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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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의 연작 소설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출간 기념 무크지를 서평단 자격으로 받았다. 미니북의 사이즈는 조그마해도 구성은 가히 알차다. 작가와의 인터뷰와 기고글,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에 대한 다른 작가들의 촌평, 그리고 단편 문어까지 실려 있다.


정보라 작가는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에 이어 2023년 국내 최초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유명해졌고 나도 그의 소설을 여러 편 읽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해양 생물을 주제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었다고 하여 팬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무크지라는 걸 알면서도 서평단에 신청했고 이런 구성의 편집본이라면 땡큐다!


그의 소설은 이상하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다큐 같고, SF라는 걸 뻔히 아는데도 정말 그럴 것 같고, 문장이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는데도 숨가쁘게 읽고 싶게 만든다. 이번 무크지에서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의 각 단편 소개를 읽으며 아, 출판사에 낚였구나! 싶었다. 각각의 해양 생물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모두 궁금해졌으니 말이다. 즉 책을 사서 읽어볼 수밖에 없게 미끼를 던진 거였다. 나는 개복치가 가장 궁금하다. 인형을 좋아하는 11살 남자아이 선우가 개복치를 만나면서 어떻게 달라졌을지.


무크지에 전문이 실린 문어에는 작가가 남편을 만난 사연이 등장한다. 인터뷰에서 남편과의 만남을 읽고 소설을 읽으니 어쩐지 소설 같지가 않았다. 외계생명체인 문어가 대학교에 나타났는데 위원장님이 그걸 삶아 먹어버렸다. 거대 문어 씻는 것을 도왔던 시간강사인 나와 위원장님은 정체모를(국정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에 의해 잡혀가서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한다. 자신이 겪은 일을 계속 말해야 하는 게 고문이라면 고문. 당장의 소개를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어 보이겠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독자를 그 대학 농성장으로 기어코 끌어다 앉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실천하는 사람이다.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행동해왔다. 또한 우리 사회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곳에도 참여하고 있다. 소설이나 글로는 무슨 말인들 못하랴. 말로는 떠들어대기만 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봐왔다. 그러나 정보라 작가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의 글이 소설임에도 설득력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몇 년전부터 의구심을 품어온 게 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뭐하나. 사회 문제를 알면 뭐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나 제약적이고(실천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건 없는데 글로 쓰는 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대학도 자본주의 논리로만 작동되니 문어에서 '나'와 '위원장님'은 투쟁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난 뭐하는 건가 싶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난 주 정희진 선생의 강의를 듣다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답을 들었다. 내 생각과 비슷한 질문을 한 독자가 있었는데 선생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잘 하고 있다고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책을 좀 사십시오!“


질문자 한 명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좋은 책을 사는 행위도 실천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보라 작가가 펼치는 해양 생물과 투쟁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사서 보아야겠다. 문어 외에도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작가의 시댁 이야기와 포항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아맞혀보고 싶다. 내 친구가 살고 있는 포항에 가본지도 10년이 넘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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