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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릴리아 아센 지음, 곽미성 옮김 / 어떤책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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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젊은 작가의 소설 <파노라마>를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었다. 시간적 배경은 불과 25년 후인 2049년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쟁점들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조금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한 것이라 하겠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했지만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될 정도다.
역자 후기를 보니 작가 ‘릴리아 아센’은 이 작품 이전에 두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대중적으로는 저널리스트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비유적 표현이나 서술에 묘사가 많지 않아서 마치 주인공 형사가 사건을 브리핑하는 것 같더니 역시 저널리스트였다. 논쟁적 소재임에도 추리소설 형식이라 범인을 추론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범인을 맞췄다는 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와 비교하면서 읽었고 소설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지 예상하게 되었다.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다 보니 읽는 속도가 더뎌졌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소설은 아니다. 읽을수록 리뷰가 고민이 되었다. 사건을 자세히 쓰다보면 스포일러로 빠질 것 같은데 어쩌지... 역시 추리소설 리뷰는 어렵다.
사건이 벌어진 2049년 프랑스는 투명화 사회다. 20년 전에 투명화시민운동을 기점으로 행정부를 축소하고 사법부를 해체한 후 모든 사법적 판결은 국민이 직접 토론하고 투표하게 된다. 썩어빠진 우리나라 사법부도 해체해야 하는데! 아니다, 검찰부터 해체해야 한다! 이렇게 초반부터 소설 속 프랑스 사회를 보며 자꾸 우리나라에 대입하게 되었다. 사법적 판결을 국민이 직접 토론해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얼핏 기막힌 발상 같았다. 그런데 투명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의 부정적인 면은 그것에서 시작된다.
투명화 사회는 어떤 사회? 작가의 상상력이 몹시 기발하다고 생각된 부분인데, 국가 정책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 뿐 아니라 모든 건축물을 투명하게 만들어버렸다. 한마디로 유리도시다. 건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태에서는 범죄가 일어날 수 없으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사회다. 물론 이런 시스템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투명사회 바깥에 산다. 투명화사회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런데 범죄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날 일가족 세 명이 사라진 것이다. 이 가족은 실종된 것일까? 숨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살해된 것일까?
형사 엘렌에게 이 사건이 배당되었고 단서를 찾아가는 그녀의 뒤를 나는 바짝 쫓았다. 늘 그렇듯 주변 인물부터 훑는 것이 순서! 엘렌은 그 가족의 친척 및 이웃들을 탐문하면서 실마리를 찾는다. 그리고 유리로 된 집도 샅샅이 뒤져야 한다. 사라질 수 없는 그곳에 혹시 어떤 비밀이 있는지, 집 내부에 범죄 흔적은 없는지. 그런데 감쪽같았다.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 외에도 엘렌과 남편 다비드, 딸 테사와의 관계가 그려지는데 이들 부부관계는 우리나라와 문화적 차이가 있어 공감이 어려운 독자도 있을 것 같고 사춘기 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난제다. 소설의 중반부가 넘어서면 슬슬 의심이 가는 인물들이 드러나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이 나왔다. 그 반전으로 추리해보려고 했으나 워낙에 내 추리력이 일천해서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사라진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 살았을까, 죽었을까? 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힌트는 소설 첫 부분에 나오는 투명화 사회로 만들자는 운동을 하게 된 20년 전 사건이다.
결말에서 작가는 묻는다. 사생활을 오픈하고 살면 범죄 예방이 될까? 범죄 없는 세상은 가능한가? 그런데 이미 우리는 사생활을 SNS에 전시하고 있지 않나. 대부분은 가식적이지만 말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문제도 발생하고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곳곳에 설치된 CCTV에 우리의 동선을 드러내놓고 살고 있다. CCTV가 범죄 예방 효과가 얼마나 되느냐는 문제는 차치하고, 예전보다 범죄 수사가 용이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물리적 움직임만 노출하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에는 개인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으며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들어있는데 이것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수용하고 사는 셈이다. 현재 이런 생활, 지극히 투명하지 않은가?
이 소설에서는 촉법 소년의 범위에 대한 문제도 다루고 있다. ‘촉법 소년’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소설에서 주요하게 다룬 부분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논쟁거리 중 하나다. 촉법 소년을 소재로 한 “소년 심판”이라는 드라마도 만들어졌고, 촉법 소년의 연령을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겠다는 대선 공약도 나왔다. 중학생들의 범죄 수준이 날로 흉악해지고 있으며 촉법 소년은 감옥가지 않는다며 일탈을 넘어선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아이들이 있다.
이 작품은 소설적 재미도 있지만 토론 거리가 많기 때문에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묘사가 두드러지진 않으나 우리의 생활을 성찰할 문장들이 있어서 인용한다.
세상에 나가 빛나려면 너무 많은 돈이 든다.
이 깊은 은둔이 얼마나 좋은가! 나는 깊은 은둔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숨어 살자.
“좋아요”는 디지털로 개사료를 주는 것과 같다.
우리가 완전히 투명하다면 말이야, 너무 투명한 나머지 결국 죽게 되지 않을까?
나는 더 이상 안전을 믿지 않는다. 동물원도 이제는 싫다. 나는 상처받고, 마모되고, 실망하는 삶이 좋다.
알고리즘은 우리를 승인하고, 우리의 믿음을 유지시키고, 선택에 용기를 준다.
나의 언어는 가난합니다, 이미 모든 것이 말해진 세상에서.
무엇도 약속하고 싶지 않아요, 이미 약속된 것이라며.
다시 찾고 싶어요, 언어가 빛나던 그 시대를.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