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흄세 에세이 1
알베르 카뮈 지음, 박해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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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가 20대 때 쓴 서정성 짙은 에세이라는 소개에 이끌려 서평단에 신청했다. 카뮈에 대한 호불호는 없다. 얼마 전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두 편을 읽으면서 불어를 안다면 원서로 읽는 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래서 카뮈의 에세이라기에 불어 번역일 것이니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받고 감각적 디자인과 콤팩트한 그립감이 마음에 폭 들었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당황했다. 스스로를 지탄했다. 카뮈의 소설이라고는 <이방인> 한 권 밖에 읽지 않은데다 불어도 모르는 주제에 번역본에서 카뮈 문체를 뭐 그리 느끼겠다고 서평단에 신청했는가. 또 책 욕심이었던 게지...

해설 포함 100여 쪽 밖에 되지 않는 책을 몇날 며칠 들고 있었다. 알제리 북부 도시들의 화려한 색감과 향취, 바다에서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사람들의 묘사는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한숨도 같이 새어나왔다. 과연 내가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카뮈의 감각적 표현에 감탄은 해도 서평은 어불성설이다. 내가 무슨 수로 그의 글을 평가한단 말인가. 일독 후 역자의 해설을 읽어보았다. 해설조차 단숨에 이해되지 않았다. 김화영 선생으로부터 카뮈문학을 배웠고 평생을 불어와 관련된 일을 한 전문가의 시선을 좇기엔 내가 카뮈에 대해 일자무식이니 당연했다. 그래서 서평은커녕 독후감이라도 제대로 쓰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부끄럽지만 자신 있게 쓴다. 재독 삼독을 해보아도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에세이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감히 이 말은 할 수 있다. 책이 얇다고, 에세이라 해서 함부로 선택할 책이 아니라고! 카뮈의 일생과 문학관에 대해 공부하고 그의 소설들을 읽은 연후에 읽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 무슨 서평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닌 것 같은 이 따위 글의 서두가 이다지도 기냐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 이 글이 카뮈의 <결혼>이라는 에세이를 읽은 소감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길게 했다. 카뮈의 아름다운 문장을 알리고 싶어 소감보다 본문 발췌를 많이 했는데 이 역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티파사에서의 결혼]

첫 문장 - “봄이 오면, 티파사에는 신들이 강림해서 수런거린다.”

책의 제목이 결혼이고, 이 에세이의 제목에도 결혼이 들어가기에 내용에서 인간의 결혼식 장면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단순무식한 예측이었다. 네 편의 에세이 중에 이 첫 에세이가 가장 젊음이 꿈틀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티파사라는 곳을 찾아본 후 다시 읽어보니 한층 더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바다를 향해 열린 마을 이곳저곳의 피어난 알록달록한 꽃들과 내음, 카뮈의 그곳 사랑이 느껴졌다. 그곳 자연과의 결혼이 그가 말하는 결혼이 아닐까... 내가 그렇게 생각한 문장들을 옮긴다.

p.13

나를 송두리째 휘어잡는 것은 저 자연과 바다의 위대하고 자유분방한 사랑이다. 이러한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의 잔해들은 다시 돌이 되어 인간의 손길이 낸 광택을 지워버리면서 자연으로 회귀했다. 그 방탕한 딸내미들의 귀환을 맞아 자연은 아낌없이 꽃을 피워놓았다.

p.23

태양과 바다로부터 태어나서 활달하고 풍류를 즐기고, 단순함 속에서 위대함을 길어 올리고, 해변에 똑바로 서서 저 하늘의 찬란한 미소에 공모의 미소를 던지는 종족이 있었다. 나는 그 종족 전체와 더불어 세계와 나 사이의 사랑을 공유하기로 의식했고, 거기에 자긍심을 느꼈다.

[제밀라의 바람]

첫 문장 - “정신 자체를 부정하는 어떤 진실은 그 정신이 죽는 장소에서 태어난다.”

카뮈가 제밀라를 돌아보며 쓴 이 글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제밀라는 정복자들이 세운 문명의 표식을 가진 곳이지만 하늘 속에는 정복과 야심의 표식을 새겨놓지 못했다고. 그가 오래전 제밀라에서 생각한 것을 읽으며 지금의 나, 우리의 모습에 대입해 생각해 보았다.

p.33

사람은 익숙한 몇몇 생각들을 품고 살아간다. 기껏해야 두세 가지 생각이다. 어쩌다 이런저런 사회와 사람들을 만남에 따라 그 생각들을 닦고 손본다. 진짜 자기 것이라고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생각을 확보하기까지 10년은 걸린다.

☞ 요즘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만나면 맨 옛날 얘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잘 아는 것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손보는 이는 얼마나 될까? 가짜뉴스에 휘둘리고, 전문가입네 하는 이들에게 현혹된다. 카뮈는 진짜 자기 것이라고 내놓을 만한 생각을 확보하는데 10년은 걸린다고 했다. 요즘 책 안 읽는 성인이 절반이 넘는다는데,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학교 졸업 후 진짜 자기 생각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나 할까? 최종 졸업 학교 이력으로 평생을 잘 우려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익숙하지 않은, 전혀 다른 새로운 생각들을 만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알제의 여름]

첫 문장 - “흔히 우리는 어떤 도시와 은밀한 사랑을 나눈다.”

카뮈는 프랑스인이지만 알제리에서 태어났다.(1913년)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했고 청각장애인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알제리의 아름다운 자연과 유년시절의 가난한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알제의 여름]은 그곳 사람들의 삶이 잘 드러난 글이란 생각이 든다. 태양이 작열하는 8월에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의 피부빛이 달라지는 모습,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서둘러 노동하고, 10년 만에 일생의 경험을 다 맛본다는 벨쿠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본 적 없는 그곳 사람들이 가깝게 다가왔다.

p.60

인류의 죄악이 득실거리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그리스인들은 맨 마지막에 가장 끔찍한 죄악인 희망을 꺼냈다. 나는 그보다 더 감동적인 상징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통념과는 달리 체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일이다.

☞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이란다. 희망과 체념이 같은 것이라면서... 요즘은 희망이니 낙관이니 이런 말들을 쓰기 어려운 시국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것 같아 절망적이다. 희망을 가지고 살자는 말보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일이다.”라는 문장이 더 위로가 되었다. 불어로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하다.

[사막]

첫 문장 - “산다는 것은, 당연히, 어찌 보면 표현한다는 것의 반대쪽이 된다.”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에게 바친 글로 피렌체 여행기이다. 미술작품 해석과 토스카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프란체스카 수도원에 들렀다 피렌체로 돌아오는 여정, 그리고 피에솔레와 제밀라를 햇빛 속의 항구로 연결한다. 네 편의 에세이 중에 가장 이해가 어려운 글이 [사막]이었다. 그런데 아래 발췌 문장들은 어디선가 자주 인용된 것 같은데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p.70

영혼의 불멸성은 실제로 고상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진실이 육체인데도, 그 진수를 다 맛보기도 전에 거부하기 때문에 영혼의 불멸성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불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이방인>을 읽을 때 전혀 들지 않았던 마음이다. 허나 이 나이에? 잘 번역된 카뮈의 다른 작품들을 읽는 것이 먼저다. 이런 맘을 품은 나를 마감 임박한 서평단 책과 읽고 싶어 사둔 책들이 째려보고 있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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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쫓아오는 밤 (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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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소설이다.

한 번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다.

 

괴물과 직면하는 아이, 신이서!

엄마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봤다.

엄마의 행복과 생을 자신이 앗아버렸다고 생각하는 아이.

그 죄책감에 갇혀 사는 이서는 동생 이지에게서 아빠마저 뺏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괴물을 물리치고 아빠를 구해야만 한다.

자신이 제물이 되어서라도!

 

괴물처럼 변해버릴 것 같아서 축구를 접은 아이, 남수하!

엄마를 지키고 싶다.

모든 게 심드렁했던 수하 앞에 나타난 달리는 아이, 이서.

아빠를 구하려는 건지,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아이 곁에 있고 싶다!

 

열일곱 이서와 수하가 외딴 펜션에서 정체모를 괴물(늑대와 곰을 교배한 것 같은 대형 포식종)을 물리치는 이 소설은 제 3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수상작이다. 출간전에 소설Y클럽 자격으로 미리 받아 읽었다.

 

소설 속의 괴물은 죽을 죄를 지은 사람, 벌 받아야 되는데 안 받고 있는 사람을 찾아 잡아먹는다는 설정이다. 이서는 평생 엄마하고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재혼을 하고 동생 이지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은 가족이 아닌 것 같았다. 저만 없으면 세 명은 행복한 가족이 될 것 같았다. 엄마에게 독설을 퍼붓던 순간 교통사고가 일어났고 엄마는 죽고 이서는 살았다. 행복한 가족을 파괴해버렸다는 죄책감이 몸서리쳐 올 때 이서는 달렸다.

 

학대 당하며 자랐던 수하는 엄마와 열 살 때 그 남자에게서 벗어났다. 시력저하가 원인이기도 했으나 자신에게 내재된 분노가 끓어 넘치면 제어할 수 없게 될까봐 두려워 축구를 그만뒀다. 달리는 수하를 처음 봤을 때부터 끌렸다. 이서가 동생을 수련회 아이들이 돌아가는 차에 태워보내고 박사장과 남았을 때 수하 역시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셋은 괴물과 대치하게 된다. 죽음조차 별 거 아니라는 듯 나서는 이서, 마취총을 든 어른이라는 것 외엔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박사장과 함께 수하는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까. 그런데 괴물보다 먼저 수하 안의 괴물을 이서가 잡았다.

 

이서의 남수하, 진정해.”라는 한 마디와 차가운 손길이 불같이 끓어오르던 수하의 분노를 가라앉힌 것이다. 마법처럼!

 

 

열일곱이라는 나이는 애매하다. 어린양을 부리기에도, 운명에 맞서기에도.

 

이서는 괴물의 눈동자에 서린 악의가 제 것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 앞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섰다. 그것이야말로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는 행위였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 칠 때 이서의 악몽도 사라져갔다.

 

우리 사회는 열일곱 살에게 말한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그들이 운명과 맞설 기회는 없다. 그들 앞에 닥칠 사소한 어려움조차 미리 소거해두었기 때문이다. 쫓아오는 폭풍에 맞설 기회를 빼앗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도록. 이서와 수하가 괴물에 맞서 제 안의 죄책감과 분노를 떨쳐버린 것처럼!

 

창비에서는 그동안 '영어덜트 소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읽어야 할 소설로 홍보해왔다. 이번만큼은 인정이다. 누구나 읽어도 순식간에 빨려들게 만든다. 청소년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자신안에 물리쳐야 할 악의나 죄책감이 있는지 들여다보게 될 것이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말하지 못한 채 끙끙거리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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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연이 아닙니다 - 삶의 관점을 바꾸는 22가지 시선
김경훈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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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연이 아닙니다>는 퓰리처상 외 다수의 보도 사진상을 수상했으며 로이터 통신에서 근무 중인 김경훈 기자의 신작이다. 나는 그의 전작을 모두 읽었다. <사진을 읽어드립니다>로 사진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었고, <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에서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예로 들어 전작에서 던졌던 화두에 대한 답을 찾아 주었다. 출판사에서는 이번 신간을 인문에세이라고 소개했다. 분명 사진을 소재로 한 책일 터인데 인문에세이라고 강조한건 이 책의 부제를 삶의 관점을 바꾸는 22가지 시선으로 놓은 이유와 연결되리라고 예상했다.


이번 책에는 전작보다 사진을 많이 싣지 않았다. 사진기자의 책이라서 유명짜한 사진들이 많을 거라고 예상하고 고른 독자라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그런 책을 원한다면 <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을 추천한다. 이번 책에서는 사진에 대한 소개나 설명을 대부분 텍스트로 대신했다. 결정적 순간을 뷰파인더 안으로 끌어오는 그의 능력은 그 장면을 묘사하는 스토리텔링 력에서도 여실히 드러냈다. 사진 없이 사진을 보는듯한 착각을 하게했다. 어떤 사진 설명은 텍스트로 만족했지만 어떤 사진은 직접 찾아보았다. 구도와 배경의 숨은 이야기들은 실제 사진을 보며 읽었다.


들어가는 글에서 그는 지난 20년간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경험을 통해 바라본 것들을 담았다고 했다. 저자가 느낀 것을 독자가 똑같이 느낄 순 없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듣고,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에서 공감하며 자신만의 프레임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그는 강조해왔다. 사진 속에 이야기를 담아서 셔터를 눌러보라고. 같은 장면이라도 어떤 각도에서 찍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 이야기를 담아서 찍으면 그것이 자신의 프레임이 되어 갈 것이다. 많이 찍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있는 프레임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이 책에 실린 사진 중에 인상 깊은 사진 몇 점을 소개한다.

 

저자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사회의 장애인 복지 인프라 시설과 장애인을 보는 시선 등을 알리려는 취재 의도를 가지고 하체 장애를 지닌 휠체어 댄서 감바라 씨를 취재했다. 취재 첫날 저자는 자신의 의도가 그동안 미디어에서 보던 장애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이미지들과 섞여 만들어진 구상이었으며 감바라씨를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로 그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말았다. 감바라씨는 출근할 때 경사가 심한 에스컬레이터를 능숙하게 탄 뒤 바닥에 닿기 전에 번쩍 휠체어로 점프해 멋지게 착지했고, 퇴근 후 무용연습을 할 때 재미있는 농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모임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어린 딸과 외출할 때는 휠체어에 탄 자신의 무릎에 딸을 앉히고 씽씽 달려 즐겁게 해주었으며 집안일도 앞장서서 하는 남편이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이 그다지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저자는 댄스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무대의상을 입는 모습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의 바퀴를 굴리고 두 팔로 몸을 지탱하며 생활하는 동안 자연스레 형성된 그의 상반신 근육은 이소룡의 뒷모습 같았다. 자신의 뒷모습 사진을 본 감바라씨는 아주 흡족해했다. 그동안 일본 미디어의 취재 대상이 된 감바라씨의 이런 모습을 찍은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한 사람의 외양을 사진으로 찍는 것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포트레이트 사진을찍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 폴 카포니그로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스테레오타입으로 인해 그 사람이 가진 본래의 가치를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도 스테레오타입에 갇혀있었다면 자신이 가장 좋아한 그의 등을 사진에 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사인 볼트의 저 사진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드론으로 찍은 거냐고 묻는다. 그러나 당시 드론은 너무 크고 항공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럼 저 사진은 어떻게 찍은 것일까? 이른바 대형 건축물의 캣워크(Cat walk)라 부르는 공간에 들어가서 찍은 것이다. 천장을 촘촘히 연결한 간이 작업 복도는 주로 천정 조명을 점검, 보수하고 시설물을 관리하는 요원들이 주로 이용한다. 추락 위험 때문에 고양이가 좁은 공간을 걸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내디디며 걷게 된다고 해서 캣워크라 이름 붙여졌다. 저자는 캣워크에 올라갈 기자로 정해졌을 때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게 무서웠지만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지상을 찍을 수 있기에 용기를 냈다.


우사인 볼트는 200미터 결승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뒤 트랙 위에 벌렁 누웠다. 저자는 베이징 주경기장 천장의 좁은 통로에 등산용 자일로 몸을 묶고 저 장면을 찍었다.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를 몸에 꽁꽁 고정시킨 뒤 경기의 흐름에 따라 캣워크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중노동이었지만 육상 마지막 경기날까지 캣워크에 계속 오를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의 결정적 순간을 잡기 위해 뷰파인더에 집중하면 수십미터 난간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수년 동안 갈고닦은 최고의 기량을 드러내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최고의 사진으로 그들의 영광을 포착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본 유기견의 실태와 안락사 방식을 취재한 내용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해 깜짝 놀랐다. 귀엽다는 이유로 펫숍에서 산 개를 무책임하게 버리고 버려진 개들이 유기견 센터로 가게 되면 일주일 안에 주인을 못 찾을 경우 안락사 당한다. 단 안락사 방법은 우리와 달랐다. 우리나라는 주사로 처리하는데 일본은 가스실로 보낸다. 그 방식이 마치 아유슈비츠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저자는 자신이 키웠던 진순이와 닮은 강아지가 가스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지만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그저 촬영을 멈추고 먼저 현장을 떠나야만 했다. 10여 년 전 취재했던 상황과 좀 달라졌을까? 일본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일주일이었던 유기견 보호 기간을 폐지하거나 대폭 연장했고, 유기견 센터에서 입양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계속 취재하고 사진으로 기록하겠다고 말한다.


p.170


사진으로 기록된 현실은 때때로 거의 아물어가던 상처에 뿌려진 거친 소금 같습니다. 겉으론 괜찮아 보이지만, 그 안의 문제들을 들춰 마음을 쓰라리게 만들지요. 하지만 소금을 문질러 생기는 아픔이, 문제가 있는데도 모른 척 넘어가도록 달콤함으로 무마시키는 설탕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취재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이 사진을 통해 전달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가족의 이야기를 이전보다 자주 했다. 위 에피소드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하는 딸에게 책임감 있게 키울 수 있겠냐고 묻고, 사진을 찍겠다고 한 아들에게 선배로서 카메라 사용법을 알려주고, 어머님이 휴대폰으로 찍어 보낸 사진을 보고 무한 칭찬을 하기도 한다. 그는 어머님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많이 걸어다니게 될 것이니 치매 예방 효과를 기대했는데 다른 좋은 효과도 있었다. 어머니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간 자신이 어머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정 어린 칭찬을 받은 어머니는, 자신의 재능을 물려받아서 아들이 사진기자가 된 게 아니겠냐며 의기양양해하고 자랑스러워하셨다. 어머니의 산책 사진 프로젝트이후 부자간에 대화가 풍성해졌고 어머니의 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p.194


사진은 우리를 어느 시절로 연결하고, 또 사진 속 인물들에게로 연결합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사진에 정지된 장면이 기록됩니다. 그리고 사진에는 그 순간의 이야기가 저장됩니다. 이야기는 때로 기나긴 촉수를 뻗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줍니다. 어머니의 사진이 저와 아버지, 우리 가족을 연결하는 것처럼요. 훗날 어머니의 사진을 온 가족이 보게 된다면,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하게 연결될 겁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사진이 있어서, 사진으로 남겨 공유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요.



사진 기자가 되고 싶거나 사진에 조예가 깊은 독자들은 저자의 책들을 통해 사진 찍는 법과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김경훈 기자의 전작 세 편을 모두 읽으며 사진에 대한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정지된 화면 속에 저장되는 이야기! 뷰파인더 속에 들어오는 대상에 애정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그는 모든 대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의 문체에서 느껴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이 너무 삭막한 걸까. 나도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며 말로는 떠들어대지만 결과물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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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린 선생님 난 책읽기가 좋아
소연 지음, 이주희 그림 / 비룡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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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하루 동안 가장 오랜 시간 만나는 어른은 부모 다음으로 담임 선생님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어른이기에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들 입장에서도 담임 선생님이 그렇다고 느낄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선생님이 동물이 되어 같이 신나게 놀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그 상상대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화책이 비룡소에서 출간되었다.


10회 비룡소 문학상을 수상한 <갑자기 악어 아빠>는 동물로 변한 아빠 엄마와 마음껏 뛰어노는 이야기였다면 신간 <갑자기 기린 선생님>은 선생님들이 동물로 변해 학생들과 신나는 운동회를 벌인다. 두 작품 모두 소연 작가의 글과 이주희 작가의 그림이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에 생생한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은 그야말로 찰떡이다.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림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난다.


<갑자기 악어 아빠>에서 부모들이 동물로 변한다는 뉴스 속보 이후 자연스럽게 윤찬이와 윤이의 아빠가 악어로 변하듯 <갑자기 기린 선생님>도 선생님들이 동물로 변한다는 뉴스 속보로 시작한다. 작은 운동회 날 아침이었다. 윤찬이네 반 아이들은 교실에서 뛰거나 장난치면 경고 스티커를 날리는 무뚝뚝한 선생님보다 재미있게 잘 놀아주는 선생님이면 얼마나 좋을까 재잘거리며 기린 모양 응원포스터를 만들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들어오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경고 스티커를 날리려고 했다. 아이들이 안 돼요!” 라고 한 순간 선생님이 기린으로 변한다.




기린으로 변한 선생님은 아이들과 놀아주었고 장난치다 다칠 것 같으면 스티커 대신 목으로 감싸주거나 혀로 다치지 않게 해주었다. 아이들은 선생님 목을 푹신한 미끄럼처럼 타고 꼬리를 장난감처럼 잡아당기며 신나한다. 그럼 다른 반 선생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토끼, 코알라, 앵무새로 변했다. 아이들은 평소 선생님들의 태도와 반대로 행동하는 동물 선생님과 신나게 운동회를 했다




재미있는 표정이 살아있는 운동회 장면을 보면서 어린이 독자들은 같이 운동회를 즐기게 될 것이다. 평소 다른 반 선생님을 부러워한 아이들, 담임 선생님이 좀 무섭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동화책이다. 또한 기린 선생님이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에 경고를 주는 이유를 알면 선생님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우리에게 잔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는 일을 강제하지 말고 같이 놀면 좋겠다' 는 상상이 <갑자기 악어 아빠>에 이어 <갑자기 기린 선생님>에도 멋지게 펼쳐진다. 이 책들을 읽은 어린이 독자 중에 어른들도 우리랑 재밌게 놀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먼저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눈치 빠른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아마 그런 독자라면 상상력을 쑤욱쑥 키워 더 재미있는 동화를 쓸거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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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링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8
조규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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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힘든 게 뭐 있냐? 해주는 밥 먹고 공부만 하면 되는 걸!”

요즘도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자주 들었다. 어른이 되면 신경 쓸 일, 걱정할 일이 수두룩하다. 학생일 때가 좋지, 뭐가 힘드냐, 공부만 하면 된다던 말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입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 말로 치자면 할많하않이었고, 꾸역꾸역 올라오는 반박을 목구멍으로 다시 밀어 넣어야 했다.


청소년에게 따라 붙는 단어인 성적, 친구, , 미래 등등은 불안과 두려움을 기본값으로 깔고 있다. 희망이란 놈은 공부 잘 하는 아이들에게만 있는 단어 같고 내게는 좀체 오지 않는다. 어른들이 살기 힘들다는 걸 아이들이 모르진 않는다. 그래도 어른이니까, 아이들에게 좀 친절할 순 없을까. 어른보단 사는 게 쉽지 않냐고, 징징거리지 말라고 퉁박주기 보다 공감어린 한마디를 해주는 게 그리도 어려울까. 어른들에게 대단히 거창한 걸 바란 게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청소년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어른이 되면 기억이 홀랑 사라지는 건지, 자신도 청소년기를 거쳐 왔으면서, 그 때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기가 그렇게 힘든 건지... 결국 어른보다는 친구에게 위로를 받거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조규미 작가의 소설 <페어링>의 등장인물인 청소년들도 그랬다.


그저 그런 열일곱살 고수민은 신학기 첫날부터 찬란한 흑역사를 썼다. 교실에서 무선이어폰을 분실했고 담임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종례시간에 들어온 선생님은 이어폰을 찾는다며 아이들을 하교시키지 않고 1시간이 넘도록 책가방과 사물함까지 탈탈 털었지만 이어폰은 나오지 않았다. 수민은 극혐 1로 등극했다. 반 친구들을 잠재적 도둑으로 만들어버린 수민은 극혐 타이틀을 쉬이 벗을 수 없었다. 반면 배치고사 전교1등으로 입학한 세진은 당연하게 반장이 되었다. 세진은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며 다른 차원에서 살게 될 아이들이라는 뜻으로 다차원이라 불리는 특별 그룹의 멤버다.


다차원 멤버 네 명은 봉사활동과 프로젝트 활동은 물론 과외도 같이 받는다. 그런데 어느 날 세진이 수민에게 보육원 봉사활동에 같이 가자고 한다. 수민은 거부할 겨를도 없이 얼떨결에 동의하게 되었고, 프로젝트 활동도 같이 하게 된다. 다차원 멤버 중 1명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어 세진이 수민을 끌어들인 것이다. 멤버로서 영입한 게 아니라 끌어들였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유는 공부도 그렇고 그런 수민을 세진이 입맛대로 휘두르기 위함이었다. 보육원에 가서 수민은 적극 활동했으나 나머지 세 명은 얼굴만 삐죽 내비치고 일이 있다면서 먼저 가버렸다. 봉사는 수민이 혼자 했는데 멤버가 다 활동한 것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얼떨결에 다차원에서 활동하게 된 수민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형국이 되고, 그 와중에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편 수민은 방송실에서 주인 없는 이어폰을 가져오게 되었는데 그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청력이 남보다 뛰어난 수민이지만 어떻게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들릴까. 이상한 일이었지만 수민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고민스러울 때마다 이어폰의 목소리는 수민의 말을 들어준다. 고민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해주는 건 아니지만 수민의 마음이 안정된다.


"방법이 있겠지, 잘 찾아봐."

"바보 같은 짓 한 거 아니야. 너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바보 같은 거지. 너무 걱정하지마. 분명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야."

"네가 사람들 생각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잖아. 선입견 가지지 말고 생각해 봐. 있을 거야."


이 소설은 여느 고등학생들이 겪는 비슷비슷한 고민들에 더해 학교 방송반에 전해져오는 전설과 교내 시험문제 유출 비리, 그리고 말하는 이어폰이라는 판타지적 요소까지 넣었다. 말하는 이어폰은 수민의 고민을 들어주고, 세진과 수민이 가까워지는 기폭제이자 미스터리적인 역할은 물론 소설적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사건을 적극 해결하는 건 아니나 수민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수민이 여러 사건에 휘말렸을 때 이야기를 들어준 존재가 바로 이어폰이었다. 수민의 행동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남들에게 소설처럼 말하는 엄마에게 고민을 어떻게 이야기 할까. 그렇다고 절친이라 할 만한 친구도 없다. 그런 수민에게 이어폰은 선배였고 친구였다. 이 리뷰의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십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수민에게 이어폰이 그러했고, 수민은 세진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다.


마지막에 세진이 문제가 급 해결되는 것 같아서 아쉬웠지만 이어폰을 세진에게 넘겨주게 되는 상황은 자연스러웠다. 수민의 고민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순 없다.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말하는 이어폰이 이젠 세진에게 더 필요하다는 뜻이리라. 물론 등교 첫날 잃어버린 수민의 이어폰을 엉뚱한 곳에서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중고등학생들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때보다 자신의 말을 들어 줄 누군가가 절실한 시기이니까.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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