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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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경식 선생님과의 인연(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을 언급하고 싶다. 선생님의 글을 처음 만난 지면은 한겨레 신문 고정 칼럼 ‘디아스포라의 눈’이었다. 나는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고 선생님 가족사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정주민으로 평생 살아온 내가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고 고백컨대 그의 시선을 따라가기엔 당시 내 독해력과 배경지식이 너무나 일천했다.

처음 만난 책은 2012년경 <나의 서양음악 순례>였는데 한겨레 칼럼보다는 읽기 쉬웠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기도 했거니와 당시 음악 감상실을 다니면서 접했던 유수의 유럽 음악 축제 영상을 텍스트로 읽으니 활자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세우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서양음악 순례길을 따르며 나는 어느 순간 꿈을 꾸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음악제 현장에서 표를 구하려고 서성이고, 사이먼 래틀의 지휘가 끝난 후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허나 여태 오스트리아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몇 년 후 선생님의 형님이신 서승 교수님과 함께 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겨레 신문에서 주관한 오키나와 답사 기행을 서승 교수님이 인솔하셨고 나는 3박4일 간 교수님 바로 옆에서 배울 기회를 가졌다. 여행 후엔 <옥중 19년>을 읽었다. ‘디아스포라의 눈’을 통해 단편적으로 만났던 가족사의 조각들을 어느 정도 맞추어 보게 되면서 그 가족들, 재일 조선인의 삶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박정희의 파렴치한 정권통치술을 다시금 확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삼형제가 건강하게 활동하고 계신 것에 감사했다.

그 때 나는 읽기만 했지 쓰지 않았기 때문에 빈한한 기억에만 의존해 두 분 선생님과 만났던 일들을 정리해보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였고 그 해 5월 숭례문학당에서 직접 뵙게 되었다. <시의 힘> 작가와의 만남 행사였다.


 

급작스런 별세 소식 후 당시의 후기를 내 블로그에서 찾아 읽어보았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그런지 내용이 그다지 풍성하지 않았다. 독서토론 참가자들이 서평을 써서 제출했고 그것을 선생님께 전달했으며 선생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참가자들끼리 독서토론을 했다. 다시 읽어보니 저자를 만난 상기된 반가움만 느껴지고 내용은 간단했다. 제출한 <시의 힘> 서평은 찾지 못했다. 얼마나 엉성했을지...

그 후 5년이 지나도록 선생님의 글을 접하지 못했다. 한겨레 신문은 절독했으며 중독자처럼 서평단 도서를 신청해 읽고 써내기 급급했고, 재작년부턴 일을 하게 되면서 더 정신없이 살았다. 선생님의 글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내 안에 있었던 걸까? 매체를 통해 서경식, 서승이라는 이름을 접할 때마다 죄책감이 일었다. 2022년에 <서경식 다시 읽기>의 출간 소식을 보고 바로 샀다. 물론 다 읽진 못한 채 책장에 꽂혀 있다가 작년 연말 비보를 듣고 꺼냈다. 이 책에 실린 각기 다른 이들의 기억 속 선생님의 모습과 글 세계를 읽노라니 기획자는 추모 아닌 추모 같은 책을 미리 만들었구나 싶었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의 서평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러나 이 기회에 정식으로 추모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연예인과 비슷해서 독자는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글을 통해 만날 뿐이다. 팬이라면 전작을 통독할 것이고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팬심을 표현할 테다. 나는 서경식 선생님의 팬이라고 말 할 순 없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전작은 아니라도 몇 권은 읽어왔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어떤 사안이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그것은 분명 경계인이라 불리는 선생님의 자리 때문일 것이며 내가 한 번도 위치해보지 못한 곳에서 세상을 볼 기회를 준다. 우리나라 매체나 작가들이 잘 다루지 않는 사안들도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혜안과 통찰 가득한 글을 읽으며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듯 뿌듯함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런 글을 만날 수가 없다니 안타깝고 슬프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이 선생님께서 남긴 마지막 책이 되었다. 이 책의 맺음말 날짜가 2023년 12월 17일이다. 마지막 글을 송고하고 다음날 세상을 등지셨다. 그의 유작을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게 되어 송구한 마음이나 이렇게 서평을 쓰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직접 구매했다면 신경 써서 글을 쓰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지난 5년여간 내가 글을 써온 패턴을 보면 내돈내산 책은 읽기만 하고 쓰지 않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선생님의 글과 같은 글을 만날 수 있을까. 아무리 재일 조선인이라 해도 절대 같은 삶을 산 사람은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읽고 경험하고 사유한 것이 곰삭고 곰삭아 활자화된 그것과 견줄만한 것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선생님의 글을 만날 수 없게 되어 안타깝지만 기 출간된 책들을 찬찬히 곱씹으며 읽어보아야겠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의 역자 최재혁씨는 여는 글에서 선생님이 우려한 바를 이렇게 옮겼다.

‘독자 여러분이 왕복할 세 단위의 시간대’(131쪽) 때문이다. 그건 최근(이자 마지막으로) 미국 땅을 밟았던 2016년, 두 형의 석방과 지원 활동을 위해 미국의 인권단체와 국무부를 방문했떤 1980년대 중‧후반, 그리고 이 책에 담긴 글을 쓰던 2019년~2020년이라는 시점이다. 여기에 역자는 7장과 맺음말 사이에 가로놓인 3년 남짓한 시간을 더했다. 그 사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전쟁과 유혈사태, 민주주의 후퇴 등)이 선생에게 타격이 컸을 거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선생님의 글이 어려웠으나 <나의 서양음악 순례> 이후론 쉽게 느껴졌고 두 형제분을 직접 뵙고 나니 더욱 쉽게 읽혔다. 또 다른 이유라면 지난 5년간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어오기도 했거니와 서평을 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쓰려면 더욱 자세히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서경식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가 유작인 이 책을 읽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역자가 언급한대로 여행한 시간대의 차이가 크고 저자의 가족사 관련 배경지식도 필요하기에 위와 같은 염려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선생은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재일조선인과 자신의 글을 카나리아에 빗댔다. 홍콩이, 벨라루스가, 미얀마가, 우크라이나가 시간이 지날수록 진부해지듯 그의 글과 마음까지 내 속에서 그렇게 진부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카나리아의 비명을 흘려들은 건 아니었을까. 마음이 저려온다.’고 썼다.

이 책으로 서경식을 처음 만난 독자라면 책 속에서 저자가 제공하는 가족사의 정보를 주의 깊게 읽으면 좋겠다. 미국에서 저자가 접한 클래식 음악과 미술작품이나 화가에 대한 내용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미국 내 활동과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은 프리다 칼로에 대해 알고 있는 독자라면 관심있게 읽을 만하다. 혹시라도 서경식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디아스포라의 눈>이나 서승 교수의 <옥중 19년>을 추천한다. 예술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예술과 인문학을 횡단하는 <나의 서양음악 순례>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권한다.

나는 이번 책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부분을 인상깊게 읽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거의 읽지 못한 채 반납한 게 몇 번,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고 결제하지 못한 지 몇 년이 흘러,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경계의 음악>을 구매해서 책장에 꽂아둔 게 작년이다. 그런데 <나의 미국 인문 기행>에서 사이드를 선생님의 설명으로 읽으니 반갑기 그지없었고 이제는 사이드의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본격적으로 그의 책을 탐독할 때가 온 듯하다.

6장 아메리카Ⅰ‘에드워드 사이드’에는 컬럼비아 대학 로 메모리얼 도서관 앞에서 사이드가 장 주네의 연설을 보며 느꼈던 바를 술회하는 문장이 오른쪽(193쪽)에 있고, 왼쪽(192쪽)에는 그 도서관 앞에 선 선생님의 사진이 있다. 2003년 선생님은 사이드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무산되었고 그 해 9월 사이드의 사망으로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 아쉬움이 이 페이지에서 느껴졌다.


사이드는 팔례스타인계 아랍인이자 기독교인, 미합중국 국민이었고 문화 연구 분야에서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경계의 음악>을 간단하게 소개하며 언급한 아래 내용에 나는 크게 공감했다. ​

좋은 음악을 듣고 마음이 움직일 때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그 감명이 어디서 왔는지 파고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좋은 대화 상대를 만나기란 좋은 음악을 듣는 것 이상으로 무척 어렵다. 사이드 스스로가 이야기했듯 음악이라는 예술이 “가장 말이 없으며” “가장 닫힌” “가장 논하기 힘든 분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대화의 상대는 풍부한 감성과 자유로운 정신을 소유해야할 뿐 아니라 음악 이론에도 정통하여 음악을 문학이나 정치 같은 다른 분야와 관련하여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사이드야말로 그런 인물이었다.

p.199

음악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는 싶지만 그런 사람(좋은 대화 상대)가 주위에 거의 없기에 클래식 책을 찾아 읽으며 저자의 생각을 알고 싶고, 음악 감상실에 가서 선생님의 추천을 길라잡이 삼고 싶다. 그러나 내 수준으론 음악을 문학이나 정치 같은 다른 분야와 관련하여 해독할 능력이 없기에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이젠 사이드의 음악 관련 책에 도전해보고 싶다. <경계의 음악> 속의 글렌 굴드의 평론으로 시작해야겠다.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에서, 제2 빈 악파가 난민의 음악이라고 정의한 부분이 209쪽에 인용되어 있다. 선생님은 크게 동감하며 ‘절반의 타자’로서 서양음악과 접하고 바로 그 위치에서 새로운 보편성을 향해 도달하고자 한다면서 그 지점이 사이드와 자신의 공통점이라고 밝혔다. 선생님은 사이드의 좋은 독자는 아니었으나 1990년대에도 사이드를 읽지 않았다면 정신적으로 방황했을 테고 혼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즐겨 읽었다는 <펜과 칼>은 아르메니아 난민 출신 ‘데이비드 버사미언’이 사이드를 다섯 차례 인터뷰한 책으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엔 문제에 관한 가장 좋은 입문서라고 한다.

이 책에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에 관여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 투쟁이 이런 여러 운동 가운데 핵심이었던 까닭은 그 투쟁이 정의에 관해 되묻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의지의 문제였습니다.

이를 한 편의 시와 같다고 하면서 선생님은, “사람은 승리를 약속받았기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넘쳐나는 불의가 승리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해 되묻고, 허위가 뒤덮고 있기에 진실을 위해 싸운다. 단적으로 말해 사이드는 우리에게 현대를 살아가는 자에게 있어 도덕의 거처는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고 썼다.

이어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을 소개하면서 디아스포라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았다. 사이드가 자신의 성과 이름에서 느낀 위화감을 선생님은 너무나 잘 이해했다. 사이드가 미합중국 국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선택했다면 편하게 살았겠지만 ‘팔레스타인인’의 일원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선택했으나, 자의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이드는 고독했다. 미국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으며 두 곳 모두에서 이방인이었다. 선생님은, 사이드와 마찬가지로 어떤 공동체에서도 동조자를 얻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바 그들은 저마다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정표나 등대와 같았던 사이드의 부재를 ‘거대한 상실’이라고 썼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서경식이라는 부재 역시 ‘거대한 상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6,7장 전체를 사이드에 할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20여년 전 사이드와 선생님이 만났더라면 디아스포라에 관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얼마나 날카롭고 진지한 대담이 이루어졌을까. 그 때 성사되지 못한 만남에 대한 아쉬움과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아온 선생님이 많은 부분 자신과 유사한 사이드에 대해 미국 인문 기행 안에 길게 다룬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서경식의 삶을 이번 책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행운이다. 이제 모두 세상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저작으로 만날 수 있으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둘의 책으로 병렬 독서할 계획을 설레는 마음으로 세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영면을 빌며 이 글을 선생님 영전에 바치고 싶다.

책을 제공해준 반비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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