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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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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까무룩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제 복을 비는 기도만큼 이기적인 것은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후론 빌지 않았다. 원래 종교도 없었거니와 기독교가 국내에 기복신앙으로 잘못 정착했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자식이 시험에 합격하길 빌려고 새벽기도를 다니거나, 팔공산에 몇번을 오르내렸다는 사람들의 말에 콧방귀를 끼었다. 본인의 노력에 따라 시험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 부모의 기도가 무에 그리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싶었다.
모든 결과는 곧 본인이 했던 무수한 선택의 결과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할 땐 잘 된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하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가족에게 좋지 못한 일이 생기거나 시험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기도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내 탓인가 싶은 맘 한자락이 슬그머니 올라오곤 했다. 가족에겐 스스로에게만큼 단호한 심정이 되지 못했다. 기도까지는 아니어도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세세하게 챙기는 것은 내 몫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가족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인데 이루어진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배철수씨가 자신의 방송에서 DJ로 만족하며 노래를 다시 부를 일은 없을거라고 말할 때 나는 그가 꼭 다시 노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구창모씨와 몇 년 전 전국 콘서트를 시작했고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위암 수술 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쇠잔해진 모습으로 말러를 지휘할 땐 내 몸이 연신 부르르 떨려왔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짓이었으나 눈빛만은 형형했다. 지휘단상 위의 아바도를 계속 보고싶기도 했고 좀 쉬길 바라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이렇게 빌었다. 제발 그를 오래오래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나 그는 2014년에 세상을 등졌다.
“기도는 하늘에 올리는 시, 시는 땅에 드리는 기도”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라는 시집을 이문재 시인이 엮어내면서 부제로 쓴 문구다. 시와 기도가 다르지 않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나는 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 만큼 시와 그리 가깝지 못했다. 중학교때 국어 숙제로, 혹은 친구에게 편지 쓰며 외던 때 이후로 점점 시와 멀어졌다. 부제처럼 기도하듯 시를 욀 수 있을까. 기도든 시든 부담없이 하라는 뜻인 것 같은데 기도하듯 시를 쓸 깜냥은 못되니 시인의 말대로 이 책에 실린 시 뒤에 연결하여 뭐라도 끄적대어 볼까 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럼 베껴쓰기라도 해보려고 오랜만에 종이와 펜을 꺼냈다. 흠, 필사라고 어디 쉬우랴. 오랫동안 손놓고 있었는데 손글씨가 예쁠리 만무하지...
책 제목을 여러번 써보다 시인이 언급한 쿤제의 '은엉겅퀴' 를 소리내어 읽었다.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겠다는 시구에서 이문재 시인은, 인류의 스승들이 일러준 황금률을 이토록 간명하고도 깊이있게 표현한 시를 본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종결어미를 바꾸어 평생 붙잡아야 할 기도문으로 변주했다.
‘남들의 그림자 안에서 내가 빛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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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탄식을 자아내게 만드는 시들이 이 책에는 많다. 현재 고뇌의 뿌리가 어디인가에 따라 눈길이 오래 머물 페이지는 독자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요즘처럼 세상이 어지럽고 날씨마저 푹푹 찌는 때엔 누구라도 심상하긴 어려울 테다. 기도까지는 아니어도 수런거리는 맘을 진정시키고픈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물론 이문재 시인은 기도와 시가 다르지 않다 했지만...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할 일에 용을 쓰던 시절에 주문처럼 되뇌었던 시가 맨 첫 페이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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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부어의 기도문이 이해인 수녀님의 '오늘을 위한 기도' 속 시구들과 겹쳐 읽혔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할 일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슬기를 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밖에는 없는 것처럼 투신하는
아름다운 열정이 제 안에 항상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우루과이 한 성당 벽에 쓰인 기도문의 한 자 한 자는 말만 번드르르한 가식덩어리인 우리에게 내리치는 죽비같은 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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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외기는커녕 읽을 시간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이문재 시인은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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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한숨 가다듬는 것으로도 기도가 된다고...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