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우연이 아닙니다 - 삶의 관점을 바꾸는 22가지 시선
김경훈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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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연이 아닙니다>는 퓰리처상 외 다수의 보도 사진상을 수상했으며 로이터 통신에서 근무 중인 김경훈 기자의 신작이다. 나는 그의 전작을 모두 읽었다. <사진을 읽어드립니다>로 사진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었고, <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에서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예로 들어 전작에서 던졌던 화두에 대한 답을 찾아 주었다. 출판사에서는 이번 신간을 인문에세이라고 소개했다. 분명 사진을 소재로 한 책일 터인데 인문에세이라고 강조한건 이 책의 부제를 삶의 관점을 바꾸는 22가지 시선으로 놓은 이유와 연결되리라고 예상했다.


이번 책에는 전작보다 사진을 많이 싣지 않았다. 사진기자의 책이라서 유명짜한 사진들이 많을 거라고 예상하고 고른 독자라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그런 책을 원한다면 <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을 추천한다. 이번 책에서는 사진에 대한 소개나 설명을 대부분 텍스트로 대신했다. 결정적 순간을 뷰파인더 안으로 끌어오는 그의 능력은 그 장면을 묘사하는 스토리텔링 력에서도 여실히 드러냈다. 사진 없이 사진을 보는듯한 착각을 하게했다. 어떤 사진 설명은 텍스트로 만족했지만 어떤 사진은 직접 찾아보았다. 구도와 배경의 숨은 이야기들은 실제 사진을 보며 읽었다.


들어가는 글에서 그는 지난 20년간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경험을 통해 바라본 것들을 담았다고 했다. 저자가 느낀 것을 독자가 똑같이 느낄 순 없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듣고,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에서 공감하며 자신만의 프레임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그는 강조해왔다. 사진 속에 이야기를 담아서 셔터를 눌러보라고. 같은 장면이라도 어떤 각도에서 찍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 이야기를 담아서 찍으면 그것이 자신의 프레임이 되어 갈 것이다. 많이 찍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있는 프레임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이 책에 실린 사진 중에 인상 깊은 사진 몇 점을 소개한다.

 

저자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사회의 장애인 복지 인프라 시설과 장애인을 보는 시선 등을 알리려는 취재 의도를 가지고 하체 장애를 지닌 휠체어 댄서 감바라 씨를 취재했다. 취재 첫날 저자는 자신의 의도가 그동안 미디어에서 보던 장애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이미지들과 섞여 만들어진 구상이었으며 감바라씨를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로 그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말았다. 감바라씨는 출근할 때 경사가 심한 에스컬레이터를 능숙하게 탄 뒤 바닥에 닿기 전에 번쩍 휠체어로 점프해 멋지게 착지했고, 퇴근 후 무용연습을 할 때 재미있는 농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모임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어린 딸과 외출할 때는 휠체어에 탄 자신의 무릎에 딸을 앉히고 씽씽 달려 즐겁게 해주었으며 집안일도 앞장서서 하는 남편이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이 그다지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저자는 댄스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무대의상을 입는 모습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의 바퀴를 굴리고 두 팔로 몸을 지탱하며 생활하는 동안 자연스레 형성된 그의 상반신 근육은 이소룡의 뒷모습 같았다. 자신의 뒷모습 사진을 본 감바라씨는 아주 흡족해했다. 그동안 일본 미디어의 취재 대상이 된 감바라씨의 이런 모습을 찍은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한 사람의 외양을 사진으로 찍는 것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포트레이트 사진을찍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 폴 카포니그로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스테레오타입으로 인해 그 사람이 가진 본래의 가치를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도 스테레오타입에 갇혀있었다면 자신이 가장 좋아한 그의 등을 사진에 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사인 볼트의 저 사진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드론으로 찍은 거냐고 묻는다. 그러나 당시 드론은 너무 크고 항공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럼 저 사진은 어떻게 찍은 것일까? 이른바 대형 건축물의 캣워크(Cat walk)라 부르는 공간에 들어가서 찍은 것이다. 천장을 촘촘히 연결한 간이 작업 복도는 주로 천정 조명을 점검, 보수하고 시설물을 관리하는 요원들이 주로 이용한다. 추락 위험 때문에 고양이가 좁은 공간을 걸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내디디며 걷게 된다고 해서 캣워크라 이름 붙여졌다. 저자는 캣워크에 올라갈 기자로 정해졌을 때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게 무서웠지만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지상을 찍을 수 있기에 용기를 냈다.


우사인 볼트는 200미터 결승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뒤 트랙 위에 벌렁 누웠다. 저자는 베이징 주경기장 천장의 좁은 통로에 등산용 자일로 몸을 묶고 저 장면을 찍었다.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를 몸에 꽁꽁 고정시킨 뒤 경기의 흐름에 따라 캣워크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중노동이었지만 육상 마지막 경기날까지 캣워크에 계속 오를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의 결정적 순간을 잡기 위해 뷰파인더에 집중하면 수십미터 난간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수년 동안 갈고닦은 최고의 기량을 드러내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최고의 사진으로 그들의 영광을 포착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본 유기견의 실태와 안락사 방식을 취재한 내용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해 깜짝 놀랐다. 귀엽다는 이유로 펫숍에서 산 개를 무책임하게 버리고 버려진 개들이 유기견 센터로 가게 되면 일주일 안에 주인을 못 찾을 경우 안락사 당한다. 단 안락사 방법은 우리와 달랐다. 우리나라는 주사로 처리하는데 일본은 가스실로 보낸다. 그 방식이 마치 아유슈비츠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저자는 자신이 키웠던 진순이와 닮은 강아지가 가스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지만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그저 촬영을 멈추고 먼저 현장을 떠나야만 했다. 10여 년 전 취재했던 상황과 좀 달라졌을까? 일본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일주일이었던 유기견 보호 기간을 폐지하거나 대폭 연장했고, 유기견 센터에서 입양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계속 취재하고 사진으로 기록하겠다고 말한다.


p.170


사진으로 기록된 현실은 때때로 거의 아물어가던 상처에 뿌려진 거친 소금 같습니다. 겉으론 괜찮아 보이지만, 그 안의 문제들을 들춰 마음을 쓰라리게 만들지요. 하지만 소금을 문질러 생기는 아픔이, 문제가 있는데도 모른 척 넘어가도록 달콤함으로 무마시키는 설탕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취재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이 사진을 통해 전달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가족의 이야기를 이전보다 자주 했다. 위 에피소드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하는 딸에게 책임감 있게 키울 수 있겠냐고 묻고, 사진을 찍겠다고 한 아들에게 선배로서 카메라 사용법을 알려주고, 어머님이 휴대폰으로 찍어 보낸 사진을 보고 무한 칭찬을 하기도 한다. 그는 어머님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많이 걸어다니게 될 것이니 치매 예방 효과를 기대했는데 다른 좋은 효과도 있었다. 어머니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간 자신이 어머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정 어린 칭찬을 받은 어머니는, 자신의 재능을 물려받아서 아들이 사진기자가 된 게 아니겠냐며 의기양양해하고 자랑스러워하셨다. 어머니의 산책 사진 프로젝트이후 부자간에 대화가 풍성해졌고 어머니의 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p.194


사진은 우리를 어느 시절로 연결하고, 또 사진 속 인물들에게로 연결합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사진에 정지된 장면이 기록됩니다. 그리고 사진에는 그 순간의 이야기가 저장됩니다. 이야기는 때로 기나긴 촉수를 뻗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줍니다. 어머니의 사진이 저와 아버지, 우리 가족을 연결하는 것처럼요. 훗날 어머니의 사진을 온 가족이 보게 된다면,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하게 연결될 겁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사진이 있어서, 사진으로 남겨 공유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요.



사진 기자가 되고 싶거나 사진에 조예가 깊은 독자들은 저자의 책들을 통해 사진 찍는 법과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김경훈 기자의 전작 세 편을 모두 읽으며 사진에 대한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정지된 화면 속에 저장되는 이야기! 뷰파인더 속에 들어오는 대상에 애정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그는 모든 대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의 문체에서 느껴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이 너무 삭막한 걸까. 나도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며 말로는 떠들어대지만 결과물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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