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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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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0
어두운 숲속이라 얼굴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미약한 초승달 빛에 반사되어 눈동자가 은은한 인광을 뿜어내고 있다. 그런데 인광의 눈빛이 소의 주검이 아니라 헛간을 뚫어지게 노려본다. 나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다. 은은한 빛을 발하며 헛간을 노려보던 인광이 천천히 돌아가 소의 주검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헛간을 바라본다. 소의 주검과 헛간을 번갈아 보며 망설이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헛간 속의 내가 만약 포수였다면 저 호랑이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저 삭아빠진 나무 울타리 하나뿐이다.
위 서술을 읽어보라. 자연 다큐멘터리 영상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한밤중, 호랑이와 인간이 대치중이다. 헛간 속에 숨어 카메라를 켠 채 호랑이를 찍고 있는 인간, 그리고 낮에 인가 목장의 소를 습격했다가 다시 그 소를 먹으러 온 호랑이다. 호랑이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인간과 금속성 냄새에 신경이 몹시 쓰여 조심스럽다. 인간도 숨을 죽인채 뷰파인더를 통해 호랑이를 응시하고 있다.
p.51
두근거리는 심장박동과 등줄기를 예리하고 타고 오르다 정수리로 빠져나가는 서늘한 기운으로 서로의 존재를 느꼈다. 그것은 육체의 긴장만이 아니라 영혼의 교류 같았다. 렌즈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응시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고,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어렴풋이 서로를 느꼈다. 그 느낌을 통해 위험한 기운이 전해졌는지 몸을 고정한 채 헛간을 바라보던 호랑이가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은은하게 발산되던 인광이 꺼지고 구불거리는 어둠 덩어리가 멀어지더니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 호랑이의 이름은 책 제목의 그 <꼬리>다. 인간과 호랑이 사이는 얼마나 멀까? 저 장면에서 지극히 가까운 물리적 거리에 비해 두 종간에 지켜야할 심리적 거리는 멀다. 그 거리를 유지하길 바라는 둘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아는 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호랑이에게 꼬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 짓는다는 것은 이미 의미 부여가 된 것인데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에게, 글을 읽는 이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를...
시베리아호랑이를 너무도 사랑한 박수용씨는 199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처음으로 시베리아호랑이를 관찰한 후 아예 ‘시베리아호랑이보호협회(STPS)’를 설립했다.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세계 유수의 상을 받았고 그 후 수많은 작품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2011년에 NGO 단체를 설립해 시베리아호랑이를 보호, 연구하는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EBS 다큐멘터리 <시베리아 호랑이-3代의 죽음>을 2011년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이라는 책으로 출간한 이후 이번 <꼬리>는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작가의 말에서 연해주 원시림 속에서 일어나는 야생호랑이들의 애환과 인간과의 갈등, 그 현실들을 다큐로 보다는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글을 ‘논픽션 자연문학’이라고 불렀다. 이 이름이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큐가 논픽션인데 논픽션과 문학이 어떻게 하나의 묶음이 되는지 의아할만 하다.
그러나 리뷰 앞부분에 인용한 두 문단을 읽으면 한 장면이 눈앞에 고스란히 떠오를 것이다. 글자로도 패닝(수평이동), 틸업과 틸다운(상하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책을 읽어본다면 글자에서 오감을 감각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저자가 다큐멘터리 PD라는 장점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이겠지만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은 그 어떤 소설(문학)보다 강렬하다. 아무리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글로 쓴다 해도 누구나 저자처럼 쓰지는 못한다.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웠다.
p.65
수곰이 지나간 다음 날 꼬리가 왔다. 밝은 곳에선 처음 보는 꼬리의 모습이었다. 첫인상이 멀리서 보기에도 중장비 덩어리처럼 장대했고, 숲이 자신의 것인 양 편안해 보였다. 늙은 호박만 한 머리를 성성한 갈기가 둘러쌌고 우람한 어깨뼈는 불쑥 솟아올라 바위처럼 널찍한 등판으로 흘러내렸다. 그 뒤로 길게 내려뜨린 꼬리는 끝만 살짝 치켜세운 채 터벅터벅 걸어왔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발걸음은 크고 묵직했으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좌우로 슬쩍슬쩍 흔들리는 얼굴과 그 속의 커다란 눈동자는 무심한 듯 깊었다. 꼬리의 풍모에는 깊이가 있었고 걸음에는 무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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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베리아호랑이 '꼬리'의 일생과 연해주 '라조자연보호구'의 사계를 숨막히도록 아름답게 그려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글로 표현한 것이 이토록 생생하고 경이로울 수 있다니 놀라웠고, 대자연 속에 살아도 돈에 찌든 인간의 모습을 확인하는 건 부끄러웠다. 이 모든 것을 관찰자적 입장에서 서술하는 저자의 눈길은 왕대호랑이 꼬리에게만큼은 깊이 감정이입한다.
“살아 있는 생명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사람도 호랑이도, 그래서 연민을 느낍니다. 연민은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까닭 없는 아픔이며,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한 번 나면 죽어야 하는 불완전한 것들에 대한 막막한 슬픔입니다. 태어나 먹고살다 사라지는 것들이기만 하면, 아득히 다가오는 사랑입니다.”
그렇다. 그의 행동은 감정이입을 너머 사랑이었다. 영하 30도의 추위에도 비트 속에서 잠복하고, 눈밭에 찍힌 꼬리의 발자국을 뒤따르고, 그의 변을 뒤적여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인간들 손에 죽게 된 꼬리를 살리려고 발을 동동 굴렸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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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꽁꽁 얼리는 시베리아의 추위 속에서 호랑이의 사냥거리는 없다. 인가와의 거리를 유지하다가도 지독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마을로 내려와 개나 소를 잡아먹는다. 호랑이가 인간을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섣부른 총질로 호랑이를 단번에 쓰러뜨리지 못하면 도리어 공격당하게 되고 인육을 맛본 호랑이는 재차 인간을 공격하게 된다. 그런 무참한 상황이 어떤 마을 양봉장에서 벌어졌고 그 호랑이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꼬리가 다른 마을에서 건초창고에 갇히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인가에 들어온 호랑이를 사살하려 했고 저자는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설득을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양봉장 습격한 호랑이가 꼬리가 아니냐며 당장 죽이겠다고 난리를 쳤다. 잘 안 되는 러시아어로 계속 설득하던 저자는 번뜩하고 시간을 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꼬리가 양봉장을 습격한 그 호랑이라면 분명 총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취를 시킨 후 확인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과 의사, 전문가, 사냥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저자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가 꼬리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한다는 것을 약점으로 잡은 것이다.
나는 그들의 뻔뻔함을 예상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많이 보상받고 싶었을 것이다. 이 내용이 나오는 책의 후반부에 이르자 난 이미 저자의 마음과 거의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나도 어떻게든 꼬리를 살리고 싶었다. 저자는 꼬리가 인간의 손이 아닌, 자연에서 살다가 죽기를 바랐다. 그래서 얼마가 들더라도 값을 치르고 꼬리를 자연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마취해 줄 사람이 오기 전까지 저자는 다시 꼬리와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p.219
꼬리는 눈을 천천히 내리깔며 살기를 누그러뜨리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둥근 빛무리가 떠 있는 눈빛 속에 마을 사람들을 노려볼 때의 거친 증오는 걷히고 없었다. 우리 둘은 적의도 의존도 없이 한동안 서로를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뭔가를 갈망하듯 종이 다른 서로를 바라보았다. 꼬리가 눈을 부드럽게 껌뻑거리더니 작고 둥근 귀를 움찔거렸다. 뭉툭한 주둥이를 살짝 들어 작은 콧숨을 두어 번 들이켜 나의 냄새를 맡았다. 안개 낀 목장에서, 억새밭 산막 앞에서 나의 냄새를 맡았듯이 이 건초창고에서 나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꼬리를 좌우로 슬쩍 뒤척였다. 꼬리는 나를 알고 있었다.
마취 후 저자는 꼬리의 몸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눈을 마주한 적은 몇 번 있었으나 이렇게 꼬리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지게 될 줄은 몰랐다. 송곳니보다 어금니가 먼저 썩었으니 아직 사냥하는 데는 무리가 없겠고, 혓바닥이 젊은 호랑이처럼 연분홍색은 아니었지만 나이에 비해 건강했다. 울퉁불퉁한 갈비뼈를 쓰다듬으며 옆구리에 난 20센티미터 가량의 흉터도 발견했지만 총상 자국은 없었다. 꼬리의 결백이 증명된 후 지프에 태워 용의 등뼈 북부로 올라가서 마취를 푸는 주사를 놓았다. 3월의 함박눈이 내린 숲속에서 꼬리는 깨어났다.
p.235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힘없이 둘러보다 고개를 돌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눈송이가 쌓여가는 털북숭이 얼굴의 아련한 눈빛이 안간힘을 다해 나에게 ‘어떻게 된 거지?내가 어디 있는 거야?’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야. 봄도 머지않았어. 이제 더 이상의 갈림길은 없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애써 무심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순간 나는 그가 미소를 흘렸다고 생각했다. 흔들리며 살다가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그 순간을 흘낏 보고 안도하는, 다 안다는 듯한 미소 말이다.
(……)
나를 바라보던 꼬리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앞발 하나를 들어 힘없이 휘젓다가 천천히 앞으로 내려놓았다. 한 발 한 발 흔들리며 내딛는 꼬리의 몸짓에서 늙어버린 육신이 주는 거북함이 느껴졌다. 그는 용의 등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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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꼬리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다가 14개월 후 어떤 산지기가 용의 등뼈를 오르다 호랑이 주검을 발견했다. 호랑이의 두개골 아래 목뼈에 와이어로 된 올가미가 감겨있었다. 숲으로 걸어들어가는 꼬리의 뒷모습을 보며 부디 자연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게 해달라고 빌었건만 결국 인간의 손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태어난 바위굴에서 생을 마감한 호랑이가 꼬리였는지 저자는 어떻게 알았을까?
본 리뷰를 읽고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사람, 영상보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겪는 삶과 죽음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혹시 저자가 설립한 단체에 기부하기를 원한다면 책 구매를 하길 권한다. 작년에 '월말김어준'에 출연한 저자가 개인 기부는 받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