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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라이프 - 한 정신과 의사가 40년을 탐구한 사후세계,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
브루스 그레이슨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1월
평점 :
몇 년 전, 이안 스티븐슨이 쓴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오래전 종교를 벗은 나는 전생이나 사후세계 같은 영적인 단어에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계기로 내가 기억 못 하는 전생의 삶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임사체험을 했다는 이야기에도 알 수 없는 구미가 당긴다.
애프터 라이프, 이 책은 죽을뻔한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임사체험을 한 이야기를 담는다. 저자는 버지니아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브루스 그레이슨. 누구보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일듯한 그가 40년이나 임사체험을 연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작은 넥타이에 튄 스파게티 소스였다.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던 그는 응급실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실려온 환자가 있다는 호출에 놀라 포크를 떨어뜨린다. 그 바람에 소스가 넥타이에 튀었고, 어떻게든 가려보려고 의사 가운의 단추를 채웠다고 한다. 서둘러 응급실에 갔지만 환자 홀리는 의식이 없었다. 홀리의 룸메이트와 다른 방에서 발견하게 된 경위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여전히 홀리는 의식이 없고, 간호사가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다음날 의식이 돌아온 홀리는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홀리는 침대에 누워 의식이 없던 그 시간에, 침대 밖을 나와 다른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의사와 룸메이트를 보고 있었다. 방과 가구의 배치, 나누던 이야기의 내용, 심지어 의사의 넥타이에 튄 붉은 소스 자국까지 알고 있었다. 이 일은 정신과 의사인 그에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이걸 계기로 그는 유체이탈, 임사체험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된다.
정신과 의사인 그에게 이건 쉽지 않은 접근이었다.
과학자이자 회의주의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사물이나 자신의 해석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를 가졌다고 한다. 과학의 결론은 늘 잠정적이며, 과학은 항상 과정이다, 우리의 세계관이 아무리 탄탄해도 새로운 증거나 의심이 생기면 다시 탐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런 교육을 받아온 그는 비현실적인 일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한다는 건 과학을 거부하는 태도가 아니라 과학을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자세를 알고 나니 이후 진행되는 그의 연구가 더 신빙성 있게 다가왔다. 그는 우선 국제임사 체험연구협회를 설립하고, 임사체험한 사람들을 만나 사례를 모은다. 임사체험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 내가 내 몸을 떠나 나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
- 어두운 터널을 이동해 엄청난 빛을 만난다
-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안내자로 보이는 누군가를 만난다
- 확장된 시야에 한계가 없다는 것과, 생각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름
- 살아온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보게 되는데, 내 관점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도 보게 되며 그로 인해 내가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는 것
- 한없이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천국이라 말한다.
-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생생하다
- 너의 할 일이 아직 남았다는 말을 듣고 다시 육체로 돌아온다는 것
많은 의사들이 죽을 고비에서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를 환각이라고 치부했다.
정신과 의사인 그는 임사체험자들을 만나 상담하며 한 가지 의문에 봉착한다. 정신질환으로 임사체험을 경험하는 것인지, 임사체험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겼는지 가려내기로 한다. 검사 결과, 임사체험과 정신질환의 비율은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자살 충동을 앓던 사람들이 임사체험을 한 후, 그것에서 해방되는 모습을 보인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그 후의 세계를 보고 나니 두려움은 사라졌죠. 삶도 두렵지 않아요"
그들은 삶에 더욱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임사체험이 뇌가 분비하는 강력한 엔도르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자의 연구는 심장박동이 멈추는 순간 뇌의 기능으로 이어진다.
그는 연구와 가설들을 종합하며, 정신이나 의식이 뇌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뇌가 작동을 멈춘 후에도 의식이 지속되었던 사례들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들은 임사체험 당시 들었던 노래, 들었던 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고 다시 돌아와 증명했다. 이에 저자는 사후 우리 의식이 어디로 가는지 천국, 지옥, 신은 정말 있는지 대해서 사례로 말한다. 그의 의학적 접근과 사례 분석에 대한 노력은 독자로 하여금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임사체험의 의미는 무엇일까
"임사체험 후 모든 인간에 대해 조건 없는 사랑과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는 게 내 사람에서 가장 큰 변화예요" p284
"지금까지 다른 어떤 경험도 내 사람에 이렇게 깊은 영향을 준 적이 없습니다. 나는 물질적인 게 멋지기는 하지만, 개인의 정신이나 본질을 규정하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내 삶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균형이 잡혀 있어요" p291
"모두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단어가 있어요. 사랑이에요. 그리고 그 메시지는 이래요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 너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게 바뀌지 않는 진리예요" p297
임사체험을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삶을 산다. 겪는 과정 동안 매우 만족한 기분, 자족한 기분을 느꼈고 심지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싫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혼란을 이겨내고 바뀐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혼란을 이겨내지 못하고 후유증을 앓는 사람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임사체험은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목적과 의미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변화'와 '쇄신'에 관한 것이며, 지금 우리 삶에 목적을 불어 넣는 일이라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그의 임사체험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 발견보다는 삶의 의미로의 발견이었다.
체험자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저자가 임사체험을 연구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의학적이라 읽으며 계속 호기심이 생겼다. 그가 체험자를 대하는 자세와 과학이 증명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 그 모든 겸허함이 의료진들이 보편적이로 보이는 오만함과는 상반되는 것이라 뭉클한 존경심이 생겼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 호기심이었다면, 이 책을 덮은 지금은 경건함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부와 권력보다는 의미와 연민이 중요하다. 그것을 인식하면 삶이 훨씬 깊어질 것이다. 그것을 알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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