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
허철웅 지음 / 가디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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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당신은 아재!”라고 놀려도 어쩔 수 없다. 감성도 나이도 벌써부터 아저씨 반열에 올랐으니까. 극구 부인해봤자 강조하는 꼴이 될 터이니 빠른 인정이 답이다. 약육강식의 처절한 현장을 보고 있는 가장의 뒷모습은 이제는 퇴물이 되어버린 수사자의 추레한 갈기와 비슷하다는 연민어린 표현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들은 꾸며낸 드라마보다 동물 다큐에 진정 공감한다고도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 다큐를 즐겨봤다. 동물들의 피 튀기는 생존이 자극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실은 다른 궁금증이 있었다. 지엽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는지 다큐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다. ‘어떻게 저렇게 가까이서 찍을 수 있지?’ ‘동물들은 배우가 아닌데 어쩜 저렇게 생생하게 연기하는 것 같지?’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서 그런 의문들은 하나씩 해결되었고 관심은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동물들의 독특한 생존 방식이나 의사 소통법, 인간과 동물의 관계 등등.


허철웅의 소설 <죽거나 죽이거나:나의 세렝게티>는 제목과 표지에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연상시킨다. 기존에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의 소설을 내다니 대단한 자신감이구나 싶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니 작가가 27년간 매달린 끝에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작가의 이력이 소설 속에 녹아들었을 것 같아 기대되었다. 우려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생생한 동영상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아기 사자가 늠름하게 자라 아빠의 뒤를 잇는다는 애니메이션 줄거리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리얼 생존기나 아기 사자의 귀욤미, 거기에 귀에 익은 뮤지컬 넘버까지,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작가와 아무 관계가 아님에도 걱정이 슬몃 고개를 들었다.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서 이 책을 추천하겠다. 어떤 다큐보다 생생하고 박진감 있다. 책장을 펼치면 단숨에 탄자니아 평원 어딘가로 데려갈 것이다. 세렝게티 초원의 내음이 코끝을 스칠 것이고, 킬리만자로 산을 헉헉거리며 오르고 있을 것이다. 1인칭 서술자인 어린 사자에게 스르르 감정이입하게 된다. 용맹한 아버지의 사냥법을 배우는 한편 그들의 죽음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만 한다. 물소와 하이에나의 숨통을 끊어야 내가 살 수 있고 가족을 지킬 수 있다.


p.164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머리를 흔들고 나서 나는 먹는 일에 집중했다. 녀석의 부드러운 뱃가죽을 물어 당기자 힘없이 뱃구레가 터지며 주르륵, 창자가 흘러나왔다. 나는 주둥이를 깊숙이 들이밀어 부드러운 간을 뜯어냈다. 입안 가득 진득한 핏물이 차오르며 그동안의 갈증을 순식간에 풀어주었다. 이 맛, 내가 살아있음을 각성시키는 이 환장할 맛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먹잇감을 살피고, 그것들이 우는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움직임을 듣고, 바람에 실려오는 생명의 냄새를 맡고, 발톱과 이빨로 목숨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존재하는 모든 증거이다. 이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먹는 행위의 적나라함, 부모와 자연 안에서 살아있다는 벅차오름, 죽음을 기껍게 받아들이는 눈망울은 생과 사를 온전히 몸으로 행하는 것이다. 세렝게티의 사자나 물소와 우리 인간이 그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가. 삶과 죽음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 속에서만 소통하며 멀티버스와 증강현실의 시대에 내 몸과 내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 소설을 그저 활자로 만나는 동물 다큐라는 범주 안에 가두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들이 온몸으로 묻는다. 당신들은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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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토슈즈를 신은 이유 - 미국 최고 발레단 ABT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 이야기
미스티 코플랜드 지음, 이현숙 옮김 / 동글디자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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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최초로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가 된 ‘미스티 코플랜드’의 자서전 <내가 토슈즈를 신은 이유>를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었다. 그녀는 나풀거리는 흰 튀튀만큼이나 새하얀 피부의 발레리나가 날아오르는 게 당연한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이 되었다.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하나씩 다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감히 예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다. 발레를 좋아하기에 더 궁금했다.


그런데, 읽기 쉽지 않았다. 나는 이런 내용일 거라 예상했다.

‘발레가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그 우아한 몸짓과 손끝과 발끝의 움직임은 죽을 만큼 연습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백조의 호수나 지젤 같은 유명 발레의 장면들을 설명하며 이렇게 이렇게 춤춘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예상과 달라서 잘 안 읽혔나? 맞다! 언제쯤 내가 상상하는 발레공연의 한 장면이 나올까 목 빠져라 기다렸지만 기대는 여실히 무너졌고 점점 읽기 힘들어졌다.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스티 엄마의 행동 때문에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만약 서평단이 아니었다면 완독은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ABT의 수석무용수가 되는 과정의 그 어려움에 비할까만은, 노오력해서 끝까지 읽어냈다.


앞서 내 예상과 달라서 읽기 힘들었다는 이유 외에 다른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문화와 번역때문이었다. 먼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한다는 말은 정말이지 말로 할 때만 쉽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은 미스티의 엄마에 대한 내용이다. 인간이란 존재에게 엄마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미스티에게는 어마무시했다. 그녀의 엄마는 여러 번의 동거와 결혼으로 씨다른 아이들을 낳았고, 한 곳에 정착하는 기간이 짧아서 늘 아이들을 데리고 싸구려 호텔을 전전했다. 그 와중에 미스티가 후원자의 도움으로 발레를 배울 수 있게 되었고 후원자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엄마는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라면 딸이 안정적이고 건강한 환경에서 발레를 배우도록 할텐데 이 엄마는 대체 뭐지? 읽는 내내 화나고 불편했다.


이 책은 어려운 내용이 없다. 미스티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회고하는 내용으로 기록했으며 특별히 전문적인 용어도 남발하지 않았다. 절반정도 읽었을 때 깨달았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을. 작년 영문 번역관련 서적에서, 의역이 지나치면 원문의 의미를 변형시킬 수 있으므로 차라리 직역하라는 내용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직역인 것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많았는데 조금 더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었을텐데 굳이 이렇게 번역했을까 싶은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예컨대 이런 문장들이 가독성을 떨어뜨렸다.


“그건 마치 발레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삶에 유의미한 존재로 남기 위해 생존을 모색하는 가운데에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배타적인 비밀사회인 듯 느끼게 한다.”

“내 목표는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발레를 접할 기회가 없거나, 혹은 감상할 수 없을 관객들과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술술 읽히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전문 대필작가의 손길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투박한 날 것 그대로의 그녀 생각과 삶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린 시절부터 ABT수석무용수가 되기까지 순서대로 이어지지만 엄마 때문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때가 너무 길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발레를 놓지 않은 것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녀도 말했다시피 허름한 길가 호텔방을 전전하던 씨다른 형제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멋지게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랍다.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다들 멋지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못할거라고, 마약이나 범죄에 찌들린 삶을 살거라는 예상도 편견이었다. 그런 내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미스티 코플랜드는 타고난 천재였다. 그리 큰 노력 없이도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하고 싶은 자세는 뭐든 마음대로 되었다. 그런 그녀가 열세살에 발레를 시작했다고 해서 구애될 게 없었다. 보통 1년은 지나야 ‘앙 뿌엥뜨(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동작)’를 할 수 있는데 미스티는 발레 시작한지 몇 달만에 해냈다. 그녀의 몸은 발레에 최적화된 상태로 태어났지만 환경은 정반대였다. 그나마 후원자와 ABT후원 프로그램 덕분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차별조건, 뒤늦게 찾아온 신체 변화,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상은 발레를 그만둘 조건으로 충분했다.


미스티 코플랜드는 말한다.


"나는 발레 기술을 결코 완벽하게 해낼 수 없으리라는 걸 안다(언제까지나). 그 사실이 내가 발레를 좋아하는 이유다."




저토록 완벽한 몸매로 이를 데 없이 아름다운 자태를 뿜어내면서도 완벽하지 않단다. 저 말은 겸손이라기 보다는 매일매일 자신을 다듬는 행위,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표현 같다.





**위 리뷰는 컬처블룸 서평단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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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양장) 소설Y
이종산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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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소설Y 일곱 번째 작품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은 이번에도 작가는 비밀로 하고 대본집 형태로 받았다. 이 소설은 학교괴담이 소재다. 풍영중학교 교내에 자리 잡고 있는 사당이 근거지다. 뭔가 비밀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전래동화처럼 떠돈다. 풍영중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여학생 세연과 모모, 소라는 도서부다. 셋은 도서부 활동을 하면서 종이접기도 한다. 시작부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종이접기를 하던 아이들은 그 소리를 따라 복도로 나간다. 구슬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하던 세연의 앞에 나타난 여자는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대뜸 종이학 하나만 접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한복 입은 여자가 귀신인걸까?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 뒤 괴담을 수집하는 졸업생 장휘의 등장과 비밀을 알면서도 빙빙 돌리는 것 같은 지문 선생님, 벽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는 세연까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계속 자아낸다. 손녀 졸업식으로 오랜만에 풍영중학교에 온 감회를 적은 블로그 글을 장휘가 찾아냈는데 그 글에 종이학 귀신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아이들은 블로그 주인 ‘즐거운 연꽃’을 찾아가기로 한다.

이렇게 종이학 귀신이 그저 괴담일지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점점 더 궁금하게 만든다. 1921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100년을 관통한다. 도서부 아이들은 지하 서고에서 과거로 이동하게 되고 일제에 강제 동원된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을 읽을 청소년들은 한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이다. 그러나 주인공 세 명이 만나는 역사 현장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학습으로 배울 때의 거리감과는 차원이 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매일 사당에 가서 학을 접고 태우는 행위는 강제 동원된 이들이 돌아오기를 절절하게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 사당의 사연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각조각 흩어져 괴담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셋 중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세연은 시간여행을 통해 종이학과 사당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세연은 그 시절 수이와 재회하지만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셀 수 없다.

이 소설은 으스스한 학교 귀신 이야기일 것 같았으나 100년 넘은 학교에 있는 사당의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였다.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세 명의 여학생이 자분자분 스토리를 끌어가기에 읽는 재미가 있다. 학교 때 도서부 활동을 했던 어른이나 여학생들은 공감하며 읽을 수 있겠다.

일심상조불언중(一心相照不言中)이라는 도서실에 걸린 액자의 의미를 시간여행을 다녀온 셋은 깨닫는다. 친구란, 한마음으로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 비추어 주는 사이라는 것을. 서로의 좋은 점을 잘 알고 늘 지켜봐왔으며 무모한 일이든 용감한 일이든 셋이서 함께 했다. 그들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 질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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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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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기억책>을 쓴 최원형씨는 자연을 눈 가까이 불러들이고 싶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우리 곁에 소리 없이 혹은 열렬히 존재를 드러내며 왔다가 가는 생명들을 매일매일 그렸다. 가는 그들이 아주 가는 것은 아니다. 계절이 한 바퀴 돌면 다시 오는 생명이 있고, 눈에 띄지 않거나 소리 내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그들을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무심하게 사는 지. 생태계는 서로 주고받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순환하는데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하는 짓이라고는 그 흐름을 파괴하는 것뿐이다.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악랄하기까지 하다.

 

표지에서 최원형 작가를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라 했고 그의 글은 담백하고 잔잔했지만 나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절로 고개 숙여졌다. 작가는 당신도 한 번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권유하는 듯했다. 이런 책을 읽는 동안만 미안해하고 분개하면 안 될 것 같다. 새든 꽃이든 자신의 시선이 더 많이 머무는 것을 그려보아야 한다. 그것은 관심이다. 애정 어린 시선 없이는 그릴 수 없으며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작가는 주위의 생명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매일 자연으로부터 배운다고 했다.

 

작가는 아파트에 살면서 새에게 모이를 준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밀어버리고 들어선 공간이므로 새들을 위해 모이를 챙기는 일은 의무이자 공간 사용료나 다름없다고 했다. 생태에너지기후변화 관련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기에 일반인과는 다른 시각으로 자연을 관찰하겠지만 세상 모든 생명들을 보는 그의 눈엔 늘 온기가 있었다. 그를 따라 사계절을 좇다보니 내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신도시가 형성된 곳이고 우리 집 바로 앞은 그린벨트다. 주위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많고 몇 주 전 모내기가 끝난 논에서는 밤마다 개구리들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마당에 날아드는 까치와 참새와 나비들을 지켜볼 여유도 없이 산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사는 이름조차 몰랐던 생명들에 대해 알려주고 생태 관련 새로운 용어들도 접하게 해준다. 그보다 작가는 내 생활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눈을 뜨라고, 귀를 열어보라고, 계절을 느껴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것들을 기록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자고. 기록하다보면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작가의 기록 하나하나는 독자를 깊은 생각으로 이끈다. 우리가 만나는 아주 작은 생명들을 얼마나 무심하게, 함부로 대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작가는 고추를 먹다가 발견한 담배나방 애벌레와 화분 속에서 나온 지렁이를 죽이지 않고 집에서 키웠다. 애벌레는 나방이 되지 못했고지렁이 분변토는 흙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날아온 곤충이 다치지 않게 바깥으로 날려 보냈고 추운 겨울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위해 자신의 발토시를 벗어 주었다. 그 생명들이 살았을지 죽었을지는 모른다. 무심코 죽이거나 흘려보고 말 생명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태도를 똑같이 따라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인상깊은 꼭지]


제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할 때 강남이 그렇게 먼 곳일 줄 몰랐다. 제비는 입추 무렵부터 겨울을 지내려고 이동하는데 수천 km나 떨어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까지 간다고 한다. 겨우 500원짜리 동전 두 개 정도의 몸무게로 그 먼 거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부화후 어미는 21일 동안 새끼에게 하루 평균 350여 차례나 먹이를 가져다 먹인단다. 최근 여름철 폭우가 길어지고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먹이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콘크리트, 농약, 기후 위기까지 제비에게 한국은 돌아오고 싶은 곳일까...

 



p.57

어느 해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에 강원도 동해안 안목에 다녀왔다. 입추라지만 8월은 여전히 뜨거웠다. 바닷가를 산책하다 제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좇다가 전깃줄 위에 앉아 있는 한 무리의 제비를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깃줄이었다(……)

 기후와 생존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는 걸 또다시 배운다. 이 봄 혹시 제비를 만난다면 따뜻한 환대의 마음으로, 여린 생명들이 무탈하게 오고 가길 꼭 빌어주길 바란다.



뒤영벌

이 꼭지는 목련으로 시작한다. 목련이 현재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12천만 년 전 지구에 등장) 꽃식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매개동물이 없던 시절부터 살았기에 꿀을 만들 필요가 없다가 이후 등장한 곤충과 새의 도움을 얻고자 진화하며 향기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 살던 동네나 고등학교 교정에 목련나무가 있었는데 향은 맡아본 기억이 없다. 작가는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는 시구를 인용하며 향이 진하고 로맨틱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내년 봄엔 목련을 만나 향을 꼭 맡아보고 싶다.

 



올 봄에 우리 집 홍매화에 찾아온 벌들을 보며 신기해서 찍어두었다. 벌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덕분에 열매가 그득 맺혀 신통해 했다. 그런데 지난 4월 몇 차례 매섭게 쏟아진 비로 작은 매실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벌들의 수고가 무색하게시리...

 

p,92

벌의 존재 이유가 인간의 위장을 채워주는 노동자로 인식되는 세상은 개탄스럽다. 벌은 우리보다 훨씬 이전부터 지구에 존재했다. 벌은 수분 매개자로서 식물의 진화에 기여해왔고 그 틈바구니에서 인류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미 꿀벌은 지구상에서 돼지나 소처럼 가축의 지위에 올라 있다. 기여하는 바가 큰 만큼 우리는 꿀벌에게 어떤 대접을 해야 할까? 꽃이 피었을 때 벌이 마음껏 꿀을 모으게 하고, 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망가뜨리지 않으면 된다.

 


소똥구리

 아이들과 하는 그림책 수업에 단골로 등장하는 곤충은 소똥구리다. 실제 소똥구리를 본적 없는 아이들에게 책으로나마 그들의 역할과 생태를 알려준다. 나 역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소똥구리의 종류가 아주 많고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고 수업했는데 아니었다. 작가는 국내에서 소똥구리가 사라진 이유가 소똥구리가 먹을 똥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소똥구리가 사라진 것이다.



 

p.248 

자연은 소똥 해결사인 소똥구리까지 다 갖춘 순환 시스템을 완비해놓고 있었다. 그 시스템을 걷어찬 걸 개개인의 육식 습관으로만 한정시켜 비난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눈치 채기도 전에 육류의 대량생산이 진행되었고 식용유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육류의 대량생산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온실가스 배출에도 육식이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세상을 바꾼다.

 


버드피더 (feeder)

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야외에 설치한 통이나 장치를 버드피더라고 부른다.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솔방울에 견과류를 밀가루 반죽에 박아서 매달아둔다고 한다. 새를 사랑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새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나는 구대륙독수리가 겨울에 몽골에서 우리나라로 내려와 월동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중학교 미술교사였던 김덕성씨가 2000년부터 사비를 털어가며 독수리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는데 그는 독수리 아빠로 불린다. 그는 경남 고성에서 매년 11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일주일에 네 번 독수리 식당을 연다. 시멘트로 논두렁을 발라버리고, 차량 이동의 편의를 위해 비자림 숲의 나무를 베고, 콘크리트 건물을 더 높이 더 높이 지어 올리는 인간들만 있는 건 아니다. 독수리 먹이를 나눔하는 사람들, 버드피더를 만드는 지자체, 이런 책을 쓰는 작가처럼 야생의 생명들과 연대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 있다는 건 정말이지 다행이다.

 


 p.283

우리 동네에서 겨울을 지내는 새들과 연대하기 쉬운 방법으로 솔방울 버드피더나 우유팩 버드피더가 있다. 솔방울이나 잣방울이 가을이면 많이 떨어진다. 그런 걸 모아서 끈을 달아 버드피더를 준비해두었다가 추운 겨울에 아파트든 공원이든 새가 자주 오는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어떨까?참고로 솔방울 버드피더를 매달 때는 썩을 수 잇는 천연 끈을 사용하는 게 생태계에 이롭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고양이가 닿지 않을 높이에 달아놔야 한다. 고양이는 전 세계에서 새의 최고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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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건너편 작별의 건너편 1
시미즈 하루키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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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순간, 죽음. 우린 모두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알지 못한 채... 몇 년 전부터 웰다잉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천착하게 되었다. 자꾸 생각하다보니 ‘갑자기 죽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의 죽음 이후는 내 소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다가 종국에는 ‘후회’라는 낱말에 도달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볼걸, 더 사랑한다고 말할 걸, 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도식적인 답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책 <작별의 건너편>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신비한 공간이다. 가제본이라 세 편의 에피소드만 소개하고 있는데 각각의 주인공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가족이었다. 작가 ‘시미즈 하루키’는 내가 했던 생각에서 일보다는 사람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쓴 듯하다. 주인공들도 내가 우려했던?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더라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했을텐데 말이다.

작별의 건너편에서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작별의 건너편을 찾아온 사람에게는 현세에 있는 존재와 한번 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2. 허락된 시간은 24시간, 꼬박 하루라는 시간이다.

3. 평소와 똑같이 생활할 수 있고, 다른 이와 대화도 할 수 있다.

4. 단, 현세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는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존재’일 뿐이다.

5. 당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 현세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작별의 건너편’으로 강제 소환된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만나고 싶어한 이는 가족이었으나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으므로 직접 대면할 순 없다. 그러면 사라져버리니까.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를 만날 것인가?

그들 주위를 배회할 수밖에 없을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전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주인공들의 행동을 따라가 보았다.

세 편의 에피소드가 길지는 않다. 그들의 사연도 평범하다. 좋은 일을 했지만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아야코, 평생 부모를 오해했던 히로카즈, 그리고 사소한 다툼으로 집을 나왔다가 죽은 고타로(반전 있음)는 모두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예상가능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각각의 사연을 읽으며 독자는 자신에게 대입할 수밖에 없다. 만약 죽은 후 내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만나고 싶은 이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단박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여럿의 얼굴이 스치기도 할 것이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얼까? 주인공들과 비슷한 말을 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이 후회없이 사랑하며 살자는 다소 진부한 내용임에도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닥칠 일이기 때문이며, 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고 있으나 유사성과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고 싶지만 전쟁처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일을 쳐내면 내일 또다른 일이 눈 시퍼렇게 달려들고, 이제 인생의 과업 하나를 무사히 넘었나 싶으면 새로운 과제가 떡 하니 기다리고 있다. 죽어야만 끝날 터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으니 견뎌내는 게 아닐까. 그들 때문에 울고 웃는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잠들자. ‘잘 자’ 대신 ‘사랑해’라고 말해야겠다.

안내인 사연 상상해 보기


안내인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반지를 찾아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작별의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현세에 다시 한번 갈 수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애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가 자신의 절친과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고 저도 모르게 애인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그녀는 깜짝 놀라 안내인을 쳐다봤고 안내인은 연기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했지만 안내인은 어쩐 일인지 작별의 건너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후회했고, 화가 났고, 제 친구와 그녀는 왜 그러고 있었는지 알아야했다. 그녀를 다시 만나야만 했다.

그는 안내인이 되었다. 안내인은 단 맛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조지아 맥스 커피를 좋아했던 그녀를 떠올리며 마시다보니 점점 맥캔에 중독되어갔다. 그녀가 사는 동네를 안내하게 되길 기다렸지만 기회는 쉬이 오지 않았다. 안내인을 한 지 7년이 넘었을 즈음 드디어 그녀가 살던 동네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안내인은 그녀가 그곳에 계속 살고 있길 빌었다.

6살 여자아이를 안내하게 되었는데 아이는 엄마가 일하는 커피숍에 가겠다고 했다. 안내인은 아이에게 단단히 일렀다. 엄마 앞에 나서서는 안 되며 엄마를 불러서도 안 된다고. 그렇게 둘은 커피숍 앞 햄버거 가게로 들어가서 기다렸다. 그러나 아이는 출근하는 엄마를 보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이는 엄마 품으로 달려들었고 둘은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러나 1분도 채 되지 않아 아이는 사라졌다. 안내인은 두 눈을 세차게 비볐다. 아이의 엄마는 안내인의 그녀였고 여자아이는 자신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는 제 딸을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웠다. 안내인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녀와 딸이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그녀의 동네에서 계속 안내인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에게 말을 건넬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먼 발치에서 지켜볼 뿐이지만, 그는 오늘도 망자와 함께 그녀의 동네로 향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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