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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의사 - 영화관에서 찾은 의학의 색다른 발견
유수연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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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다른 주제를 연결한 책들이나 영화평론가의 책을 그동안 꽤 읽어왔다. 인문학이나 철학, 여성등등. 이번에는 의사가 썼는데 믹스커피 출판사에서 나온 <영화관에 간 의사>는 계명대 의대 동산병원 신경과 유수연 교수의 책이다. 과학자나 의사의 눈으로 명화를 보는 책도 인상깊게 읽었는데 의사는 영화를 어떻게 볼지 궁금했다.
이 책에서는 21편의 영화를 4가지의 주제로 분류했다.
1장 죽음과 생이 공존하는 곳
2장 그들은 왜 그렇게 아파했을까
3장 영화 속 질병 이야기
4장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어떤 평론가는 영화를 본 후 바로 감상을 기록하라고 했다. 너무나 빨리 휘발되기 때문에 보고 난 후 바로 쓴 다음 더 자세히 쓰고 싶으면 다시 본 후에 고쳐쓰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책도 그렇지만 영화를 본 후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직업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빼고. 특별히 쓰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영화를 두 번 보는 경우도 별로 없다. 봤던 영화를 나중에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아, 저런 장면이 있었나?’하고 새로운 장면이나 대사를 발견하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영화가 독자의 취향은 아니어도 유명한 영화들이 많기 때문에 21편 중에 본 영화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같은 영화라도 독자가 깨닫지 못한 지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짚어준다. 이런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니 목차를 훑어본 후 자신이 본 영화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감독의 주제지만 그것을 읽어내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를 본 후 다른 사람과 감상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나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딱이다. 의사의 시각에서 보고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객은 생각지도 못할 장면에서 찾아낸 의학적 지식에서 놀라고, 같은 장면을 나와 다르게 보는 이의 해석도 흥미로울 것이다.
저자는 신경과 의사로서 “헤어질 결심”은 ‘운디네의 저주’라고도 불리는 ‘호흡 중추 자동능 장애’라는 질환을 재해석한 의학적 작품이라고 봤다. ‘운디네의 저주’는 ‘잠들었을 때 숨쉬기 힘든 상태’라고 한다. 다리 뇌와 숨 뇌에 위치한 호흡 중추에 이상이 발생하여 호흡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증상이다. 유전자 이상에 의한 선천성 중추 저호흡 중후군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으며 뇌줄중이나 종양 등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생길 수도 있다.
나는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장해준이 송서래를 사랑하게 되는 것에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가 송서래 곁에서 편하게 잘 수 있게 되는 장면이 그가 완전히 그녀에게 빠져들었다고 이해할 뿐이었다. 그런데 ‘운디네의 저주’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과 질병을 연결한 저자의 분석에는 설득당했다.
p.34
비극적인 물의 정령 운디네 전설을 닮았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신비로운 부분은 현대 의학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장해준의 불면증일지도 모릅니다. 수면 장애라는 과학적인 요소가 사랑의 신비를 극대화시키는 소재로 활용되었으니까요.
이런 방식의 의학적 병명은 영화를 감상할 때 흥미롭게 느껴집 니다. 의학의 힘으로 치료될 수 없는 '저주'와도 같은 불면증이, 이 영화의 분위기에 정말 잘 어울리기 때문이죠.
“탑건:매버릭”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저자가 감동했다는 부분에서 나도 공감했다. “탑건”에서 알게 된 새로운 내용은 조종사의 어려움이었다. 조종사는 조종 중 중력가속도에 의해 의식 소실이 일어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G-슈트를 입고 몸을 보호해야 하며 ‘후크 기동’이라 하는 호흡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이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조로증과 소아치매로 오인받았을 것이라는 소견을 냈다.
이외에도 영화를 봤음에도 그것이 질병 때문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올드보이”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매드맥스”였다. 보지 않은 영화 분석 중에 흥미롭게 읽은 것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엘리시움”이다. 이 두 영화는 꼭 한 번 봐야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