리아 사회적 농장에 반해 한국에서도 실현해보고픈 꿈을 꾸게 된 것이다. 현재 심바이오틱은 무인인공지능트랙터를 필두로 다섯 종류의 농업 및 공업용 로봇을 탄생시켰다.


김보영 대표는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과 협업하는 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 땅에서 만들어낸 기술과 작물로 K-테크를 세계에 알리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농업 로봇은 올 초에 읽은 일본소설 <변두리 로켓>에서 나온 논농사용 트랙터가 전부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농업로봇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심바이오틱에서 만든 트랙터는 험한 산지에서도 넘어지는 일 없이 움직인다고 하니 <변두리 로켓>속 그것보다는 훨씬 업그레이드 된 기술인 것 같다. 김보영씨와 남편 토스케티 지안 마리아씨는 농촌과 미래를 위한 생각을 24시간 내내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처럼 그들의 기술이 농업의 운명을 바꿀 날을 기다려 본다.


평소 문학을 즐겨 읽지만 내가 접하지 못하는 지식이나 세상에 대한 책을 찾아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번 책 <어스테크,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는 기업인을 만난 인터뷰였지만, 관심을 놓지 않고 있던 기후변화 문제, 원헬스 같은 개념들과 연결되는 내용이라서 읽게 되었다. 항상 느끼지만 역시나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고 멋진 사람들도 많다는 걸 또 절감했다.

이병한 저자가 만난 네 명의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 지구를 위하는 일에 헌신하는 태도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부를 축적하고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는 이가 어디 한둘인가.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난 사람들은 높은 이상을 현실에서 이룩하려고 노력하여 어느 정도는 이루어냈다. 단, 그들의 열정적 노력에 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부분은 몹시 아쉬웠다. 이렇게 멀리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의 미래와 지구를 위해 하는 일이 더 잘 실현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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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06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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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리뷰는 창비에서 사전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가공개 전에 작성했습니다**

창비 신간 <나나>는 독특한 마케팅으로 관심을 끌었다. 10월 1일 정식 출간될 이 소설은 제목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출판사에서 공개한 해시태그로 작가를 유추해보는 재미를 주었다. #페인트 #아몬드 #위저드베이커리 는 모두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니 #나나 도 수상작일지 아니면 기존 이 문학상 출신 작가의 신간일지 예상해보았다.

사전 서평단용 표지에 ‘소설Y 대본집 #01’이라는 문구를 넣고 대본집처럼 만들어서 좌우가 아닌 위아래로 넘기게 되어있다. 기존 책과 다른 스타일로 편집을 한 점이 신선했는데 출간될 책도 동일하게 나올지 역시 궁금하다.

#영혼가출 #K-영어덜트 라는 해시태그는 남녀 두 주인공이 고등학생이라서 학생들이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물론 어른에게도 해당된다. 그동안 창비 청소년문학 수상작들이 나이 구분 없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니 이번 책도 그 대열에 합류할 것 같다.

책 내용 외에 다른 설명이 너무 길었다. 그간 사전 서평단으로 받았던 책들과는 구별되는 지점이 있어서 그 소개를 다하려는 욕심이 컸다.

처음부터 사고다! 버스가 가로수를 들이받으며 책이 시작된다. 남녀 고등학생 두 명. 은류와 한수리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오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식물인간 그런 거 아니다. 몸은 다친 데 하나 없이 멀쩡해서 바로 정상생활을 시작하지만 둘의 영혼은 이미 몸에서 나와 있는 상태가 된다. 자신의 몸이 영혼 없이 루틴대로, 몹시도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 지켜보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벙벙하게 지켜보는 둘에게 선령이 다가와 말을 건다. 애들이 깜짝 놀라 저승사자인지 뭐 그런거냐고 묻자 자신은 살아있는 영혼을 사냥한다며 저승사자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고 말한다.(선령 : 사냥할 선獮 영혼 령靈) 선령은 영혼 털린 영혼?에게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시키고 틱틱거림과 토닥임을 같이 하는 츤데레같은 역할을 한다.

둘의 영혼이 일주일 안에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그걸 이 리뷰에서 다 풀수는 없고...

주인공 소개부터~~ 로사여고 2학년 한수리는 엄친딸의 대명사다. 그런데 영혼없이 잘만 살아가는 자신의 몸을 보고 있는 영혼 수리는 답답하고 기막혀 한다. 어서 몸 안으로 들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는 자신이 살아있는 게 죽은 동생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그리 관심이 없다.

여기까지 보면 둘의 상황이 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각자 자신의 삶을 지탱해나가기가 너무나 버거웠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 고등학생의 생각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세계관은 독자의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마음속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인간을 곧 우주라 표현하는 걸까? 너무 광대해서,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어서.

나락 하나에도, 대추 한 알에도 우주가 들어있듯 인간이 곧 우주라고 말한다. 이럴 때 우주와 위의 류가 깨달은 우주는 조금 다르다. 남의 마음을 다 알 수 없기에 우리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 그럼 내 마음은 내 것이므로 잘 아는 걸까? 그게 아니라는 걸 고작 17년 남짓 산 류는 알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물정 다 아는 것 마냥 잘난 체 하면서 정작 제 마음은 잘 모르는 어른들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총체적 난국입니다. 아시겠지만 인간들이 터진 주머니 속 동전처럼 홀랑홀랑 제 영혼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육체는 멀쩡히 살아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괴현상이 영혼을 단단히 키워야 할 십대들에게도 발생할 줄은 몰랐습니다. 멀쩡한 사자를 선령으로 강등하면서까지 제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 하셨지요. 솔직히 말씀드려 뾰족한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

수리는 몹시 조급해하며, 류는 아주 태연합니다. 이렇게 극과 극의 영혼이 동시에 육체를 이탈한 일은 정말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제 피곤이 가중된다는 사실 또한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남은 사흘 안에 개성이 또렷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두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제가 직접 저승으로 인솔할 수밖에 없습니다.

(……)

암울한 소식 중에 티끌만 한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리의 영혼이 드디어 자신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는 것입니다. 류는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한 발 다가섰습니다. 각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듯 보입니다. 결과는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일주일이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요. 평생을 스스로를 잃어버린 채 사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인간이란 본디 쓸데없이 복잡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한 생명체니까요.

[선령의 첫번째 서]

이 책에서 선령이 보고하는 편지는 두 번 나온다. 위는 3분의 1지점에 나오는 첫 번째 편지의 일부이다. 두 번째는 마지막에 나온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지 사이에 수리와 류의 내밀한 심리와 숨겨진 상황이 드러난다. 이 부분을 읽는 독자는 나이에 따라 꽤 다른 결의 감동을 느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를 공감하는 학생들, 부모로서 자식에게 드는 양가감정에 당혹스러워하는 어른들 모두 감정이입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다가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실제로 상대에게 다정하게 대한다면 거창한 독후활동보다 나은 실천적 활동이 될 것이다.

수리와 류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지켜보는 일은 성장과정에서 꼭 필요한 자기객관화 과정이다. 내가 왜 이런 마음이 들고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스스로 관찰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영혼 이탈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작가는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가져보라고 권유한다. 부모 역할, 자식 역할에 매몰되지 말고 한 발짝 물러나 여유를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라고 한다. 세상 누구의 마음보다 알아차리기 힘든 내 마음을 조용히 지켜보라고.

허나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선령의 입을 빌어 말한다.

"사실 자신을 아는 인간은 드물어.”

“인간들은 참 이상해. 점점 더 똑똑해지고 기술은 발전하는데 그럴수록 영혼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늘어나거든. 머리가 똑똑한 것과 영혼이 단단해지는 건 상관관계가 없는 모양이야.”

엄마 카톡 프로필에 올라갈 딸자랑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던 수리, 아픈 동생 때문에 버려질까봐 두려워 예스맨으로 살아온 류는 자신의 영혼을 다잡고 살 수 있게 된다. 일주일간 자신의 몸 밖에서 제 행동을 바라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것임을!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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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고 아는 존재 -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고현석 옮김, 박문호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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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에 의해 작성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라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과학 역시 잘 모르며 물리는 젬병이고 생물과 뇌과학은 조금 관심이 있다. 그래서 과학분야의 책은 일부러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 책 <느끼고 아는 존재>는 제목에 눈 번쩍(어디서 들었던 아는 말 나왔다며!)했고, 색감 이쁜 표지에 혹(느낌에 완전 낚임ㅠ)했으며 감수자 이름(박문호)을 본 순간, 서평단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재미있었느냐?

흠... 이런 과학 책은 재미있기 어렵다.

그럼 쉬웠나?

마지막 역자의 말에서 이 책이 그동안 다마지오의 책 중에 가장 대중적이라서 쉽게 쓰여졌다고 한 말에 깜짝 놀랐다.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 책을 고르게 한 최고 조력자는 박문호 박사다. 올해 초부터 그의 강의를 팟캐스트로 들었는데 과학의 세계를 너무 쉽게 설명해주어 내가 착각한 것이었다. 사실 박문호 박사의 강의는 여러 다른 분야보다 어려워서 몇 번씩이나 다시 듣기를 해야 했다. 왜냐? 한 번만 듣고는 뭔 소린지 당최 모르겠으니까... 지구에서 출발해 인간까지 이어지는, 과학의 전 분야가 통섭되어 있는 내용의 강의는 그 어떤 것보다 재미있었다. 동일한 내용을 듣는데도 들을 때마다 새로운 걸 알게 되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그렇다! 박문호 박사를 몰랐다면, 몇 달 전 인간의 느낌과 의식에 대한 강의를 듣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공포가 몰려왔다. 읽다 잠든 사이에 리뷰를 썼다. 꿈에 리뷰를 쓴 건 처음이었으며 일필휘지로 술술 써내려간 내용이 눈 뜨자 까맣게 클리어되어 버렸다. 그건 분명 악몽이었다. 저자 ‘다마지오’보다 박문호 박사 얘기를 더 많이 하고 리뷰 악몽으로 밑자락을 까는 이유가 혹시나? 크흠... 역시나! 이 책, 어렵다!(역자는 이 저자가 그간 낸 책 중에 가장 쉽다고 했음ㅠㅠ)


그래도!! 나같은 과알못에겐 어.렵.다!!! 그래서 이 리뷰를 읽는 사람이 리뷰만 읽고 말겠다고 해도 내 잘못이 아님을 굳이 강조하고 싶다. 리뷰 때문에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도전 정신 충만한 느낌 좋은 사람! 인정!!ㅎㅎ

역자와 감수자의 말을 인용하여 합리화 해본다...

@ 역자 고현석씨의 말


다마지오의 이번 책은 매우 특이한 책이다. 신경과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인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은 전작들과는 달리 분량이 매우 적은데다 소주제별로 잘게 나눠져 있어 가독성이 매우 높기도 하다. 다마지오의 전작들을 읽은 독자들, 특히 대학 수준의 심리학 또는 신경과학 지식을 가진 독자들은 이 간단하고 짧은 다마지오의 책을 무릎을 치면서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마지오 책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다마지오의 다른 책들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길 바란다.


@ 감수자 박문호 박사의 말


의식을 향한 뇌과학은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통해 물리학과 만나게 될 수 있다. 다마지오는 이미지, 느낌, 의식에 관한 평생의 연구를 이 책에서 간략하고 핵심적으로 설명한다. 이런 책은 한 페이지를 읽고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고 싶다. 우리 자신과 세계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의 숙독을 권하고 싶다.

목차를 보니 이 책에서 꼭 알아야 될 것은 마음과 느낌과 의식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책 내용 인용을 읽다가 용어 때문에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 같아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들을 정리하고 시작한다.

- 비명시적 능력 : 분자 수준 이하의 과정에 기초해 항상성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능력. 단세포생물에게 해당(인지는 하지만 마음과 의식은 없음)

- 바이러스 : 살아있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생명체에 기생해 ‘유사’생명을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모호한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생명체를 파괴하고, 자신의 핵산을 만들어 퍼뜨린다. 생명체에 생기를 부여하는 비명시적 지능의 일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인간의)명시적 지능 : 마음, 느낌, 의식의 도움과 지각, 기억, 추론도 필요로 한다. 그 과정은 유기체가 유기체 안에서 이미지 패턴을 구축하고 저장해야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이미지가 들어있다. 우리 내부의 이미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비전형적이다. 우리가 느낌이라고 부르는 혼합물은 몸 안의 내부기관들의 상태와 연결된 장치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방금 세 문장을 읽고 뭔 말인지 몰라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하지만 책 71쪽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마음의 내용물” 챕터를 나는 ‘인간은 이미징화한 내용물들을 언젠가 아웃풋하기 위해 마음 속에 저장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제 마음의 내용물들은 느낌으로 변화한다. 느낌의 근원은 우리 유기체 내부의 화학적 활동이다. 그 활동으로 우리가 즐겁거나 불쾌한 감정들을 느끼는데 근육섬유와 내부기관 골격계의 움직임(즉 유기체 특정기관의 행동)을 말한다.

느낌은 유기체의 내부에서, 생명의 모든 측면을 관장하는 화학적 활동이 일어나는 몸의 내부 기관들과 체액 수준에서 발생한다. 느낌은 대사 작용과 방어작용을 담당하는 내분비계, 면역계, 순환계에서 발생한다는 뜻이다.

P.118

마음의 내용물인 이미지들은 크게 세 가지 세계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 세계는 우리 주변의 세계다. 이 세계는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환경과 우리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외부 감각을 통해 끊임없이 살피는 사물, 행동 그리고 관계들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두 번째 세계는 우리 안의 오래된 세계다. 이 세계가 오래된 이유는 대사 작용을 담당하는, 진화적으로 매우 오래된 내부 기관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세계는 근골격, 사지와 두개골, 골격근에 의해 보호되고 움직이는 몸의 영역이다.

P.163

느낌의 기능은 생명조절에 도움을 주고 기민한 감시병 역할을 한다. 느낌은 우리 안의 감각(오감의 이미지화), 생존 반응, 신체 반응의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즉 어두운 밤길을 걷는데 뒤따라 오는 발자국 소리(청각)를 듣고 거리감을 알 수 있고, 만약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시각) 몸이 오싹해지며 빠르게 걷는다면 모두 느낌(신체 반응)에 해당된다. 여기서 나아가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data base)하고 있는 범죄자 얼굴과 빠르게 대조해 보는 것까지 가능하다.

여기서 의문이 들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느낌이라고 부른 것은, 감각이라는 아주 일부만 이야기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하다! 동물은 감각은 가지고 있지만 느낌은 없다. 인간에게 느낌은 지능(앎)과 연동된다는 뜻이다. ‘미각의 반은 추억’이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냄새와 맛이 미각의 전부가 아니다. ‘인생 음식’이라 부르는 사례들을 보라. 핀란드의 피오르드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가 끓여먹은 컵라면을 자신 인생 최고의 라면이라고 한 사람이 있고, 어떤 스님은 임종 직전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해주신 팥죽이 먹고 싶다고도 했다. 모두 미각보다는 기억(경험 포함)을 소환하고 있다.

저자는, 느낌은 우리에게 위험과 기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에 따라 우리가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보호한다고 말하며, 느낌이 마음에 사실들을 제공하는 것을 또 다른 기적이라고 부른다. 또한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아는 이유도 느낌에서 왔다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지각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참조 능력과 소유 의식을 구축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할 때다. 우리가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즉 우리 각각이 개인적으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현실의 다른 두 측면에 대해 동시에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느낌이라는 혼합적인 과정에서 표현되는, 오래된 우리 내부 기관들의 화학적 상태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근골격계 내부, 특히 우리 자아의 표면을 고정시켜주는 안정적인 틀이 제공하는 공간적 구조의 상태다.

P.175

저자의 “맺는 말” 중, 단세포생물인 박테리아의 지능과 느낌에 대한 정리와 인간의 과제 일부를 그대로 옮긴다.

p.208~209

박테리아의 지능은 비명시적이다. 이 지능은 유기체의 구조나 주변 세계의 이미지를 담은 마음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 지능은 느낌(유기체의 내부 상태의 척도)이나 그 느낌에서 비롯된 유기체의 소유권 확보(유기체가 자신이 느끼는 그 느낌이 자신에게 속해 있음을 자각한 상태)와 이 소유권 확보로 인해 고유의 관점이 생성되는 과정, 즉 의식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없는 이런 단순한 유기체들은 이 숨겨진 비명시적 능력으로 수십억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공적으로 생존해왔다. 이 능력은 우리 같은 다세포생물에 마음이 개입된 명시적이고 분명한 지능이 출현할 수 있도록 강력한 설계도를 제공했다. 박테리아(그리고 식물)의 이 간단하지만 광범위한 감각/감지 능력은 단순한 유기체들이 온도, 다른 생물체의 존재 같은 자극을 탐지해 방어적으로 그리고 선제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이 소박한 형태의 인지는 후에 명시적 느낌이 마음의 구축에 기여하는 어떤 것의 전구체가 됐다.

p.211

인간의 지능과 감성이 만들어낸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부터 우리가 느끼는 조화로움이나 공포 뒤에는 그와 관련된 행복감, 즐거움, 괴로움, 고통의 느낌이 존재한다. 이런 느낌 뒤에는 항상성 요구를 따르는 생명 상태와 그렇지 않는 생명 상태가 존재한다. 또한 이런 상태 뒤에는 생명 유지와 우주의 항성들과 행성들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화학적, 물리적 과정들이 존재한다.

이런 우선순위를 인정하고 상호의존성을 인식하면 인간이 지구와 지구상의 생명체들에 가하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기후변화와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등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재앙은 지구가 인간으로부터 당한 피해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인정과 인식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큰 문제들에 대한 숙고를 통해 현명하고, 윤리적이고, 실용적이면서도 인간이 점유하고 있는 이 커다란 생물학적 무대를 보존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어쨌든 희망은 남아 있다. 낙관해야 할 이유 역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FEELING & KNOWING>이지만 FEELING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다. 느낌 안에 앎이 포함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느낌을 수 십억년 간 진화해온 산물이라고 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분자화하여 뜯어보며 우리의 경험과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느낌이라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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