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 씨의 유쾌한 미용실 책이 좋아 1단계
박혜선 지음, 송선옥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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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순 미용실이 유쾌한 미용실로 신장개업합니다!"



달콤한 식당을 떠나 여행을 하던 중 숲속 마을에 도착한 냥이씨단풍나무가 지붕처럼 덮인 낡은 집에 도착한 냥이씨는 미용실을 하기로 했습니다. 냥이씨는 뭐든 즐거운 마음으로 빨리 배운답니다. 풀잎으로 머리카락 자르기 연습을 하고 이오순 할머니가 남기고 간 <한 번 읽고 익히는 미용 실습>이라는 책에서 염색법도 찾아냈어요. 자신의 꼬리를 무지개 색으로 염색하는데 성공했지요.



유쾌한 미용실에 온 첫 손님은 너구리씨.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면서 한쪽만 멍든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짝눈을 똑같이 되도록 염색해 달라고 하네요. 냥이씨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해줬지만 기뻐하며 돌아가는 너구리를 보며 아쉬워합니다. 짝눈이라서 특별하고 멋있었는데 말이죠...


털을 자르기 싫은데 엄마 손에 끌려온 청설모, 날씬해 보이고 싶은 판다씨도 냥이씨의 솜씨가 맘에 쏙 들었습니다. 오소리, 고라니, 수달까지 다녀간 후 유쾌한 미용실은 숲속 마을 동물들에게 소문이 자자해집니다. 어느 날 찾아온 손님은, 사자씨! 냥이씨는 깜짝 놀라 의자 밑으로 숨어요. 사자씨가 숲속 마을에 살고 있는 걸 알았다면 이 단풍나무 숲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 사자씨는 어떤 스타일을 원할까요?




이 책은 동물들을 등장인물로 내세운 초등 저학년용 동화입니다. 단풍나무 숲 유쾌한 미용실에는 자신의 외모를 바꾸고 싶은 동물들이 찾아오지요. 냥이씨의 마법 같은 손길로 숲속 동물들을 변신시킵니다. 단순히 손재주만으로 동물친구들을 바꾼 건 아니랍니다. 냥이씨는 손님들에게 어쭙잖은 조언은 하지 않아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손님들의 장점을 깨닫게 해주었답니다. 단점이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도요!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본능입니다. 어린이들도 예쁜 거 좋아하지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불만족스런 외모 때문에 고민이 생깁니다. 그런 아이들과 이 책을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요? 동물들의 외모와 성격의 특징을 잘 살렸기 때문에 재미있어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물을 보며 공감할 것이고, 자신의 단점이 그리 미워보이지 만은 않을 겁니다.


박혜선 작가는 이전 작 <냥이 씨의 달콤한 식당>에 이어 이번 책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냥이씨를 등장시켜 어린이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 이번에도 송선옥 작가의 그림은 찰떡같은 쿵짝을 이룹니다. 두 작가의 지속적인 콜라보를 기대합니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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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서점
이비 우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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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우리의 하루는 무수한 텍스트 속에 파묻혀 있다. 우리는 매일 매 시간 무언가를 읽는다. 사람들이 쇼츠 같은 짧은 영상에 중독되어 간다고 하지만 꼭 종이 책을 읽어야 읽는 맛이 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 번의 터치는 즉각적인 웃음을 준다. 그러나 두 손안에 쥔 글자 속 마법 같은 세상을 아는 이들은 그것을 놓지 못한다. 현실에서 겪을 수 없는 다양한 경험들이 주는 즐거움에 중독되면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소설가가 구축한 세계로 기꺼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아일랜드 작가 이비 우즈의 소설 <사라진 서점>은 나를 단박에 아일랜드로 데려갔다. 두 여자 주인공 오펄린과 마서는 100년 전과 현재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 억압당하며 사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빠르게 감정이입하게 만들었다. 끓어오른 분노 게이지는 자신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둘을 응원하는 팬심으로 선회했다. 마서의 상대역으로 헨리라는 남성이 등장하여 소설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 고구마를 삼킨 것 같은 구간이 있어서 빠른 호흡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불호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서점과 책이 소재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던 책의 매력을 잘 아는 독자들이라면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제목 또한 미스터리한 사건이 벌어질 것임을 짐작케 하므로 관심이 갈 것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사라진 원고를 찾는 세 남녀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펼쳐진다. 1921년 오펄린이 파리의 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며 헤밍웨이, 조이스와의 교류하는 이야기, 에밀리 브론테가 두 번째 소설을 썼을 것이라는 상상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헨리가 찾으려고 하는 사라진 서점과 마서에게 도움을 주는 보든 부인의 정체를 계속 궁금하게 하면서 500쪽에 육박하는 대장정의 마지막까지 이끌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작가의 필력이다. 백 년 전 오펄린이 무기력하게 스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한동안 삽질하는 마서와 헨리 사이가 언제쯤 재점화 할 것인지 기다리는 독자의 인내력도 필요하다.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독자는 해피엔딩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길을 잃었다고 절망하지 말아요. 길 잃은 곳에서 인내하고 기다리세요. 길을 잃는다고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길 잃은 곳에서 다른 세계가 시작되고, 과거의 아픔이 힘으로 바뀔 수 있답니다. 여러분이 항상 품고 있던 열쇠로 이 특별한 곳의 문을 열어보세요. 여기에 오기만 하면 누구든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여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요.


오펄린의 책 <길 잃은 곳>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마서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꽃 피울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독자 역시 작가의 응원의 메시지로 여길 것이며 <사라진 서점>을 끝까지 읽어냈다는 칭찬으로도 읽힐 것이다. <길 잃은 곳>의 문장 외에도 헨리의 생각이 서술된 부분에서 이 책의 주제를 찾을 수 있다. 고문서 속 옛날 사람들의 인생과 사연을 발굴하는 자신의 일에서 헨리가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우리의 인생이 인간 역사라는 거대한 책의 한 페이지에 불과한데 남보다 성공하여 명예를 얻겠다는 욕망은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처럼 가볍디 가벼운 것이다.


에밀리 브론테가 두 번째 소설을 썼을 거라는 상상에서 출발하여 책과 서점을 소재로 하면서 미스터리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단 긴 글 읽기가 버거운 사람들은 앞 부분에서 고전하게 될 터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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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발견 -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법
캐스린 슐츠 지음, 한유주 옮김 / 반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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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에서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캐스린 슐츠는 책 <상실과 발견>에서 잃어버리고 찾아내는 평범한 일상 속 경이로움을 언어로 승화해냈다아버지의 투병을 곁에서 지켜보다 종국엔 상실을 겪는 일련의 과정 동안 생의 반려를 만났다작가에게 가장 큰 존재였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동시에 그 공허를 채워줄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아무나 누릴 수 없는 행운이다.


현대인은 외롭다는 말을 자주 한다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바쁘다면서 제 안 어딘가 자리 잡고 있던 외로움이 범위를 넓힐라치면 곁에 누군가 함께 하길 갈망한다사람이 여의치 않으면 동물이라도요즘은 휴대폰이 친구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그러나 유튜브 속, SNS 속 사람들은 허상이다직접 만나는 사람을 통해 얻는 충만감에 비할 바 못 된다.


이 책을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우리의 생은 결국 사랑을 찾는 일이라 하겠다조금 더하자면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는 있으나 이전 것과는 동일하지 않을 것이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경이를 찾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작가는 유려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일상 속 물건 분실의 경험과 지극히 소소한 것들의 발견을 역사와 지리과학고대 문헌과 철학문학으로 연결하는 능청스러움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상실과 발견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이토록 폭넓게 확장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누군가의 평범한 개인사를 책으로 읽고 싶은 사람은 없다그래서 소설을 읽는 지도 모른다소설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라 수긍하며 재미를 찾으려는 것이다. ‘일기는 일기장에나 쓰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은 일상을 소재로 했으나 확장된 주제로 나아가지 못한 경우다캐스린 슐츠는 자신의 경험에 비범성이라는 옷을 입히는 데 특출한 재능이 있다그의 글을 읽는 독자를 자연스레 유사한 자신의 경험 속 상황으로 곧장 들어가게 만든다잃어버린 그 물건을 찾았던가못찾았던가 다시 기억 창고를 더듬거리게 만들고떠나보낸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게 한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지 못하는 경우는 보통 기억의 오류나 왜곡 때문이다가장 최근에 우리 집에서 발생한 분실물은 남편의 운전면허증과 바지다남편이 면허증을 넣어둔 바지를 찾을 때 나는 그 바지를 마지막으로 본 기억을 떠올렸다세탁 바구니에 있던 남편의 바지를 평소처럼 세탁기에 돌린 후 널었다그 후로는 기억이 없다남편의 바지와 면허증도 없다는 사실루틴대로 보자면 늘 같은 곳에 널었던 바지를 걷어 남편의 옷장에 걸었을 게 분명하다그러나 그곳은 물론 집안의 모든 옷장과 옷걸이를 뒤졌으나 없었다우리 집에 사는 사람은 둘 뿐남편의 바지를 입을 다른 사람이 없다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는 기껏 귀신이 곡할 노릇 뿐이다작가는 잃어버린 물건들의 계곡이라는 말을 소환하고 그것이 실린 책과 작가 뿐 아니라 영화도 소개한다잃어버린 물건들의 계곡의 매력적인 측면과 우울감을 이야기했다평소라면 그녀의 필력을 부러워했겠지만 이번엔 감히 그럴 수조차 없이 방대한 그녀의 지식 체계에 기립박수를 칠 뿐이었다.


작가가 연인 C와의 만남과 데이트결혼을 술회한 내용도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개인사일 수 있다그러나 작가의 배우자가 동성이고 그들의 관계를 말할 때 인용한 것들은 "상실"파트 만큼이나 특별했고 인상적이었다사랑에 대한 글을 읽을 때 공감할 독자가 얼마나 될까사랑에 회의적이라면 심드렁할 것이고 어떤 이는 현재 자신이 딱 그 상태라며 격하게 수긍할 것이다그러나"발견파트의 글은 인연과 일상을 다양한 문학 속 문장들 사이 사이에 배치하여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게 만든다.






이윽고 "그리고파트에 도달하면 '그리고'라는 단어의 어원과 쓰임느낌나아가 작가가 기어이 하고 싶었던 말의 궁극과 만나게 된다.


p. 258

어떤 것을 상실하거나 발견할 때와 마찬가지로무한히 결합할 수 있다는 특성은 이 세계가 한없이 거대한 데 비해 그 안에 깃든 우리 공간은 간데없이 작게 보이는 결과를 낳는다한편 이는 원시적인 지식의 상상된 형태를 모방한다그 형태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앞에 무계획적으로 던져져 있으며 어떤 관계가(관계가 있긴 하다면그것들을 통제하는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p. 294

많은 이들이 고난을 겪거나 심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게 자주 하는 말처럼삶이 계속된다는 건 진실이다나는 늘 진부할지라도 이 표현이 좋았다손쉬운 위로를 거부하기에이 표현이 말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것들 때문에이 표현은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 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처럼 고통이 끝난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표현처럼 명명백백한 함의도 갖고 있지 않다그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이런저런 일이건딱히 서로 구분되지 않고 그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뜻이다.


p. 300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고인생을 잘 산다는 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이다고귀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돌봄을 필요로 하는 대상을 돌보고아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것과 이미 사라진 것을 포함한 이 모든 것에 우리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우리는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보기 위해 여기 있다.


이 책은 에세이이면서 소설스러운 지식 정보 책 같다독자의 현재 관심사나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책으로 읽힐지는 제각각일 것이다그러면서 나와 연결된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볼 눈 또한 가지게 될 것이다.



**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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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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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까무룩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제 복을 비는 기도만큼 이기적인 것은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후론 빌지 않았다. 원래 종교도 없었거니와 기독교가 국내에 기복신앙으로 잘못 정착했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자식이 시험에 합격하길 빌려고 새벽기도를 다니거나, 팔공산에 몇번을 오르내렸다는 사람들의 말에 콧방귀를 끼었다. 본인의 노력에 따라 시험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 부모의 기도가 무에 그리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싶었다.

 

모든 결과는 곧 본인이 했던 무수한 선택의 결과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할 땐 잘 된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하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가족에게 좋지 못한 일이 생기거나 시험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기도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내 탓인가 싶은 맘 한자락이 슬그머니 올라오곤 했다. 가족에겐 스스로에게만큼 단호한 심정이 되지 못했다. 기도까지는 아니어도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세세하게 챙기는 것은 내 몫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가족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인데 이루어진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배철수씨가 자신의 방송에서 DJ로 만족하며 노래를 다시 부를 일은 없을거라고 말할 때 나는 그가 꼭 다시 노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구창모씨와 몇 년 전 전국 콘서트를 시작했고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위암 수술 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쇠잔해진 모습으로 말러를 지휘할 땐 내 몸이 연신 부르르 떨려왔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짓이었으나 눈빛만은 형형했다. 지휘단상 위의 아바도를 계속 보고싶기도 했고 좀 쉬길 바라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이렇게 빌었다. 제발 그를 오래오래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나 그는 2014년에 세상을 등졌다.​​

 

기도는 하늘에 올리는 시, 시는 땅에 드리는 기도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라는 시집을 이문재 시인이 엮어내면서 부제로 쓴 문구다. 시와 기도가 다르지 않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나는 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 만큼 시와 그리 가깝지 못했다. 중학교때 국어 숙제로, 혹은 친구에게 편지 쓰며 외던 때 이후로 점점 시와 멀어졌다. 부제처럼 기도하듯 시를 욀 수 있을까. 기도든 시든 부담없이 하라는 뜻인 것 같은데 기도하듯 시를 쓸 깜냥은 못되니 시인의 말대로 이 책에 실린 시 뒤에 연결하여 뭐라도 끄적대어 볼까 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럼 베껴쓰기라도 해보려고 오랜만에 종이와 펜을 꺼냈다. , 필사라고 어디 쉬우랴. 오랫동안 손놓고 있었는데 손글씨가 예쁠리 만무하지...

 

책 제목을 여러번 써보다 시인이 언급한 쿤제의 '은엉겅퀴' 를 소리내어 읽었다.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겠다는 시구에서 이문재 시인은, 인류의 스승들이 일러준 황금률을 이토록 간명하고도 깊이있게 표현한 시를 본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종결어미를 바꾸어 평생 붙잡아야 할 기도문으로 변주했다.

 

남들의 그림자 안에서 내가 빛나게 하소서



 

부끄러운 탄식을 자아내게 만드는 시들이 이 책에는 많다. 현재 고뇌의 뿌리가 어디인가에 따라 눈길이 오래 머물 페이지는 독자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요즘처럼 세상이 어지럽고 날씨마저 푹푹 찌는 때엔 누구라도 심상하긴 어려울 테다. 기도까지는 아니어도 수런거리는 맘을 진정시키고픈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물론 이문재 시인은 기도와 시가 다르지 않다 했지만...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할 일에 용을 쓰던 시절에 주문처럼 되뇌었던 시가 맨 첫 페이지에 있었다.

 

 

니부어의 기도문이 이해인 수녀님의 '오늘을 위한 기도' 속 시구들과 겹쳐 읽혔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할 일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슬기를 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밖에는 없는 것처럼 투신하는

아름다운 열정이 제 안에 항상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우루과이 한 성당 벽에 쓰인 기도문의 한 자 한 자는 말만 번드르르한 가식덩어리인 우리에게 내리치는 죽비같은 호령이다.


 

 

시를 외기는커녕 읽을 시간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이문재 시인은 이렇게 썼다.



 

눈 감고 한숨 가다듬는 것으로도 기도가 된다고...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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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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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기발랄한 책을 읽었다. 그간 자신의 직업세계를 그리는 에세이들을 읽어왔지만 이렇게 근사한 글은 처음이다. 부산지하철 2호선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도훈씨는 제11회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마리오네트 지하철>을 바탕으로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를 출간했다.


나는 부산지하철 2호선 증산역(부산에서 양산으로 진입하는 첫 번째역) 근처에 살기 때문에 2호선을 이용한다. 평소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지하철 기관사라는 직업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맨 앞 칸에 타기 때문에 증산역을 지나 호포역에 도착하면 기관실의 문이 열리고 기관사가 교대하는 것을 본 적은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한 번도 올려다본 적은 없지만 이도훈 기관사가 교대한 적도 있지 않았을까.


공기와 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 듯 지하철을 늘 타고 다니면서도 지하철을 모는 기관사의 노고는 전혀 몰랐다. 이 책은 우리가 제 발처럼 이용하는 지하철이 안전하게 운행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지하세계 어벤저스 팀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제 시간에 출근하고 약속 장소로 갈 수 있다. 그 어벤저스 팀의 탑이 기관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솔톤’이다. 말하는 이의 목소리가 일명 ‘솔톤’이면 밝고 경쾌하게 들린다. 글도 ‘솔톤’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각 상황에 꼭 맞는 비유는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다가 기어코 ‘푸합’하는 소리를 내고 낄낄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텔러의 ‘솔톤’도 대화 내내 이어지면 피로하다는 것을 아는 그는 절묘하게 완급조절을 해냈다.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혹은 기상천외한 사건 사고들 속에 기관사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수고로움이 들어있다. 지상에 사는 우리는 지하 세계의 작동시스템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없다면 결코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 책으로 알렸다. 지하철 기관사의 고충과 애환을 읽으면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글이 단순히 지하철 기관사의 직업세계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기관사이기 전에 그는 이도훈이라는 개인이고, 개인이 모인 집단은 어떤 직업군이든 간에 어슷비슷한 갈등이 상존하기 마련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갈등과 개인적 경험 및 고민을 읽으며 독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에피소드의 제목으로 출발하여 마지막엔 실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글솜씨가 아주 맛깔스럽다.


예컨대 2부의 에피소드는 제목이 ‘기관사 기량경진대회와 후라이드 치킨’이다.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이렇게 지레짐작했다.

‘기량경진대회의 부상이 후라이드 치킨? 좀 약소한데...’

그러나 아니었다. 이 리뷰를 읽는 당신! 무슨 내용인지 궁금한가? 꼭 책으로 확인해보길 바란다. 이 책을 산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었지만... 크흡, 쏘리!)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감동? 교훈? 이런 것보다는 재미있게 쓰고 싶다. 이도훈씨의 글을 읽으며 나는 또 부러워했다. 아, 이번 생은 망한 건가? 저자처럼 젊지도, 저자처럼 특별한 직업도 아닌, 거기다 글 잘 쓰는 능력도 부족하니... 그는 나를 절망케 했다. 지하철 기관사가 되는 것이 그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게다가 그는 UDT 출신!) 기관사가 되었는데 글은 또 왜 이렇게 잘 쓴단 말인가. 나는 영 안 되는 건가. 요즘 내 글이 만족스럽지 못해 좀 쉬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별 전환점이 된 것도 아니다. 금정연 작가 말처럼 매일, 뭐라도 써야하는데... 리뷰 쓰다 딴 길로 샜다. 그만큼 그의 글솜씨는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책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하철 사고다. 요즘은 거의 없다지만 지하철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급정지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면 기관사는 엄청난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한 사례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투철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으로 외로운 운행을 하는 그들에겐 너무나도 큰 고통인 것이다.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관사도 있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두 시간 반의 운행 시간 동안 생리현상을 참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고통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감성이 공존한다.


이 책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나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고, 특히 부산 시민들은 꼭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지하철을 기다리며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의 앞부분을 유심히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내일은 지하철 2호선 기관사에게 손을 흔들어 주어야지~ 손 흔드는 아이에게 맞손을 흔들어주는 낭만을 가진 이도훈 기관사일지도 모르니까!ㅎㅎ 어쩌면 기관사가 나를 주시할 수도 있겠다. 혹시 머리에 꽃을 꽂고 있지는 않나 하고...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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