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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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경식 선생님과의 인연(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을 언급하고 싶다. 선생님의 글을 처음 만난 지면은 한겨레 신문 고정 칼럼 ‘디아스포라의 눈’이었다. 나는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고 선생님 가족사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정주민으로 평생 살아온 내가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고 고백컨대 그의 시선을 따라가기엔 당시 내 독해력과 배경지식이 너무나 일천했다.

처음 만난 책은 2012년경 <나의 서양음악 순례>였는데 한겨레 칼럼보다는 읽기 쉬웠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기도 했거니와 당시 음악 감상실을 다니면서 접했던 유수의 유럽 음악 축제 영상을 텍스트로 읽으니 활자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세우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서양음악 순례길을 따르며 나는 어느 순간 꿈을 꾸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음악제 현장에서 표를 구하려고 서성이고, 사이먼 래틀의 지휘가 끝난 후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허나 여태 오스트리아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몇 년 후 선생님의 형님이신 서승 교수님과 함께 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겨레 신문에서 주관한 오키나와 답사 기행을 서승 교수님이 인솔하셨고 나는 3박4일 간 교수님 바로 옆에서 배울 기회를 가졌다. 여행 후엔 <옥중 19년>을 읽었다. ‘디아스포라의 눈’을 통해 단편적으로 만났던 가족사의 조각들을 어느 정도 맞추어 보게 되면서 그 가족들, 재일 조선인의 삶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박정희의 파렴치한 정권통치술을 다시금 확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삼형제가 건강하게 활동하고 계신 것에 감사했다.

그 때 나는 읽기만 했지 쓰지 않았기 때문에 빈한한 기억에만 의존해 두 분 선생님과 만났던 일들을 정리해보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였고 그 해 5월 숭례문학당에서 직접 뵙게 되었다. <시의 힘> 작가와의 만남 행사였다.


 

급작스런 별세 소식 후 당시의 후기를 내 블로그에서 찾아 읽어보았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그런지 내용이 그다지 풍성하지 않았다. 독서토론 참가자들이 서평을 써서 제출했고 그것을 선생님께 전달했으며 선생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참가자들끼리 독서토론을 했다. 다시 읽어보니 저자를 만난 상기된 반가움만 느껴지고 내용은 간단했다. 제출한 <시의 힘> 서평은 찾지 못했다. 얼마나 엉성했을지...

그 후 5년이 지나도록 선생님의 글을 접하지 못했다. 한겨레 신문은 절독했으며 중독자처럼 서평단 도서를 신청해 읽고 써내기 급급했고, 재작년부턴 일을 하게 되면서 더 정신없이 살았다. 선생님의 글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내 안에 있었던 걸까? 매체를 통해 서경식, 서승이라는 이름을 접할 때마다 죄책감이 일었다. 2022년에 <서경식 다시 읽기>의 출간 소식을 보고 바로 샀다. 물론 다 읽진 못한 채 책장에 꽂혀 있다가 작년 연말 비보를 듣고 꺼냈다. 이 책에 실린 각기 다른 이들의 기억 속 선생님의 모습과 글 세계를 읽노라니 기획자는 추모 아닌 추모 같은 책을 미리 만들었구나 싶었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의 서평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러나 이 기회에 정식으로 추모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연예인과 비슷해서 독자는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글을 통해 만날 뿐이다. 팬이라면 전작을 통독할 것이고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팬심을 표현할 테다. 나는 서경식 선생님의 팬이라고 말 할 순 없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전작은 아니라도 몇 권은 읽어왔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어떤 사안이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그것은 분명 경계인이라 불리는 선생님의 자리 때문일 것이며 내가 한 번도 위치해보지 못한 곳에서 세상을 볼 기회를 준다. 우리나라 매체나 작가들이 잘 다루지 않는 사안들도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혜안과 통찰 가득한 글을 읽으며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듯 뿌듯함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런 글을 만날 수가 없다니 안타깝고 슬프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이 선생님께서 남긴 마지막 책이 되었다. 이 책의 맺음말 날짜가 2023년 12월 17일이다. 마지막 글을 송고하고 다음날 세상을 등지셨다. 그의 유작을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게 되어 송구한 마음이나 이렇게 서평을 쓰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직접 구매했다면 신경 써서 글을 쓰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지난 5년여간 내가 글을 써온 패턴을 보면 내돈내산 책은 읽기만 하고 쓰지 않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선생님의 글과 같은 글을 만날 수 있을까. 아무리 재일 조선인이라 해도 절대 같은 삶을 산 사람은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읽고 경험하고 사유한 것이 곰삭고 곰삭아 활자화된 그것과 견줄만한 것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선생님의 글을 만날 수 없게 되어 안타깝지만 기 출간된 책들을 찬찬히 곱씹으며 읽어보아야겠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의 역자 최재혁씨는 여는 글에서 선생님이 우려한 바를 이렇게 옮겼다.

‘독자 여러분이 왕복할 세 단위의 시간대’(131쪽) 때문이다. 그건 최근(이자 마지막으로) 미국 땅을 밟았던 2016년, 두 형의 석방과 지원 활동을 위해 미국의 인권단체와 국무부를 방문했떤 1980년대 중‧후반, 그리고 이 책에 담긴 글을 쓰던 2019년~2020년이라는 시점이다. 여기에 역자는 7장과 맺음말 사이에 가로놓인 3년 남짓한 시간을 더했다. 그 사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전쟁과 유혈사태, 민주주의 후퇴 등)이 선생에게 타격이 컸을 거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선생님의 글이 어려웠으나 <나의 서양음악 순례> 이후론 쉽게 느껴졌고 두 형제분을 직접 뵙고 나니 더욱 쉽게 읽혔다. 또 다른 이유라면 지난 5년간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어오기도 했거니와 서평을 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쓰려면 더욱 자세히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서경식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가 유작인 이 책을 읽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역자가 언급한대로 여행한 시간대의 차이가 크고 저자의 가족사 관련 배경지식도 필요하기에 위와 같은 염려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선생은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재일조선인과 자신의 글을 카나리아에 빗댔다. 홍콩이, 벨라루스가, 미얀마가, 우크라이나가 시간이 지날수록 진부해지듯 그의 글과 마음까지 내 속에서 그렇게 진부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카나리아의 비명을 흘려들은 건 아니었을까. 마음이 저려온다.’고 썼다.

이 책으로 서경식을 처음 만난 독자라면 책 속에서 저자가 제공하는 가족사의 정보를 주의 깊게 읽으면 좋겠다. 미국에서 저자가 접한 클래식 음악과 미술작품이나 화가에 대한 내용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미국 내 활동과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은 프리다 칼로에 대해 알고 있는 독자라면 관심있게 읽을 만하다. 혹시라도 서경식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디아스포라의 눈>이나 서승 교수의 <옥중 19년>을 추천한다. 예술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예술과 인문학을 횡단하는 <나의 서양음악 순례>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권한다.

나는 이번 책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부분을 인상깊게 읽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거의 읽지 못한 채 반납한 게 몇 번,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고 결제하지 못한 지 몇 년이 흘러,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경계의 음악>을 구매해서 책장에 꽂아둔 게 작년이다. 그런데 <나의 미국 인문 기행>에서 사이드를 선생님의 설명으로 읽으니 반갑기 그지없었고 이제는 사이드의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본격적으로 그의 책을 탐독할 때가 온 듯하다.

6장 아메리카Ⅰ‘에드워드 사이드’에는 컬럼비아 대학 로 메모리얼 도서관 앞에서 사이드가 장 주네의 연설을 보며 느꼈던 바를 술회하는 문장이 오른쪽(193쪽)에 있고, 왼쪽(192쪽)에는 그 도서관 앞에 선 선생님의 사진이 있다. 2003년 선생님은 사이드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무산되었고 그 해 9월 사이드의 사망으로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 아쉬움이 이 페이지에서 느껴졌다.


사이드는 팔례스타인계 아랍인이자 기독교인, 미합중국 국민이었고 문화 연구 분야에서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경계의 음악>을 간단하게 소개하며 언급한 아래 내용에 나는 크게 공감했다. ​

좋은 음악을 듣고 마음이 움직일 때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그 감명이 어디서 왔는지 파고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좋은 대화 상대를 만나기란 좋은 음악을 듣는 것 이상으로 무척 어렵다. 사이드 스스로가 이야기했듯 음악이라는 예술이 “가장 말이 없으며” “가장 닫힌” “가장 논하기 힘든 분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대화의 상대는 풍부한 감성과 자유로운 정신을 소유해야할 뿐 아니라 음악 이론에도 정통하여 음악을 문학이나 정치 같은 다른 분야와 관련하여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사이드야말로 그런 인물이었다.

p.199

음악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는 싶지만 그런 사람(좋은 대화 상대)가 주위에 거의 없기에 클래식 책을 찾아 읽으며 저자의 생각을 알고 싶고, 음악 감상실에 가서 선생님의 추천을 길라잡이 삼고 싶다. 그러나 내 수준으론 음악을 문학이나 정치 같은 다른 분야와 관련하여 해독할 능력이 없기에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이젠 사이드의 음악 관련 책에 도전해보고 싶다. <경계의 음악> 속의 글렌 굴드의 평론으로 시작해야겠다.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에서, 제2 빈 악파가 난민의 음악이라고 정의한 부분이 209쪽에 인용되어 있다. 선생님은 크게 동감하며 ‘절반의 타자’로서 서양음악과 접하고 바로 그 위치에서 새로운 보편성을 향해 도달하고자 한다면서 그 지점이 사이드와 자신의 공통점이라고 밝혔다. 선생님은 사이드의 좋은 독자는 아니었으나 1990년대에도 사이드를 읽지 않았다면 정신적으로 방황했을 테고 혼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즐겨 읽었다는 <펜과 칼>은 아르메니아 난민 출신 ‘데이비드 버사미언’이 사이드를 다섯 차례 인터뷰한 책으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엔 문제에 관한 가장 좋은 입문서라고 한다.

이 책에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에 관여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 투쟁이 이런 여러 운동 가운데 핵심이었던 까닭은 그 투쟁이 정의에 관해 되묻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의지의 문제였습니다.

이를 한 편의 시와 같다고 하면서 선생님은, “사람은 승리를 약속받았기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넘쳐나는 불의가 승리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해 되묻고, 허위가 뒤덮고 있기에 진실을 위해 싸운다. 단적으로 말해 사이드는 우리에게 현대를 살아가는 자에게 있어 도덕의 거처는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고 썼다.

이어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을 소개하면서 디아스포라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았다. 사이드가 자신의 성과 이름에서 느낀 위화감을 선생님은 너무나 잘 이해했다. 사이드가 미합중국 국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선택했다면 편하게 살았겠지만 ‘팔레스타인인’의 일원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선택했으나, 자의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이드는 고독했다. 미국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으며 두 곳 모두에서 이방인이었다. 선생님은, 사이드와 마찬가지로 어떤 공동체에서도 동조자를 얻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바 그들은 저마다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정표나 등대와 같았던 사이드의 부재를 ‘거대한 상실’이라고 썼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서경식이라는 부재 역시 ‘거대한 상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6,7장 전체를 사이드에 할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20여년 전 사이드와 선생님이 만났더라면 디아스포라에 관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얼마나 날카롭고 진지한 대담이 이루어졌을까. 그 때 성사되지 못한 만남에 대한 아쉬움과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아온 선생님이 많은 부분 자신과 유사한 사이드에 대해 미국 인문 기행 안에 길게 다룬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서경식의 삶을 이번 책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행운이다. 이제 모두 세상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저작으로 만날 수 있으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둘의 책으로 병렬 독서할 계획을 설레는 마음으로 세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영면을 빌며 이 글을 선생님 영전에 바치고 싶다.

책을 제공해준 반비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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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떤 꿈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오십에 발레를 시작하다
정희 지음 / 꿈꾸는인생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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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습니다. 계속 도전하세요."

그는 자신을 돌보기보다 습관처럼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을 먼저 챙겼고 엉덩이뼈가 골절된 줄도 모르고 참으며 명절을 지냈다.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나이가 들었다해서 그 꿈을 잊은 건 아니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 남아있던 미약한 불씨를 끝끝내 살려낸 이들도 있다. 물론 그들의 도전이 직업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저자가 발레리나가 되려고 발레를 시작한 건 아니듯 말이다.

책 <어떤 꿈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를 단순히 ‘중년 여성의 발레 도전기’라는 이름 안에 가둘 수 없다. 발레와 글쓰기를 비교하는 내용뿐 아니라 발레를 배우는 과정에서 깨달은 삶의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의 크기를 독자에 따라 다르게 느낄 것이다. 나는 저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슷한 연배에 같은 직종이라서 그럴까, 사고 방식까지 너무나 흡사했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친정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발레를 시작한 후로 나의 글쓰기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둘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그렇다. 발레와 글쓰기, 둘 다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다. 그냥 좋아서 한다. 당장 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하는 동안은 무척 힘들다, 그런데도 계속한다, 심지어 가끔은 짜릿하게 재미있다. 인생에 이런 건 하나로 족하련만 나에겐 둘이나 있다. 발레는 올바른 자세와 내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지, 대체 글쓰기는 왜 이렇게나 오래 이어지는 걸까. 나는 왜 글을 쓰는지, 나에게 글은 무엇인지가 늘 궁금했다.

p.149

위 꼭지에서 내 고질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유사한 인생여정을 밟아왔는데 그러한 삶을 책으로 펴내는 이가 있고 그러지 못하는 (나같은)사람이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글을 왜 쓰는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건가?

몇 년 전부터 계속 고민해왔는데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 그는, 75세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구로다 나쓰코'를 예로 들면서 "도무지 이길 수 없는 마음의 충동" 이라고 했다. '어딘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 비슷한 경험 속에 피어오른 낙심을 위로하고 행복은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글쓰기로 이끈'단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1인 여기 있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행복을 나누고 싶은 마음?

나는 그런 마음으로 쓰는가?

내가 블로그에 발행하는 글은 대부분 책 리뷰이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쓴 게 아니다. 그럼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경험 속에 피어오른 낙심을 위로하고 행복은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 을 들게 할까...

모르겠다.

그러나 합리화 해본다.

내가 쓴 책 리뷰가 누군가에겐 어떤 의미로든 도움이 된다면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그러려면 진심어린 리뷰이어야 할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예전 작가 교실에 다니며 들었던 말을 잊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좋은 문장 ,멋진 캐릭터, 탄탄한 플롯도 중요하지만 더 강한 것은 글에 들어 있는 에너지'라는 의미의 문장이었다. 다른 작가들의 수려한 문장에 기죽고, 너무 평범한 것 같은 자신의 이야기에 주눅들 때마다 제 안의 진심과 에너지를 똘똘 뭉쳐서 한 꼭지 한 꼭지 담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나는 내 글에 진심과 에너지를 담으려 했는지 생각해본다. 책 리뷰에 100프로 담기 어렵다면 이젠 다른 글을 써야 할 때가 아닌가. 무엇이 되었든...

발레가 전해 준 깨달음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결과라 해도 시작하고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얻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과 삶을 원하는 대로 꾸려 간다는 자긍심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됐다.

p.218

나는 지금 뭘하고 있는건가? 답답했던 내게,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꾸려간다면 충분히 의미있다는 말은 꽤나 위로가 되었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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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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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의 연작 소설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출간 기념 무크지를 서평단 자격으로 받았다. 미니북의 사이즈는 조그마해도 구성은 가히 알차다. 작가와의 인터뷰와 기고글,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에 대한 다른 작가들의 촌평, 그리고 단편 문어까지 실려 있다.


정보라 작가는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에 이어 2023년 국내 최초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유명해졌고 나도 그의 소설을 여러 편 읽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해양 생물을 주제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었다고 하여 팬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무크지라는 걸 알면서도 서평단에 신청했고 이런 구성의 편집본이라면 땡큐다!


그의 소설은 이상하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다큐 같고, SF라는 걸 뻔히 아는데도 정말 그럴 것 같고, 문장이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는데도 숨가쁘게 읽고 싶게 만든다. 이번 무크지에서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의 각 단편 소개를 읽으며 아, 출판사에 낚였구나! 싶었다. 각각의 해양 생물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모두 궁금해졌으니 말이다. 즉 책을 사서 읽어볼 수밖에 없게 미끼를 던진 거였다. 나는 개복치가 가장 궁금하다. 인형을 좋아하는 11살 남자아이 선우가 개복치를 만나면서 어떻게 달라졌을지.


무크지에 전문이 실린 문어에는 작가가 남편을 만난 사연이 등장한다. 인터뷰에서 남편과의 만남을 읽고 소설을 읽으니 어쩐지 소설 같지가 않았다. 외계생명체인 문어가 대학교에 나타났는데 위원장님이 그걸 삶아 먹어버렸다. 거대 문어 씻는 것을 도왔던 시간강사인 나와 위원장님은 정체모를(국정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에 의해 잡혀가서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한다. 자신이 겪은 일을 계속 말해야 하는 게 고문이라면 고문. 당장의 소개를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어 보이겠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독자를 그 대학 농성장으로 기어코 끌어다 앉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실천하는 사람이다.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행동해왔다. 또한 우리 사회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곳에도 참여하고 있다. 소설이나 글로는 무슨 말인들 못하랴. 말로는 떠들어대기만 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봐왔다. 그러나 정보라 작가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의 글이 소설임에도 설득력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몇 년전부터 의구심을 품어온 게 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뭐하나. 사회 문제를 알면 뭐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나 제약적이고(실천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건 없는데 글로 쓰는 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대학도 자본주의 논리로만 작동되니 문어에서 '나'와 '위원장님'은 투쟁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난 뭐하는 건가 싶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난 주 정희진 선생의 강의를 듣다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답을 들었다. 내 생각과 비슷한 질문을 한 독자가 있었는데 선생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잘 하고 있다고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책을 좀 사십시오!“


질문자 한 명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좋은 책을 사는 행위도 실천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보라 작가가 펼치는 해양 생물과 투쟁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사서 보아야겠다. 문어 외에도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작가의 시댁 이야기와 포항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아맞혀보고 싶다. 내 친구가 살고 있는 포항에 가본지도 10년이 넘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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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창창 - 2024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우수선정도서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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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호, 누가 여자 이름일거라고 생각할까? 나는 설재인 작가의 신작 소설 <별빛 창창>의 소개를 읽고 서평단에 신청하면서 아들이 엄마 대신 드라마 쓰는 이야기일 것 같다는 착각어린 주접을 당당하게 늘어놓았다. 책을 받아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다짜고짜 곽용호라는 이름 소개로 시작하더니 느닷없이 신파어린 모녀지간 서사를 극혐한다는 서술이 나오기에 갑자기? 누구, 다른, 아니, 할머니랑 엄마 얘긴가? 했다.


그러니까 나는 참말로 눈치 없는 인간이었던거다. 작가가 대놓고 시작부터 이름 풀이를 해준 까닭은 이 주인공 남자 아님 주의!를 주려고 한 건데도 못 알아먹은 거였다. 그래서 정신차리고, 곽용호 모친이자 인기 드라마 작가이신 곽문영씨 실종사건에 몰입했다. 갑자기! 대체 왜? 사라진 건지,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는데 엄마의 담당 피디 오혜진이 찾아와 한단 소리, 계약했던 드라마 대본을 써달라고! 어떻게?


용호는 평생 유명 엄마 그늘에서 비교인지 질시인지 부러움인지 알 수 없는 눈초리들로 버거웠고, 대본만 써대느라 바쁜 엄마에게선 따뜻한 엄마의 보살핌 같은 건 받아본 적도 없었던 지라 모녀지정 같은 건 언감생심이었는데, 저더러 엄마 대신 대본을 써달라고? 엄마인척 글을 쓰라고? 곽용호는 머릴 굴렸다. 그리고 떠오른 이는 바로 함장현! 고등학교 때 친구이자 첫사랑이었던, 저보단 글쓰기 능력이 훨씬 좋았던 국문학과 출신 장현에게 공동 집필을 제안한다. 장현은 엄마의 병수발과 알바로 바쁘지만 그 고운 성정대로 용호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고, 둘은 곽문영의 이름으로 대본을 쓰기에 이르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너무나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두고보자 하는 심정으로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곽문영 작가의 실종인지 가출인지의 의도가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물아홉 되도록 태몽과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게, 지질하게 살고 있는 딸에게 능력있는 엄마가 기회를 주고 싶어서 일부러 잠적한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중반부에서 엄마를 찾을 듯 말듯 하면서 광혜암이라는 정체모를 암자로 배경이 슬그머니 옮아가는 것이 좀 이상했다. 이야기가 갑자기 어디로 가려는 거지?


출판사의 책 소개는 앞날 창창한 청춘들의 이야기였는데 중반이 넘어가면 치매환자와 돌봄이 주된 내용이다. 용호가 그간 궁금해 하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의 서사도 알게 된다아빠 사연은 아예 없고 용호와 엄마와의 관계 서사 뿐이다. 그러면서 용호가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는 진부함을 몸서리치게 싫어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초반부에 엄마와 딸이 서로 사랑해 안달하는 서사를 환멸한다는 용호의 생각대로 마무리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젊은 시절 자신을 임신한 엄마를 만난 용호는 그녀를 광혜암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녀는 용호에게 묻는다.

안전하고 온전한 사랑이란 게 생각보다 되게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용호는 엄마에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이렇게 답한다.

언젠가는 찾게 될 거예요. 지금이 아니더라도.”


용호는 그간 무수히 들었던 바로 그 태몽을 꾼다. 그리고 저가 없었다면 곽문영은 그토록 악착같이 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녀간에 얼싸안고 울며불며 화해하는 씬은 다행히 막았고, 꿈에서 젊었을 때 엄마를 만나 대화를 나눈 훈훈함으로 마무리 되었다.


우린 가족이라서 너무나 잘 안다고 장담하지만 기실 전혀 모른다. 용호는 자신의 재능이 화를 잘 내는 거라고 오혜진에게 말하면서 깨닫는다. 그 많은 화를 가장 쉽게 발산할 대상이 그저 그 한 사람 뿐이었다고, 가족이니까 함부로 했다고. 용호의 화해와 깨달음은 평생을 가족들을 보살피는 일을 우선으로 하면서 살아온 모든 엄마들에게 딸 대표로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억을 잃어서도 숙명처럼, 그들은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챙기고 돌본다. 광혜암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곽문영 작가가 그곳을 일종의 기관처럼 만든 것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돌봄 노동의 문제와 우리 사회의 허술한 돌봄 시스템 등등.


설재인 작가는 이번 소설에 많은 것을 넣고 싶었던 모양이다. 창창한 미래가 기대되는 청년 용호, 장현, 민호의 서사와 살짝 맛만 보여준 동성애 코드에 돌봄 문제까지. 여러 방향으로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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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문학동네 청소년 68
문이소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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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마지막 히치하이커>로 제4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한 문이소 작가의 신작 <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을 서평단 자격으로 읽었다. 처음 제목을 들으면, 정체를 밝히기 어려운 주인공이 등장하려나? 것도 국가 기밀이라잖은가. 작가의 의도에 발맞춰 될 수 있는 대로 비밀로 하겠다는 독자의 태도로 책장을 열었다.


오홋! 이 작가, 상상력이 아주 기발하구나! 고개 갸웃할 독자들이 있을 줄 알고 가뿐하게 배경은 미래로~

소재도 아주 톡톡 튀는 걸. 요런 주인공들이 나와 이런 일들을 할 줄은 몰랐지롱?

유행은 따라줘야 제 맛! AI들 자연스레 등장하고, AI는 우리의 주인공을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 아니다! 단 한 존재~~


이 소설집에는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제목도 그러하지만 주인공들도 기발하다. 22세기에서 온 종균도둑 이야기의 제목은 <소녀 농부 깡지와 웜홀 라이더와 첫사랑 각성자>, AI 초상화를 그리게 된 무명 화가와 그 화가만을 경배하는 AI가 등장하는 소설의 제목은 <젤리의 경배>, 유튜버 유영과 자신의 기억을 찾아 지구에 온 외계인의 이야기는 <유영의 정체>, 생의 마지막을 다루는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 가출한 반려로봇과 캣맘이 새끼 길고양이를 거두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의 제목은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이다.


제목만 봤을 때 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예측 불가였다. 읽다 보면 코믹, 황당, 애잔, 따뜻한 여러 감정들이 울뚝불뚝 솟아오른다. 그래서 정리가 잘 안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편을 읽은 후 바로 다음 소설로 넘어가지 않길 바란다.(먼저 읽어본 사람의 조언~)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가 뭘지 작가의 의도를 한 번 생각해보고, 재미있었던 장면을 떠올리거나 어떤 점에 공감이 되었는지 생각해 본 후 다음 소설을 읽으면 생각이 뒤죽박죽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을 인상깊게 읽었다. 임종을 처리해주고 가족에게 그 마지막이 어땠는지 전달해주는 회사 이토록 좋은 날이 보고한 세 건의 죽음은 숙연하게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꾸고 싶은 꿈은 어떤 것일까.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을 것이다. 그 중 개 흰돌이의 꿈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편안한 잠에 빠지며 마지막을 맞는다. 순전히 인간의 관점으로 쓰인 개의 행동과 생각이지만 분명 저러할 것이라 믿고 싶다. 마찬가지로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의 어린 엄마고양이 누더기 여사의 묘생과 안타까운 마지막도 십분 이해되었다.


동물과 인간, 인간과 AI, 현생인류와 미래 인류, 그리고 외계인까지! 이 소설은 인간 외에 관계 맺을 수 있는 다양한 존재들과의 이야기를 재미있는 소재를 활용해 다루고 있다. 작가는 깊숙이 숨겨둔 생각거리들을 독자가 찾아내주길 바라는 게 아닐까. 인간이 이 생태계에 저지른 잘못들이 많지만 더 이상하지 말기를, 지금 곁에 있는 존재들을 제발 지켜주길, 인간 본연에 자리잡고 있다고 믿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 그러겠습니다~~

하찮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들을 찾아내고야 마는 작가라고 하니 더 기발하고 유쾌한 이야기로 또 찾아와주시길!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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