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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평점 :
<사계절 기억책>을 쓴 최원형씨는 ‘자연을 눈 가까이 불러들이고 싶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우리 곁에 소리 없이 혹은 열렬히 존재를 드러내며 왔다가 가는 생명들을 매일매일 그렸다. 가는 그들이 아주 가는 것은 아니다. 계절이 한 바퀴 돌면 다시 오는 생명이 있고, 눈에 띄지 않거나 소리 내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그들을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무심하게 사는 지. 생태계는 서로 주고받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순환하는데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하는 짓이라고는 그 흐름을 파괴하는 것뿐이다.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악랄하기까지 하다.
표지에서 최원형 작가를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라 했고 그의 글은 담백하고 잔잔했지만 나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절로 고개 숙여졌다. 작가는 ‘당신도 한 번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권유하는 듯했다. 이런 책을 읽는 동안만 미안해하고 분개하면 안 될 것 같다. 새든 꽃이든 자신의 시선이 더 많이 머무는 것을 그려보아야 한다. 그것은 관심이다. 애정 어린 시선 없이는 그릴 수 없으며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작가는 주위의 생명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매일 자연으로부터 배운다고 했다.
작가는 아파트에 살면서 새에게 모이를 준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밀어버리고 들어선 공간이므로 ‘새들을 위해 모이를 챙기는 일은 의무이자 공간 사용료나 다름없다’고 했다. 생태•에너지•기후변화 관련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기에 일반인과는 다른 시각으로 자연을 관찰하겠지만 세상 모든 생명들을 보는 그의 눈엔 늘 온기가 있었다. 그를 따라 사계절을 좇다보니 내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신도시가 형성된 곳이고 우리 집 바로 앞은 그린벨트다. 주위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많고 몇 주 전 모내기가 끝난 논에서는 밤마다 개구리들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마당에 날아드는 까치와 참새와 나비들을 지켜볼 여유도 없이 산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사는 이름조차 몰랐던 생명들에 대해 알려주고 생태 관련 새로운 용어들도 접하게 해준다. 그보다 작가는 내 생활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눈을 뜨라고, 귀를 열어보라고, 계절을 느껴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것들을 기록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자고. 기록하다보면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작가의 기록 하나하나는 독자를 깊은 생각으로 이끈다. 우리가 만나는 아주 작은 생명들을 얼마나 무심하게, 함부로 대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작가는 고추를 먹다가 발견한 담배나방 애벌레와 화분 속에서 나온 지렁이를 죽이지 않고 집에서 키웠다. 애벌레는 나방이 되지 못했고지렁이 분변토는 흙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날아온 곤충이 다치지 않게 바깥으로 날려 보냈고 추운 겨울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위해 자신의 발토시를 벗어 주었다. 그 생명들이 살았을지 죽었을지는 모른다. 무심코 죽이거나 흘려보고 말 생명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태도를 똑같이 따라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인상깊은 꼭지]
☞ 제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할 때 강남이 그렇게 먼 곳일 줄 몰랐다. 제비는 입추 무렵부터 겨울을 지내려고 이동하는데 수천 km나 떨어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까지 간다고 한다. 겨우 500원짜리 동전 두 개 정도의 몸무게로 그 먼 거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부화후 어미는 21일 동안 새끼에게 하루 평균 350여 차례나 먹이를 가져다 먹인단다. 최근 여름철 폭우가 길어지고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먹이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콘크리트, 농약, 기후 위기까지 제비에게 한국은 돌아오고 싶은 곳일까...
p.57
어느 해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에 강원도 동해안 안목에 다녀왔다. 입추라지만 8월은 여전히 뜨거웠다. 바닷가를 산책하다 제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좇다가 전깃줄 위에 앉아 있는 한 무리의 제비를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깃줄이었다. (……)
기후와 생존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는 걸 또다시 배운다. 이 봄 혹시 제비를 만난다면 따뜻한 환대의 마음으로, 여린 생명들이 무탈하게 오고 가길 꼭 빌어주길 바란다.
☞ 뒤영벌
이 꼭지는 목련으로 시작한다. 목련이 현재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약 1억2천만 년 전 지구에 등장) 꽃식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매개동물이 없던 시절부터 살았기에 꿀을 만들 필요가 없다가 이후 등장한 곤충과 새의 도움을 얻고자 진화하며 향기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 살던 동네나 고등학교 교정에 목련나무가 있었는데 향은 맡아본 기억이 없다. 작가는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는 시구를 인용하며 향이 진하고 로맨틱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내년 봄엔 목련을 만나 향을 꼭 맡아보고 싶다.
올 봄에 우리 집 홍매화에 찾아온 벌들을 보며 신기해서 찍어두었다. 벌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덕분에 열매가 그득 맺혀 신통해 했다. 그런데 지난 4월 몇 차례 매섭게 쏟아진 비로 작은 매실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벌들의 수고가 무색하게시리...
p,92
벌의 존재 이유가 인간의 위장을 채워주는 노동자로 인식되는 세상은 개탄스럽다. 벌은 우리보다 훨씬 이전부터 지구에 존재했다. 벌은 수분 매개자로서 식물의 진화에 기여해왔고 그 틈바구니에서 인류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미 꿀벌은 지구상에서 돼지나 소처럼 가축의 지위에 올라 있다. 기여하는 바가 큰 만큼 우리는 꿀벌에게 어떤 대접을 해야 할까? 꽃이 피었을 때 벌이 마음껏 꿀을 모으게 하고, 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망가뜨리지 않으면 된다.
☞ 소똥구리
아이들과 하는 그림책 수업에 단골로 등장하는 곤충은 소똥구리다. 실제 소똥구리를 본적 없는 아이들에게 책으로나마 그들의 역할과 생태를 알려준다. 나 역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소똥구리의 종류가 아주 많고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고 수업했는데 아니었다. 작가는 국내에서 소똥구리가 사라진 이유가 소똥구리가 먹을 똥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소똥구리가 사라진 것이다.
p.248
자연은 소똥 해결사인 소똥구리까지 다 갖춘 순환 시스템을 완비해놓고 있었다. 그 시스템을 걷어찬 걸 개개인의 육식 습관으로만 한정시켜 비난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눈치 채기도 전에 육류의 대량생산이 진행되었고 식용유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육류의 대량생산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온실가스 배출에도 육식이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세상을 바꾼다.
☞ 버드피더 (feeder)
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야외에 설치한 통이나 장치를 버드피더라고 부른다.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솔방울에 견과류를 밀가루 반죽에 박아서 매달아둔다고 한다. 새를 사랑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새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나는 구대륙독수리가 겨울에 몽골에서 우리나라로 내려와 월동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중학교 미술교사였던 김덕성씨가 2000년부터 사비를 털어가며 독수리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는데 그는 ‘독수리 아빠’로 불린다. 그는 경남 고성에서 매년 11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일주일에 네 번 독수리 식당을 연다. 시멘트로 논두렁을 발라버리고, 차량 이동의 편의를 위해 비자림 숲의 나무를 베고, 콘크리트 건물을 더 높이 더 높이 지어 올리는 인간들만 있는 건 아니다. 독수리 먹이를 나눔하는 사람들, 버드피더를 만드는 지자체, 이런 책을 쓰는 작가처럼 야생의 생명들과 연대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 있다는 건 정말이지 다행이다.
p.283
우리 동네에서 겨울을 지내는 새들과 연대하기 쉬운 방법으로 솔방울 버드피더나 우유팩 버드피더가 있다. 솔방울이나 잣방울이 가을이면 많이 떨어진다. 그런 걸 모아서 끈을 달아 버드피더를 준비해두었다가 추운 겨울에 아파트든 공원이든 새가 자주 오는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어떨까?참고로 솔방울 버드피더를 매달 때는 썩을 수 잇는 천연 끈을 사용하는 게 생태계에 이롭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고양이가 닿지 않을 높이에 달아놔야 한다. 고양이는 전 세계에서 새의 최고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