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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
허철웅 지음 / 가디언 / 2023년 7월
평점 :

나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당신은 아재!”라고 놀려도 어쩔 수 없다. 감성도 나이도 벌써부터 아저씨 반열에 올랐으니까. 극구 부인해봤자 강조하는 꼴이 될 터이니 빠른 인정이 답이다. 약육강식의 처절한 현장을 보고 있는 가장의 뒷모습은 이제는 퇴물이 되어버린 수사자의 추레한 갈기와 비슷하다는 연민어린 표현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들은 꾸며낸 드라마보다 동물 다큐에 진정 공감한다고도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 다큐를 즐겨봤다. 동물들의 피 튀기는 생존이 자극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실은 다른 궁금증이 있었다. 지엽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는지 다큐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다. ‘어떻게 저렇게 가까이서 찍을 수 있지?’ ‘동물들은 배우가 아닌데 어쩜 저렇게 생생하게 연기하는 것 같지?’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서 그런 의문들은 하나씩 해결되었고 관심은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동물들의 독특한 생존 방식이나 의사 소통법, 인간과 동물의 관계 등등.
허철웅의 소설 <죽거나 죽이거나:나의 세렝게티>는 제목과 표지에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연상시킨다. 기존에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의 소설을 내다니 대단한 자신감이구나 싶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니 작가가 27년간 매달린 끝에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작가의 이력이 소설 속에 녹아들었을 것 같아 기대되었다. 우려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생생한 동영상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아기 사자가 늠름하게 자라 아빠의 뒤를 잇는다는 애니메이션 줄거리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리얼 생존기나 아기 사자의 귀욤미, 거기에 귀에 익은 뮤지컬 넘버까지,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작가와 아무 관계가 아님에도 걱정이 슬몃 고개를 들었다.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서 이 책을 추천하겠다. 어떤 다큐보다 생생하고 박진감 있다. 책장을 펼치면 단숨에 탄자니아 평원 어딘가로 데려갈 것이다. 세렝게티 초원의 내음이 코끝을 스칠 것이고, 킬리만자로 산을 헉헉거리며 오르고 있을 것이다. 1인칭 서술자인 어린 사자에게 스르르 감정이입하게 된다. 용맹한 아버지의 사냥법을 배우는 한편 그들의 죽음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만 한다. 물소와 하이에나의 숨통을 끊어야 내가 살 수 있고 가족을 지킬 수 있다.
p.164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머리를 흔들고 나서 나는 먹는 일에 집중했다. 녀석의 부드러운 뱃가죽을 물어 당기자 힘없이 뱃구레가 터지며 주르륵, 창자가 흘러나왔다. 나는 주둥이를 깊숙이 들이밀어 부드러운 간을 뜯어냈다. 입안 가득 진득한 핏물이 차오르며 그동안의 갈증을 순식간에 풀어주었다. 이 맛, 내가 살아있음을 각성시키는 이 환장할 맛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먹잇감을 살피고, 그것들이 우는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움직임을 듣고, 바람에 실려오는 생명의 냄새를 맡고, 발톱과 이빨로 목숨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존재하는 모든 증거이다. 이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먹는 행위의 적나라함, 부모와 자연 안에서 살아있다는 벅차오름, 죽음을 기껍게 받아들이는 눈망울은 생과 사를 온전히 몸으로 행하는 것이다. 세렝게티의 사자나 물소와 우리 인간이 그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가. 삶과 죽음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 속에서만 소통하며 멀티버스와 증강현실의 시대에 내 몸과 내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 소설을 그저 활자로 만나는 동물 다큐라는 범주 안에 가두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들이 온몸으로 묻는다. 당신들은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