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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창창 - 2024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우수선정도서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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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호, 누가 여자 이름일거라고 생각할까? 나는 설재인 작가의 신작 소설 <별빛 창창>의 소개를 읽고 서평단에 신청하면서 ‘아들이 엄마 대신 드라마 쓰는 이야기’일 것 같다는 착각어린 주접을 당당하게 늘어놓았다. 책을 받아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다짜고짜 곽용호라는 이름 소개로 시작하더니 느닷없이 신파어린 모녀지간 서사를 극혐한다는 서술이 나오기에 갑자기? 누구, 다른, 아니, 할머니랑 엄마 얘긴가? 했다.
그러니까 나는 참말로 눈치 없는 인간이었던거다. 작가가 대놓고 시작부터 이름 풀이를 해준 까닭은 이 주인공 남자 아님 주의!를 주려고 한 건데도 못 알아먹은 거였다. 그래서 정신차리고, 곽용호 모친이자 인기 드라마 작가이신 곽문영씨 실종사건에 몰입했다. 갑자기! 대체 왜? 사라진 건지,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는데 엄마의 담당 피디 오혜진이 찾아와 한단 소리, 계약했던 드라마 대본을 써달라고! 어떻게?
용호는 평생 유명 엄마 그늘에서 비교인지 질시인지 부러움인지 알 수 없는 눈초리들로 버거웠고, 대본만 써대느라 바쁜 엄마에게선 따뜻한 엄마의 보살핌 같은 건 받아본 적도 없었던 지라 모녀지정 같은 건 언감생심이었는데, 저더러 엄마 대신 대본을 써달라고? 엄마인척 글을 쓰라고? 곽용호는 머릴 굴렸다. 그리고 떠오른 이는 바로 함장현! 고등학교 때 친구이자 첫사랑이었던, 저보단 글쓰기 능력이 훨씬 좋았던 국문학과 출신 장현에게 공동 집필을 제안한다. 장현은 엄마의 병수발과 알바로 바쁘지만 그 고운 성정대로 용호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고, 둘은 곽문영의 이름으로 대본을 쓰기에 이르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너무나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두고보자 하는 심정으로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곽문영 작가의 실종인지 가출인지의 의도가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물아홉 되도록 태몽과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게, 지질하게 살고 있는 딸에게 능력있는 엄마가 기회를 주고 싶어서 일부러 잠적한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중반부에서 엄마를 찾을 듯 말듯 하면서 광혜암이라는 정체모를 암자로 배경이 슬그머니 옮아가는 것이 좀 이상했다. 이야기가 갑자기 어디로 가려는 거지?
출판사의 책 소개는 앞날 창창한 청춘들의 이야기였는데 중반이 넘어가면 치매환자와 돌봄이 주된 내용이다. 용호가 그간 궁금해 하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의 서사도 알게 된다. 아빠 사연은 아예 없고 용호와 엄마와의 관계 서사 뿐이다. 그러면서 용호가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는 진부함을 몸서리치게 싫어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초반부에 엄마와 딸이 서로 사랑해 안달하는 서사를 환멸한다는 용호의 생각대로 마무리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젊은 시절 자신을 임신한 엄마를 만난 용호는 그녀를 광혜암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녀는 용호에게 묻는다.
“안전하고 온전한 사랑이란 게 생각보다 되게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용호는 엄마에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이렇게 답한다.
“언젠가는 찾게 될 거예요. 지금이 아니더라도.”
용호는 그간 무수히 들었던 바로 그 태몽을 꾼다. 그리고 저가 없었다면 곽문영은 그토록 악착같이 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녀간에 얼싸안고 울며불며 화해하는 씬은 다행히 막았고, 꿈에서 젊었을 때 엄마를 만나 대화를 나눈 훈훈함으로 마무리 되었다.
우린 가족이라서 너무나 잘 안다고 장담하지만 기실 전혀 모른다. 용호는 자신의 재능이 화를 잘 내는 거라고 오혜진에게 말하면서 깨닫는다. 그 많은 화를 가장 쉽게 발산할 대상이 그저 그 한 사람 뿐이었다고, 가족이니까 함부로 했다고. 용호의 화해와 깨달음은 평생을 가족들을 보살피는 일을 우선으로 하면서 살아온 모든 엄마들에게 딸 대표로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억을 잃어서도 숙명처럼, 그들은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챙기고 돌본다. 광혜암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곽문영 작가가 그곳을 일종의 기관처럼 만든 것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돌봄 노동의 문제와 우리 사회의 허술한 돌봄 시스템 등등.
설재인 작가는 이번 소설에 많은 것을 넣고 싶었던 모양이다. 창창한 미래가 기대되는 청년 용호, 장현, 민호의 서사와 살짝 맛만 보여준 동성애 코드에 돌봄 문제까지. 여러 방향으로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