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런 별세 소식 후 당시의 후기를 내 블로그에서 찾아 읽어보았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그런지 내용이 그다지 풍성하지 않았다. 독서토론 참가자들이 서평을 써서 제출했고 그것을 선생님께 전달했으며 선생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참가자들끼리 독서토론을 했다. 다시 읽어보니 저자를 만난 상기된 반가움만 느껴지고 내용은 간단했다. 제출한 <시의 힘> 서평은 찾지 못했다. 얼마나 엉성했을지...
그 후 5년이 지나도록 선생님의 글을 접하지 못했다. 한겨레 신문은 절독했으며 중독자처럼 서평단 도서를 신청해 읽고 써내기 급급했고, 재작년부턴 일을 하게 되면서 더 정신없이 살았다. 선생님의 글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내 안에 있었던 걸까? 매체를 통해 서경식, 서승이라는 이름을 접할 때마다 죄책감이 일었다. 2022년에 <서경식 다시 읽기>의 출간 소식을 보고 바로 샀다. 물론 다 읽진 못한 채 책장에 꽂혀 있다가 작년 연말 비보를 듣고 꺼냈다. 이 책에 실린 각기 다른 이들의 기억 속 선생님의 모습과 글 세계를 읽노라니 기획자는 추모 아닌 추모 같은 책을 미리 만들었구나 싶었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의 서평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러나 이 기회에 정식으로 추모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연예인과 비슷해서 독자는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글을 통해 만날 뿐이다. 팬이라면 전작을 통독할 것이고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팬심을 표현할 테다. 나는 서경식 선생님의 팬이라고 말 할 순 없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전작은 아니라도 몇 권은 읽어왔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어떤 사안이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그것은 분명 경계인이라 불리는 선생님의 자리 때문일 것이며 내가 한 번도 위치해보지 못한 곳에서 세상을 볼 기회를 준다. 우리나라 매체나 작가들이 잘 다루지 않는 사안들도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혜안과 통찰 가득한 글을 읽으며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듯 뿌듯함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런 글을 만날 수가 없다니 안타깝고 슬프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이 선생님께서 남긴 마지막 책이 되었다. 이 책의 맺음말 날짜가 2023년 12월 17일이다. 마지막 글을 송고하고 다음날 세상을 등지셨다. 그의 유작을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게 되어 송구한 마음이나 이렇게 서평을 쓰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직접 구매했다면 신경 써서 글을 쓰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지난 5년여간 내가 글을 써온 패턴을 보면 내돈내산 책은 읽기만 하고 쓰지 않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선생님의 글과 같은 글을 만날 수 있을까. 아무리 재일 조선인이라 해도 절대 같은 삶을 산 사람은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읽고 경험하고 사유한 것이 곰삭고 곰삭아 활자화된 그것과 견줄만한 것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선생님의 글을 만날 수 없게 되어 안타깝지만 기 출간된 책들을 찬찬히 곱씹으며 읽어보아야겠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의 역자 최재혁씨는 여는 글에서 선생님이 우려한 바를 이렇게 옮겼다.
‘독자 여러분이 왕복할 세 단위의 시간대’(131쪽) 때문이다. 그건 최근(이자 마지막으로) 미국 땅을 밟았던 2016년, 두 형의 석방과 지원 활동을 위해 미국의 인권단체와 국무부를 방문했떤 1980년대 중‧후반, 그리고 이 책에 담긴 글을 쓰던 2019년~2020년이라는 시점이다. 여기에 역자는 7장과 맺음말 사이에 가로놓인 3년 남짓한 시간을 더했다. 그 사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전쟁과 유혈사태, 민주주의 후퇴 등)이 선생에게 타격이 컸을 거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선생님의 글이 어려웠으나 <나의 서양음악 순례> 이후론 쉽게 느껴졌고 두 형제분을 직접 뵙고 나니 더욱 쉽게 읽혔다. 또 다른 이유라면 지난 5년간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어오기도 했거니와 서평을 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쓰려면 더욱 자세히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서경식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가 유작인 이 책을 읽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역자가 언급한대로 여행한 시간대의 차이가 크고 저자의 가족사 관련 배경지식도 필요하기에 위와 같은 염려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선생은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재일조선인과 자신의 글을 카나리아에 빗댔다. 홍콩이, 벨라루스가, 미얀마가, 우크라이나가 시간이 지날수록 진부해지듯 그의 글과 마음까지 내 속에서 그렇게 진부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카나리아의 비명을 흘려들은 건 아니었을까. 마음이 저려온다.’고 썼다.
이 책으로 서경식을 처음 만난 독자라면 책 속에서 저자가 제공하는 가족사의 정보를 주의 깊게 읽으면 좋겠다. 미국에서 저자가 접한 클래식 음악과 미술작품이나 화가에 대한 내용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미국 내 활동과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은 프리다 칼로에 대해 알고 있는 독자라면 관심있게 읽을 만하다. 혹시라도 서경식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디아스포라의 눈>이나 서승 교수의 <옥중 19년>을 추천한다. 예술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예술과 인문학을 횡단하는 <나의 서양음악 순례>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권한다.
나는 이번 책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부분을 인상깊게 읽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거의 읽지 못한 채 반납한 게 몇 번,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고 결제하지 못한 지 몇 년이 흘러,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경계의 음악>을 구매해서 책장에 꽂아둔 게 작년이다. 그런데 <나의 미국 인문 기행>에서 사이드를 선생님의 설명으로 읽으니 반갑기 그지없었고 이제는 사이드의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본격적으로 그의 책을 탐독할 때가 온 듯하다.
6장 아메리카Ⅰ‘에드워드 사이드’에는 컬럼비아 대학 로 메모리얼 도서관 앞에서 사이드가 장 주네의 연설을 보며 느꼈던 바를 술회하는 문장이 오른쪽(193쪽)에 있고, 왼쪽(192쪽)에는 그 도서관 앞에 선 선생님의 사진이 있다. 2003년 선생님은 사이드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무산되었고 그 해 9월 사이드의 사망으로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 아쉬움이 이 페이지에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